71화
'괴물 같은 새끼.'
나는 쓰러져 있는 골렘 사제를 보며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그러면서 인벤토리에서 꺼낸 급속 치유 물약을 어깨 위에 뿌렸다.
피가 흘러내리는 상처 위에 포션이 닿자 타들어 갈 것 같은 통증이 느껴졌다.
골렘 사제가 내게 입힌 상처였다.
아이언 바디와 미스릴 갑옷을 뚫고서 이런 상처를 입힐 정도로 골렘 사제가 강력했다는 뜻이었다.
'망가진 갑옷은 해밀턴에게 다시 수리를 맡겨야겠어.'
어깨의 상처가 금세 아물기 시작했다.
나는 남은 포션을 내 몸에 난 상처 곳곳에 적당히 뿌렸다.
'이 비싼 물약을….'
한 병에 무려 10만 골드에 육박하는 포션이다.
이렇게 비싼 포션 한 병을 통째로 써야 한다는 사실이 안타까운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비싼 만큼 효과는 확실했고, 1분이 채 지나지 않아 상처들이 모두 아물었다.
그리고 그때 막 사방에서 내가 쏘아 낸 신호를 발견한 플레이어와 용사 무리가 달려오고 있었다.
"강민 씨!"
"도착했습니다!"
"여기도요!"
각자 자신들의 도착을 알리는 이들을 보며 나는 외쳤다.
"다들 뭉쳐서 활로를 뚫는다!"
골렘 사제를 처치해 지휘 체계는 잃었지만 여전히 골렘들의 숫자는 수백에 가깝다.
이것들을 하나씩 처치하기에는 너무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소요된다.
그러니 모든 인원이 힘을 합쳐 활로를 뚫어내고, 곧바로 30층으로 향하도록 지시한 것이다.
'물론 나는 최대한 늦게 30층에 오른다.'
이유는 하나다.
골렘들을 하나라도 더 많이 처치하고 스탯을 포식하기 위해서다.
게다가 이제 곧 열릴 포식 슬롯을 위해서라도 더 많은 포식 포인트를 모아 둬야 한다.
'갈수록 능력을 포식하기 위한 포인트의 양이 증가하고 있어.'
그동안 필요한 포식 포인트는 두 배씩 증가했다.
만약 다음에도 두 배 만큼 포식 포인트가 증가한다면, 8만 포인트나 필요하다는 뜻이다.
'게다가 잠재 스탯까지 함께 포식하려면 사실상 10만 포인트로도 부족하다는 뜻이니까.'
그러니 지금 내게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골렘들은 소중한 자원인 셈이었고.
한 마리라도 허투루 날리기에는 안타까울 수밖에 없다.
어쨌든 플레이어들과 용사 무리들은 한데 뭉쳤고.
힘을 합쳐 모여 있는 골렘을 향해 돌진하며 활로를 뚫기 시작했다.
"여기 지원 부탁해요!"
"여기는 충분합니다! 저쪽으로 가주세요!"
"알겠습니다!"
"여기 부상자요! 사제님! 치유 마법 부탁합니다!"
"예! 바로 가겠습니다!"
만난 지 얼마 안 된 이들이었지만 어느새 죽이 잘 맞는 팀이 되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귀엽기도 한 그들의 모습을 보며 내심 뿌듯함을 느끼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때.
"허억! 허억! 주인, 주인이이임!"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몰른이다.
몰른은 전투 능력이 떨어진 나머지 한참 뒤에서 가까스로 무리의 꽁무니를 쫓아 달려 온 모양이다.
"미안하다. 몰른. 네게 신경을 쓰지 못했어."
"아, 아닙니다요오오오! 주인님께서 이곳의 우두머리를 처치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얼마나 기뻤는지, 저 몰른은…."
"조용."
"네, 네에에…."
내 한 마디에 몰른은 입을 다물었다.
몰른을 타박하는 건 아니다.
다만 그보다 더 필요한 게 있을 뿐이다.
"그런 것 말고 나는 네 노래가 듣고 싶다."
"노래!"
몰른이 눈을 번뜩였고.
류트를 꺼내 들고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펫 '몰른'의 능력이 활성화됩니다.]
[능력 '승리의 노래'의 효과가 적용됩니다.]
[모든 능력의 지속 시간이 1.5배 상승합니다.]
몰른의 능력이 활성화된 순간, 지금 활성화되어 있는 모든 능력의 지속 시간이 증가됐다.
'좋아.'
그리고 다시 골렘 학살을 시작했다.
경쾌하고, 짜릿하다.
강해지고 있다는 것.
그 사실이 내 가슴을 벅차게 만들고 있었다.
***
파티원들은 결국 활로를 뚫어냈고, 나는 남아 있는 골렘 중 90% 이상을 쓸어 버리는 데 성공했다.
덕분에 획득한 스탯과 포식 포인트를 충분히 획득할 수 있었다.
우리는 30층으로 향하는 입구 앞에서 각자 정비를 시작했다.
상태창이 없는 용사와 용사의 무리들은 서로 대화를 하며 어디 출신이고, 어떻게 해서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 묻고 답했다.
'훌륭하군.'
상태창을 펼쳐 보며 나는 생각했다.
[상태창]
>이름: 한강민
>레벨 : 48
>스탯
-육체
힘 : 390.45
민첩성 : 3850.21
체력 : 399.43
-정신
마력 : 153.11
>마법 저항력
+ 65%
>능력
1. 포식자 (S)
2. 뇌전검 (S)
3. 충격파 (AA)
4. 오우거의 신체 (AAA)
5. 오러 블레이드 (S)
6. 아이언 바디 (AA)
7. 지휘관의 외침 (AAA)
[포식 포인트 : 103,303]
어느새 능력이 7개까지 늘어났다.
심지어는 가장 낮은 등급의 능력이 AA급이다.
보기만 해도 미소가 절로 나오는 상태창이다.
이 정도의 상태창은 정말 혈계를 이은 녀석들이 아니면 상상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 말은 반대로, 혈계를 타고난 녀석들의 상태창도 충분히 말도 안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내 상태창이 얼핏 보면 최고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이 탑에는 지금의 내 상태창보다 더 괴물 같은 능력을 지닌 녀석들이 존재하고.
명가의 직계들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럼에도 나 역시 잘 성장하고 있는 건 맞다.
이대로만 계속 자라 준다면, 마법 명가 놈들을 박살 내는 건 불가능한 일도 아닐 것이다.
'이제 마력이 153.'
오러 블레이드를 다음 단계로 진화시킬 수 있는 200까지는 고작 50밖에 남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당장 육체 스탯을 마력으로 전환하지는 않을 생각이다.
'30층까지는 이대로 가는 편이 나을 거야.'
골렘은 꽤 많은 마력을 보유한 몬스터들이고.
골렘을 사냥하다 보면 마력이 쏠쏠하게 오른다.
그러니 우선은 30층을 돌파하기 전까지 마력을 최대한 포식해 볼 생각이다.
'전환은 그때 가서 해도 늦지 않아.'
어차피 지금 당장 오러 블레이드의 위력과 지속 시간이 부족한 것도 아니니까.
지금 이 순간 오러 블레이드보다 더 중요한 건, 바로 육체 스탯이다.
'30층에 존재하는 마지막 보스 몬스터를 처치하기 위해서는 조금이라도 더 강해질 필요가 있으니까.'
드디어 30층 클리어를 목전에 두고 있다.
하지만 여기부터는 지금까지 헤쳐 온 길보다 더 험한 과정들이 기다리고 있다.
'자, 이제 뭘 해야 할까.'
나는 나를 바라보고 있는 수십 명을 바라보며 천천히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
"말씀하신 대로 철목 길드의 길드장을 처치했습니다."
"……."
철목 길드의 길드장을 암살한 건 당연히 마법 명가의 소행이다.
아직 탑의 플레이어들은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위드 길드와 강민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겉으로 보기에 이번 사태가 마법 명가의 소행이라고 생각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그 소식을 듣고 나서도 박승균은 아무 말이 없었다.
벌써 며칠째.
분노에 사로잡혀 밥도 제대로 먹지 않고 있는 중이다.
그로서는 크나큰 자존심의 상처를 입었으니 어쩔 수 없었다.
연구소가 폭파되고 난 뒤, 가주와 장로들에게 온갖 멸시와 모멸을 당했다.
단순히 그뿐만이 아니다.
그동안 모든 일을 완벽하게 수행해 왔던 박승균이건만.
마지막 자신의 커리어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을 만한 거대한 과업을 처참하게 망쳐 버리지 않았던가.
이 분노를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그토록 사랑하고 아끼던 스스로가 혐오스러워질 정도로.
"이다음은 어찌…."
박승균 앞에 무릎 꿇고 있는 마법 명가의 플레이어가 조심스레 운을 띄웠다.
한쪽 손으로 턱을 괴고 있는 박승균의 눈에는 그 어떤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자신 앞에 있는 남자가 정말 사람은 맞는 것인지조차 헷갈릴 지경이었다.
"……."
남자는 다시 입을 다물고 고개를 숙였다.
이럴 때에 어떻게 해야 할지는 그동안 그의 경험이 말해준다.
가만히 있어야 한다.
박승균의 입이 열릴 때까지.
숨소리조차 내지 않아야 한다.
혹여라도 박승균의 심기를 건드렸다가는 그의 목이 날아가도 이상하지 않을 테니까.
그때였다.
"싹다 조져 버려."
"……!"
남자가 떨리는 눈으로 박승균을 바라봤다.
"철목. 그 버러지 같은 것들을 이 탑에서 남겨 두지 마라."
꿀꺽
남자가 다시 침을 삼켰다.
그것만은, 이라는 말이 목 끝까지 올라왔지만 내뱉지 못했다.
"왜. 걱정돼? 설마 우리가 그 새끼들 조금 죽였다고 무너질까 봐? 벌레들이 비난하는 여론에 못 이겨 사과라도 해야 될까 봐? 개소리야. 벌레는 벌레고 나와 같이 고귀한 존재는 벌레들의 아우성 따위는 무시할 만한 자격이 있다."
싸늘한 목소리다.
"걱정이라니. 당치도 않습니다."
"놀랄 것 없어. 시작일 뿐이니까. 그다음은…."
박승균의 눈에 살기가 어른거린다.
"화랑이다."
"……."
"모조리. 모조리 죽여 버릴 거야. 나를 분노하게 만든 그 대가를 뼈저리게 느낄 수 있도록."
꿀꺽
다시 한번 침을 삼켰다.
철목, 그리고 화랑.
현재 상위 10개의 길드 중, 그 어떤 명가에도 소속되지 않은 두 개의 길드.
박승균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또 그다음의 목적이 무엇인지는, 남자도 충분히 눈치챌 수 있었다.
'정말 모든 길드를 박살 내실 생각인 건가.'
위험하지 않겠는가.
정말 그런 일이 가능하겠는가.
철목과 화랑은 그렇다고 쳐도.
만약 다른 명가 산하의 길드까지 건드렸다가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하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가 할 수 있는 말은 하나뿐이었으니까.
"알겠습니다."
곧 남자가 박승균의 방에서 모습을 감췄다.
하지만 박승균은 여전히 살기가 잔뜩 어린 눈빛으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
"이제 마지막!"
"와하하하!"
"진즉에 힘을 합쳤으면 좋았을 텐데! 대체 왜 그렇게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니까요!"
골렘 사제를 처치했다는 기쁨을 만끽하는 플레이어들.
다들 잔뜩이나 들떠 있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 되었다.
저들의 기쁨은 오래 이어질 수 없다는 사실을 나는 잘 알고 있으니까.
'30층.'
그리고 골렘 사원의 보스 몬스터가 존재하는 곳.
여기부터는 내가 저들에게 해 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앞으로 저들은 오로지 자신의 힘과 경험, 그리고 능력으로 헤쳐나가야 할 것이다.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굳이 아는 척을 할 이유도, 잠시나마 만끽하고 있는 기쁨을 망쳐 버릴 이유도 없으니까.
"잘해 봅시다!"
"힘을 합치면 분명히 이번 층도 뚫어낼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들의 표정이 굳어지는 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지금 우리 앞에 떠오른 메시지 때문이었다.
[함께 골렘 사제를 처치한 76명의 활약을 점수로 환산합니다.]
[점수는 20층에서 29층의 활동만을 환산한 결과입니다.]
[1위 : 한강민 403,341P]
[2위 : 김민철 120,232P]
[3위 : 박명희 75,434P]
.
.
.
플레이어 한 명 한 명 나열된 포인트와 순위.
단연코 내가 압도적이었다.
그리 놀랄 만한 결과는 아니었다.
다른 플레이어들도 모두 납득했는지 별다른 말은 없다.
하지만 그들을 당황하게 만든 건, 지금부터다.
[그동안 혹시 마음에 들지 않은 동료가 있었다면, 혹은 함께하고 싶은 동료가 생겼다면.]
"응? 무슨 소리지?"
[이번 기회야 말로 새로운 동료를 맞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일 것입니다.]
"뭐야, 이게 뭔데?"
플레이어들이 떠오른 메시지를 보며 불안한 눈빛을 내비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국.
[파티를 새로 구성하십시오.]
[가장 먼저 용사를 선택해 주십시오.]
용사를 선택하라는 말에 플레이어들의 눈이 바쁘게 움직인다.
용사가 파티에 있고, 없고의 난이도는 하늘과 땅 차이.
당연히 파티에 용사가 있을수록 난이도는 쉬워진다.
하지만, 본론은 여기부터다.
[용사의 선택권은 76위의 플레이어부터 주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