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화
'잘하고 있군.'
저 먼 곳에서 골렘 부대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지시했던 대로 수색조들은 정확히 네 방향으로 골렘들을 잘 유인해 냈다.
'하긴. 이 정도도 못 하면 그게 더 말이 안 되는 일이지.'
나는 바쁘게 시선을 돌리며 목표를 포착했다.
골렘 사제의 깃발이 꽂혀 있는 곳.
'저기다.'
타앗!
조금 더 속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뒤에서 따라오는 파티원들과 점점 거리가 멀어졌지만.
나도, 그들도 개의치 않았다.
"이제 갈라집니다!"
뒤쪽에서 이런 외침이 들려왔다.
그들 역시 미리 정해 놨던 대로 네 쪽으로 갈라지기 시작했다.
그때 막 미리 가 있던 수색조들과 시선이 마주쳤고.
그들이 있던 곳에 갈라진 플레이어와 용사 무리가 합류했다.
플레이어들과 합류하자 수색조들은 뒤로 빠져서 숨을 고르기 시작했다.
"허억…허억…."
"고생하셨어요! 뒤는 맡겨 주십쇼!"
오래된 전우마냥 신뢰가 가득한 시선을 나누는 플레이어들.
그들을 뒤로한 채 나는 더욱더 속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골렘 부대는 더욱더 빠르게 분열되고 있었다.
그럴수록 골렘 사제가 있는 곳을 향한 길은 더 넓게 열렸으니.
'보인다.'
저 먼 곳에서 골렘 사제가 보이기 시작했다.
'놈의 친위 부대.'
골렘 사제의 주변에는 골렘 투사의 상위 버전인 골렘 워리어와 백여 마리에 이르는 골렘 메이지들이 포진해 있었다.
'뚫어야 한다.'
오우거의 신체의 스킬 쿨타임은 이미 돌아왔다.
거기에 새로 얻은 스킬인, 지휘관의 외침.
단번에 대의 체력이 (힘/10)% 만큼 감소시키는 스킬이다.
현재 내 힘은 330을 훌쩍 넘었고, 오우거의 신체를 사용하면 500에 육박한다.
'그렇다면 스킬을 한 번 사용하면 체력의 절반을 날려 버릴 수 있다는 뜻이다.'
물론 백 마리에 한정이지만, 이 정도만 하더라도 충분히 사기적인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골렘 사제의 무리와 점점 더 가까워졌다.
가장 앞에 있는 골렘 워리어가 나를 발견했고.
"캬아아아아!"
포효를 내지른다.
그 순간 골렘 사제 역시 나의 존재를 눈치 챘다.
'지금.'
나는 내가 가진 모든 능력들을 동시에 활성화시켰다.
쿠쿠쿠쿠!
순식간에 증폭된 스탯 덕분에 내 움직임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빨라졌다.
고오오오!
골렘 메이지 백여 마리가 동시에 마법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땅이 진동할 정도로 방대한 마력이 한순간에 쏟아져 나왔다.
'간다.'
그 순간 나는 지휘관의 외침을 사용했다.
쿠우우웅!
나를 중심으로 강한 파동이 일어나며 굉음이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때.
콰콰콰콰콰쾅!
골렘 워리어와 골렘 사제 백 마리가 동시에 몸을 뒤틀었다.
"크에에에에에!"
"키아아아악!"
"카카카가가각!"
놈들은 알아들을 수도 없는 끔찍한 비명들을 내질렀고.
공격을 받지 않은 녀석들은 당황한 나머지 우왕좌왕하며 주변을 둘러봤다.
당황한 건 골렘 사제 역시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놈 역시 다급하게 시선을 돌리며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으니.
'늦었다, 이놈아.'
나는 놈들의 한 가운데에 발을 들인 참이었고.
콰륵!
몸을 회전하며 검을 휘둘렀다.
오러 블레이드가 골렘 메이지와 골렘 워리어들을 종잇장처럼 찢어발겼다.
[체력 1.4를 포식했습니다.]
[민첩성 2.1을 포식했습니다.]
[마력 1.6을 포식했습니다.]
.
.
.
이미 체력이 반 넘게 깎인 녀석들은 어떤 저항도 하지 못한 채 반쪽이 나 바닥을 나뒹굴었다.
운 좋게 지휘관의 외침의 영향을 받지 않은 녀석들은 살아는 있었으나, 고작 살아 있는 것에 만족해야 할 수준이었다.
나는 몇 번 더 검을 휘둘렀다.
골렘 사제의 친위 부대의 수가 급속도로 줄어들었다.
이백에 가깝던 녀석들의 수는 순식간에 백 마리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크으으아아아!"
골렘 사제가 괴성을 내질렀다.
잔뜩 분노한 모양이다.
놈의 양손에서 강력한 전류가 피어올랐다.
'전기 타입인가.'
그리고 양손에 전류를 두른 채 나를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다.
'꽤 괴팍한 녀석이군.'
양 손에 전기를 두르고 주먹으로 나를 패겠다는 뜻이리라.
하지만 그냥 당해 줄 생각은 없다.
콰가가각!
나는 남아 있는 골렘 워리어와 메이지를 빠르게 베어 넘겼고.
발을 구르며 몸을 날렸다.
빠드드득! 콰아앙!
골렘 사제가 내가 조금 전 서 있던 곳을 강하게 내리쳤다.
하지만 나는 이미 회피한 상태였으니, 놈의 주먹이 공격한 건 자신의 부하들이었다.
골렘 메이지들이 안쓰럽게도 골렘 사제의 주먹에 짓이겨졌다.
"키에에에엑!"
솔렘 사제가 다시 한번 포효했다.
자신을 농락하는 나를 절대 용서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야 놈이 흥분해 주면 더 고마울 따름이다.
콰앙!
그때 놈이 나를 향해 몸을 날렸다.
역시나 양손에서는 강한 전류가 흘러나오고 있었으니.
'와라.'
나의 뇌전검과 놈의 마법.
뭐가 더 센지 부딪쳐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으리라.
휘릭!
나를 향해 쏟아지는 골렘 메이지들의 마법을 피해내며 골렘 사제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놈도 내 검의 검로를 따라 주먹을 내질렀다.
콰아아앙!
주먹과 검이 충돌했다.
놈의 주먹은 오러 블레이드를 받아내고서도 작은 흠집이 나는 데에 그쳤다.
'괴물은 괴물이야.'
놈과 나는 몇 번의 공방을 주고받았다.
골렘 사제는 잔뜩 악에 받쳐 손과 발을 맹렬하게 휘둘렀지만, 나에게 적중되는 공격은 하나도 없다.
잠시 후 뇌전검의 사용 시간이 끝이 났다.
'그럼 잠시.'
나는 몸을 뺐다.
뇌전검 없이 놈의 공격을 받아내는 건 피하는 편이 낫다.
내가 몸을 빼자 골렘 사제가 다시 나를 향해 달라붙었었다.
'멍청이.'
이미 예측했던 움직임이다.
나는 발을 교차하며 순식간에 방향을 틀었고.
홱!
놈은 발이 엉키며 바닥에 나자빠졌다.
'남은 놈들을 빨리 정리한다.'
아직도 놈의 친위 부대는 수십 마리가 남아 있었으니.
놈들을 먼저 정리해야 했다.
'지휘관의 외침도 곧 사용할 수 있으니까.'
골렘 사제가 자빠져 있는 틈을 이용해서 골렘 메이지의 숫자를 빠르게 줄여나갔다.
검이 한 번 움직일 때마다 세, 네 마리의 골렘 메이지의 몸이 갈라졌다.
"캬아아아아!"
골렘 사제가 몸을 일으키며 괴성을 내지른다.
나는 재빠르게 골렘 메이지들이 모여 있는 사이에 몸을 숨겼다.
콰지지직! 쿵!
다시금 놈의 주먹이 애꿎은 골렘 메이지들을 관통했다.
놈은 이제 약이 오를 만큼 올랐을 테다.
그때 마침 지휘관의 외침의 재사용 시간이 다가왔다.
나는 다시 한번 지휘관의 외침을 사용했다.
콰콰콰콰쾅!
커다란 굉음과 함께 골렘 메이지들의 몸이 터져 나갔다.
멀쩡히 서 있던 녀석들도 순식간에 몸의 절반 이상이 떨어져 나갔으니.
'조금만 기다려라.'
골렘 사제를 흘끗 바라보며 남아 있는 골렘 메이지와 골렘 워리어를 베어 넘겼다.
남은 것들을 모조리 처치하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지휘관의 포효가 두 번 중첩된 녀석들은 톡, 하고 건드리기만 해도 우수수 무너져 내렸고.
그렇지 않은 녀석들도 검 한 번 스쳐 지나가면 픽픽 나자빠졌으니까.
그리고 지금.
"됐어."
대부대가 넷으로 나뉘고 텅 비어있는 넓은 공터.
여기에는 나와 골렘 사제 둘만 서 있었다.
***
"어떻게 돼가고 있습니까?"
강민 쪽의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수색조원들은 바쁘게 전장 사이를 오가고 있었다.
단순히 강민이 잘하고 있는지 궁금해서 그러는 건 아니다.
지금 그들의 목적은 강민이 골렘 사제를 처치할 때까지 버티고 있는 것.
강민이 골렘 사제만 처치한다면 즉시 네 곳으로 나뉜 모든 인원이 모이기로 약속되어 있던 것이다.
골렘 부대를 네 쪽으로 나눈 건, 강민의 싸움을 최대한 편하게 만들어 주기 위함이었으니.
골렘 사제만 처치하면 더 이상 나눠져 있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지금…."
막 강민의 상황을 살피고 온 수색조원이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예? 어서 말해 주세요!"
"하…하하하…. 거의 끝… 끝나가고 있습니다!"
"……?!"
"뭐?"
"정말로?"
수색조원의 외침에 골렘들과 싸우던 플레이어들이 제 귀를 의심했다.
이게 어디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대체 얼마나 강하다는 거지?'
골렘 사제와 사제를 지키는 친위대.
그들의 전력은 여기 모여 있는 모든 골렘 부대의 전력 중 4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강력하다.
'그런데 그걸 혼자서 처치했다고? 이렇게 빨리?'
주변을 둘러봤다.
대략 20에 가까운 플레이어들이 고군분투하며 간신히 골렘 투사와 골렘 지휘관들의 수를 줄여나가고 있었다.
그동안 처치한 골렘들의 숫자를 모두 더한다면 백 마리가 좀 넘었을까.
아직도 많은 골렘들이 그들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다.
'미치겠군.'
감탄도 나오지 않는다.
그저 압도적인 무력 앞에 스스로가 초라해질 지경이었다.
'대체 어떤 능력을 가지고 태어난 거야.'
격이 다르다.
그 말뜻이 피부로 와 닿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이런 생각 따위 무슨 의미가 있으랴!
'젠장.'
쓰게 웃었다.
강민을 만나 골렘 사원을 클리어 하게 되리란 희망을 품었던 것도 잠시.
그는 이 순간 현실을 자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탑에는 얼마나 더 괴물 같은 플레이어들이 득실거리고 있다는 말인가.'
강민이 대단한 건 맞지만, 이제 고작 30층도 오르지 못했다.
하지만 탑의 위층.
40층, 그리고 50층.
그곳에는 상상도 못 할 만한 강자들이 득실거린다는 뜻이 아닌가.
'…고작 철목 길드의 말단에게 기죽었던 게 우스울 지경이야.'
5위 길드.
대단한 건 맞지만, 강민과 또 탑의 정상에 군림하는 플레이어들을 생각하니 스스로가 한없이 초라해진다.
'인생 참 뭣 같네.'
허탈한 웃음을 터트렸다.
하지만 그러는 와중에도 몸이 절로 움직인다.
살기 위해서.
그리고 어떻게 해서든 자신의 영역을 개척하며 또 탑을 오르기 위해서.
'그래. 그렇게 살아가는 거 아니겠나.'
강민과 자신은 다른 존재다.
부러워할 필요도, 열등감을 느낄 필요도 없다.
'나도 내 나름대로 강해지면 돼.'
그리고 검을 휘둘렀다.
골렘 투사의 몸에 검이 박혔다.
검을 뽑아냈고.
카아앙!
골렘 투사의 공격을 막아냈다.
골렘 투사를 하나 처치하는 데 5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이게 자신의 현실이지만.
"에라, X벌! 나도 모르겠다아아아!"
콰지직!
그의 검이 골렘 투사의 팔꿈치를 박살냈다.
강민이 골렘 사제의 친위대를 박살내고 골렘 사제를 유린하는 동안 처치한 골렘 투사의 숫자는 대략 여섯.
비교하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의 수치다.
하지만 그는 다시금 이를 악물었다.
'잘한 거야. 잘한 거라고.'
스스로를 다독이고 또 다독인다.
그리고.
콰직!
"일고오옵!"
골렘 투사가 그의 앞에서 무너져 내렸다.
"다으으음!"
그다음 골렘 투사를 향해 그가 눈을 돌렸다.
그 순간.
"골렘 사제! 쓰러졌습니다아아아아!"
저 먼 곳에서 수색조원의 외침이 들려왔다.
'하하….'
믿을 수 없지만 어쩌랴.
이것이 현실인 것을!
자책과 푸념 따위는 던져두자.
열등감에 빠져 바닥을 기어 다닐 시간은 없다.
피슈우우웅!
하늘 위로 신호탄 하나가 쏘아졌다.
강민이 쏘아 올린 신호탄이다.
모든 인원이 집결할 위치를 알리는 신호였다.
"갑시다!"
골렘과 싸우던 이들이 신호탄이 쏘아진 곳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