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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상태창이 달라졌다-34화 (34/277)

34화

그 뒤로 이틀이 지났다.

아직 위드 길드에서는 소식이 도착하지 않았다.

정보 길드의 정보도 마찬가지다.

'이제 남은 건 두 녀석인가.'

투기장의 상위 랭크 다섯 명 중, 벌써 세 명을 처참하게 박살 냈다.

덕분에 지금 내가 모은 포인트는 벌써 2만에 가까워졌다.

다음 층으로 넘어가지 않아서 포인트 쌓이는 속도가 느려졌다는 걸 감안한다면.

지금 내 포인트는 말도 안 되는 속도로 쌓이고 있다는 뜻.

'이 투기장에서 내가 그만큼 유명세를 끌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겠지만.'

이제는 몰른의 노래가 없어도 투기장뿐 아니라, 도시에서 나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지금은 투기장의 랭킹 2위와의 싸움을 앞두고 있었다.

세 명은 모두 기사 출신이라고는 하지만 고작 중급 기사에 불과한 녀석들.

상급 기사와 중급 기사 사이에는 어마어마한 격차가 존재한다.

상급 기사 한 명이 중급 기사 열 명과 싸워도 상급 기사 한 명이 충분히 이기고 남을 정도다.

'조금 기대도 되는군.'

말했듯 전생에서 나에게도 기사들은 하늘과 같은 존재들이었다.

그중에서도 상급 기사는.

'악몽이었지.'

하늘을 넘어서, 또 다른 하늘 위에 있는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으니까.

"어이! 한강민! 오늘도 기대해 보마."

"팔콘은 쉽지 않을 거야! 크하하하!"

"그럼. 팔콘이 누구인데. 지금 200연승을 달리고 있는 괴물이라고!"

투기장으로 들어가는 문 앞에 서 있는 나를 보며 다른 투사들이 한마디씩 건넸다.

아마 저들도 지금 싸움이 시작되기를 간절하게 바라고 있으리라.

눈빛만 봐도 뻔히 알 수 있다.

벌써 몇몇은 나와 팔콘의 싸움에 돈을 걸었고.

지금도 구석에서 작은 소리로 내가 이기느니, 팔콘이 이기느니 떠들어 대고 있었다.

대충 들어보니 결과는 반반.

내 입지가 이만큼이나 상승했다는 말이다.

처음에는 데크라는 어중이떠중이를 상대하는 데에도 모두가 내가 질거라고 예상했던 걸 생각해 본다면 말이다.

'팔콘은 보이지 않는군.'

싸움을 앞두고서도 팔콘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사실 지금뿐만이 아니라, 단 한 번도 본 적 없다.

투기장의 2위와 1위는, 그만큼 이 투기장에서도 귀빈 취급을 받고 있었고.

듣기로는 놈들의 대기실은 호화로운 저택에 버금간다고 했으니까.

'투기장 사람들이랑도 잘 어울리지 않는다고 했던가.'

그러니 그들에 대한 반발심으로라도 내가 이기기를 바라는 녀석들도 많았다.

"그러니까 말이야! 꼭 그놈들 콧대를 좀 밟아 주라고! 흐흐흐!"

"맞다, 맞아! 강민! 나 너한테 돈 걸었거든? 지기만 해 봐, 그냥!"

"네가 어쩔 건데? 한강민 저놈 콧등이나 건드릴 수는 있고?"

"하, 참. 그냥 말이 그렇다는 거지.. 쩝."

저들의 반응만 봐도 알 수 있다.

저들의 원을 풀어 줄 생각은 없지만, 어쨌든 처참하게 짓밟아 줄 생각은 맞다.

'그동안은 대충 팔 한쪽이나 몇 달 앓아누울 정도로 봐주긴 했다만.'

이번에 걸린 건수는 크다.

돈도 돈이지만, 이번 싸움을 얼마나 완벽하게 끝내느냐에 따라서 앞으로 내가 쌓을 포인트의 양도 달라질 것이다.

'확실한 임팩트를 줘야겠지.'

단순히 포인트를 떠나서 내 욕심이기도 하다.

상급 기사의 오만한 콧대를 짓눌러 주는 것.

그리고 지금 내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

'쉽게 말하면, 놈은 전투력 측정기인 셈이다.'

말했듯 5분.

5분 이내에 상급 기사를 처참히 박살 낼 수만 있다면.

'앞으로 만날 소드 마스터들과의 싸움의 방향도 대충 예측해 볼 수 있을 테니까.'

물론 그 정도가 최소 조건이다.

만약 내가 5분내에 상급 기사도 처치하지 못한다면, 소드 마스터와의 싸움은 승산도 없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나는 피식, 웃으며 몸을 풀었다.

그렇게 가볍게 몸을 풀고 있을 무렵.

[자아아아아아! 이번 도전자느으으으은! 우리 투기장의 떠오르는 초신서어어엉! 한! 가아아앙! 미이이이이인!]

사회자의 외침과 함께.

우레와 같은 함성이 쏟아졌다.

처음과는 확연하게 다른 관객들의 반응.

"한강민! 한강민! 한강민!"

그들은 내 이름을 연호하며 내가 등장하길 기다리고 있었다.

"잘 해! 새끼야!"

"기대해 본다! 아주 작살을 내버려! 크하하하하!"

싸움꾼들이 건네는 말을 뒤로하며, 나는 투기장 안으로 몸을 옮겼다.

***

"기다려 봐. 호들갑 떨지 말고."

위드 길드의 박명철.

그는 지금 투기장 관객석에 앉아 있었다.

그의 좌우로는 한동희와 김민희가 함께 앉았고.

"깜짝 놀랄 겁니다."

"제가 볼 때는 저 사람 무조건 잡아야 돼요."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 저 사람 목적이 마법 명가라며."

목소리를 낮추며 박명철이 말했다.

"내가 보여 준 거 못 봤어요? 그놈들 진짜 쓰레기 중의 쓰레기라니까?"

"알아. 나도 안다고. 그런데 그 상대가 마법 명가라는 게 문제지."

박명철은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마법 명가가 노예들을 거래한다는 사실을 전해 들었을 때, 그의 마음 깊은 속에서 분노가 치밀었다.

'쓰레기 같은 새끼들.'

강민의 전생에서 박명철이 이 사실을 알게 되는 건 지금의 시점에서 조금 더 나중이지만.

강민 덕분에 박명철의 미래는 달라진 것이다.

'분명 엄청난 상대는 맞지만... 깨부숴야 하는 것도 사실이야.'

이미 처음 노예 거래 장부를 보고 박명철은 마법 명가를 적으로 간주했다.

과정은 달랐지만, 애초에 예정된 일이었던 만큼 박명철의 결심은 한 번에 굳어진 것이다.

'다만 저 사람을 정말 믿어도 되는 것인지. 그만한 실력을 가진 사람인지는 별개의 문제다.'

이미 마음을 굳힌 순간 마법 명가와의 싸움은 마음으로 다짐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강민을 끼워 넣는 게 맞는 것인지는.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한 박명철이었으니까.

"한동희."

"예."

"믿을 만한 사람인 것 같았어?"

박명철이 물었다.

그는 한동희를 신뢰했다.

플레이어로서 뛰어난 전투 센스는 조금 부족하지만, 그에게는 탁월한 눈썰미가 있었다.

그러니 길드의 스카우터로 삼아 놓은 것이다.

"예."

한동희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박명철이 다시 한번 입맛을 다셨다.

'동희가 그렇다면 그런 건데..'

특별한 근거는 없지만, 한동희의 과거는 나름 치열했고.

덕분에 그에게 생겨난 능력인 '거짓 판별.'

물론 빈번하게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강민을 전적으로 믿기는 힘들다.

'어떻게 개인이 놈들의 뒤를 캔 것이며. 혼자서 그런 녀석들과 싸우기로 마음을 먹은 것인지.'

그만큼 박명철의 입장에서 강민은 미지의 인물이었다.

조심할 수밖에 없는 셈이다.

그렇게 바쁘게 머리를 굴리고 있을 무렵.

"나타났다."

팔콘.

그가 모습을 드러냈다.

"한번 보자고. 얼마나 실력이 뛰어난 녀석인지."

박명철이 입꼬리를 비틀며 중얼거렸고.

잠시 후, 싸움이 시작됐다.

***

'오우거의 신체.'

아직 단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던 그 능력을 지금 써 볼 생각이다.

그동안 쓰지 않았던 이유는 별 게 아니다.

'쓸 일이 없었으니까.'

지금까지 내가 상대했던 녀석들은 너무 약했다.

물론 나의 성장 속도가 압도적이었으니 그랬던 거지만.

상급 전사의 실력이 어느 정도가 되는지 나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20층을 넘어선 뒤로부터 상급 기사를 만날 일은 없었으니까.

그러니까 이번 기회에 온 힘을 다해서 상대해 볼 생각인 거다.

지금 내 힘을 가늠해 볼 절호의 기회야.

'상급 기사 정도면 오우거의 신체를 써볼 만하겠지.'

저 앞에서 팔콘이라는 놈이 오만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놈의 자세에서는 여유가 흘러넘쳤다.

나 같은 건 조금도 신경 쓰이지 않는다는 듯이.

그동안 내 얘기 정도는 분명 들었을 거다.

투기장 주인, 그 돼지 녀석이 입 다물고 있었을 리는 없으니까.

'무기는 역시 롱스드고. 방패도 들고 있군. 자세는 훌륭하다.'

한눈에 봐도 알 수 있다.

가만히 서 있는 것 같지만 빈틈이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방패까지 들고 있으니, 웬만한 싸움꾼들은 놈의 털끝 하나도 건드리지 못했겠지.

'200연승.'

그게 바로 그 결과다.

싸움이 시작된 지 2분이 지났지만, 나와 놈은 서로를 노려보고만 있을 뿐이다.

기다리지 못하는 관중들 사이에서 우우우, 하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자, 그럼.'

저벅

내가 먼저 발을 내디뎠다.

그 순간 놈은 검과 방패를 치켜들고 자세를 취했다.

가만히 서 있을 때도 빈틈이 보이지 않았는데.

'완벽한 방어 자세다.'

내가 봐도 빈틈을 찾기 쉽지 않을 정도다.

나는 빙 돌며 놈을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놈도 내가 서 있는 방향대로 몸을 틀었다.

방향이 움직이는 그 순간에도 놈의 자세는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수많은 전투를 치렀다는 증거지.'

흥미롭다.

벌써 손이 근질근질하다.

'하지만.'

빈틈 따위, 만들어 주면 그만이다.

타닥-

뇌전검이 활성화됐다.

전류가 검 위로 타고 흘렀다.

어느새 뇌전검은 나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고.

전류가 타고 흐르는 순간 관중석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놈 역시 눈썹이 꿈틀대며 나를 견제하고 있었다.

파앗!

나는 놈을 향해 몸을 날렸다.

놈이 눈을 부릅떴다.

내가 날아드는 방향으로 방패를 치켜들었고.

검은 언제라도 내 빈틈을 노리겠다는 듯이 번뜩이고 있었다.

'자, 막아 봐라.'

후우욱!

나는 오우거의 신체를 사용했고.

그 순간 신체가 후끈 달아오르며 말도 안 되는 에너지가 몸 깊은 곳에서부터 용솟음쳤다.

'미치겠군.'

내가 생각해도 어처구니가 없는 능력이다.

순간적으로 증폭된 내 힘에 하마터면 균형을 잃을 뻔했으니까.

'이 정도 힘이라면.'

부우우웅!

나는 놈의 방패를 향해 검을 내리쳤다.

뇌전검의 속도와 오우거의 신체로 인해 향상된 스탯이 더해졌고.

그 시너지는 가히 말도 안 될 지경에 이르렀다.

콰아아아아앙!

검이 놈의 방패를 내리쳤다.

폭탄이라도 터진 것 같은 굉음이 울려 퍼졌다.

그 결과는.

파지지지직! 콰아앙!

놈의 방패는 박살이 났고,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나는 거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파각!

"....!"

방패를 부수고, 검이 놈의 팔을 잘라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관객들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허무하군.'

너무도 허무한 결과였다.

조금이나마 긴장했다는 게 민망해 질 정도로.

'그만큼 내가 압도적으로 강해졌다는 뜻이겠지.'

전생에서 그렇게 높아 보였던 상급 기사는, 내 일격조차 막아내지 못하는 존재가 되어 버렸다.

허무하리만치 쉽게 끝나 버린 싸움.

하지만 이 정도로 멈출 생각은 없다.

실력을 가늠하는 것 말고도 내 목표는 따로 있으니까.

'확실한 임팩트를 줘야겠지.'

"자, 그럼."

파각!

이번에는 놈의 다리.

쿵!

다리가 잘렸고, 놈이 자빠졌다.

"....크아아아아악!"

자빠지고 나서야 상황이 판단된 것인지.

놈이 비명을 내질렀다.

"으아아아아아아!"

"말도 안 돼! 말도 안 되잖아!"

"한강민! 믿었다! 너를 믿었다아아아아! 내 전 재산을 건 보람이 있었어! 크아아아아!"

관객들의 입에서 거대한 포효가 터져 나왔다.

"이... 이.....!"

팔콘은 감히 말도 꺼내지 못한 채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두려움에 떨고 있는 눈빛.

맹수를 눈앞에 두고 있는 토끼와도 같은 모습이었다.

지금의 나는 강하다.

너무 강하다.

'소드 마스터 역시.'

짓밟을 수 있다.

확실하게.

"너. 앞으로는 조금 착하게 사는 게 좋겠어. 너를 싫어하는 친구들이 많더라고."

나는 대기실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거기에서는 팔콘을 밟아 주라던 싸움꾼들이 환호를 내지르고 있었다.

아무래도 팔콘에게 당한 게 많은 모양인지, 아주 격한 반응들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닥.. 닥쳐! 닥쳐! 이 개자식아아아아아!"

팔콘이 울부짖으며 소리쳤다.

[.....싸움이 끝...났군요.... 1분... 10초...만에.. 싸움이 끝나 버렸어요.. 하하.. 하하하하...]

사회자의 말이 들려왔다.

언제나 에너지 넘치던 사회자였지만.

지금 이 순간은 그조차도 말문이 막힌 모양.

나는 미련 없이 몸을 돌려 대기실로 돌아갔고.

"으하하하하하! 이 새끼! 너는 진짜야! 진짜라고!"

"한강민! 한강민! 한강민!"

투사들도 신이 나서 관객들보다 더 격하게 나를 반겨줬다.

나는 그저 피식, 웃으며 검을 검집에 집어넣을 뿐이었다.

그러던 그때.

"한강민 씨."

한 남자가 내 앞을 가로막았다.

그 옆에는 한동희와 김민희가 서 있었다.

나는 그를 바라보며 손을 내밀었다.

"반갑습니다, 박명철 씨. 잘해 봅시다."

대답을 들을 필요가 무엇이 있겠는가.

나는 이미 나를 증명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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