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상태창이 달라졌다-31화 (31/277)

31화

"허허.. 이게 어찌 된 일일까?"

두 명의 플레이어들이 시체가 널브러진 저택 앞에 서 있었다.

이미 강민이 휩쓸고 지나간 노예 거래의 현장이다.

"대체 어떤 간 큰 놈이 여기를 턴 거지?"

그들은 마법 명가의 일원들이었다.

시간이 됐는데도 실험 재료가 도착하지 않았고.

결국 직접 확인하기 위해 11층으로 내려 온 참이다.

"짐작 가는 놈들은?"

그 말에 고개를 젓는 한 플레이어.

"전혀. 다른 명가 놈들이야 애당초 관심도 없을 것이고. 길드들이라고 해 봐야 우리 눈치 보기 바쁜데."

"그걸 떠나서 우리가 이런 일을 하고 있는 걸 알고 있는 플레이어도 없을 텐데?"

"...새나간 건가?"

"그러면 내부에서 고발자가 있다는 말밖에는 안되는데. 누굴까?"

"글쎄."

마법 명가의 플레이어 두 명의 눈이 싸늘하게 식어가고 있었다.

***

"몰른."

투기장으로 들어가기 전, 나는 몰른을 불렀다.

"예, 예에..."

몰른은 잔뜩 기가 죽어서 축 처져 있었다.

"너는 이거 가지고 정보 길드에 가."

"으음..?"

몰른을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내가 건넨 종이를 살폈다.

플레이어들의 저택에서 가지고 온 장부를 요약한 종이다.

"이 정도는 할 수 있겠지?"

나는 몰른에게 돈을 건넸다.

정보 길드에 의뢰하기 위한 의뢰 비용.

"부족하지는 않을 거다. 시간 남으면 맥주라도 한잔하던가."

"오호호! 맡겨만 주시지요!"

맥주라는 이야기에 몰른의 눈이 번뜩 뜨였다.

몰른은 이곳을 벗어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쁜지 돈과 종이를 받아들며 외쳤다.

"자, 가라."

"에엡!"

몰른은 투기장을 다급히 벗어났고.

"크하하하하! 정보 길드에서 팔 한쪽으로 빌어먹을 방법이라도 찾는가 보지? 크크크큭..."

데크가 다시 한번 비아냥댔다.

"괜찮으면 내 일자리 하나 구해 줄까? 크큭.. 내 똥 닦는 일 어때? 으응? 내가 밥은 먹여 주지, 크하하하!"

"혀가 기네. 뭣도 없는 놈들이 항상 그랬지."

내 말에 데크가 크게 폭소했다.

"크하하하하! 쟤 하는 얘기 들었어? 귀여워. 그래 그렇게 나대 줘야 찢어 죽이는 맛이 있다니까! 크크크!"

저런 놈들은 많이 봤다.

허세에 찬 돼지들.

상대할 필요도 없다.

나는 대꾸하지 않고 투기장을 살폈다.

넓은 운동장.

고대 그리스의 콜로세움과 유사한 모습이다.

그렇게 데크와 똘마니들이 시끄럽게 떠들고 있던 중.

[다음 투사를 소개합니다아아아!]

"우아아아아아아!"

사회자의 외침과 관중들의 환호가 쏟아졌다.

[우리 투기장의 자랑! B급 전사, 데에에에크으으으으! 입장!]

대기실 밖에서 쩌렁쩌렁한 외침이 들려왔고, 데크는 자신의 몸집만큼 거대한 대검을 꺼내 들고 걸어 나갔다.

"우아아아아아! 데크! 데크!"

"데크! 너한테 올인했다! 이겨! 무조건 이겨!"

"믿고 보는 데크! 오늘은 어떻게 상대를 죽여 줄 거냐! 으하하하하! 처참하게 찢어 버리라고!"

데크는 이미 투기장의 명물인 모양이다.

그가 등장하자마자 구경꾼들의 우레와 같은 환호가 쏟아졌다.

[그 상대느으으은! 오늘 우리 투기장의 신입 투사로 들어오오오온! 모험가 한! 강~~ 미이이인!]

사회자의 능숙한 멘트가 이어졌고.

내 이름을 소개한 순간.

"신입이라고? 신입이래, 신입!"

"데크의 먹이가 되겠군! 데크! 신입이라고 봐주면 안 된다!"

"조져 버리라고, 그냥!"

신입 전사라는 말에 구경꾼들이 폭주하기 시작했다.

사자 굴에 들어온 토끼 한 마리.

그들에게 보이는 데크와 나의 모습일 거다.

당연히 사자가 데크, 토끼가 나일 테지.

투기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내 모습을 본 순간 구경꾼들 사이에서 폭소가 터져 나왔다.

"비실비실해서 어디 싸울 수나 있겠어?"

"데크에 비하면 어린 애새끼잖아! 이거!"

"시시하다! 시시해! 우우우우우!"

데크가 모습을 드러냈을 때와는 너무도 상반된 반응들.

잠시 후.

[자아아아! 시작! 합니다아아!]

쿠우웅!

데크가 대검으로 바닥을 한 번 강하게 내리쳤다.

***

'아오.. 늦을 뻔했네.'

그리고 그 투기장에는 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

한동희.

그는 위드 길드의 스카우터다.

자리에 앉자마자 바쁘게 투기장 곳곳을 살폈다.

'저기도 있고.. 저기도.. 저기도.. 망할 놈들.'

예상대로 이미 투기장 곳곳에는 다른 길드의 스카우터들이 앉아 있었다.

물론 이 자리에 있다고 모두가 강민을 노리고 있다고 확신할 수는 없다.

투기장에서 포인트를 쌓은 플레이어라면 당연히 뛰어날 수밖에 없을 것이고.

그런 이들을 스카우트하기 위해 길드에서 사람을 보냈을 수도 있을 테니까.

다만 이 싸움 장면을 보면 강민을 몰랐다고 하더라도 눈독을 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럴 줄 알았다니까.. 젠장.'

위드 길드는 요새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길드였지만, 이곳에 있는 대형 길드에는 결코 미치지 못한다.

그러니 11층에서 밤을 새워가며 플레이어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인데.

'망한 것 같습니다. 팀장님..'

그가 입맛을 다시며 강민과 데크를 바라봤다.

'그래. 눈요기나 하자. 흐..'

잠시 후 사회자의 외침과 함께 경기가 시작됐다.

구경꾼들은 어서 강민을 죽여 버리라며 아우성치고 있었다.

먼저 움직인 건 데크였다.

데크는 거대한 대검을 수수깡처럼 가볍게 휘두르며 강민을 향해 다가갔다.

'무기를 안 꺼내? 맨손 격투 타입인가?'

강민은 무기도 꺼내지 않은 채 데크를 바라만 보고 있었다.

"으하하하! 쫄았어! 저 새끼 봐! 쫄은 거 맞지?"

"크크크크! 운이 나빴구만! 첫 싸움부터 데크라니! 잘 가라! 아가야!"

구경꾼들은 강민이 이미 겁에 질려 자포자기한 것이라고 판단한 모양이다.

얼핏 보면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법도 했다.

거대한 대검을 휘두르며 달려가는 데크와 무기도 없이 우두커니 서 있는 강민의 모습.

"죽여 버려! 죽여!"

"바로 죽이면 재미없으니까 조금 더 가지고 놀라고, 데크!"

터져 나오는 관객들의 외침과.

데크의 대검이 강민에게로 강하게 날아들었다.

'어떻게 하려고?'

한동희 역시 눈매를 좁히며 강민을 바라봤다.

강민이 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다른 이들은 몰라도, 그가 보기에 지금 강민은 조금도 위축되지 않았다.

'오히려 데크를 면면히 살피며 여유를 부리고 있는 모습인데.'

그 순간.

'움직인다.'

강민이 움직였다.

제 자리에 선 채로 자세를 조금 낮췄고.

데크의 대검을 향해 주먹을 뻗었다.

'겨우 저거?'

한동희가 보기에도 의문스러운 모습이다.

아무리 실력에 자신이 있다고 한들.

'12층에 올라왔으면.. 레벨은 고작해야 30 언저리일 텐데. 아무리 뛰어난 능력이 있다고 해도... 어어엉?'

그 순간 한동희의 눈이 커졌고.

그 자리에 있는 모든 구경꾼들의 말문이 멎었다.

쩌어어어엉!

대검과 강민의 주먹이 충돌하며 만들어낸 공명음 때문이었다.

"...?!"

데크는 맨주먹에 가로막혀 움직이지 않는 대검을 보며 당황한 기색을 내뿜었다.

"어.. 어어어어!"

"으어어어어!"

***

"아이고. 무서워라."

데크.

그 녀석의 눈동자는 갈 길을 잃었고.

입에서는 어어어... 라는 탄식만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놀랐겠지.

설마하니 자신감 넘치게 휘두르던 대검이 맨주먹에 막힐 거라고는 상상이나 했겠는가.

물론 이건 다 계산 된 공격이다.

이미 모든 육체 스탯은 100레벨 수준을 뛰어넘었다.

이런 덩치만 큰 녀석의 공격 따위 막아내지 못할 이유가 없었고.

'충격파. 맨주먹으로도 충분히 효과가 있어.'

놈의 대검이 날아들기 직전, 주먹 위로 충격파를 둘렀다.

검으로 충격파를 사용할 때보다 내 몸에 가해지는 충격도 컸지만.

'체력이 증가해서 그런지 꽤 버틸 만해.'

그렇게 주먹에 충격파를 두른 채 놈의 대검을 막아낸 것.

주먹과 충돌한 놈의 대검이 크게 진동하고 있었다.

콰아아앙!

나는 힘껏 놈의 대검을 밀쳐냈고.

놈의 몸이 균형을 잃고 잠시 휘청거렸다.

"우아아아아아아!"

"저 녀석 대체 뭐야!"

"뭐 하는 놈이야? 어디서 저런 녀석이 튀어나온 거지?"

무기를 쓰지 않은 이유는 간단하다.

투기장의 싸움은 하나의 쇼다.

돈을 벌기 위해 왔다면 빠르게 처치하고 빠르게 싸움을 끝내면 되겠지만.

내 목적은 돈이 아니라 포인트.

그러니까 명성을 빠르게 쌓아야 하는 것.

'그렇다면 극적이고 자극적인 장면을 만들어 줘야 할 필요가 있지.'

그 계획은 정확히 먹혀들어갔다.

[140 포인트 획득]

[240 포인트 획득]

[500 포인트 획득]

[100 포인트 획득]

.

.

.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포인트가 증가했다.

지금 이 순간 내가 얻은 포인트만 벌써 2000포인트에 육박할 정도다.

'싸움 시작한 지 1분 만에 2000포인트를 획득했어.'

기존에 가지고 있던 1000포인트까지 더하면, 3000포인트.

11층보다도 압도적인 속도다.

'보통 한 층 올라갈수록 포인트 쌓는 속도가 반으로 줄어든다고 했으니.'

지금 내가 보여준 연출은 그 역할을 제대로 해 내고 있다는 뜻이었다.

'자, 그럼.'

다시 한번 관중들을 위한 쇼에 돌입할 차례다.

나는 다시 몸을 날렸다.

공중에 번쩍 뛰어오른 채로 놈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고.

"으아아아아!"

데크는 다급하게 대검을 휘둘렀다.

'옆면을 때려야 한다.'

아무리 나라고 해도 대검의 날에 대고 주먹을 휘두를 수는 없다.

공중에서 다시 한번 주먹과 대검이 충돌했고.

쩌어어어엉!

거대한 공명음이 울려 퍼졌다.

충격파가 놈의 검을 타고 흐르며 놈이 전신을 경련하듯 떨어댔다.

검을 잡은 놈의 손이 부르르 떨려왔다.

손목에 큰 무리가 갔는지 검을 제대로 지탱하는 것조차 힘들어 보였다.

'지금 보내줄 생각은 없다. 조금 더 농락해 줘야지.'

지금도 포인트는 계속해서 오르고 있었으니.

단물이 다 빠질 때까지는 놈을 농락해 줄 생각이다.

최대한 화려하고, 최대한 돋보이게.

이 순간 나는 싸우고 있는 게 아니다.

관객들을 흥분시키기 위한 쇼를 하고 있는 것이다.

내 계산대로 관중들은 점점 더 흥분의 도가니에 빠져들었다.

거대한 대검과 맨손 격투.

충분히 흥미로운 소재다.

'심지어 맨손으로 대검을 막아내고, 싸움을 압도한다면.'

"우아아아아아아!"

"뭐야! 저 새끼 대체 뭐 하는 새끼야!"

관객들의 함성이 더욱더 커졌다.

데크의 눈은 흔들리고, 그의 전신은 땀으로 젖어들었다.

수 차례의 공방이 오고 갔다.

데크의 안색은 급격히 어두워졌고, 그 두꺼운 다리가 후들거리고 있다.

'자, 그럼 하이라이트다.'

데크의 대검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주먹과 대검이 강하게 충돌했다.

그 순간.

콰득!

"...!!!!"

놈의 대검에 균열이 일기 시작했다.

데크의 입에서 다급한 탄식이 쏟아졌다.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다시 대검을 향해 몸을 날렸고.

쩌어어엉!

다시 한번 주먹으로 대검을 강타했다.

대검이 조각이 난 채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투기장에는 잠시 침묵이 자리했고.

"아...아아아아...!"

데크는 망연자실한 눈으로 박살 난 대검을 바라봤다.

"우아아아아아아!"

"한강민? 한강민이라고 했나?"

"망할 데크! 내 돈 내놔! 이 사기꾼 새끼야!"

"데크! 죽여 버릴 거야! 내 전 재산! 내 전 재산 내놓으라고!"

환호와 비난.

하이라이트는 끝이 났다.

그러면 이제 막을 내릴 시간이다.

빠아악!

내 주먹이 데크의 복부를 강타했고.

데크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놈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쿨럭!"

놈은 피를 토해냈다.

다시 한 번 더.

다시, 또다시.

또 한 번!

콰아아앙!

"커허어어어억!"

놈은 배를 움켜쥐고는 바닥에 자빠져서 쉴 새 없이 피를 토해냈고.

쿵!

거구의 몸이 바닥으로 쓰러져 내렸다.

"우아아아아아아아!"

다시 한번 환호가 울려 퍼졌다.

[130 포인트 획득.]

[110 포인트 획득.]

[120 포인트 획득.]

[230 포인트 획득.]

.

.

.

'괜찮네.'

나는 대기실을 향해 몸을 돌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