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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상태창이 달라졌다-38화 (38/277)

38화

"도전자?"

문 앞을 지키던 남자가 물었다.

그러더니 내 몸을 한 번 훑는다.

"건방지군. 여기까지 왔을 정도면 절차 정도는 알고 있을 텐데?"

절차.

알다마다.

당연히 킬리만제르의 자격시험은 고작 설표 따위가 아니었으니까.

"누군데, 그래서. 넌가?"

마지막 남은 절차는 바로 이거다.

킬리만제르의 친위대 한 명과 싸워 이기는 것.

카앙!

놈은 다짜고짜 검을 뽑아 들었다.

그걸로 대답은 됐다.

내가 마지막 시험을 치르기 위해 맞서야 할 대상이 바로 자기라는 것이고.

"으아아아!"

놈이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 순간.

카앙!

"..?!"

파득!

놈의 검이 동강난 채 바닥에 떨어져 내렸다.

"더 할까?"

"..."

말이 없다.

이건 놈조차도 예상치 못한 전개였을 테니까.

놈은 허망한 눈으로 자신의 검을 바라봤다.

잘렸다기보다는 박살이 났다는 게 적절한 표현이리라.

충격파의 효과 때문이었다.

잘려나간 부분으로부터 검의 전체에 균열이 일어난 채 산산조각이 나 있었다.

그것뿐 아니라 놈은 검을 들고 있던 손아귀가 지끈거리는지 반대쪽 손으로 어루만지고 있었다.

"...따라 와라."

"그래. 빨리 빨리 하자고. 여기에서 오래 노닥거릴 생각은 없으니까."

내 말에 놈이 나를 노려봤지만 의미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는지 다시 시선을 돌렸다.

"건방 떨지 않는 게 좋을 거야."

"그러거나 말거나."

이런 곳에서 시간 낭비할 시간이 어디 있겠나.

내가 위드 길드에게 말했던 한 달.

결코 허세가 아니었고, 그 한 달을 지키기 위해서는 최대한 빠르게 목표를 향해 달려 나가야 했으니까.

'킬리만제르는 고작 첫 번째일 뿐이야. 아직도 네 명을 더 쓰러트려야 하는데.'

놈은 말없이 문을 열고 안으로 걸었다.

표정은 보이지 않지만 뒤통수로도 놈의 당혹감이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놈은 어디론가 걸어 들어갔다.

나는 서서 천천히 주변을 둘러봤다.

한쪽 구석에서는 킬리만제르의 제자로 보이는 녀석들이 열심히 수련을 하고 있었고.

넓은 공터 한가운데에는 커다란 팻말 하나가 걸려 있었다.

'이거다.'

그동안 킬리만제르에게 도전했던 이들의 이름이 적혀 있는 팻말.

이름 뒤에는 사망, 혹은 부상과 같은 단어들이 적혀 있었다.

승리한 자의 이름은 적혀 있지 않았다.

'아직까지도 놈을 이긴 녀석들은 없다는 거겠지.'

지금 이 시점이라면 당연히 플레이어들도 이 히든피스의 정체를 아는 이들도 거의 없을 것이고.

산 속 깊이 숨어 있는 킬리만제르와 싸우러 온 플레이어는 사실상 없다고 봐도 될 것이다.

'그래서 킬리만제르가 더 가치 있는 거고.'

내가 놈을 깨부쉈다는 사실이 알려진다면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내 이름은 더욱 빠르게 알려지게 될 거다.

'알리는 건 몰른이 할 테고.'

직접 경험해 보지 못했다면 이해하기 어려울 테지만, 이곳에서 음유시인들의 노래는 꽤 신뢰성이 높다.

그들은 직접 경험하지 않은 건 절대 자신의 노래로 만들지 않으니까.

그것은 음유시인들의 철칙과도 같은 일이었다.

인터넷과 같은 매체가 없는 이쪽의 시대 배경을 고려해 본다면.

음유시인들은 세상의 소식을 전해 들을 수 있는 훌륭한 정보통인 셈이다.

그렇게 주변을 둘러보고 있을 때였다.

"어느 놈이야!"

쿵!

저쪽에서 거구의 사나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나왔군.'

킬리만제르.

실제로 본 적은 없지만 역시나 실제로 본 킬리만제르는 벌써부터 나를 흥분시켰다.

"너로구나."

놈이 나를 보며 말했다.

쫙 벌어진 입은 정말이지 맹수 같았고.

불끈거리는 근육은 좀처럼 인간의 근육처럼 이라고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게다가 온 몸을 수놓은 갖은 상처들은, 그 앞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간담을 서늘케 할 정도.

쿵!

놈은 다른 부연 설명 따위는 없이 내게 날아들었다.

그의 무기는 커다란 도끼검이었다.

부우웅!

놈의 도끼검이 허공을 가로지르며 커다란 파공성을 일으켰다.

'맞으면 즉사다.'

그냥 죽는 것이 아니라, 온몸이 박살 나고 갈기갈기 찢겨진 채 고통에 몸부림치며 죽을 것이다.

그렇다는 건, 놈은 진정으로 나를 찢어 죽일 생각을 하고 있다는 뜻.

'나야 환영이지.'

놈이 그렇다면 나도 적당히 할 필요는 없다는 뜻일 테니까.

뒷날 따위는 우선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지금 내야 할 건, 킬리만제르를 완벽하게 박살 내고 내 이름을 떨치는 것.

"몰른, 집중 해!"

"으... 으어어억!"

내 외침에 몰른은 대답 대신 비명으로 돌려줬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제는 싸움에 집중해야 했다.

치지직!

검 위로 푸른 전류가 튀어 올랐다.

나는 놈의 공격 방향에서 살짝 빗겨난 쪽으로 발을 굴렀고.

콰아아앙!

거센 충격과 함께 땅이 흔들렸다.

괴물은 괴물이다.

하지만 명중시키지 못한다면 저런 괴력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나는 벌써 놈의 빈틈을 향해 검을 찔러 들어가고 있었고.

휘이익!

쿠아아아앙!

"?!"

빨랐다.

놈은 힘만 센 게 아니다.

저 거대한 도끼검을 너무도 가볍게 휘두르며 내 공격을 그 짧은 순간에 막아냈다.

치지직!

전류가 놈의 검을 타고 흘렀다.

분명 놈에게도 어느 정도 충격이 가해졌을 텐데, 놈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

"제법이야."

놈이 혀로 날름 입술을 핥았다.

콰아아앙!

다시 도끼검을 휘두르며 내 검을 쳐냈다.

내 놈이 작게 휘청였다.

다시 한번.

휘릭!

몸을 재빠르게 회전시키며 놈의 사각을 노렸다.

콰앙!

"헛."

나는 짧은 침음과 함께 뒤로 물러섰다.

사각이라고 생각했건만, 그건 내 착각이었다.

놈은 오른손으로 도끼검을 들고 어느 틈엔가 왼손에 원형의 방패를 꺼내들고 있었다.

'야만족들의 방패.'

역시 야만족의 피가 흐르는 만큼 그들의 전투 방식에 익숙한 모양.

"고작 그거냐."

쿠웅!

놈이 도끼검으로 바닥을 내리쳤다.

저딴 괴상망측한 무기를 한 손으로 휘두르다니.

대륙의 네임드들이 얼마나 강한 놈들인지 직접 체감하니 절로 혀가 내둘러질 지경이다.

타닷-

뇌전검의 사용 시간이 끝이 났다.

처음이다.

뇌전검의 지속 시간이 끝나기 전에 싸움을 마무리 짓지 못한 건 말이다.

그리고 예상했던 상황이기도 하다.

애초에 이런 괴물을 뇌전검 하나로 쓰러트릴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그런 생각을 하기는 조금 이르지 않을까."

이번에는 충격파를 사용했다.

검이 가늘게 공명했고.

놈의 입이 벌어지며 탄성을 터트렸다.

"잔재주가 꽤나 많군."

맞는 말이다.

하지만 완전히 맞는 말은 아니다.

내 잔재주는 아직 끝이 아니다.

단순히 능력만을 가지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알다시피 전생의 나는 살아남기 위한 모든 잡기들을 익혀야만 했다.

능력이 없었으니까.

아직 오우거의 신체는 사용도 안 했지만, 지금 당장 사용할 생각도 아니다.

'해볼 수 있는 모든 걸 한다.'

체력이 크게 늘어난 덕분에 충격파도 20분을 훌쩍 넘게 지속할 수 있다.

'간다.'

나는 속으로 그렇게 읊으며 몸을 움직였다.

놈의 거대한 도끼검과 방패.

빈틈은 없는 것 같다.

하지만 빈틈이 없을 수는 없다.

다만 보이지 않는 것뿐.

놈의 실력으로 빈틈을 가려놨을 뿐.

'없으면, 만든다.'

휘이이익!

콰아아앙!

"크읍!"

놈의 방패와 내 검이 충돌한 순간 놈은 인상을 찌푸렸다.

뇌전검의 전류는 어찌 참아냈을지 몰라도 충격파의 파동은 참아내기 힘을 거다.

골이 울릴 테니까.

그리고 다시!

콰아아앙!

"이놈!"

부웅!

놈의 기함과 함께 도끼검이 날아들었다.

팟!

재빠르게 피해냈다.

하지만 그 순간.

훅!

왼손에 든 방패가 나를 향해 엄습했다.

역시나 저 방패는 단순히 방어를 위한 장비는 아니다.

방패 날에 달린 가시만 봐도 알 수 있다.

저기에 걸리면 살점이 마구잡이로 뜯겨 나갈 게 분명하다.

콰아아앙!

나는 놈의 방패를 검으로 쳐냈다.

놈의 안색이 조금 어두워졌다.

하지만 그 뿐.

콰콰쾅! 쿠쿠쿵!

놈은 도끼검과 방패를 마치 자신의 수족처럼 다루며 전방에서 나를 위협했다.

슬슬 놈의 몸이 풀리고 몸이 달아올랐는지 기세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놈의 기세가 강해질수록 피하는 것도, 막아내는 것도 어려워졌다.

'이제 곧.'

뇌전검의 재사용 시간이 돌아온다.

마침내 뇌전검이 다시 활성화된 순간.

'빈틈을 만든다.'

내 몸이 움직였다.

놈의 검과 방패는 허공을 두드렸고.

나는 지금 놈의 측면에서 검을 찔러 들어가고 있었다.

까득!

"크으윽..!"

킬리만제르가 눈을 부릅떴다.

크게 놀란 모양이다.

하지만 놀란 건 나도 마찬가지다.

완벽했다고 생각했건만, 그 찰나의 순간 동물적인 감각으로 이 속도를 간파해 내다니.

'아직도 나는 부족하다.'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더욱더 흥분됐다.

아직도 더 올라갈 곳이 있고, 올라가야만 한다는 그 사실이.

단 한 시도 나를 가만히 있지 못하게 만들었다.

휘이익!

몸을 빠르게 회전시키며 자세를 낮췄고.

쾅!

놈의 하체를 공략했다.

놈의 도끼검이 검을 막아냈다.

하지만 괜찮다.

애초에 여기를 노린 게 아니니까.

다시.

콰앙!

이번엔 상체.

놈의 방패가 검을 가로 막았다.

부웅!

그 틈으로 놈의 도끼검이 날아들었고.

나는 몸을 비틀었다.

도끼검이 바닥을 내리쳤다.

큰 구멍이 파였다.

저 공격을 그대로 허용하게 될 걸 생각하니 간담이 서늘했다.

온 몸에 전율이 돋아났다.

한 번 틈을 내준다면, 그건 곧 죽음이다.

단 한 순간도 긴장을 놓쳐서는 안 되고 집중이 흐트러져서는 안 된다.

더욱더 집중하고 온 힘을 다해야 했다.

쾅! 쾅! 쾅! 콰쾅!

놈들 역시도 쉽사리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모르겠는지 바쁘게 침만 삼키고 있었다.

놈과 나의 검이 충돌할 때마다 몇몇은 몸을 움찔거리며 다리를 부르르 떨었다.

주변에는 벌써 킬리만제르의 수하들이 잔뜩이나 모여들었다.

"대단하군. 이런 고지대에서 그렇게 자유롭게 움직이다니."

킬리만제르가 말했다.

칭찬인지 비꼬는 건지 그런 걸 분간할 정신은 없다.

놈이 말하지 않아도 나는 지금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른 상황이니까.

"허억.. 허억.."

킬리만제르도 어깨를 들썩이고 있기는 했지만, 나 정도 만큼은 결코 아니다.

어쨌거나 여기는 놈의 홈그라운드.

나에게 불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만약 이 상태로 싸움이 10분 이상만 지속된다면, 나는 지쳐 떨어져 나가게 되리라.

충격파를 사용하고 있으니 그 시간은 더 짧아질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면 이제.'

마지막 무기를 꺼내 들 차례다.

오우거의 신체.

마지막 십 분.

그러니까 이제는 정말 이 싸움을 끝낼 시간이라는 뜻이다.

충격파와 함께 오우거의 신체를 사용했다.

피가 끓어오른다.

심장이 바쁘게 뛰며 맥박이 널뛰는 게 피부로 느껴졌다.

호흡이 조금 더 거칠어졌고, 근육이 꿈틀댄다.

킬리만제르도 심상치 않은 변화를 느낀 것인지 다급하게 나를 향한 공격을 쏟아붓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제는 어림없는 일이다.

콰아아앙!

"크흑!"

검과 검이 충돌한 순간 놈의 손이 가늘게 떨리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콰앙!

다시 한번 놈을 몰아쳤다.

놈이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그럼에도 놈은 완벽한 수비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쉽사리 틈을 내주지 않겠다는 집념이 느껴질 정도였다.

틈을 내주지 않는다면 만들어내면 그만.

치지직!

다시 한번 검 위로 흐르는 전류와, 충격파까지.

놈이 있는 방향으로 발을 굴렀다.

쿠웅!

내가 디뎠던 땅이 깊게 파였고.

쾅!

검이 놈의 방패를 두드린 순간.

쩌적!

방패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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