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화
드디어 손에 들어왔다.
히든피스의 보상으로 얻어낸 아티팩트.
내 전생에서 세상을 들썩이게 했던 사기적인 아티팩트다.
나는 아티팩트를 바라봤다.
그 순간 아티팩트의 정보가 떠오른다.
[아티팩트 – 스탯 분배]
>등급 : S
>육체 스탯을 정신 스탯으로, 정신 스탯을 육체 스탯으로 교환할 수 있다.
'말도 안 되는 능력을 가진 아티팩트지. 그러니까 얻는 과정이 극악의 난이도를 자랑하기도 했고.'
마침내 이것을 손에 넣은 순간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마력의 재능을 타고나지 않은 플레이어가 마력을 증가시킬 수 있는 방법은 극히 제한적이다.
마력의 재능을 타고났거나, 특수한 호흡법을 사용하는 것.
사실 이 방법들은 평범한 플레이어가 어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렇지 않으면 고작해야 아이템을 사용하는 것이 최선.
심지어 마력 옵션이 달린 아이템의 가격은 상상을 초월한다.
'하지만 이것만 있으면.'
마력을 필요한 만큼 증가시킬 수 있다.
전생에서 이 아티팩트는 마법 명가의 손에 넘어갔었다.
육체 스탯보다는 마력 스탯이 중요한 녀석들은 이 아티팩트를 적극 활용하며 힘을 급속도로 키우기 시작했었고.
그때는 몰랐지만, 흑암파를 육성하는 곳에도 이 아티팩트를 적절하게 활용했으리라.
'하지만 이제는 내 손에 있다.'
이로써 마법 명가 녀석들의 미래는 다시 한번 바뀌었다.
아티팩트가 없으니 그들의 성장은 한층 느려질 수밖에 없다.
흑암파의 육성 역시도 느려질 것이고.
'이 아티팩트는 나를 위한 아티팩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나에게는 포식이라는 사기적인 능력이 있지 않던가.
이 아티팩트와의 궁합은 말 그대로 환상적이다.
다른 플레이어들의 스탯은 제한적이다.
수련, 혹은 아이템, 레벨업.
이런 방법들로 증가시킬 수 있는 스탯의 총합과 포식으로 얻어낼 수 있는 포식의 총합을 비교해 본다면.
'파이 자체가 달라.'
내가 이 아티팩트를 이용하여 마력을 증가시킨다면 육체 스탯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하지만 줄어든 육체 스탯은 언제라도 다시 증가시킬 수 있지 않은가.
나에게 있어서 육체 스탯은 무한히 샘솟는 자원이다.
'무한 동력이나 다름없지.'
무한 동력.
그 허무맹랑한 단어는 지금 현실이 되어 내 앞으로 다가왔다.
'마력만 높이면 앞으로 뇌전검과 오러 블레이드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된다.'
두 능력 모두 마력 수치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그럼 우선….'
상태창을 펼쳤다.
[상태창]
>이름: 한강민
>레벨 : 39
>스탯
-육체
힘 : 192.07
민첩성 : 188.81
체력 : 191.85
-정신
마력 : 30.45
>능력
1. 포식자 (S)
2. 뇌전검 (S)
3. 충격파 (AA)
4. 오우거의 신체 (AAA)
5. 오러 블레이드 (S)
포식 포인트 – 40210p
레벨은 어느덧 39에 이르렀다.
몬스터를 거의 사냥하지 않고, 오직 네임드들과 싸우면서 쌓아 올린 레벨이다.
게다가 레벨로 따지자면 190레벨에 이르는 압도적인 능력치.
그동안 꾸준히 몬스터를 사냥하고, 네임드를 처치하며 쌓아 올린 스탯이다.
'우선은 마력을 50까지 만들어야지.'
오러 블레이드를 2단계로 상승시키기 위한 필요조건이다.
다시 한번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스탯을 변환하시겠습니까?]
[마력 1을 증가시키기 위해서는 2의 육체 스탯이 필요합니다.]
교환 비는 1:2.
현재 마력은 30.
마력 50까지는 20의 마력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총 40개의 육체 스탯을 사용해야 한다는 뜻.
아깝지 않다.
지금 당장 한 번에 20개의 마력을 증가시킬 수 있는 방법은 전무하니까.
'돈으로 따져도 터무니없는 가격이지.'
나는 곧바로 힘과 민첩성, 체력을 골고루 나눠 마력에 분배했다.
[상태창의 스탯이 조정됩니다.]
[힘 : 192.07 -> 182.07]
[민첩성 : 188.81 -> 173.81]
[체력 : 191.85 -> 176.85]
[마력 : 30.45 -> 50.45]
힘에서 10, 민첩성과 체력에서 각각 15를 취해 마력으로 변환했다.
아무래도 힘 스탯은 오러 블레이드와 충격파의 위력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스탯이니까.
'골렘의 사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당연히 파괴력이야.'
그 순간.
[오러 블레이드의 성능이 강화됩니다.]
[오러 블레이드 – S]
>2단계 (3단계 해금 조건 : 마력 100)
>육체 / 정신 복합계 스킬
-힘과 마력 수치의 영향을 받는다.
>추가 공격력 : 27.31
>지속시간 : 151.35초
>재사용 대기 시간 : 25초
2단계가 됐다.
결과는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공격력이 10이나 증가됐다.
지속시간은 기존보다 5배나 늘었다.
재사용 대기 시간은 조금이지만 줄어들었고.
'오러 블레이드의 지속 시간은 대략 2분 30초. 이 정도면 결정적인 승부를 만들기에는 충분하지.'
마법 명가와 정면 승부를 벌이기까지는 아직 많은 시간이 남아 있다.
그때쯤이면 정말 소드 마스터들이 오러를 흩날리는 것처럼 사용하게 될 수 있으리라.
'그러면 이제.'
나는 눈앞에 있는 관문을 바라봤다.
21층으로 향하는 관문이다.
21층으로 올라서면 이제 나는 새로운 차원에 진입하게 된다.
'이쪽 세상과는 작별이라는 뜻이지.'
"주, 주인님…."
어느새 호칭은 완전히 주인님으로 바뀌어 버렸다.
몰른 역시 마지막이 왔다는 것을 느끼고 있는 모양이다.
"고생 많았다, 몰른."
"저, 저…."
몰른의 눈가가 촉촉해지려고 한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나와 몰른은 사는 세계가 다르니까.
그동안 나도 천진난만한 몰른에게 정든 것도 사실이지만.
사소한 정으로 이곳에 머무를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나는 그에게 골드 몇 푼을 챙겨 줬다.
그동안 내 명령, 아니 부탁을 잘 들어 준 대가다.
"받아라."
"시, 싫어요오…! 가지 마세요오오!"
몰른이 소리쳤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가야 한다.
해야 할 일이 많다.
'다시 볼 일은 없겠지만.'
"볼 수 있으면 다시 만나자."
몰른을 뒤로한 채, 나는 21층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
[21층 골렘의 사원에 진입했습니다.]
눈앞에 다시 낯선 풍경이 펼쳐졌다.
괜히 마음 한구석이 찝찝했다.
탑을 오르며 내가 신조로 삼았던 것 중 하나가 누군가에게 정을 주지 않는 것이었다.
여기에서는 어떻게 되었든 헤어질 수밖에 없으니까.
물론 그런 건 지구도 마찬가지지만, 탑에서의 이별은 훨씬 더 갑작스럽고 폭력적이다.
'어쩔 수 없어. 골렘의 사원. 이곳에서도 해야 할 것들이 많으니까.'
말 그대로다.
21층부터 이어질 골렘의 사원에 대한 아직은 밝혀지지 않은 비밀들.
나는 그것을 알고 있고, 당연히 적극적으로 활용할 생각이다.
그 순간.
"오호호.. 오호호! 이, 이게 어딥니까요오오!"
뒤에서 익숙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이게 무슨.
나는 다급히 고개를 돌렸고.
거기에는 몰른이 서 있었다.
"너, 너…. 뭐야, 어떻게…?"
"저, 저도 몰라요오!"
이게 가능한 일인가?
금시초문….
아니, 아니다.
플레이어가 아니지만 플레이어와 함께 층을 오갈 수 있는 존재들.
'하지만 몰른은 사람인데…?'
나는 다시 상태창을 펼쳤다.
다급히 상태창 한 구석을 살폈고.
거기엔.
[펫 – 몰른]
>등급 : AAA
>1단계
>특성 : 버프
>승리의 노래 : '몰른'이 노래를 부르는 동안 모든 스킬의 지속 시간이 1.5배 상승한다.
'하….'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
펫이라니.
아니, 무슨 이런.
21층으로 넘어오며 시스템이 몰른은 펫으로 인식한 모양이다.
게다가 없던 능력마저 부여했으니.
이제 몰른은 명실상부한 '펫'이 된 셈이다.
잠시 머리가 지끈거렸다.
잘된 일이기는 하다.
무려 AAA등급의 펫.
사실상 최고 등급의 펫이기도 했다.
게다가 버프형 펫.
언젠가 펫을 구할 기회가 생기면, 전투형보다는 버프형을 구하리라 생각하기는 했으니까.
'몰른을 펫이라고 부르는 게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
"그, 그래도…. 저는 기쁩니다요오오!"
몰른이 소리쳤다.
"하하…."
그래 뭐.
잘됐다고 생각하자.
펫이 됐다면, 끌고 다니면 될 일이다.
다행이라면, 탑에서의 펫은 죽지 않는다.
체력이 무한이니까.
물론 상처를 입고, 배는 고프겠지만.
죽지는 않는다는 뜻.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나는 다시 몰른을 바라봤다.
그리고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다시 만나게 됐군."
나는 다시 몸을 돌려 앞으로 걸었다.
뒤에서는 몰른이 나를 따르고 있었다.
***
"이거 너무 한 거 아니냐고!"
"미친. 진짜 개미친. 그냥 저쪽에 눌러살걸!"
"내가 뭐랬냐. 개고생할 거라고 했지?"
"하, 나…. 내가 뭐 하자고 그 안락한 생활을 내던지고 탑을 올라서…."
한 무리의 플레이어들이 앉아서 하염없이 푸념을 늘어놨다.
그들은 지금 막 21층에 올라선 이들이다.
20층을 뚫고 21층에 올랐다는 건, 이미 11층에서 20층 사이의 세계에서 어느 정도 기반을 닦아냈다는 뜻.
돈과 명예, 권력.
20층을 돌파할 정도의 명성치라면 그런 보상들은 자연스레 따라오게 되니까.
'개 같은 탑. 망할 놈의 탑. 찢어 죽일 탑!'
지금 이 순간 탑이 미치도록 미웠다.
오랜 시간이었다.
11층에서 20층까지.
각자 다르지만 수 년, 혹은 십 년 이상.
그 오랜 시간동안 충분히 정도 들었고 만족스럽기도 했지만.
탑을 오르겠다는 일념으로 그 모든 것을 내던진 결과는 처참했다.
급격한 난이도의 상승.
그동안 엄청난 성장을 이뤄냈다고 자부하고 있었는데.
21층에서 마주한 탑의 현실은 너무도 냉혹했으니!
"며칠째지. 지금?"
"몰라. 그런 거."
"다른 플레이어들은 왜 꽁무니도 안 보이는 건데! 파티 인원이라도 좀 늘리면 어떻게 될 것 같은데…."
현재 모여 있는 플레이어의 수는 여섯.
그것마저도 힘겹게 모인 숫자다.
골렘의 사원.
그 넓은 대지 위에서 플레이어를 만나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없는 게 당연하지. 소환 위치도, 소환 타이밍도 다 제각각이니까. 우리 여섯이 모인 것만 해도 천운이라고 생각하고 이겨 봅시다!"
"으으으…."
그래도 나름 자부심은 있다.
11층에서 20층의 지난 세월이 헛되지는 않았다.
"아마 이곳 어딘가에 플레이어들이 또 있을 거예요. 그들과 만나서 힘을 합치면 반드시 뚫어낼 수 있을 겁니다."
그렇게나마 서로를 의지하고 의기를 투합하고 있던 중.
쿵! 쿵!
땅이 울리기 시작했다.
"골렘이다!"
저 먼 곳에서 그들을 향해 골렘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거대한 몸집.
온 몸을 감싸고 있는 암석.
쿵! 쿵!
골렘 한 마리가 땅을 울리며 다가오고 있었다.
"젠장…. 쉴 틈을 안 주는구만."
"할 수 있다, 할 수 있어!"
그들은 노련하게 자세를 취하고, 자신의 위치를 사수했다.
이전의 대륙에서 각자 다양한 역할을 수행했던 이들이다.
더 이상 1~10층의 어리숙했던 모습은 사라졌다.
기사, 용병, 상단 호위 등.
각종 역할을 오래도록 수행하며 철저히 몸에 익힌 실전 감각과 팀플레이.
"갑시다!"
플레이어들이 일사불란하게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때.
콰콰콰콰쾅!
한순간에 골렘의 거대한 몸체가 무너져 내렸다.
굉음과 함께 먼지가 섞인 연기가 피어올랐다.
"어…?"
"이게 뭐…."
그들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전방을 바라봤다.
잠시 후 연기가 걷히고, 한 남자.
아니, 두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오호호! 역시 주인님은 멋지십니다요오오!"
괴상한 웃음소리가 그들의 귀를 두드렸다.
"뭐지…. 보스 몬스터인가?"
그럴 리는 없지만, 지금 이 상황이 납득이 가질 않으니 아무도 아니라고 부정할 수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