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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상태창이 달라졌다-62화 (62/277)

62화

'남은 실험실은 하나.'

첫 1분 동안은 흑암파 녀석들의 동선을 파악하는 데 사용했다.

아직 놈들의 불완전한 부분은 놈들의 지능이다.

물론 전투 능력이나 움직임은 정말 인간처럼 자연스러웠지만.

행동 양식까지 완전히 인간처럼 보이는 건 아니다.

'지능을 높이는 게 놈들의 마지막 숙제겠지.'

놈들은 마치 프로그래밍 된 기계처럼 정해진 동선만을 오가며 경계를 서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니 흑암파 녀석들의 이목을 끌지 않은 채 벌써 네 번째 실험실까지 도착할 수 있었던 것.

물론 그렇다고 해서 여기까지 뚫고 오는 게 쉬운 일이라는 뜻은 아니다.

아주 작은 실수라도.

혹은 조금이라도 놈들의 시야에 들어갔더라면 여기에 모여있는 오십에 가까운 흑암파 녀석들이 한 번에 달려들 것이고.

동시에 마법 명가 플레이어들 역시 나를 향해 공격을 퍼부었겠지.

이렇게 신중하게 싸우는 건 다름이 아니다.

우선은 놈들의 데이터를 최대한 손에 넣기 위해서였다.

내 예상대로 뒤쪽 실험실일수록 더 복잡하고 중요한 실험들이 행해지고 있었다.

'회의실부터는 아마 더 이상 자료를 수집할 여유 따위는 없을 거다.'

회의실과 그 이후의 실험실.

그곳에서 행해지는 실험들은 훨씬 더 강도가 높고 복잡한 실험들이다.

그렇다는 건, 회의실 이후의 다섯 실험실에서는 마법 명가의 인력과 자원이 집중된 실험들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뜻.

그러니 당연하게도 갈수록 경계는 훨씬 더 삼엄해진다.

어쨌든 지금까지 내가 처치한 흑암파의 숫자는 대략 30여 마리.

앞으로 남은 세 마리만 더 처리하면 곧바로 회의실이다.

'회의실에 도착하는 순간부터는 어쩔 수 없이 개싸움을 해야될 테지만.'

지금까지는 어떻게든 내 존재를 숨기고 잠입했다고 하지만, 회의실부터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저곳에 발을 들이미는 순간, 마법 명가의 플레이어들은 내 존재를 알아챌 수밖에 없고.

그런 녀석들이 가만히 있을 리는 없다.

'물론 나는 안 죽는다. 절대로.'

일단은 자세한 건 회의실에 진입한 뒤에 이야기하도록 하자.

나는 조심스레 오감을 집중하며 흑암파 녀석들의 움직임을 살폈고.

'지금.'

흑암파 녀석들의 빈틈이 나타난 순간.

푸훅!

순식간에 세 명의 흑암파 녀석들의 목숨을 끊었다.

나는 놈들이 큰 소리로 떨어지지 않게 사뿐히 내려놓았고.

'이제 막 5분째.'

다섯 번째 실험실까지 싹 비우는 데 걸린 시간이다.

오러 블레이드의 남은 지속 시간으로 걸린 시간을 체크한 것이다.

나는 다섯 번째 실험실에서도 내부를 샅샅이 뒤졌고.

증거 자료가 될 만한 것들을 모두 인벤토리 안에 채워 넣었다.

'이제 남은 건 회의실 내부로 잠입하는 것.'

자료는 이 정도면 충분하다.

이 정도만 해도 탑 전체를 뒤흔들 만큼 끔찍한 실험의 정체들이 내 손에 들어와 있으니까.

'우선은….'

인벤토리에서 미리 준비해 온 대용량 체력 포션을 하나 꺼냈다.

지속 회복 포션이다.

한 번에 많은 양의 체력을 회복시키지는 않지만, 꾸준히 체력을 회복시켜 주는 포션.

'65%의 마법 저항력과 이 포션의 회복량이 더해진다면… 놈들의 일제 마법 사격도 충분히 버텨낼 수 있을 거다.'

포션을 다 마시자 내 몸에서 은은한 빛이 감돌았다.

'가자.'

뇌전검과 오러 블레이드, 그리고 오우거의 신체를 동시에 활성화시켰다.

그리고 저 앞에 있는 실험실을 향해 몸을 날렸다.

몸이 날아가는 동시에 검을 휘둘렀고, 그 순간.

"……?!"

마침 그 안에 있던 한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

조금 전.

"허, 헉!"

"공자님!"

연구소의 회의실에 박정균이 모습을 드러냈다.

다른 플레이어들은 응당 출입문을 거쳐 연구소에 출입할 수 있었지만.

명가의 혈계를 이은 직계들은 예외였다.

회의실 내부에는 포털이 하나 존재한다.

명가의 본당과 회의실을 잇는 포털이다.

오직 직계들의 마력에만 반응하는 장치였다.

"다들 잘하고 있나?"

박정균이 미소 지으며 물었다.

그는 플레이어들에게 사람 좋기로 유명했다.

깐깐하고 엄격한 박승균과는 반대로, 박정균은 꽤나 인간적인 모습을 자주 보여줬으니까.

물론 다 연기다.

실력으로는 박승균을 따르지 못한다는 것을 자각한 순간, 그는 이런 식으로라도 명가의 플레이어들을 조종하기 위해 연기를 시작했을 뿐이다.

웃고 있음에도, 속으로는 플레이어들을 경멸했고.

혹여라도 그들과 신체가 닿기라도 하면 속으로는 욕지거리를 내뱉기 일쑤였으니까.

그런 사실을 알 리 없는 플레이어들은 박정균에게 연구 성과들을 떠들어 대기 시작했다.

"이대로만 간다면 실험이 성공하는 것도 얼마 걸리지 않을 겁니다. 아마 늦어도 올해 안으로는 완성할 수 있을 겁니다."

"오? 올해라고? 굉장한걸?"

박정균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물었다.

천진난만한 표정이다.

그런 친근한 표정에 플레이어들은 신이 나 연구 성과를 떠들어 대기 시작했다.

확실히 이런 면에서는 박승균보단 박정균이 낫다.

박승균 앞에서는 얼어붙어 버려서 말조차 못 하기 부지기수니까.

그들의 말을 들으며 박정균은 생각했다.

'한심한 놈들.'

박정균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입은 다른 말을 내뱉었다.

"괜찮네. 잘했어. 잠깐, 그런데 이건…."

박정균은 칭찬할 것은 칭찬하고, 그렇지 않은 부분은 확실하게 꾸짖었다.

평소에 잘해주던 이가 꾸짖으니 플레이어들도 새겨들을 수밖에 없었고.

몇몇은 바쁘게 박정균의 말을 받아 적기도 했다.

'에휴, 지겨운 새끼들. 이런 걸 다 말을 해 줘야 알아?'

그렇게 할 일을 마치고 돌아가기 위해 박정균은 몸을 돌렸다.

그런데 그 순간.

"……?!"

저 앞에서 무언가.

아니, 누군가가 날아오고 있었다.

검 위로 타오르는 오러와, 전류.

또 전신이 빨갛게 달아오른 채로 증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는데.

'빠르다.'

빨라도 너무 빠르다.

마치 총탄이 날아오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빠른 속도다.

하지만 박정균 역시 산전수전을 다 겪어 온 플레이어.

그의 전투 센스는 이미 플레이어들 사이에서도 충분히 정평이 나 있었다.

그는 본능적으로 마력을 끌어올렸고, 자신의 능력을 끌어올렸다.

1초도 되지 않을 정도로 짧은 순간에 그의 주위로 불덩이 세 개가 모습을 드러냈다.

말도 안 되는 시전 속도.

그것이 바로 마법 명가의 피를 이은 이들의 재능이었고.

구구구구!

날아오는 무언가를 향해 세개의 불덩이가 날아들었다.

"……?!"

"뭐, 뭐…."

"잠까아…!"

콰콰쾅!

불덩이가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고.

"긴장해, 이 새끼들아!"

박정균이 플레이어들을 향해 소리쳤다.

***

'버틸만 해.'

가장 앞에 있던 녀석이 나를 향해 마법을 쏘아 보냈다.

피할 수는 없었으니 검으로 막아내며 최대한 충격을 완화했다.

'만만치 않은 놈이 분명하다.'

얼굴은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지만, 반응 속도나 그 짧은 시간에 뿜어낸 마력의 양으로 봤을 때.

'마법 명가에서도 실력자일 게 분명하다.'

그럼에도 65%의 마법 저항력과 지속 회복 포션의 효과는 탁월했다.

거기에 오러 블레이드로 최대한 충격을 완화시켰으니.

지금 내 몸의 상처는 물약의 효과로도 충분히 회복시킬 수 있을 정도의 상처뿐이었다.

'이번엔 내 차례.'

조금 떨어진 곳에서 나를 공격했던 녀석의 모습이 어렴풋이 보였고.

그 뒤로 마법 명가의 플레이어들이 공격을 위해 준비하고 있었다.

한 공간에서 거대한 마력이 움직이자 시공이 뒤틀리기 시작했다.

그만큼 마법 명가 녀석들의 실력이 녹록지 않다는 뜻이겠지만.

'늦어.'

놈들의 마력이 모이는 속도보다, 나의 검이 움직이는 속도가 더 빨랐으니.

콰드드드득! 콰콰콰쾅!

충격파와 오우거의 신체가 결합된 나의 일격은 회의실 전체를 한 방에 박살 내기에 충분했다.

"크아아아악!"

"살려줘어어어!"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한 번의 공격으로 이곳에 모여 있던 플레이어 대부분이 즉사.

'남은 건 아까 그 한 녀석인가.'

놈은 이번에도 자신의 능력을 끌어올리며 내 공격을 방어해 낸 모양이다.

역시 평범한 놈은 아니다.

여기에서 반드시 저 녀석의 숨을 끊어내야 한다.

구우우우!

다시 거대한 마력이 움직이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당연히 저 바깥에서는 이 소란을 눈치채고 급히 달려오는 마법 명가의 플레이어들과 흑암파의 기척도 느껴지고 있다.

'이제부터 진짜 개싸움 시작이다. 그리고 그 시작을 알리는 건….'

저 녀석의 목을 베어내는 것부터.

콰아앙!

나는 온 힘을 다해 발을 디뎌 몸을 날렸고.

놈과 순식간에 가까워졌다.

놈의 호흡이 급격하게 거칠어지는 게 느껴졌다.

"머리 굴려도 소용없다."

놈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그리고.

콰직!

"커허억…."

내 검이 놈의 상체를 가르고 지나갔다.

놈은 죽었다.

'그럼 이제.'

이쪽으로 다가올 녀석들을 처치해야 할 차례다.

마법 명가 본당과 통신할 수 있는 장치는 조금 더 깊이 들어가야 한다.

이이이이잉!

알람벨이 격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이제 명가의 본당에까지 이 사실이 전해졌을 것이다.

알람이 울리는 즉시 본당에 긴급 사태가 발생했다는 연락이 전해지고.

동시에 본당으로부터 병력이 지원된다는 글귀를 읽었다.

'나에게 남은 시작은 고작 10여분.'

10분 안에 이 연구소를 초토화시켜야 된다는 뜻이다.

'가능한가.'

스스로에게 되물었다.

'쉽지는 않을 거다.'

그 답이다.

하지만.

'되게 한다.'

쿠쿠쿠쿠쿠!

회의실 밖에서는 벌써 거대한 마력의 소용돌이가 일렁였고.

흑암파 녀석들의 '암'능력이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회의실 전체가 어둡게 물들어간다.

'그러거나 말거나.'

콰아아앙!

나는 다시 한번 발을 굴렀고.

허공을 향해 무차별적으로 검을 휘둘렀다.

검은 '암'의 마력과 짙푸른 오러, 그리고 백색의 전류가 뒤엉킨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허공에서 흑암파 녀석들의 피가 사방으로 튀어 올랐다.

놈들을 추적할 수는 없지만, 되는대로 찢어 죽이면 그만이다.

콰콰콰콰쾅!

나를 향해 마법 명가 플레이어들의 마법이 쏟아졌다.

충격이 만만치는 않다.

하지만 버틸 만한 것도 사실이다.

파앗!

우선은 성가신 명가 녀석들.

놈들을 먼저 처치하는 게 맞다는 판단이 들었다.

"으, 으아아아악!"

"괴, 괴물이다아아아!"

놈들은 나와 거리가 가까워지자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그 녀석이다! 검술, 검술 명가의 소행이야! 어서 본당에 알려…!"

콰콰콰콰쾅!

검을 한 번 휘두를 때마다 폭발이 일어났고.

플레이어들은 일격조차 버티지 못하고 바닥을 나뒹굴고 있었다.

[마력 1.1을 포식했습니다.]

[마력 1.2를 포식했습니다.]

[마력 2.1을 포식했습니다.]

떠오르는 포식 메시지들.

'이제 1분.'

1분이 지났고.

내게 남은 시간은 대략 10분 남짓.

탈출할 시간까지 포함하면 내게 남은 시간은 고작 8~9분이 최대.

"저쪽이다! 저쪽이야!"

더 많은 플레이어들이 다가오고 있다.

콰지직! 콰드득! 콰앙!

그 사이에도 흑암파 녀석들의 공격이 끝없이 이어졌다.

내가 피할 수 있는 건 피했지만, 모두를 피할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미스릴 갑옷의 방어력은 충분히 뛰어났다.

저 괴물 같은 녀석들의 공격으로부터 나를 훌륭히 방어해 주고 있으니까.

그렇다고 여유를 부려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내겐 시간도, 체력도 부족하니까.

'한 번에 쓸어버린다.'

허공으로 몸을 날렸다.

흑암파의 '암'이 만들어 놓은 검은 장막 속으로 과감히 침투했고.

미친 듯이 검을 휘두르며 오러 블레이드를 허공에 수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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