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화
"뭐? 명가가 내려왔다고? 확실한 거야?"
여자는 그 즉시 길드의 캠프로 달려와 들은 사실을 모두 토해냈다.
"아니, 확실하냐고 물으면 확실하지는 않지만…."
직접 본 건 아니다.
그러니 확신할 수는 없다.
그래도.
"정황상 명가가 아니면 누가 그래요?"
"끄응…."
사실이다.
골렘을 한 방에 처치할 수 있는 플레이어는 그리 많지 않다.
중소 길드의 플레이어들 중에는 없다.
그렇다면 남는 건 상위 랭커, 혹은 명가의 플레이어들.
그중에서 명가의 플레이어라고 추측하는 건 이유가 있다.
"하긴. 요새 명가 쪽에서 움직임들이 심상치 않다고 하긴 했으니까."
30층 이상에서 활동하는 플레이어들이라면 모두 알고 있는 이야기다.
특히 마법 명가와 검술 명가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는 소문들이 파다했으니까.
"그렇다고는 해도 이런 식은 아니잖아. 상도가 있지. 상도가!"
그들은 분개했다.
명가가 진짜 미스릴 골렘 사냥에 나섰다면 승산은 없다.
먼저 발견한 길드가 주인이라는 것도 고만고만한 길드들 사이에서나 지켜지는 룰이다.
명가와 같은 규격 외의 존재들이라면 그딴 규칙 정도.
무시하면 그만이다.
그때였다.
"저기다!"
뒤쪽에서 한 무리 플레이어들의 외침이 들려왔다.
"어?"
조금 전 골렘 사원을 떠돌던 한 무리의 플레이어들.
그들은 길드 캠프를 발견하고서는 환호했다.
"누구야. 아는 사람들?"
"아, 조금 전에 만났는데 이제 막 21층에 올라 온 사람들 같더라고요."
"혹시 명가 플레이어를 봤다던 사람들인가?"
"아, 맞아요."
그런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플레이어들 중 한 사람이 다가왔다.
"시, 실례가 아니라면 여기에서 잠깐 휴식 좀 취해도 괜찮겠습니까?"
그 말에 길드원 한 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죠. 고생 많으셨습니다. 여기까지 오시느라."
최대한 친절하게.
그들에게 신규 플레이어들은 언제나 새로운 고객이다.
지금 성장하고 있는 중소 길드에게 새로운 인재란 언제나 필요한 법.
특히나 21층에 올라섰다면 이미 어느 정도 실력은 증명된 셈이니까.
"가, 감사합니다!"
플레이어들이 넙죽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전했다.
그때 길드원 한 명이 앞으로 나섰다.
"안녕하세요. 철왕 길드의 부길드장을 맡고 있는 박남현이라고 합니다. 이곳까지 오느라 고생 많으셨을 텐데 다들 푹 쉬다 가세요. 그리고 이건 제 명함입니다."
철저한 영업용 멘트다.
"와아…. 부길드장님!"
"와!"
영업용이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이들의 반응도 진심이었다.
플레이어들이 탄성을 쏟아냈다.
박남현은 멋쩍은지 머리를 긁었다.
부길드장이라고 해 봐야 조그마한 길드.
하지만 지금 죽다 살아난 이들에게 한 길드의 부길드장이라는 사람은 높아 보이는 게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어쨌거나. 저 친구한테 얘기는 들었어요. 21층에서 괴물같은 플레이어를 봤다고…."
"아, 맞아요!"
플레이어들이 손뼉을 치며 외쳤다.
"어떻던가요? 혹시 명가 쪽 사람으로 보였다거나…."
플레이어들은 서로 시선을 마주했다.
잠시 후 한 사람이 입을 열었다.
"그런 생각은 못 해 봤는데 생각해 보니까 충분히 그럴 가능성도 있는 것 같아요."
"어떤 점에서?"
"검을 쓰는 괴력의 플레이어라는 점?"
"… 젠장."
뻔하다.
괴력과 검이라면 연상 되는 단체는 하나.
검술 명가다.
"이렇게 된 거…. 얼굴이나 한번 보자. 그렇게 보기 힘든 검술 명가 플레이어 볼 기회가 얼마나 되겠냐."
"쩝…."
"그래요."
길드원들은 어두운 얼굴로 푸념하기 시작했다.
"아, 그건 그렇고 혹시 아직 소속된 길드가 없으시다면…."
체념은 체념이다.
하지만 그들의 영업은 이제 시작이었다.
"어휴. 우리는 일단 조금 더 돌아다녀 볼게요. 혹시 모르니까."
"같이 가자!"
"나도 갈래."
길드원 몇몇은 실낱같은 희망을 놓치지 않은 채 골렘 사원을 배회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미스릴 골렘이 등장했습니다.]
그들의 머리 위에 떠오른 메시지.
혹시나 했던 가능성은 완전히 사라진 것이나 다름 없다.
"아오!"
"망했다! 망했어!"
그들은 꼼짝없이 한 달을 더 기다려야 할 운명에 처하게 된 것이다.
"어떡해. 돌아가?"
"가긴 어딜 가. 검술 명가 플레이어 얼굴이나 보자고 나온 거잖아."
"그치. 맞지. 그래. 어디냐, 어디야!"
그들은 즉시 맵을 펼쳤고.
맵 한 구석에는 미스릴 골렘의 리젠 장소가 표시되어 있었다.
***
세상에는 다양 변태들이 존재한다.
이 비밀을 밝혀낸 것도 그런 변태의 업적 중 하나다,
세상 얼마나 할 짓이 없었으면 골렘의 잔해를 이렇게 모아 골렘의 핵과 결합시킬 생각을 했을까.
'그런 녀석들 덕분에 내가 지금 꿀을 빠는 것도 사실이지만.'
어쨌든 이게 바로 미스릴 골렘과 특이 골렘들을 불러내는 일종의 의식이다.
이전에 뇌전 코볼트를 불러냈던 원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백 마리 골렘의 잔해를 모아 골렘의 핵과 반응시키는 것.
그렇게 되면 골렘의 사원을 지키는 특이 골렘이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이 비밀이 밝혀지고 나서 미스릴의 가격은 폭락했지.'
그럴 수밖에 없다.
현재는 수요에 비해 공급이 너무도 적지만.
이 방법이 밝혀진 뒤로 공급이 수요를 초과하는 현상이 발생하게 된 거다.
그러니까 당연히 나는 이 비밀을 밝힐 생각이 없다.
'앞으로 돈 필요할 때 골렘 사원 몇 바퀴 돌아 주기만 해도 돈 걱정은 없을 테니까.'
황금알 낳는 거위의 배를 직접 가를 이유는 없는 셈이다.
어쨌든 미스릴 골렘을 불러낼 준비는 끝이 났고.
백 마리 골렘의 잔해와 골렘의 핵이 모여 있었다.
'그럼 여기에.'
검을 들어 골럼의 잔해를 향해 찍어 내렸고.
콰직!
골렘의 핵이 박살 나며 골렘의 마력이 뿜어져 나오는 그 순간.
[미스릴 골렘이 나타났습니다.]
하늘 위에 이런 알림이 떠올랐다.
'됐다.'
나는 메시지를 보며 미소 지었다.
그와 동시에 거대한 골렘 사원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구구구구!
골렘의 잔해와 깨어진 핵 속에서 이전보다 훨씬 더 강렬한 마력이 뿜어져 나왔다.
카드득! 콰드득!
골렘의 잔해들이 엉겨 붙었다.
그 위로 마력이 감쌌고.
돌덩이들이 어느샌가 찬란한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돌덩이가 미스릴로 변하는 장면이라니.'
두 눈으로 보지 않고서는 믿기 힘든 일이다.
모든 자연 법칙을 무시하는 장면.
과학자.
혹은 중세 시대의 연금술사들이 봤다면 까무러칠 만한 그런 장면.
하지만 이것은 명백한 현실이다.
잠시 후.
기기기긱!
미스릴 골렘이 푸른 안광을 내뿜으며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일반 골렘보다 두 배는 큰 덩치.
거기에 온몸이 미스릴로 이루어져 있으니 어지간한 공격으로는 흠집도 나지 않을 것이다.
거기에 더 무서운 건, 놈의 움직임이지.'
돌이 아닌 미스릴.
미스릴의 무게는 깃털처럼 가볍기로 유명하다.
그러니 당연하게도 미스릴 골렘은 빠르다.
그것도 엄청나게.
그때 놈이 나를 발견했다.
놈의 푸른 안광이 순식간에 빨갛게 돌변했고.
부우우웅!
거대한 주먹을 내질렀다.
엄청나게 빠른 속도.
하지만.
"몰른!"
나는 몰른을 향해 외쳤고.
몰른은 노래를 시작했다.
[버프 '승리의 찬가'의 영향을 받기 시작합니다.]
[모든 스킬의 지속 시간이 1.5배만큼 증가합니다.]
됐다.
동시에 오러 블레이드와 뇌전검, 그리고 충격파를 사용했다.
콰아아앙!
미스릴 골렘의 주먹이 바닥을 내리쳤다.
섬찟한 일격이다.
타다닷!
나는 재빠르게 발을 굴리며 미스릴 골렘을 향해 다가갔다.
하지만 미스릴 골렘 역시 멍청이가 아니었고.
콰앙!
이번에는 발을 내질렀다.
역시나 번개처럼 빠른 속도.
하지만 빠른 건 내가 한 수 위다.
타앙!
내 몸이 총알처럼 놈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그 순간 오우거의 신체를 사용했고.
순간적으로 증가한 스탯과 함께 내 속도는 한층 더 탄력을 받았다.
패애애앵!
시야가 순식간에 미스릴 골렘과 가까워졌다.
찰나의 순간, 나는 한 점을 향해 검을 찔러 들어갔다.
놈의 무릎 부분.
미스릴 덩어리가 접합되어 있는 부분.
저 곳에 가속되어 위력이 증가된 일격만 제대로 찔러 넣는다면, 놈의 움직임을 완전히 봉쇄할 수 있다.
'지금!'
휘이이이익!
꽈드드득!
검이 놈의 무릎 부분을 파고들었고.
구구구구궁!
충격파의 파동이 놈의 빈틈을 사정없이 뒤흔들고 있었다.
***
"저거 뭐야?"
"미친."
"X벌…."
그 곳에는 어느새 플레이어들이 모여들었다.
미스릴 골렘이 등장했다는 메시지를 보고 한달음에 달려 온 플레이어들.
모두다 중소 길드의 플레이어들이었고.
미스릴 골렘을 사냥하고 일확천금을 노리는 이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이미 도착했을 때는 늦었다.
강민이 한창 미스릴 골렘과 싸우고 있는 중이었으니까.
'저게…. 검술 명가의 플레이어….'
당연히 그중에는 철왕 길드의 플레이어들도 모여 있었다.
다른 이들과는 달리 이미 철왕 길드의 길드원들은 강민이 검술 명가의 플레이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맙소사. 격이 달라.'
격이 다르다.
그 말이 너무도 적절하다.
길드원 한 명 늘리기 위해서.
돈 몇 푼 벌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자신들과는 격이 다른 존재다.
'넘을 수 없는 벽인가.'
절망감이 느껴질 정도였다.
어느새 길드 규모가 조금은 커졌고.
탑을 꾸준히 오르며 성장하고 있다고 생각했건만.
'…이건 좀 심하잖아.'
혼자서 미스릴 골렘을 때려 부수고 있다.
그냥 골렘도 아닌 미스릴 골렘.
미스릴 골렘이 얼마나 강한지는 본인도 잘 알고 있다.
그동안 많이 지켜봐 왔다.
길드원 스물이 모여야 겨우 한 마리를 잡을 수 있는 그런 괴물이건만.
강민의 검이 움직일 때마다 미스릴 골렘의 몸체가 떨어져 나간다.
사실 싸움은 시작부터 이미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첫 일격으로 한쪽 다리를 파괴했잖아.'
이런 일을 현실로 만들 수 있는 이들도 분명 존재한다.
50층 위에 있는 랭커들.
그런 괴물이라면 충분히 가능할 테니까.
하지만 눈으로 직접 본 장면은 그를 충격의 도가니에 빠트리기에 충분했다.
'저게 재능이라는 건가.'
그 어떤 노력으로도.
그 얼마나 많은 돈을 쏟아붓는다고 하더라도.
과연 저 남자의 발끝이라도 쫓을 수 있을는지.
고개를 내저었다.
불가능하다.
혼자만의 생각은 아니었다.
어느새 플레이어들의 입에서 쏟아져 나오는 탄식이 그 사실을 증명했다.
"…랭컨가."
"명가 쪽일 수도 있고."
"대체 왜 여기에 내려와서…."
"될놈될이라는 건가."
"제기랄. 인생은 운빨똥망겜이라더니…."
모두가 강민의 무력 앞에 그저 압도되어 한탄만을 쏟아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결코 생각도 못 할 거다.
과거의 강민 역시 그들과 같은 입장이었다는 사실을.
철저한 열등감에 휩싸였던 강민이다.
압도적인 무력감과 나락에 빠져 뒹구는 것 같은 기분을 매일같이 느끼며 악착같이 탑을 오르고 올랐던 강민.
하지만 강민은 포기하지 않았다.
오르고 또 올랐다.
버티고 아득바득 이를 갈며 살아남았다.
지금 그들에게 절망감을 선사하는 이 압도적인 무위는 바로 그 결과물일 뿐이었다.
그 순간.
쿠르르르릉!
미스릴 골렘의 거대한 몸뚱이가 무너져 내렸다.
미스릴 골렘의 잔해 속에서 미스릴 골렘의 핵이 찬란한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저걸 부수겠지, 이제?'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강민은.
미스릴 골렘의 핵을 부수지 않았다.
대신 땅을 팠다.
그리고 핵을 땅속에 묻기 시작했다.
'뭐야. 저게 뭐 하는 짓이야?'
알 턱이 없다.
미스릴을 보다 완전하게, 상품 가치가 높게 보존하는 방법이 지금 이 시대에는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몰른! 이리 와 봐!"
그때 강민이 몰른을 불렀고.
연주를 멈춘 몰른은 강민이 있는 곳으로 쫄래쫄래 달려가고 있었다.
미스릴 골렘을 혼자 쓰러트린 사람치고는 너무도 태연한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