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화
콰가가가가각!
충격파와 뇌전검이 활성화되니 내 앞을 가로막은 골렘 투사는 추풍낙엽처럼 쓸려져 나갔다.
그럼에도 내 속력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백인장은 크게 당황했는지 계속해서 꽁무니를 내빼고 있었지만.
'멍청한 놈.'
그렇게 도망쳐 봐야 의미 없다는 걸 깨닫지 못한 모양이다.
파지지직!
허공에 백색의 전류가 하나의 호를 그렸다.
콰아아앙!
놈의 어깻죽지를 강하게 내리쳤다.
충격파의 위력이 더해지자 일격에 놈의 어깨가 깊이 파였다.
몸통보다는 관절 부분의 강도가 약하기 때문이리라.
"캬아아아아!"
놈이 포효성을 내질렀다.
나는 멈추지 않고 검을 휘둘렀고.
콰드드득!
놈의 한쪽 팔이 그대로 잘려져 나갔다.
그리고 이번엔 놈의 등짝을 노렸다.
내가 계속해서 두드렸던 곳의 정 반대쪽.
쩌어어엉!
놈의 등짝에 커다란 균열이 생겨났다.
나는 발을 구르며 같은 곳을 다시 후려쳤다.
놈은 순식간에 균형을 잃고 자빠졌다.
"카아아악!"
단말마의 비명.
이제 마지막이다.
콰직!
나는 놈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발로 짓밟았고.
놈은 격하게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마지막 가는 데 힘 빼지 말자."
그리고.
콰지직!
오러 블레이드가 놈의 핵이 위치한 곳을 정확히 관통했다.
검 끝에 녀석의 핵이 걸렸다.
동시에 부서졌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무려 네 개나 상승했다.
[골렘 투사 백인장을 처치했습니다.]
[28층의 클리어 조건을 달성했습니다.]
[29층에 입성할 자격을 획득했습니다.]
28층의 클리어 메시지가 떠올랐다.
그리고 동시에 떠오른 메시지.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골렘 백인장의 반지를 획득했습니다.]
드디어 얻어냈다.
업적의 보상.
이제는 내가 얻은 아이템들의 효과를 확인해 볼 시간이다.
[골렘 투사 오장의 반지]
>올스탯 + 5
[골렘 투사 십인장의 반지]
>올스탯 + 10
[골렘 투사 백인장의 반지]
>올스탯 + 15
'맙소사.'
올스탯 30이라니.
상상도 못 했던 옵션들이다.
한 가지 스탯을 단번에 30을 올려준다고 해도 훌륭한 아이템일 것인데.
무려 올스탯이라니.
'이 정도의 아이템은 탑 전체를 통틀어도 얼마 안 될 거다. 확실해.'
올스탯 옵션이 붙은 아이템은 그만큼 희귀하다.
아니, 희귀하다는 말로도 부족할 수준이다.
웬만한 길드의 재산을 통틀어도 구할 수 없을 만큼 값진 아이템이니까.
'달콤하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다.
이어서 또 다른 메시지가 눈앞에 떠올랐다.
[골렘 투사 지휘관의 세트 효과가 적용됩니다.]
[스킬 '지휘관의 외침'이 상태창에 각인됩니다.]
내가 예상했던 그대로다.
세 개의 지휘관 반지를 착용하고 나니 세트 효과가 적용된 것.
[지휘관의 외침]
>등급 : AAA
>스킬 사용 시 시전자의 '힘' 스탯보다 낮은 '체력'을 가진 적이 '공포'에 걸립니다. (최대 100명/마리)
>공포
-다수의 상대의 체력이 (힘/10)% 만큼 감소 (3회 중첩 가능)
>재사용 대기 시간 : 80초
'역시.'
과정은 고될지라도 그 결과는 너무도 달콤했다.
'마침 내게 필요했던 능력이다.'
흑암파를 상대하고 수많은 골렘 투사를 사냥하면서 느꼈던 아쉬움을 극복해 줄 수 있는 훌륭한 스킬이다.
개개인의 싸움에서는 무적이나 다름 없지만, 다수와의 싸움에 있어서는 분명 한계가 존재한다.
파티가 아닌 솔로 플레이를 지향하는 나로서는 앞으로 계속 다수의 상대를 혼자서 맞서야 할 것이 당연한 일이다.
'특히나 훗날 마법 명가와 직접 맞서게 될 때를 생각해 본다면….'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스탯이다.
게다가 발동 조건 역시 충분하다.
마법 명가 녀석들의 체력이 아무리 높아 봐야 내 힘보다 높을 수는 없을 것이고.
'이 스킬 한 번으로 마법 명가 녀석들의 대다수를 한 번에 쓸어버릴 수 있겠지.'
이 정도면 탑도 내 손으로 마법 명가를 멸절시키라고 떠밀어 주는 게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 지경이다.
입가에 떠오른 미소가 떠나갈 줄을 몰랐다.
***
"허…."
"저 정도로 강할 줄이야."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가 없네요."
플레이어들이 강민의 뒷모습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조금 전 강민이 보였던 모습은 정말이지 충격적이었다.
골렘 백인장을 혼자서 상대하는 괴물이 존재할 줄이야.
그러는 와중에도 용사 아킬레토는 아무 말이 없다.
"용사님. 무슨 일이라도 있으신 겁니까."
그의 동료인 사제가 물었다.
아까부터 영 표정이 좋지 않은 아킬레토가 걱정되던 참이다.
"아, 아닙니다."
아킬레토가 고개를 저었다.
머리가 조금 복잡해진 참이다.
강민을 질타했던 스스로가 부끄러워졌기 때문이다.
그때 강민이 몸을 돌렸다.
강민과 눈이 마주친 순간 그는 움찔, 하며 몸을 떨었다.
그의 입장에선 감히 눈도 못 마주칠 것 같은 심정이다.
혹여라도 자신이 불쾌한 티를 냈던 것을 눈치채지는 않았을지.
그래서 기분이 나빠진 나머지 이 파티를 떠나 버리는 것은 아닐지.
'그래서는 안 된다. 나는 반드시 이번 여정을 성공적으로 끝내야만 해.'
이전 같았으면 새로운 동료를 구하고 말지, 라고 생각했겠지만.
압도적인 강민의 무력을 보며 그도 깨달았다.
'저 사람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붙잡아야 한다.'
라고 말이다.
강민이 그가 있는 곳으로 걸어왔다.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모르겠다.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마음이다.
강민이 아킬레토 앞에 섰다.
그의 입꼬리가 파르르 떨려왔다.
강민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시간을 되돌려 과거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하지만 그때.
툭툭
강민이 아킬레토의 어깨를 두드렸다.
"……?"
"잘 싸우더군요."
"예, 예?"
강민의 입에서 들려 온 예외의 한 마디.
"덕분에 마음 놓고 내 싸움에 열중할 수 있었습니다."
"아…."
아킬레토의 입에서 짧은 탄식이 쏟아졌다.
'왜 이래? 아까부터.'
강민이 생각했다.
사실 아킬레토가 자신에 대해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또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따위.
강민은 일절 관심조차 없었고.
알지도 못했다.
그저 업적을 달성하고 얻어 낸 보상이 흡족할 따름이었다.
"앞으로도 잘 부탁합니다."
강민이 한 마디 더 내뱉고는 홱, 몸을 돌렸다.
'…아아….'
아킬레토의 눈에 그 뒷모습이 너무도 거대하게 비춰 보이는 순간이었다.
"자, 갑시다! 다음 층으로!"
"우아아아아!"
"28층도 클리어! 나이스으으으!"
"강민 씨 만세! 몰른 님 만세에에에!"
플레이어들은 28층을 클리어했다는 기쁨을 만끽하며 함성을 내질렀다.
***
우리는 28층으로 향하는 문 앞에 서 있었다.
28층에 올라가기 전, 플레이어들은 각자 상태창과 장비, 몸 상태를 점검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도 마찬가지로 상태창을 펼쳤다.
[상태창]
>이름: 한강민
>레벨 : 46
>스탯
-육체
힘 : 355.37
민첩성 : 362.93
체력 : 360.15
-정신
마력 : 123.45
>마법 저항력
+ 65%
>능력
1. 포식자 (S)
2. 뇌전검 (S)
3. 충격파 (AA)
4. 오우거의 신체 (AAA)
5. 오러 블레이드 (S)
6. 아이언 바디 (AA)
7. 지휘관의 외침 (AAA)
'봐도 봐도 감탄밖에 나오지 않는군.'
어느새 모든 육체 스탯은 360 언저리.
마력은 이제 120을 조금 넘었고.
'오러 블레이드 3단계의 해금 조건이 마력 200. 아직은 먼 얘기다. 지금 당장 육체 스탯을 투자하기에는 손해가 너무 커.'
어쨌든 내 전투력의 근간은 육체 스탯이다.
오러 블레이드를 3단계 만들기 위해서 160의 육체 스탯을 투자하는 건 아직 시기상조.
어쨌거나 고작 46레벨밖에 되지 않았는데, 이 정도 스탯이라니.
'여기 있는 플레이어들의 레벨은 아마 130에서 150 사이일 것이다.'
나보다 최소 3배 이상 높은 레벨.
그럼에도 확신하건대, 저들 모두가 나에게 한꺼번에 달려들어도 상처 하나 나지 않을 자신이 있다.
그만큼 지금 나의 전투력은 압도적인 수준이라는 뜻이기도 했다.
상태창 점검을 마친 내가 파티원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다들 준비됐으면 다음 층으로 가도 괜찮겠습니까."
모두가 동의했다.
그렇게 우리는 빠르게 28층을 향해 올라섰다.
28층에 들어선 순간 메시지가 떠올랐다.
[골렘 사원 28층에 진입했습니다.]
[28층 클리어 조건 : 골렘의 생명석을 파괴하라]
[생명석 파괴 0/5]
[골렘은 인간과는 다르게 생식 기관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먹고, 마실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럼에도 그들이 살아갈 수 있는 건, 바로 생명석 덕분입니다. 생명석을 파괴한다면, 인간을 정복하려는 골렘의 야욕을 무너트리는 데 크게 일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진부한 설명이 끝이 났다.
중요한 건, 다섯 개의 생명석을 파괴하라는 것뿐이다.
플레이어들은 술렁이고 있었다.
백인장 따위 잡아냈다고 우쭐하다간 28층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밖에 없지.
'28층부터는….
백인장 따위가 아니라 천인장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그래도 역시 탑은 '나름의' 배려를 해준다.
28층의 클리어 조건은 천인장을 사냥하는 게 아니다.
만약 정말 천인장을 사냥하도록 만들었으면, 28층의 클리어 확률은 1/10 이하로 떨어져 버릴 것이다.
그 대신, 28층에서는 골렘의 생명석을 부숴야 한다.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만….'
어디까지나 지금 이 시점의 일이다.
내 전생에서는 27층까지만 클리어하면 28층은 사실상 프리패스나 다름없다는 말이 떠돌 정도였으니까.
'당연히 생명석의 위치도 다 공유됐으니까.'
찾아가서 부수면 그만이다.
물론 운이 나쁘면 천인장을 마주치거나, 다른 파티에게 빼앗긴 채로 몇날 며칠을 떠도는 불상사도 벌어질 수 있기는 하지만.
'이 파티를 보면 그럴 일은 없을 것 같군.'
다들 빠릿빠릿하다.
제 할 일을 모르고 어리바리하고 있는 녀석은 단 한 명도 없다.
용사 녀석도 무슨 심경의 변화가 생겼는지 처음 만났을 때보다 훨씬 더 열정에 타오르고 있었으니.
파티의 리더가 슬쩍 내게 다가왔다.
"흠. 강민 씨 혹시…."
당연하다는 듯이 내가 길을 알고 있느냐고 묻는 표정이다.
좋지 않다.
물론 나도 빠르게 탑을 클리어하고 싶지만.
'너무 많이 알고 있다는 사실을 떠벌릴 필요는 없다.'
이들과 나의 인연은 어차피 30층을 클리어하면 끝이다.
그리고 내가 너무 많은 것을 알려주게 된다면 이들은 분명히 나에 대해서 떠들고 다닐 것이 분명하다.
'긴 꼬리는 밟히기 마련이다.'
지금까지는 명가들에게 나름 잘 숨겨온 것은 사실이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짓을 벌여 놓고도 명가들의 추적을 받지 않고 있으니까.
'하지만 더 이상은 나도 위험해.'
아직 나 혼자 명가를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정말로 꼬리를 밟혀 추적이라도 당하게 된다면, 그동안의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 버릴 테다.
'조심해서 나쁠 건 없지.'
나는 리더를 바라보며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알 리가 없지 않습니까."
"아, 아…. 그렇죠. 맞아요. 제가 무슨 말도 안 되는 질문을…."
머리를 긁적이며 얼굴을 붉히는 리더.
'자, 그럼 가 볼까.'
나는 걸음을 옮겼다.
당연히 생명석이 위치한 곳이 아니다.
'두 번 정도 허탕을 치고 생명석을 파괴하러 가면 되겠지.'
시간이야 좀 걸리겠지만 그것도 그것대로 나쁠 건 없다.
'어차피 레벨도 올려야 할 테고, 골렘을 잡으면 스탯도 오를 테니까.'
목적지를 향해 조금 빙 돌아가는 건, 내게는 결코 시간 낭비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