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화
"뭐야, 저게?"
"무슨 능력이지?"
"저런 능력을 가진 사람이 또 있던가? 본 적 있는 사람?"
내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플레이어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당연히 저들도 봤을 것이다.
아니, 봤을 수밖에 없지.
탑을 올라 11층에서 20층을 돌파한 이들이라면.
먼발치에서나마 오러 블레이드를 한 번 정도는 봤을 테니까.
하지만 문제는, 그걸 직접 사용하는 '플레이어'를 본 적이 없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니 내 능력이 오러 블레이드일 것이라고 상상할 수도 없을 것이고.
지금 탑에서 오러 블레이드와 비슷한 능력을 사용하는 건 명가의 플레이어들 밖에는 없으니까.
저것들이 아무리 날뛰어도 명가의 일원들을 만날 수는 없었을 테니까.
"으음…?"
나와 마주한 남자 역시 마찬가지다.
여유롭던 그의 표정은 아주 조금 변했고.
나를 견제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거기까지.
그는 천천히 몸을 움직이더니.
콰앙!
땅을 디디고 나를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과연.
재빠른 움직임이다.
스탯은 보이지 않지만, 저 정도 움직이라면 민첩을 위주로 투자했을 것이 분명하다.
게다가 26층에 올라왔을 정도면 놈의 레벨은 이미 100을 넘었을 테고.
그때까지 대부분의 스탯을 민첩에 집중적으로 투자했다면 민첩 하나만큼은 나와 비견될 수 있다.
물론 뇌전검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가정하에.
그만큼 엄청난 속도다.
그렇다고 내가 따라가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고.
타앗!
발을 구르며 놈의 이동 방향을 따라 검을 한 번 휘둘렀다.
오러 블레이드가 허공을 가르며 푸른 잔상을 남겼고.
서걱!
검신에 둔탁한 무언가가 걸리는 감촉이 전해졌다.
푸른 잔상 위로 붉은 피가 흩뿌려지며 두 가지 색이 뒤엉켰다.
툭
"……?!"
무언가가 떨어져 내렸다.
놈의 팔이다.
오러 블레이드 3단계의 효과는 뛰어났다.
AA급 방어 능력.
온몸을 쇳덩이로 만드는 그런 능력 따위는 현재 나의 오러 블레이드 앞에서는 스펀지나 다름없다는 사실이 증명된 셈이다.
'아쉽군.'
조금만 더 강했으면 즐거운 싸움이 됐을 텐데.
놈은 이제 더 이상 실험용 샌드백으로서도 가치가 없어졌다.
'이젠 능력을 내가 가져가야겠지.'
[능력 '아이언 바디 – SS'를 포식하시겠습니까?]
[필요 포식 포인트 : 40.000 포인트]
내 예상대로 4만의 포식 포인트로 포식 할 수 있었다.
나는 즉시 놈의 능력을 포식했고.
[플레이어 '한강민' 님의 능력창에 새로운 능력 '아이언 바디'가 추가됩니다.]
[아이언 바디]
>등급 : AA
>체력에 비례하여 방어력이 증가한다
>체력 1당 0.1의 방어력 증가
놈의 능력은 내 손에 들어왔다.
훌륭하다.
현재 내 체력이 300을 넘었으니.
대략 30이 넘는 방어력이 한 번에 증가했다는 뜻이다.
'현재 내 방어력은 350이 넘는다.'
방어력이 1 증가할 때마다 힘 0.5에 해당하는 물리 공격을 피해 없이 방어할 수 있다.
'나에게 상처를 입히기 위해서는 힘이 최소한 200 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적어도 나와 비슷한 레벨 대에서 나에게 상처를 입힐 존재는 없다는 뜻.
그와 동시에 놈의 몸은 원래 모습으로 돌아왔고.
"끄아아아아아악!"
고통을 느낀 녀석이 비명을 내질렀다.
"뭐, 뭐야!"
"무슨 일이야! 이게 대체 뭔 상황이야!"
사방에서 커다란 고함 소리들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뒈져라."
푸훅!
나는 남자의 등에 오러 블레이드를 그대로 박아 넣었다.
놈의 몸이 힘없이 바닥에 고꾸라졌다.
[민첩 10을 포식했습니다.]
나는 주변에 서 있던 녀석들을 바라봤다.
모두가 한 패일 테지.
살려 둘 이유는 없다.
나는 그들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실험이 끝났으니, 나는 뇌전검과 충격파를 동시에 활성화했고.
그들은 나의 검을 단 1초도 받아내지 못했다.
[민첩 5를 포식했습니다.]
[힘 3을 포식했습니다.]
[체력 5를 포식했습니다.]
.
.
.
잠시 후.
모든 이들이 처참한 몰골로 바닥을 나뒹굴고 있었다.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나는 그들을 내려 봤다.
시체가 널브러진 이들은 더 이상 아무런 말도 없다.
썩 유쾌한 기분은 아니다만.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그래도 난 내가 할 일을 해야 한다.
"무서워요오오…."
"죽어도 싼 놈들이야."
늘 말했지만.
내가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
그뿐이다.
이젠 탑을 오르기 위해서 '용사'라는 녀석들을 찾아야 한다.
지금 26층에는 당연히 다른 파티도 여러 개 있을 것이다.
그들 모두가 탑을 헤쳐나가며 '용사'라는 녀석들을 찾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을 것이고.
'용사를 먼저 찾아야 다음 층으로 올라갈 수 있다.'
용사를 발견하는 것.
그게 바로 26층의 클리어 조건.
당연한 얘기겠지만, 용사라는 녀석들은 주기적으로 등장한다.
물론 등장 주기는 7일에서 길면 14일.
그리고 아직 용사는 발견되지 않았다.
그 증거로 하늘 위에는 [용사를 찾으십시오.]라는 글자가 떠 있었으니까.
'우선은 파티를 구해야지.'
파티를 구하는 건 어렵지 않을 거다.
말했듯 아직 26층을 벗어나지 못한 파티들은 족히 잡아도 열 개는 있을 테니까.
파티를 구하기 전.
지금으로부터 먼 훗날 밝혀질 정보 중 하나를 떠올렸다.
내 전생에서는 용사들의 주요 리젠 구역 다섯 개가 추려졌다.
단순히 우연이 아니라, 실제로 그 다섯 지점에서 95% 이상 용사들이 나타났고.
그 사실이 밝혀진 이후로는 다섯 포인트 중 하나를 골라 순차적으로 용사와 조우하는 시스템까지 생겨났을 정도니까.
그중에서도 가장 높은 빈도로 용사들이 나타났던 장소가 있었으니.
'거기로 먼저 가 봐야겠어.'
나는 지체없이 걸음을 옮겼다.
***
"저 파티 없으시면 같이…."
"잠깐만! 우리가 먼저 봤어! 우리랑 같이 가시죠!"
"이 사람들이! 상도가 있지! 우리가 뻔히 먼저 발견했는데 무슨!"
"잠깐만요! 탑에 그딴 상도가 뭐가 중요합니까? 독자생존! 약육강식! 강한 자가 강자를 얻는 법! 여기서 우리 파티가 제일 강한 건 다 아는 사실 아니야?"
난리다.
내가 혼자서 골렘들을 때려잡는 모습을 보고 나를 발견한 이들이 자신의 파티에 나를 영입하기 위해 온갖 애를 쓰고 있었다.
잘된 일이다.
굳이 파티를 찾으러 다닐 수고가 줄었으니까.
'흠…. 이렇게 된 거.'
마침 첫 번째 장소에는 용사가 존재하지 않았다.
꽝이었다는 소리다.
이제 남은 장소는 4군데.
'문제는 각 지점의 거리가 꽤 멀다는 거야.'
걸어서 혼자 이동하려면 적어도 4~5간은 걸릴 정도의 거리다.
운이 나빠서 마지막 지점에 용사들이 있기라도 한다면.
하루를 꼬박 걷는 데 소모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런 시간 낭비는 굳이 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저들을 이용하면 된다.
나는 내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이들을 바라봤다.
'좋아. 마침 딱 네 파티.'
이들 중 내 선택을 받을 수 있는 건 오직 하나의 파티 뿐.
내가 입을 열었다.
"주목."
"……?"
"주, 주…목!"
"주모오옥!"
그들이 내 말을 따라 복명복창했고.
"각자 파티끼리 뭉쳐주십시오."
내 말을 따라 그들을 자신들의 파티끼리 뭉치기 시작했다.
뭉쳐서는 각자 자신의 무기를 꺼내들었다.
싸우려는 게 아니라, 자신의 무기가 이렇게 뛰어나다고 어필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아쉽게 됐다.
내가 볼 건 너희들의 실력 따위가 아니니까.
그들의 간절한 시선을 무시하며 말을 이었다.
"자, 지금부터 당신들에게 각각 하나의 장소를 알려 줄 겁니다."
"……?"
그게 무슨 뜬금없는 소리냐는 듯이.
그들이 나를 멍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지금부터 알려드릴 장소는 우리가 찾아야 할 '용사.' 그들이 잘 나타나는 장소입니다."
"뭐라고요?"
"그런 게 있어? 말도 안 돼! 그럼 왜 우린 이 뻘짓을 하고 있던 건데?"
"확실한 정보입니까?"
믿지 못하겠다는 듯이 플레이어들이 소리쳤다.
당연한 반응이다.
하지만 어쩌랴.
진짜인 것을.
"내 말에는 일말의 거짓도 없습니다. 만약 믿지 못하시겠다면 돌아가셔도 상관없습니다. 나를 믿지 못하는 사람과는 파티를 이룰 이유도 없으니까요."
단호한 내 말에 모두가 입을 다물고 서로 눈치를 주고받았다.
떠나는 이들은 없다.
밑져야 본전이지, 라는 말이 여기저기서 오고갔다.
그때.
"질문… 해도 됩니까?"
한 여자가 손을 들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의심하는 건 아닌데요. 강민 씨는 어떻게 그런 걸 알고 계신 거죠? 확신하고 있다는 듯한 말투신데요."
좋은 질문이다.
하지만 당연히도 사실대로 말해 줄 생각은 없다.
"아마 대부분은 저에 대해서 아실 겁니다."
플레이어들이 끄덕인다.
당연하지.
모를 수가 없지.
이런 말들이다.
"역대 최단시간으로 탑을 돌파했고. 현재 상위 랭크 길드가 저를 주목하고 있습니다. 다섯 명가와도 이미 접촉했고요."
내 입으로 말하긴 낯뜨겁지만.
저들을 설득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다.
"그렇지…. 그거야 다 아는 사실이긴 한데. 직접 들으니까 또 놀랍네요."
"제가 그저 운으로 탑을 빨리 오른 건 아닙니다. 그저 행운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모두 알고 계실 테죠. 그리고 이런 일을 가능하게 만든 건 단 하납니다."
"…?"
"정보죠."
"아!"
"그렇지. 맞는 말이야."
내 말에 플레이어들이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보.
힘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바로 정보였고.
이들이 여기에서 이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도 정보가 부족하기 때문이니까.
나는 쐐기를 박아 넣었다.
"저에겐 그 정보가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이 알고 있는 저의 위치가 이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고요. 이래도 믿지 못하시겠다면…."
그 순간.
"믿습니다!"
"제가 더 믿어요! 당장 절이라도 해 볼까요?"
"나 오늘부터 개종합니다! 강민 님 만세! 만세에에에!"
됐다.
저들을 설득하는 작업은 끝이 났고.
이제는 저들 중 누가 가장 운이 좋아 나의 선택을 받게 될지 기다리기만 하면 될 일이다.
"자, 그럼…. 파티의 리더 한 분씩 제 앞으로 나와 주십시오."
나는 용사의 리젠 위치를 한 명에게만 조심스레 알려 줄 생각이다.
파티 내부에서 파티원들끼리 공유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하지만 다른 파티에게는 전해지지 않도록.
정보란 언제나 제한되어 있을 때에 가치가 있는 법이니까.
잠시 후.
"아시겠습니까?"
"예. 명심하겠습니다."
나는 리더들에게 맵 위로 점을 하나씩 찍어 줬다.
그들은 다른 파티가 훔쳐보지 못하도록 재빨리 맵을 숨겼다.
"다들 제가 알려 주신 방향으로 가십시오. 그리고 용사가 있다면 저에게 귓말을 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
"예."
"혹시 용사가 없으면 어떡하죠?"
뭘 그런 걸 질문이라고 하시는지.
"꽝이겠죠."
"아…."
"끄응…."
여기저기에서 신음 소리들이 들려왔다.
1/4의 확률.
낮다면 낮고, 높다면 높은 확률이다.
혹시라도 자신들 파티가 그 확률 배팅에 적중만 할 수 있다면.
그래서 나와 파티를 맺게 된다면.
저들에게는 로또 이상의 행운일 테다.
"자. 어서 움직여 주십시오."
"예, 예!"
"가자! 빨리!"
순식간의 플레이어들이 흩어졌다.
"다 같이 행복할 수는 없을까요오?"
흩어지는 플레이어들을 보며 몰른이 말했다.
"…."
좋은 말이다.
다 같이 행복하게 사는 일.
하지만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정말 세상이 그렇게 아름다웠다면 나의 전생은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
지금도 탑의 정상에 군림하며 수많은 플레이어들을 보고 조소하는 명가와 길드들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나는 몰른을 바라봤다.
"그럴 수 있으면 나도 그랬겠지."
"…."
몰른이 입술을 깨물었다.
"몰른. 그런 게 가능했으면 나도 진즉에 그런 방식의 삶을 택했을 거다."
"…."
몰른은 잔뜩 위축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도 하나는 약속하지. 네가 내 옆에 있는 이상 나는 너를 지킬 거다."
내 나름의 위로였다.
몰른에게는 어떻게 와 닿았을지 모르겠지만.
"가자."
저들에게 메시지가 도착하기 전까지.
골렘을 사냥하며 최대한 포식 포인트와 스탯을 포식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