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상태창이 달라졌다-51화 (51/277)

51화

오리하르콘 골렘이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

물론 놈은 아직 건재하다.

그 증거로 아직 녀석의 핵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으니까.

다만 이제 더 이상은 나를 향해 공격할 수 없을 뿐이다.

당연히 그것도 잠시 뿐이기는 하지만.

아직 핵이 남아 있는 이상 놈은 곧 무너진 다리와 시야를 회복할 것이다.

'그전에 빨리 처치해야지.'

나는 놈의 몸 위로 올라섰고.

놈의 팔과 다리 부위를 무차별적으로 공격했다.

몸통 부위에 있는 거대한 오리하르콘 덩어리는 작은 흠집도 나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그렇게 시간이 조금 흐른 뒤.

드디어 놈의 몸통에서 핵이 모습을 드러냈다.

"몰른. 땅 파!"

"예, 예에에에!"

몰른은 연주를 멈추고 내가 미리 줬던 도구를 이용해 땅을 파기 시작했다.

잠시 후 핵이 완전히 모습을 드러냈다.

조심스럽게 모습을 드러낸 핵을 꺼냈다.

이 순간에도 골렘은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었다.

"몰른!"

홱!

나는 몰른을 향해 핵을 던졌다.

내가 저기로 가는 시간조차 아까웠으니까.

몰른은 내가 던진 핵을 잘 받아들고서는 땅속 깊은 곳에 묻었다.

쿠드득! 쿠득!

아직 완전히 파묻기 전.

골렘이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기 전에 나는 다시 놈의 다리를 짓뭉갰고.

잠시 후 몰른은 핵을 파묻는 데 성공했다.

투두두둑!

허공에 떠올랐던 골렘의 잔해들이 바닥에 떨어져 내렸다.

나는 여유롭게 오리하르콘 골렘의 잔해들을 수습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쓸만한 잔해를 다 수습한 뒤.

'바로 다음 층으로 간다.'

더 이상 22층에는 볼 일이 없다.

***

그 시각 21층에서는 묘한 기류가 흐르고 있었다.

"……."

"이게 뭔 일이래?"

"몰라. 그냥 닥치고 있어."

"혹시…."

"닥치라니까."

"끙…."

중소길드의 길드원들은 이 상황이 너무도 난처할 뿐이다.

그들이 모여있는 가운데에 난입한 몇 명의 플레이어들 때문이다.

그들의 무기는 다양하다.

건틀렛, 창, 검, 활.

각종 무기를 들고 있었고.

망토에는 화려한 문양이 수놓아져 있다.

'명가의 플레이어들이 왜….'

그들의 정체는 바로 각종 명가의 플레이어들이었다.

"…."

명가의 플레이어들은 한참 동안이나 서로를 바라보며 눈만 껌뻑이고 있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개개인에게서 느껴지는 카리스마는 일반 플레이어들이 감당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러니 그사이에 껴서 어찌할 바를 모른 채 숨죽이고 있을 뿐이다.

"흐흠."

그때 한 남자가 입을 열었다.

검술 명가의 플레이어.

혈계를 이어받은 이는 아니지만, 검술 명가의 대리인으로 왔다는 것만으로도 발언권은 충분하다.

"다들 목적은 같은 것 같습니다만."

검술 명가 플레이어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집중됐다.

"솔직하게 가자고요. 솔직하게. 돌려서 말할 것 없잖아요."

그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여유롭다.

검술명가 소속이라는 것에 대해 큰 자부심이 느껴지는 표정이다.

"한강민. 그 사람 찾으러 온 것 아닙니까. 다들?"

그의 말에 다른 모든 플레이어들이 움찔했다.

중소 길드의 플레이어는 말할 것도 없다.

"그래. 맞소."

한 남자도 입을 열었다.

거대한 창을 들고 서 있는 남자다.

창술 명가의 플레이어였다.

"그쪽은?"

검술 명가의 플레이어가 다른 명가의 플레이어들을 바라봤다.

"마찬가집니다."

"저희도."

다들 목적은 같다는 게 확인됐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

정작 강민 당사자가 없다는 게 문제다.

"…난감하네요."

이미 21층을 샅샅이 뒤졌건만 강민은 보이지 않았다.

속속들이 명가 소속의 플레이어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없어요! 암만 뒤져도 안 보이는데?"

"이쪽도 없습니다!"

몇 시간이나 21층 내부를 살피고 또 살폈지만 강민은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된 걸까요? 혹시 누가 미리 그 플레이어를 빼돌리고 모른 척하는 건 아닐까요?"

"빼돌리기는. 그 사람이 물건이라도 된답니까?"

검술 명가 플레이어의 말에 창술 명가 플레이어가 핀잔을 줬다.

마법 명가 다음으로 검술 명가 플레이어와 사이가 좋지 않은 게 바로 창술 명가의 플레이어였으니까.

검술 명가의 플레이어는 그저 코웃음 치며 주변을 둘러봤다.

"한 가지 물어도 괜찮겠습니까."

그가 바라본 건, 중소 길드의 플레이어들.

명가의 일원과 눈이 마주친 이들이 흠칫 놀라며 몸을 떨었다.

그들에게 있어서 명가란 그야말로 하늘 꼭대기에 있는 존재들이었으니.

당연한 반응이기도 했다.

"혹시 한강민이라는 플레이어를 못 봤습니까?"

"그렇게 말하면 어떻게 압니까? 그 사람이 이름이라도 붙이고 다녀요?"

다시 끼어든 창술 명가의 플레이어.

검술 명가 플레이어가 그를 흘끔 노려 봤지만, 그는 모른 체하며 입을 열었다.

"혼자 다니는 플레이어인데…."

"아!"

말이 채 끝나기도 전.

한 플레이어가 소리쳤다.

"그 사람! 맞잖아, 그 사람!"

플레이어들은 혼자 다니는, 이라는 말에 흥분해서 소리쳤다.

그만큼 그들에게도 강민은 인상 깊은 플레이어였다는 뜻이기도 하다.

"…!"

그들의 반응에 명가의 플레이어들도 눈을 빛냈다.

강민의 행방에 대해서 알아낼 수 있는 기회였고.

그렇다면 이제 강민을 만나게 되리라는 뜻이기도 했으니까.

'우리가 잡는다.'

'반드시 데려가야 해.'

'놓칠 수 없어.'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언제 어디서 보셨죠?"

"음… 그러니까 두 시간쯤 전에 21층에 올라왔다고 들었고…. 한 시간쯤 전에 미스릴 골렘을 사냥했고…."

명가의 플레이어들이 다급해졌다.

한 시간 전까지 21층에 있었다면, 아직 21층에 있을 수밖에 없다.

라고 확신하면서.

그들이 다급하게 외치기 시작했다.

"찾아! 여기에 있다!"

"무조건 찾아서 데려와!"

"목숨을 걸고 찾으라고!"

대표자들의 외침에 그들을 따라 온 플레이어들은 다시 이를 악물고 21층 내부를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당연히 그들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지금 강민은 23층에 올랐고.

아다만티움 골렘을 사냥하기 위한 준비를 착수하고 있다는 사실을.

***

'됐다.'

드디어 아다만티움까지 손에 넣는 데 성공했다.

미스릴, 오리하르콘, 아다만티움.

탑 내에 존재하는 재료 중 단연코 손에 꼽힐 만큼 훌륭한 재료들이다.

'특히나 이렇게 저층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 중에서는 최상급이지.'

이 이상의 재료를 구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50층 이상은 올라가야 한다.

그 말은 즉, 사실상 현재의 탑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 중 이 이상 훌륭한 재료 아이템은 없다는 말이기도 하고.

"후…."

힘들다.

잠시 나는 자리에 주저앉았다.

쌩쌩하던 몰른도 강행군에 지쳤는지 내 옆에 쭈그려 앉았다.

'아직도 갈 길이 멀어.'

재료는 구했지만, 재료만 있다고 아이템이 뚝딱 나오는 건 아니다.

25층 뒤에 있는 마을에 가기 위해서는 두 개의 층을 더 올라야 한다.

시간문제이긴 하지만, 만만치 않다는 게 문제지.

'금강산도 식후경인데.'

우선 배라도 좀 채워야 할 것 같다.

몇 시간 동안 쉬지도 않고 골렘을 때려잡았으니.

밥 정도는 먹어도 괜찮지 않겠나.

인벤토리에서 식량을 꺼냈다.

처음 탑에 올라서 먹었던 오크 고기와는 비교도 안 될 진수성찬.

물론 그래 봐야 조금 값비싼 전투식량이긴 하다만.

"너도 먹어라, 몰른."

"감사합니다요오!"

몰른이 내가 건넨 전투식량을 받아 들었다.

몰른에게 준 전투식량은 매운 양념이 되어 있는 고기 볶음밥.

굳이 한식으로 치자면 제육볶음 정도 되는 음식이다.

'나는 불고기 덮밥인가.'

간장 비슷한 향료와 고기를 볶아 건조시킨 음식이다.

여기에 뜨거운 물을 조금 부으면 훌륭한 밥이 되는 거다.

'뜨거운 물은….'

뇌전검으로 지핀 불에 미리 챙겨 온 물을 끓였다.

보글보글

잠시 후 물이 끓기 시작했고.

나와 몰른은 전투식량 안에 뜨거운 물을 적당히 부었다.

좋은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몰른은 꿀이라도 떨어질 것 같은 표정으로 킁킁, 거리며 침을 꼴깍 삼켰다.

"든든히 먹어 둬. 앞으로 쉴 시간은 별로 없을 테니까.'

대충 30분 쉬고서 곧바로 25층까지 올라갈 계획이다.

괜히 또 중간에 쉬었다가는 한없이 쳐지기 마련이다.

탄력받은 김에 빠르게 뚫고 올라가야지.

'게다가 이렇게 무작정 골렘을 때려잡고 탑을 오르는 것도 25층까지가 전부니까.'

말했듯 26층 이후에 등장하는 골렘은 25층 이전과는 다르다.

다른 건 골렘의 모양뿐만이 아니다.

'그때부터 본격적인 골렘 사원이 펼쳐지는 거지.'

그 말은 즉.

25층까지는 골렘 사원에 본격적으로 진입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굳이 따져 말하자면, 25층까지는 골렘 사원의 입구.

'26층부터는 새로운 스토리가 펼쳐진다.'

탑의 이전 층과 마찬가지로 골렘 사원 역시 지구와는 다른 차원의 세계.

실제로 우주 어딘가에 존재하는 그런 차원을 끌어온 것이다.

'골렘 사원에도 당연히 그에 맞는 역사가 존재하지.'

그 본격적인 이야기가 펼쳐지는 곳이 바로 26층부터다.

21층부터 25층은 쉽게 말해 골렘 사원의 튜토리얼쯤으로 생각하면 편할 것이다.

"맛있습니다요!"

몰른이 열심히 전투 식량을 먹으며 말했다.

맥주라도 있으면 한 잔 줬을 텐데.

맥주는 일부러 구입하지 않았다.

술을 좋아하지도 않을뿐더러, 맥주만 보이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드는 몰른 때문이다.

나는 몰른에게 물 한 병을 건넸다.

"아껴 마셔."

물이 부족하지는 않다.

그래도 어떤 상황이 닥칠지 모르니 항상 비축분은 남겨 둬야 하기 때문이다.

나도 물을 한 모금 삼켰다.

"크흐."

가슴속 깊게 응어리졌던 묵은 한숨이 쏟아져 나왔다.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다.

명가들과 얽히는 사건들 말이다.

머리가 복잡해진 것도 사실이다.

조금도 두렵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

'예상했던 일이야. 당연히 마주해야 할 일이기도 했고.'

그렇다고는 해도 내가 선택한 일이다.

전생에서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두렵다고 주저앉을 거였다면, 이 몸으로 새로 태어났을 때 안락한 생활을 택했으리라.

지금의 나는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존재니까.

무난히 탑을 오르고, 좋은 길드 혹은 명가의 일원으로 들어가고.

그들의 지원을 받으며 탑을 올라 랭커가 된다.

돈과 명예 권력.

모든 것이 자연스레 굴러들어 올 수 있을 탄탄대로의 삶.

그것을 포기한 건 나 자신이다.

모든 게 나의 선택일 뿐.

'쉽지 않을 거라는 거 알고 있었잖아.'

당연한 일이다.

홀로 탑을 오르고, 마법 명가.

더 나아가서 다른 명가들과 싸우겠다는 그 다짐이.

또 과거에 이루지 못했던 탑을 정복하리라는 그 포부를 이뤄낸다는 게.

쉬울 거라는 건 나도 잘 알고 있었다.

쿵!

가슴을 한 번 두드렸다.

이걸로 됐다.

어린애처럼 푸념하고 있을 수는 없다.

"몰른. 가자."

몰른은 다급하게 아직 다 먹지 못한 식량을 입속에 욱여넣었다.

꿀꺽 꿀꺽

물을 한 병 다 비우고 나서야 행복한 표정을 짓는다.

몰른이 자신의 소중한 류트를 아이처럼 꼭 끌어안았다.

'너라도 있으니 내가 웃는다.'

그런 몰른을 보며 작은 웃음을 터트렸고.

곧바로 몸을 돌렸다.

24층, 그리고 25층.

'오늘 내에 돌파한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