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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상태창이 달라졌다-36화 (36/277)

36화

"올라가십니까?"

박명철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저희도 준비를 좀 해야 할 것 같으니... 시간은 좀 걸릴 겁니다."

"예.."

전생에서도 박명철이 마법 명가와 싸우기 위해 가장 먼저 했던 일은 길드의 인원을 추려내는 것이었다.

자신이 믿을 만한 이들만 남기고, 각오가 된 이들만을 남기는 것.

몇 배의 사람이 있어도 확신할 수 없는 싸움을 그런 부족한 인력으로 해냈으니.

어쩌면 전생의 결과는 이미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내가 그 부족한 수를 채워 줄 생각이다.

수십 명, 수백 명 이상의 역할을 해낼 계획이다.

지금의 나는 그럴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고, 또 계획도 가지고 있다.

'충분히 할 수 있다.'

"그러면.."

박명철이 잠시 나를 바라봤다.

"어쨌든 20층 위로 올라가는 데 적어도 1년 정도는 걸릴 테죠?"

"엥? 1년? 아무리 강민 씨라고 해도 1년은 너무 빠르잖아."

"그건 그래도 내 눈이 맞았다면, 강민 씨는 충분히 1년 정도면 20층을 돌파 할 수 있을 거다."

김민희와 박명철이 투닥거렸다.

3년.

그것 역시도 굉장히 빠른 속도다.

전생의 내가 20층을 돌파하는 데 7년이 걸렸으니까.

가장 많은 시간을 잡아먹는 구간다운 소요 시간.

'평균 소요 시간은 대략 5~6년.'

하지만 역시.

지금 여기에서 그렇게나 오랜 시간을 낭비할 생각은 없다.

"한 달."

"...?"

"네에...?"

내 말에 세 사람이 동시에 나를 바라봤다.

"한 달이면 될 것 같습니다. 이것도 꽤 여유 있게 잡은 시간이긴 하지만."

"아니, 저기요... 무슨 말도 안 되는..."

그러면서 두 사람이 동시에 한동희를 바라본다.

그들의 시선에 한동희는 인상을 찌푸렸다.

"아, 쫌! 이거 너무 자주 쓰면 안 돼요!"

"안 믿겨도 어쩔 수 없습니다. 하지만 나는 지키지 못할 말은 하지 않습니다."

"하하..."

박명철이 머리를 벅벅 긁으며 웃음을 터트렸다.

"알겠습니다. 한 달.. 한 달이라... 어쨌든 그때까지 할 수 있는 만큼은 해 볼 겁니다. 그래도 많은 성과는 내기 힘들 거예요."

"그것도 납득합니다. 마법 명가 녀석들은 만만한 놈들이 아니니까. 다만. 놈들을 괴롭힐 수 있는 작은 정보 하나만 있어도 충분할 겁니다."

내 말에 박명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단번에 놈들을 깨부술 순 없다.

아래에서부터 하나씩, 하나씩.

우선 그거면 충분하다.

"그럼 혹시... 히든피스도 알고 있습니까? 아, 오해는 마세요. 뺏으려는 건 아니니까. 안 알려 줘도 돼요."

박명철이 조심스레 물었고.

"당연히. 16층부터 20층 사이에 존재하는 히든피스를 챙기러 갈 생각입니다."

"어떤... 건지 알려 주실 수.... 싫으시면 말 안 해도 되고요."

"대륙의 네임드 다섯 명과의 싸움에서 승리."

"....!!!"

그 말에 모두의 눈이 튀어 나올 듯이 커졌다.

"헐! 말도 안 돼!"

"무슨 그딴... 그걸 깨겠다고요?"

"예."

저들이 놀라는 것도 당연하다.

그만큼 대륙의 네임드라 불리는 강자들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강하니까.

지금 탑에서 놈들을 상대할 수 있는 것은 명가의 랭커들이나 S급 능력자 보유자들 정도가 다일 거다.

그 히든피스가 깨지는 것도 지금 시점에서 10년은 훨씬 더 지나야 할 정도다.

아마 지금은 그 정체조차 모를 거다.

"보상은 엄청나겠네요."

그 말에 나는 입꼬리를 들어 올렸다.

"엄청나다마다. 그리고 지금 내게 가장 필요한 보상이기도 하고."

"하하하..."

세 사람은 작게 웃음을 터트렸고.

"그럼 나는 탑을 올라가겠습니다. 21층에서 보죠."

"예. 그때쯤이면 얼마나 더 무시무시한 괴물이 되어 있을지.. 벌써부터 궁금하네요."

"궁금해하지 마십쇼. 나도 확신할 수 없으니까."

"아, 그리고 이거."

박명철이 내게 무언가 건넸다.

"아티팩트..?"

"예. 층간 이동 아티팩트입니다."

"저한테 줘도 괜찮은 겁니까?"

"예. 뭐.. 이제 신입 길드원을 모을 생각은 없으니까요. 그리고 강민 씨는 앞으로의 계획에서 필수적인 인물이니, 헛된 투자는 아닐 거라 생각합니다."

나로서는 환영할 만한 일이다.

이런 것까지는 바라지도 않았건만.

어쨌든 층간 이동 아티팩트는 아티팩트 중에서도 귀한 측에 속한 아티팩트였고.

고작 11층에서는 얻을래도 얻을 수 없는 아티팩트였는데.

'아니, 아티팩트라는 것 자체가 30층은 넘어야 구할 수 있는 거니까.'

"...고맙습니다."

나는 아티팩트를 받아 들었다.

박명철의 손길에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

벌서부터 마법 명가라는 거대한 적을 앞에 두고 날을 갈고 있는 표정이다.

'이들의 운명을 반드시 내 손으로 바꾼다. 그리고 마법 명가의 운명도.'

그의 그런 눈을 보자 이런 다짐이 절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위에서 봅시다."

"예."

그 말과 함께 나는 몸을 돌렸다.

"가자, 몰른."

"오호호호! 좋아요오오!"

몰른은 이제 떠난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아졌는지 모험, 모험이다! 라고 외치며 폴짝대고 있었다.

***

[15층에 진입했습니다.]

[10,000포인트가 차감됩니다.]

[잔여 포인트 : 12030포인트]

'내가 생각해도 어처구니가 없어.'

단번에 15층에 진입하고 나서도 12000포인트가 넘게 남아 있었다.

'정보 길드에 따르자면 17층 쪽에 마법 명가놈들의 아지트로 보이는 게 있다고 했으니까.'

우선 당장은 마법 명가보다 15층에서 해야 할 일이 있다.

'아이템.'

15층의 상점에서 구매할 수 있는 아이템은 5층 마을의 아이템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리고 어쩌면 여기에서 무기의 잠재 스탯을 포식할 수 있을지도 모르고.'

처음 잠재 옵션을 포식할 때, 포식자의 숙련도가 부족하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 나는 또 하나의 포식 슬롯을 개방하지 않았던가.

'운이 좋으면 또 새로운 잠재 옵션을 포식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곧바로 16층으로 올라가지 않은 채 15층에 존재하는 도시에 들른 것이다.

'어쨌거나 스탯은 높을수록 좋아. 게다가 11층에서 15층 사이에서는 그렇게 많은 스탯을 포식하지 못했으니까.'

말했듯 지금 나의 스탯은 히든피스를 개방하기 위한 '최소'조건.

이 히든피스를 위해 상대해야 할 대상들에 대한 정보는 그리 많지 않다.

실제로 도전한 플레이어도 그리 많지 않을뿐더러, 처참하게 박살 난 녀석들은 자존심 때문에 네임드들의 실력을 열심히 과장해 댔으니까.

'하지만 그들의 위치까지 숨긴 건 아니니까.'

전생의 플레이어들이 숨긴 건 그들의 강함뿐이다.

남은 건 내가 직접 몸으로 부딪치며 깨닫는 수밖에.

나는 곧바로 장비 상점을 향해 걸었다.

***

"호..."

나는 무기 상점에 진열된 무기들을 보며 짧은 탄성을 쏟아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지금 내가 들고 있는 무기보다 뛰어난 무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고작 5층에서 구매한 낡아빠진 철도 하나를 이렇게 만들다니.'

그곳에 있었던 대장장이의 정체가 다시 한번 더 궁금해지는 순간이었다.

'어쨌든 가장 좋은 무기의 공격력은 20. 그리고 추가 능력치는 힘 3.'

내가 가진 무기에 비하면 한참이나 떨어지는 옵션들이다.

내 무기가 공격력 30에 힘 3, 민첩성 3을 동시에 올려주니까.

'그렇다고 가만 놔둘 이유는 없고.'

바로 잠재 스탯 때문이다.

내가 예상했던 대로 잠재 스탯을 새롭게 포식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역시나 각 부위 장비에서 하나씩이긴 하지만.'

더 좋은 장비인 만큼 포식할 수 있는 스탯도 비약적으로 상승했다.

'검에서는 힘 13. 장비까지 모두 더하면 민첩성 16에 체력 18까지.'

더 좋은 점은 내가 굳이 장비를 구매하지 않아도 스탯을 포식하는 건 가능하다는 점.

사실 지금 돈은 넘쳐나다시피 하지만, 아낄 수 있으면 아끼는 게 더 좋지 않겠는가.

'그래도 방어구는 조금 바꿔 주는 게 낫겠어.'

방어구는 이곳에 있는 방어구들이 훨씬 옵션이 뛰어났기 때문이다.

나는 방어구들을 자세히 살폈다.

5층에서와는 달리 15층의 방어구는 재질도 모두 미묘하게 달랐다.

'최대한 신축성 좋고 검은색 위주로.'

방어력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방어력을 올리기 위해서는 방어구도 무거워져야 하는데, 그건 내가 추구하는 전투 방식과는 크게 다르니까.

대신 민첩성과 체력을 옵션으로 가지고 있는 방어구 위주로 택했다.

'이렇게 하면 되겠군.'

결국 내가 선택한 방어구는 이렇다.

[훌륭한 탄력을 지닌 웨어 울프의 가죽 상의]

>방어력 : 33

>민첩성 + 12

[훌륭한 탄력을 지닌 와이번의 가죽 하의]

>방어력 : 29

>민첩성 +15, 체력 +13

[골렘의 돌가루를 첨가한 늪지 호랑이의 가죽 신발]

>방어력 : 30

>체력 + 20

이곳에서 있는 가죽 장비 중 가장 뛰어난 장비들이다.

'당연히 가격도 어마어마하겠지.'

하지만 이미 투기장에서 돈을 끌어모을 대로 끌어모은 나에게 돈 걱정은 크게 의미 없는 걱정일 뿐이다.

[상태창]

>이름: 한강민

>레벨 : 30

>스탯

-육체

힘 : 143.19

민첩성 : 142.01

체력 : 141.41

-정신

마력 : 30

>능력

1. 포식자 (S)

2. 뇌전검 (S)

3. 충격파 (AA)

4. 오우거의 신체 (AAA)

5, 포식 슬롯 (empty)

포식 포인트 – 1023p

모든 장비를 갈아치운 후, 지금 현재 나의 상태창의 모습이다.

12층 투기장에서 시간을 소모하며 스탯을 포식하지 못했다고는 하지만.

잠재 옵션을 포식한 덕분에 스탯이 말 그대로 폭발적으로 증가해 버렸다.

'레벨로 따지면 벌써 130에 가깝다.'

지금 내 레벨은 평범한 플레이어들에 비해 낮다.

그럴 수밖에 없다.

11층에서 너무 빠르게 포인트를 쌓는 바람에 레벨업 할 기회를 놓쳐 버렸기 때문이다.

'보통 20층을 돌파할 때 평균 70, 80레벨에 도달한다는 걸 생각해 보면 터무니없이 낮은 레벨이긴 하지.'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스탯과 능력만을 보자면 정상적으로 20층을 돌파한 플레이어들을 한참이나 웃도는 수준이다.

'재미있어.'

과거에는 감히 꿈도 꾸지 못했던 여유들.

돈과 힘.

그리고 그이외의 모든 것들을 나는 누리고 있었다.

"이봐! 돈은 안 내? 누가 돈을 내기 전에 장비부터 입어? 이 사람 보게!"

그때 주인이 내게 소리쳤다.

나는 그를 바라보며 피식, 웃음을 터트렸고.

찰랑!

금화 한 보따리를 건넸다.

저 안에 담긴 금화는 50만 골드를 훌쩍 넘는다.

내가 가진 돈의 1/10도 안 되는 액수.

"허, 헉....!"

그 순간 주인의 눈이 튀어나올 만큼 커졌다.

"거슬러 주십쇼. 정확하게. 단 한 푼도 더 가져갈 생각은 말고."

당연히 거저 줄 생각은 없다.

거래는 언제나 정확하게.

내 말에 주인은 아쉽다는 눈으로 금화를 하나씩 꺼내기 시작했다.

준비는 끝났다.

내가 지금 향할 곳은 16층.

16층에 있는 대륙의 네임드.

'야만왕 킬리만제르'

그는 바로 대륙에 맹위를 떨치고 있는 소드 마스터였다.

'히든피스의 시작이다.'

"가자, 몰른."

나는 몰른과 함께 16층으로 향하는 관문을 향해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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