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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상태창이 달라졌다-39화 (39/277)

39화

놈의 동공이 흔들렸다.

연속해서 사정없이 방패를 두드렸다.

방패의 균열이 더욱더 커졌다.

그 순간, 놈의 상체가 미세하게.

아주 미세하게 벌어졌다.

'지금.'

나는 최대한 자세를 낮춘 채 속도를 높였고.

검이 놈의 도끼검과 방패 사이에 벌어진 미세한 틈을 향해 찔러 들어갔다.

그 순간.

푸훅!

'닿았다.'

검이 놈의 가슴팍에 닿는 감촉이 분명하게 내 손끝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끝은 아니다.

검이 박혀 들어가기 전, 무언가 내 검을 튕겨냈다.

***

"...!"

"이게 뭐야!"

"어떻게 이런..."

주변에서 두 사람의 싸움을 구경하던 이들의 입에서 탄성이 쏟아져 나왔다.

물론 순간의 감탄일 뿐이다.

강민을 제외한 이곳의 모두는 킬리만제르의 승리를 의심치 않았다.

'이제 시작이다.'

'대단하긴 했지만, 이제부터 킬리만제르 님의 진짜 힘이 시작되는 거야.'

그들은 모두 알고 있다.

킬리만제르의 몸에는 야만족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것을.

한때 북부의 왕국들을 위협했던 야만족들.

그리고 북부의 대초원을 호령했던 그 야만족들.

야만족이라고 불리지만, 그들의 맹위를 눈앞에서 본다면 그 누구도 오금이 저리게 된다.

"크으으으..!"

킬리만제르의 눈이 붉게 충혈되기 시작했다.

야만족들 중에서도 소수에게만 전해진다는 광기가 발현된 순간이다.

그것이 바로 강민이 킬리만제르의 능력 중에서 봤던 그것이다.

킬리만제르의 전신이 불그스름하게 달아오르기 시작했고.

그 모습을 보며 강민은 조금은 긴장한 모습으로 방어 태세를 취했다.

이 싸움이 시작되기 전, 난 놈의 능력 중 하나를 봤다.

'훌륭한 능력이다.'

만약 강민은 오우거의 신체를 손에 넣지 못했다면, 오우거의 신체 대신 킬리만제르의 광기를 빼앗았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한 수 위다.'

광기.

분명 무서운 능력인 것은 맞지만, 장점이 있다면 단점도 존재한다.

킬리만제르와 검을 맞댔던 플레이어는 놈의 광기에 대해 크게 과장했다.

하지만 그 핵심만은 온전히 남아 있었다.

광기의 단점은 이성을 통제하지 못한다는 것.

오우거의 신체가 신체 능력을 폭발적으로 증가시키지만 제한 시간이 있는 것처럼.

광기의 제한시간은 숨이 다할 때 까지다.

'나나 저 녀석 중 하나가 죽기 전까지이 싸움이 지속된다는 말이지.'

콰아아앙!

킬리만제르의 도끼검이 바닥을 강하게 내리쳤다.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땅이 진동했다.

주변에서 기함이 터져 나왔지만, 강민은 오히려 침착했다.

몸을 살짝 띄운 채로 진동을 피했다.

파각!

허공에서 몸을 비틀며 놈의 가슴을 걷어찼다.

체급 자체는 내가 한참이나 밀리지만, 플레이어에게 중요한 건 체급 따위가 아닌, 능력치가 보여주는 수치다.

오우거의 신체까지 더해진 내 힘 스탯은 200을 훌쩍 넘는다.

그러니까.

"커윽!"

놈의 입에서 기함이 터져 나옴과 동시에 몸이 살짝 기울어졌다.

파앗!

다시 땅을 디뎠다.

검을 내질렀다.

카득! 콰아앙!

하지만 몸이 기울어지는 와중에도 내 공격을 완벽히 방어해냈고.

오히려 나를 밀쳐냈다.

말도 안 되는 괴력이다.

놈의 눈동자는 한참 전에 초점을 잃었다.

오로지 본능으로만 나와 대적하고 있다는 뜻.

'이제 대략 3분.'

오우거 신체의 남은 지속 시간이다.

내게도 남은 시간은 얼마 없다.

놈은 나를 진심으로 죽일 기세로 몰아치고 있었고.

내 몸에 누적되는 피로감도 점점 진해진다.

'한 번에 끝내야 한다.'

내가 가진 모든 힘을 총동원해서 박살 내버릴 생각이다.

콰아아앙! 쾅! 콰콰쾅! 쾅!

킬리만제르의 도끼검이 쉴 새 없이 날아들었다.

나는 온 힘을 다해 막고, 피했다.

아직은 기다려야 했으니까.

내가 기다리는 건 모든 스킬의 쿨타임이 돌아올 그 순간이다.

그렇게 마침 모든 스킬의 쿨타임이 돌아왔다.

충격파와 뇌전검, 그리고 오우거의 신체.

이제 오우거의 신체의 남은 지속 시간은 고작 1분여 남짓.

검 위로 스파크와 거센 파동이 느껴졌다.

놈의 도끼검은 마지막 일격을 준비한다는 듯이 나를 향해 쏘아져 들어왔고.

나는 놈의 도끼검을 바라보며 눈을 부릅떴다.

부우우웅!

거대한 파공성이 울려 퍼졌다.

섣불리 움직이지 않는다.

정확한 타이밍을 노려야 한다.

두 번의 기회는 없다.

놈의 동작이 커졌을 때.

반드시 놈은 허점을 드러내기 마련이니까.

"끝이다!"

"죽어 버려!"

"건방진 자식!"

주변에서 이런 소리들이 들려왔다.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것만 같았다.

"주인.. 아니 모험가니이이임!"

몰른의 외침도 들려온다.

어마어마한 속도일 것이 분명한데도, 킬리만제르의 도끼검은 정지한 것처럼 느리게 움직이고 있었고.

그 순간.

'됐다.'

킬리만제르의 몸과 검 사이.

작은 틈에서 빛무리가 뿜어져 나오는 것만 같았다.

나는 그걸 본 순간 망설이지 않고 몸을 움직였다.

홀린 듯 검이 놈의 빈틈을 향해 찔러 들어갔고.

나는 아주 미세하게 몸을 뒤틀었다.

푸훅!

걸죽한 피가 허공에 뿌려졌다.

콰아아아아앙!

놈의 도끼검은 간발의 차이로 내 옆을 스쳐 지나갔고.

바닥 깊숙이 박혀 버렸다.

"꺼으...으윽..."

지금 내 검이 박혀 있는 곳은 놈의 목.

킬리만제르의 몸이 가늘게 경련했다.

부르르 떨려오는 놈의 몸을 따라 내 검 역시 미세하게 흔들렸고.

놈의 떨림이 내 심장까지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

홱!

나는 검을 뽑아 들었다.

다시 한번 피가 분수처럼 허공을 수놓았다.

쿠우웅!

놈의 거구가 그대로 고꾸라졌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무려 세 개나 올랐다.

나는 다급하게 모든 스킬을 해제했다.

전신의 관절이 지끈거렸다.

근육은 비명을 내지르고 있었고.

급격하게 현기증이 몰려왔다.

"아......"

"이게...어찌...."

"마.. 말도.. 안...."

[대륙의 네임드와의 싸움에서 승리했습니다.]

[민첩성 10을 포식했습니다.]

[히든피스를 개방합니다.]

[히든피스 – 수많은 강자들 1/5]

됐다.

첫 번째 히든피스를 달성했다.

"더럽게 힘들군."

푹!

나는 검을 박아 넣고 몸을 지탱했다.

아공간에서 다급하게 급속 회복 물약을 꺼내 삼켰고.

남은 이클립스를 한입에 욱여넣었다.

"후우."

그제야 몸 상태가 회복되기 시작했고.

"뭐 해."

멀뚱하니 내 모습을 구경하는 이들을 향해 말했다.

"…?"

"내 이름. 적어 넣어야 할 거 아니야."

"이런 미친…."

"왜. 어쩌려고? 다시 싸울 건가?"

"…."

내 말에 놈은 푹, 하고 고개를 숙였다.

***

"대단, 대단합니다요오…."

몰른이 눈물을 글썽거리고 있었다.

내가 진짜 죽는 줄 알았다고 옆에서 벌써 몇십 분째 떠들어 대고 있었다.

"이제 시작이다. 벌써 놀라서 가사를 어떻게 쓰려고?"

"그건 걱정 마십시요오. 벌써 제 머릿속에서 악상이 마구마구 떠오르고 있으니까요오!"

몰른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귀여운 놈.

어쨌거나 지금 상황은 정리가 됐다.

여기에 남아 있던 킬리만제르의 추종자들 대부분은 산 아래로 꽁무니 빠져라 도망쳤고.

남아 있는 몇몇은 킬리만제르에 대한 충성심이 꽤나 투철한 녀석들인 모양이다.

'지금의 싸움으로 내 전생과의 판도는 크게 달라질 거다.'

내가 예측하지 못하는 새로운 변수들이 튀어나오게 될 거다.

하지만 후회는 없다.

해야 할 일이었고, 언제까지 내가 아는 정보만 가지고 굴려 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혹시 미래가 바뀐다고 해도 내 계획에 차질은 없다.'

어차피 내가 노리는 히든피스는 탑이 생성된 순간부터 존재하는 것들.

역사의 흐름이 바뀐다고 해서 사라질 이유는 없다.

"이제 어쩔 테지?"

내가 남아 있는 녀석들을 바라보며 물었다.

"어떻게든 살아가겠지…."

"그래. 걱정돼서 물어본 건 아니다."

"강하더군."

"그러니까 킬리만제르에게 도전한 거지. 나는 그리 무모한 사람이 아니야. 승산이 없으면 시도하지 않아."

"자신감인가?"

"아니. 나를 잘 아는 거지."

"…."

킬리만제르의 오른팔이었던 녀석이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하나만 묻지."

내가 말했다.

"...염치가 없는 것 아닌가?"

"염치 같은 거 챙길 시간 없거든."

"어처구니가 없군."

"대답해 주기 싫으면 안 해도 된다."

내가 막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할 때.

"물어라. 대답해 주겠다. 이런 말을 하기는 그렇지만... 너의 실력에 큰 감명을 받은 것도 사실이다. 킬리만제르 님께서 죽은 것은 안타깝지만 약하면 죽는 것이 당연한 말이지."

깔끔하다.

아마 저 녀석도 야만족의 후예일 것이다.

생김새나 사고방식이 꼭 야만족의 그것을 빼다 박았다.

"검성 나폴리가 어디 있는지 알고 있나?"

"...미친 게로군."

내 말에 놈이 눈을 부릅떴다.

검성 나폴리.

그 녀석이 바로 내가 다음 처치할 녀석이다.

놈은 거처가 없다.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는 방랑자다.

그럼에도 검성이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는 건, 분명 훌륭한 실력자라는 뜻.

'킬리만제르와 나폴리. 두 사람을 처치한다면 이제 남은 세 명은 내가 마음대로 골라서 싸울 수 있을 거다.'

야만왕과 검성.

이 두 사람에 대한 명성은 대륙에 넓게 퍼져있고.

내가 두 사람만 처치한다면, 아마 대륙의 강자들은 나와 싸워보고 싶어 몸이 달아오를 게 분명하다.

그 이후로는 뷔페처럼 내가 원하는 녀석들과 골라 싸울 수 있을 것이다.

"설마 그자와도 겨루려는 것인가?"

놈이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참. 뭐라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군."

"네가 할 말은 하나다. 나폴리의 행적에 대해서 말하면 끝이야."

그러면서 자신의 동료들과 시선을 교환했다.

"내가 안다. 얼마 전 산을 내려갔을 때 들었거든."

"잘됐군."

"산을 내려가서 북쪽으로 쭉 가면 대도시인 킬튼이 나타날 것이다."

킬튼.

잘 됐다.

그 도시는 마침 17층에 존재하는 도시다.

"떠났을 가능성도 있지 않나?"

"그거야 모르지. 내가 그런 것까지 알려 줘야 할 의무는 없을 텐데."

"그건 그래."

나는 자리에서 몸을 털고 일어났다.

'도시에 있으면 좋겠는데. 그편이 나한테는 훨씬 더 유리할 테니까.'

아무도 없는 곳에서 싸우는 것보다는, 구경꾼이 많은 곳에서 싸우는 게 입소문을 타기에 좋은 건 당연하다.

거기에 더해서 킬리만제르를 이겼다는 소식까지 더해진다면.

'금상첨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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