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화
김원호와 김준석.
두 사람은 말없이 서로를 응시했다.
김준석은 속으로 잔뜩 위축되었지만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았다.
김원호의 교육 탓이다.
누구 앞에서도 절대 위축되지 말아라.
너는 검술 명가의 혈계를 이은 직계다, 라는 교육 때문이다.
심지어 대상이 명가의 장로일지라도, 혹은 자신일지라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김원호의 시선을 피하지 않은 채로 꼿꼿이 마주 보고 앉아 있을 뿐이다.
잠시 후.
"네가 그곳에 간다면 놈들에게 놀아나는 꼴이 될 것이다. 더 나아가 마법 명가의 손에 우리 가문이 놀아나는 꼴이라는 뜻이지."
김준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예측했던 반응이다.
하지만 그에게도 뜻이 있다.
"아버님."
"말해 보아라."
"마법 명가에서 지금까지 우리의 맹주 자리를 넘보던 것은 사실입니다."
김원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들이 언제 단 한 번이라도 다섯 명가의 수장 자리에 올라선 적이 있었습니까."
"없다."
단호한 대답이다.
헛된 자부심이 아니라, 사실이기도 했다.
"맞습니다. 세력의 규모가 꽤 커졌다고 한들, 다른 네 명가에서도 그들을 진심으로 존중하지는 않습니다. 공교롭게도 모두가 육체를 중시하는 명가들이니까요."
그 말이 사실이다.
검, 창, 무투, 궁, 그리고 마법.
현재 대한민국의 탑을 주도하는 다섯 명가 중 마법 명가를 제외한 모두가 무투 계열의 명가들.
그나마 최씨 일가를 주축으로 이뤄진 궁(弓)가에서는 조금 마법 명가와 가까이 지내고는 있지만.
명백하게 말하자면 그들 역시 육체 계열의 명가.
신체를 단련하고, 단련한 신체로 그들의 무기의 능력을 극대화하는 것을 업으로 삼는 이들이다.
"마법 명가. 그 사문난적을 일삼는 녀석들이 잔꾀를 썼다고 한들, 다섯 명가의 수장이 우리 검술 명가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김원호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사실 그 역시 이번 회동에 참가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허나 그 말을 하지 못한 것은 장로들 때문이다.
가주이지만, 장로들의 눈치를 볼 수 없는 입장이다.
마법 명가의 편지를 찢은 건 그들의 마음을 달래기 위한 일종의 쇼.
"그리고 그 안에서 오갈 이야기를 우리가 없는 자리에서 행한다는 것. 그것이 오히려 마법 명가에게 주도권을 넘기는 것이나 다름없지 않겠습니까."
"틀린 말은 아니다."
김원호의 대답에 김준석이 눈을 번뜩였다.
"그렇다면 이번 기회에 확실히 서열을 정리하는 편이 낫지 않겠습니까."
김준석이 쐐기를 박았고.
김원호는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잘 할 수 있겠느냐. 우리 가문의 명예를 짊어져야 할 자리다."
김준석은 단 1초도 망설이지 않았다.
"예."
김원호가 김준석의 결연한 눈빛을 확인했다.
"다녀오거라. 다만 장로들께서는 이 사실에 대해서 모르셔야 할 것이다."
김준석은 곧바로 몸을 일으키고 아버지 김원호를 향해 예를 표했다.
***
해밀턴과 약속한 날이 밝자마자 나는 그의 공방으로 달려갔다.
그동안 내 머리를 가득 채우고 있던 생각은 명가의 회동도, 다른 무엇도 아니다.
'해밀턴의 장비.'
그것도 현재 내가 구할 수 있는 최고의 재료들로 만든 장비.
이것만 갖게 된다면 나의 스펙은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훌쩍 뛰어 오를 것이다.
나는 금세 해밀턴의 공방에 도착했다.
그의 공방은 고요했다.
평소 같았다면 지금 이 순간에도 열심히 금속을 두드리는 소음이 들려야 했겠지만.
'조용하다는 건.'
역시 이미 완성되었다는 뜻이리라.
나는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해밀턴의 공방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끼기긱-
낡은 공방의 문이 소음과 함께 열렸다.
그 안에서는 여전히 남아 있던 후끈한 열기가 내 몸을 한껏 달궜다.
"오셨군."
해밀턴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가만히 서서 내가 있는 곳을 바라봤다.
"이날을 기다리느라 목이 빠지는 줄 알았죠."
"물어볼 것은 없소? 작업이 잘 되었는지…. 그런 질문 말이오."
나는 대답 대신 그를 보며 미소 지었다.
"그런 물음이 필요하겠습니까. 내가 선택한 대장장이인데요, 당신은."
해밀턴 역시 내 말에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공방의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철거덕
저 안쪽에서 금속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내 장비다.
그는 곧 나의 장비를 들고 내 앞으로 다가왔고.
촤르르
검 하나와 상의, 하의, 부츠를 꺼내왔다.
"…하."
나는 그가 내려놓은 장비를 본 순간 탄식을 쏟아 낼 수밖에 없었다.
완벽하다.
젊은 날의 해밀턴은 내가 알던 노인 해밀턴과는 많이 다른 사람이었다.
노인 해밀턴에 비해서 조금 투박하고 손이 거칠지만.
오히려 내 마음에는 이쪽이 더 흡족했다.
"마음에 드시오?"
그가 물었다.
"마음에 안 들 리가 없지 않습니까. 당신이 내놓은 물건인데."
"……."
해밀턴이 문득 묘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자신에게 이런 전적인 신뢰를 보내는 사람을 아직까지는 만나보지 못했을 테니까.
하지만 지금은 그런 감상을 나눌 때는 아니다.
어서 장비의 옵션을 확인해 보고 싶어 미칠 것 같으니까.
"잠시…."
해밀턴이 고개를 끄덕였다.
[장인의 혼신의 열정이 담긴 오리하르콘 철도 – 대성공]
>공격력 : 70
>추가 능력치 : 힘 + 36 민첩성 + 15
>대성공 효과 : 추가 공격력 + 30
>잠재 옵션 : 힘 + 31
[장인의 혼신의 열정이 담긴 미스릴 상의 – 대성공]
>방어력 : 97
>추가 능력치 : 체력 + 35 민첩성 + 27
>특수 옵션 : 아다만티움이 절묘하게 조합되어 있다.
마법에 대한 저항력 + 30%
>잠재 옵션 : 체력 + 25
[장인의 혼신의 열정이 담긴 미스릴 하의]
>방어력 : 98
>민첩성 +25, 체력 +31
>특수 옵션 : 아다만티움이 절묘하게 조합되어 있다.
마법에 대한 저항력 + 15%
>잠재 옵션 : 체력 +25
[장인의 혼신의 열정이 담긴 미스릴 신발]
>방어력 : 76
>추가 스탯 : 체력 + 26 민첩성 + 13
>특수 옵션 : 아다만티움이 절묘하게 조합되어 있다.
마법에 대한 저항력 + 20%
>잠재 옵션 : 민첩성 + 25
'미치겠군.'
말도 안 되는 장비들이다.
이전에 가지고 있던 무기의 공격력은 30.
특히나 검과 상의의 대성공.
지난번 달성했던 업적의 효과 덕분이리라.
그렇지 않다면 한 번에 두 개의 대성공이라는 건, 해밀턴이라도 불가능한 일이니까.
그 덕에 공격력이 단번에 2배 이상은 뛰어오를 것이다.
거기에 모든 장비에서 추가된 65%의 마법 저항력.
이 정도라면 당장 마법 명가 플레이어들과의 싸움에서 나는 한참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으리라.
그뿐이 아니다.
추가 스탯들은 정말이지 혀를 내두를 정도였고.
거기에 더해진 잠재 옵션까지 더해본다면.
'지금 내가 가진 지금 아이템으로 얻을 수 있는 스탯의 총합보다 3배는 족히 뛰어오른다.'
사기라는 말이 절로 나올 수밖에 없다.
그 순간 떠오른 메시지.
[잠재 스탯을 포식하겠습니까?]
현재 모아 둔 포식 포인트는 넘쳐난다.
거의 10만 포인트에 육박하는 포식 포인트.
망설일 이유가 없었고, 나는 곧바로 장비에 담긴 모든 포식 스탯을 포식했다.
나는 즉시 모든 장비를 착용했고.
곧바로 상태창을 펼쳤다.
[상태창]
>이름: 한강민
>레벨 : 41
>스탯
-육체
힘 : 259.07
민첩성 : 260.81
체력 : 310.85
-정신
마력 : 75.45
>마법 저항력 (NEW)
+ 65%
>능력
1. 포식자 (S)
2. 뇌전검 (S)
3. 충격파 (AA)
4. 오우거의 신체 (AAA)
5. 오러 블레이드 (S)
6. EMPTY
포식 포인트 – 40210p
'압도적이다.'
아직도 포식 포인트는 2만이 넘게 남았다.
그 중에 특히나 체력이 크게 증가했다.
'그렇다면 체력을 마력에 분배해도 괜찮겠어.'
알다시피 오러 블레이드는 마력의 영향을 받는다.
현재 마력은 75를 조금 넘는다.
그동안 골렘을 사냥하며 골렘의 마력 스탯을 조금씩 포식한 결과였다.
그리고 오러 블레이드를 3단계로 상승시키기 위해서는 100의 마력 스탯이 필요했고.
그 말은, 25의 마력이 더 필요하다.
'25개의 마력 스탯을 증가시키기 위해서는 50개의 육체 스탯이 필요하다.'
마침 잘 됐다.
현재 체력 스탯이 다른 스탯들에 비해 50 정도 더 많았으니.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 체력 50개 정도는 충분히 투자할 수 있다.
[체력 스탯을 마력 스탯으로 변환하시겠습니까?]
나는 곧바로 체력을 마력으로 변환시켰고.
[체력 : 310.85 -> 260.85]
[마력 : 75.45 -> 100.45]
그 순간 다시 한번 빛과 함께 또 다른 메시지가 하나 더 떠올랐다.
[오러 블레이드 (S)의 등급이 2단계에서 3단계로 상승합니다.]
[오러 블레이드 – S]
>3단계 (4단계 해금 조건 : 마력 200)
>육체 / 정신 복합계 스킬
-힘과 마력 수치의 영향을 받는다.
>추가 공격력 : 50.19
>지속시간 : 300.35초
추가 공격력은 무려 50.
무기의 공격력과 합친다면 지금 나의 공격력은 150에 육박한다.
이 정도의 공격력은 현재 탑에서도 확실히 최상위권에 속할 것이 분명하다.
거기에 지속 이간은 이제 5분을 넘어섰다.
몰른의 스킬 버프까지 추가된다면 능히 7분 이상을 지속할 수 있다는 뜻.
'됐다.'
모든 준비는 완벽하다.
이제 곧 마법 명가의 실험실을 박살 내고.
또 앞으로 다가올 폭풍을 마주할 모든 준비는 끝났다.
나는 그제야 고개를 들고 해밀턴을 바라봤다.
"모험가들의 의식이 끝이 났나 보군."
모험가들의 의식.
상태창을 보거나 능력치를 살피는 행위를 탑의 원주민들은 그렇게 부르곤 했다.
"예."
"남은 재료는 저곳에 있으니 가져가려면 가져가시오."
해밀턴이 말했다.
하지만 그럴 생각은 없다.
"마음껏 쓰십시오."
"…?"
해밀턴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느냐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저 정도의 양이라면 저택을 사고도 남을 텐데. 그게 무슨 소리요."
"투자입니다."
"투자…?"
"예. 앞으로 우리는 계속해서 거래를 하게 될 것 같은데. 해밀턴 당신의 실력이 성장할수록 저에게도 좋은 일이지 않겠습니까."
내 말대로다.
해밀턴은 지금도 훌륭하지만, 그의 잠재력은 앞으로도 무궁무진하다.
전생에서 해밀턴이 미스릴이나 오리하르콘 같이 고급 금속을 다루는 건 먼 훗날의 일.
하지만 그 시간을 앞당겨 지금부터 고급 금속을 다룰 수 있게 도와준다면.
'그의 성장은 전생과는 차원이 달라지겠지.'
이건 비단 해밀턴을 위한 투자가 아니라, 나를 위한 투자이기도 한 셈이다.
"그럼. 다음에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나는 미련 없이 몸을 돌렸다.
돈 같은 거.
이미 넘칠 만큼 가지고 있었고, 필요하면 얼마든지 벌 수 있다.
그보다 중요한 건, 사람이다.
"고맙소! 언제든지 오시오! 당신을 위해서라면 내 모든 열정을 다 할 테니까!"
해밀턴의 외침이 등 뒤에서 들려왔다.
***
다음 날.
나는 곧바로 몰른과 함께 26층으로 진입했다.
[26층 골렘 사원 내부로 진입했습니다.]
[현재 26층에 존재하는 파티 중 인원이 부족한 파티로 무작위로 투입됩니다.]
[골렘 사원]
-골렘은 고대의 종족입니다. 이 땅에 인간이 존재하기도 전, 그들은 자신들의 문명을 꽃피웠습니다. 하지만 번식 능력이 존재하지 않는 그들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약해졌고, 결국은 멸망해 이제는 쇠퇴한 문명이 되었습니다.
골렘 사원에 대한 개략적인 설명이 떠올랐다.
여기까지는 그다지 중요한 내용이 아니다.
골렘 사원 스테이지의 본 목적에 대한 설명은 이제 부터다.
-시간이 흐르며 그들은 새로운 생존법을 발견해 냈습니다. 그 답은 인간입니다. 어느새 번성하여 대륙을 지배하는 인간들. 인간들과 자신들의 신체를 접목하여 새로운 종으로 거듭나려는 골렘들. 그들로부터 인간종의 번영을 지켜내십시오.
이게 바로 26층부터 플레이어들이 해내야 할 일.
늘 그랬듯 이곳 역시도 지구와는 다른 차원의 공간.
이건 실제 역사라는 뜻이다.
이곳에 소환된 플레이어들은 유치하지만, 결국 골렘들의 음모로부터 인간 세상을 지켜내야 한다는 것.
'하늘에서 떨어진 용사…라는 컨셉이겠지.'
유치해도 어쩔 수 없다.
탑을 오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까라는 대로 까야 할 테니까.
그렇게 골렘 사원에 대한 설명이 끝난 뒤.
[인원이 비어 있는 차원을 탐색합니다.]
[탐색을 완료했습니다.]
[골렘 사원으로 전송됩니다.]
[플레이어 '한강민' 외 펫 '몰른'을 파티에 투입합니다.]
[차원의 용사들과 함께 세상을 구해주십시오!]
메시지와 함께 내 시야가 어두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