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상태창이 달라졌다-30화 (30/277)

30화

"동희야. 이것 좀 볼래? 네가 자빠져 자고 있는 동안 벌어진 일이란다. 으응?"

"..."

여자의 물음에 한 남자가 시선을 회피했다.

"왜 말이 없는 거니? 응? 지금 나한테 개기는 거야, 혹시?"

여자는 지금 한 손에 든 종이를 펄럭이며 남자의 얼굴 앞으로 가져갔다.

그 종이 위에는 강민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오늘부로 업데이트된 1관문 통과자 목록이란다. 눈이 있으면 똑바로 봐주렴, 제발. 이 새끼야."

[한강민 : 51:05:03]

밑으로도 수많은 이름과 함께 숫자들이 적혀 있었다.

숫자는 11층에 올라와서 첫 번째 관문을 통과하는 데 소요된 시간이다.

"51시간. 그리고 바로 그 밑이 160시간이야. 이 현상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지?"

"...머리가 멍한데요."

"그게 네가 할 말이니, 지금? 네가 할 일이 뭔데, 이 새끼야!"

여자의 호통에 남자가 몸을 움츠렸다.

"아, 진짜..."

"아, 진짜~아~? 진짜아아아? 확! 그냥!"

그들은 위드 길드의 스카우터들이다.

11층에 올라온 플레이어들 중 두각을 나타내는 이를 발견하고 접촉하는 것.

10층을 뚫고 11층에 올라섰다는 건, 이미 어느 정도 실력이 증명됐다는 뜻이다.

게다가 14번 방랑 무사를 선택했다는 건 개중에서도 압도적인 실력을 지녔다는 뜻.

덕분에 11층부터는 거대 길드의 스카우터들이 활동하고 있었다.

당연히 그 수는 많지 않다.

거대 길드에서도 고작 둘.

그건 층간 이동이 가능한 아티팩트의 가격이 상상을 초월하기 때문이다.

성능에 따라 한 명, 혹은 두 명.

많아야 세 명을 이동시킬 수 있는 아티팩트.

거대 길드에서도 층간 이동 아티팩트를 고작 서너 개 정도 가지고 있는 게 전부였고.

그중 하나는 이런 식으로 스카우터들에게 제공되곤 했다.

"야 이 새끼야. 내가 관문 앞 꼭 지키고 있으라고 했어, 안 했어? 엉?"

"아오.. 졸렸어요. 사람이 어떻게 잠을 안 자. 지금 일주일을 새고 두 시간 잤는데! 그만 좀 갈궈요!"

"갈궈? 갈궈? 이 새끼가!"

"아, 진짜로! 딱 눈 붙인 두 시간 사이에 지나갈 줄 누가 알았냐고요..."

"...아아아. 미치겠네."

여자는 머리를 쥐어뜯었다.

울화가 치밀었다.

사실 남자의 잘못이 아니란 것도 알고 있다.

남자는 최선을 다했으니까.

그런데 운이 없었을 뿐이다.

말 그대로 그 두 시간 사이에, 저런 말도 안 되는 괴물이 관문을 통과할 것이라고.

대체 누가 생각이나 했다는 말인가.

"쫓아."

"예?"

"쫓아가라고."

"아니, 무슨..."

"그럼. 이런 놈 놓칠 거야? 이 정도 속도면 어떤 능력을 가졌는지 짐작도 안 되는데?"

"그래도..."

"지금 다른 길드에서 이 사실을 모를 것 같아? 눈에 불을 켜고 찾고 있을걸? 그리고 우리가 얘를 놓쳤어. 그리고 다른 길드에 들어갔고. 그걸 길드장님이 눈치를 챘어. 그러면 어떻게 될까?"

"....가야죠. 그럼요. 쫓아가야죠. 근데 어디로 갔을지 어떻게.."

"어디로 갔을까? 이렇게 센 놈이 12층에 도착하면 뭐부터 할까?"

그 말에 남자는 아, 하며 입을 벌렸다.

"아... 그러네. 내가 멍청이네. 한 대 때려 줄래요?"

"아니. 널 이토록 사랑하는데, 어떻게 너를 때리겠니."

"아, 싫다. 쫓아갈게요."

남자는 급히 몸을 일으켜 방에서 재빠르게 빠져나갔고.

"저걸 진짜..."

여자는 다리를 꼬고 눈앞에 있는 종이를 바라봤다.

"말이 돼? 사흘도 걸리지 않았다니... 뭐 하는 새끼니, 너는?"

그녀의 눈동자는 갈 길을 잃고 흔들렸다.

***

지금은 한밤중이었다.

"무, 무섭.. 무섭습니다..오호호.."

몰른이 말했다.

그럴 수밖에.

이쪽 세상의 밤은 말 그대로 무법지대다.

탑 바깥, 대한민국의 치안을 생각해서는 안 된다.

사실 현대에서 해외로만 나가도 밤에는 돌아다니지 않는 게 좋다는 말이 있을 정돈데.

'이 시대의 밤이라면 말할 것도 없지.'

아마 몰른이 납치를 당했던 것도 밤에 떠돌아다니다 벌어진 일일 것이다.

"정말 무서워?"

내가 떨고 있는 몰른을 보며 말했다.

그 순간 몰른의 안색이 밝아졌다.

"아뇨!"

"그래. 그럼 됐다."

"으음. 그래서 다음 목적지는 어디인가요? 우리의 모험이 기다리고 있는 곳은?"

"울번."

"울버어언?"

"그래. 울번."

"그렇군요!"

몰른이 폴짝폴짝 뛰었다.

울번.

그건 바로 12층에 존재하는 도시의 이름이다.

내가 방금 지나온 도시보다 훨씬 더 규모가 큰 도시.

'그곳에서 마법 명가 녀석들에 대한 정보를 캘 수 있는 대로 캐낸다.'

큰 도시에는 비단 많은 정보들이 모이기 마련.

그렇다면 마법 명가 녀석들의 꼬리를 추적할 수 있으리라.

'그리고 포인트를 쌓아야지.'

12층에 올라선 순간부터 포인트가 다시 오르기 시작했다.

어느덧 내 포인트는 2000포인트를 훌쩍 넘어섰다.

모두가 잠든 밤인데도 이 정도 속도라니.

몰른의 후렴구가 제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는 모양.

'12층도 똑같이 1만 포인트가 필요하지만, 포인트를 쌓는 건 더 어려워지는데도 이 속도라는 건. 대단한 일이지.'

다음 관문을 지나가기 위해 필요한 건 같은 1만 포인트지만, 그 밀도가 다르다.

같은 명성을 쌓아도 12층에서는 11층보다 더 적은 포인트가 오른다는 말.

그리고 울번에서는 포인트를 더욱더 빠르게 쌓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

'투기장이지.'

사람이 많은 곳에는 돈이 모이고.

돈이 넘쳐나는 곳에는 당연히 볼거리가 필요한 법.

그래서 생겨난 투기장.

'그곳이라면 포인트를 순식간에 쌓을 수 있어.'

그게 바로 다음 나의 계획이다.

투기장에서 명성을 제대로만 쌓아 놓는다면 지금의 속도와는 비교도 안 될 속도로 포인트를 얻을 수 있다.

"가자, 몰른."

"좋아요! 좋아! 오호호호! 벌써부터 악상이 마구마구 떠오르네요! 오호호!"

"시끄러. 밤이다."

"으헛!"

몰른은 다급하게 입을 틀어막았다.

나는 피식 웃으며 앞으로 걸어 나갔고.

몰른도 내 뒤를 조심스럽게 따르고 있었다.

***

벌써 수차례 이어진 몬스터들과 도적떼의 습격을 처치했다.

파각!

키에에엑...

마침 마지막 몬스터의 머리통을 깨부순 참이었다.

그때였다.

[레벨 업!]

[30레벨 달성!]

마침내 레벨이 30에 도달했다.

여길 오는 동안 그만큼 많은 전투를 치렀다는 뜻이다.

'앞으로는 레벨업이 더 어려워지겠지.'

20레벨까지가 튜토리얼이었다면, 30레벨부터는 슬슬 본궤도에 오르는 시점.

그리고 그와 함께 떠오른 또 하나의 메시지.

그걸 본 순간 입꼬리가 절로 하늘로 치켜 올라갔다.

[두 번째 포식 슬롯이 개방 시킬 수 있습니다.]

[필요 포식 포인트 : 30000p]

드디어 포식 슬롯이 생겨났다.

'3만 포인트.'

적지 않은 포인트다.

하지만 망설일 이유는 없다.

어차피 지금 가지고 있는 포식 포인트는 넘칠 정도니까.

곧바로 포식 슬롯을 개방했다.

그런 뒤 상태창을 펼쳤다.

[상태창]

>이름: 한강민

>레벨 : 30

>스탯

-육체

힘 : 123.15

민첩성 : 118.11

체력 : 122.01

-정신

마력 : 30

>능력

1. 포식자 (S)

2. 뇌전검 (S)

3. 충격파 (AA)

4. 오우거의 신체 (AAA)

5. 포식 슬롯 (empty)

포식 포인트 – 9340p

3만 포인트를 사용하고도 9000이 넘는 포식 포인트가 남아 있었다.

육체 스탯은 말할 것도 없다.

그보다 나를 즐겁게 만드는 건 능력 가장 밑에 있는 포식 슬롯.

'이걸로 됐어. 정말로 30레벨에 포식 슬롯이 열릴 줄이야.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상황이다.'

이제는 망설이지 않고 탑을 뚫고 나가기만 하면 된다.

포식 슬롯 때문에 레벨을 올리며 탑에 머무를 이유가 없다는 말이다.

'20층 이내에서 명가 녀석을 하나 만나면 좋을 텐데.'

그렇게 생각하며 입꼬리를 비틀었다.

물론 그건 불가능한 일이다.

아무리 초창기라고 한들, 명가의 재원들이 고작 20층 이내에서 허덕이고 있을 이유는 없으니까.

'물론 명가가 아니더라도 좋은 능력을 가진 이들은 많다.'

전에 말했던 대륙의 고수들.

명가의 능력에 결코 뒤지지 않는 뛰어난 능력을 가진 녀석들이다.

'그중 하나만 내 손에 넣어도, 나는 압도적으로 강해질 수 있어.'

물론 그들을 만나기 전에 나는 더 강해져야 한다.

지금의 상태로는 부족하다.

'놈들은 플레이어로 치자면 100레벨은 아득히 초월한 강자들.'

지금 나의 육체 스탯은 고작해야 100레벨 초반 수준에 머물러 있을 뿐이다.

'적어도 모든 육체 스탯을 최소 130 이상으로 올려야 해.'

16층에 올라가기 전, 내가 해야 할 일이다.

그 정도는 되어야 전생에서도 그 누구도 해내지 못했던 히든피스를 달성할 수 있다.

'할 수 있어.'

쉽지 않지만.

지금 내가 가진 능력이라면 못 할 것도 없다.

그렇게 생각하며 얼마를 더 걸었을 무렵.

"모험가십니까?"

경비병이 내 앞을 가로막았고.

드디어 도착했다.

"맞습니다."

***

"이름은 한강민. 무기는 검."

"접수됐소."

울번에 도착하자마자 투기장에 전사로 등록했다.

등록은 어렵지 않다.

지금 한 것처럼 이름과 간단한 인적사항, 그리고 주무기를 적어서 제출하면 끝.

'접수가 간단하다고 투기장을 무시할 수는 없지.'

투기장은 말 그대로 대륙 전역에서 싸움 좀 한다는 이들이 모두 모여드는 곳이다.

게다가 울번처럼 규모가 큰 도시라면 말할 것도 없다.

용병, 퇴역 군인, 그리고 플레이어들까지.

플레이어들의 목적은 다 나와 같다.

투기장이야 말로 가장 빠르게 포인트를 쌓을 수 있는 곳이니까.

하지만 이런 장점 뒤에는 거대한 리스크가 존재하기 마련.

'리스크는 바로 목숨이지.'

투기장에서는 하루에도 수십 명이 넘게 죽어 나간다.

관중들은 싸움꾼들이 처참하게 죽어 나갈수록 환호하고 더 많은 돈을 뿌린다.

투기장 자체는 불법이지만 누구도 단속하지 않는다.

투기장 주인의 돈이 이곳저곳에 흘러 들어갔을 테니까.

'덕분에 굳이 투기장을 이용하지 않는 플레이어도 많아. 포인트를 얻는 방법은 투기장 말고도 많으니까.'

그렇지만 나는 가장 빠른 길을 두고 돌아 갈 생각 따위는 없다.

"당신의 경기는 한 시간 후요. 처음이니까 적당한 상대로 맺어 질 거요. 저쪽 가서 앉아 있거나 마지막 식사라도 해 두쇼. 흐흐."

접수원은 나를 보며 음흉한 미소를 흘렸다.

특히나 마지막 식사, 라는 말을 뱉으면서는 내 몸을 한번 훑었다.

내가 금방 죽어 나갈 거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그렇다고 불쾌한 감정이 들지는 않았다.

저 사람 입장에서야 어떻게 보면 당연한 말일 테니까.

그동안 호기롭게 투기장에 접수한 이들이 얼마나 많이 죽어나갔겠는가.

"충고는 고맙군."

"그 옆은?"

접수원이 몰른을 보며 말했다.

"허윽! 저는 아닙니다요오... 오호호..."

몰른은 잔뜩 겁을 먹은 채 내 뒤로 숨었다.

주변에선 몰른의 그런 모습을 보며 싸움꾼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저 머저리 같은 새끼. 썩 꺼져!"

"비실비실한 게 여기가 어딘 줄 알고 들어오는 거야? 크하하하!"

주변을 둘러봤다.

다들 험상궂게 생긴 건 말할 것도 없다.

듣도보 못한 흉측한 무기를 들고 있는 녀석도 많았고, 얼굴과 온몸에 상처들이 가득했다.

"뭘 봐, 새끼야?"

그때 한 녀석이 나와 시선을 마주치자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나는 대꾸하지 않고 접수원을 바라봤다.

"저 덩치."

"음?"

"저 머저리랑 붙여 주십쇼."

"..."

잠시 나와 놈을 바라보던 접수원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거 괜찮군."

그 말을 들은 녀석의 입이 길게 찢어졌다.

"으하하하하! 미친 새끼! 죽고 싶어서 환장을 했구나!"

저 먼 곳에는 조금 전 시비 붙었던 녀석이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주변에는 놈들의 똘마니가 함께 모여 시시덕거리며 나를 비웃는 데 열중하고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주변에 있는 녀석들을 샅샅이 살피며 놈들의 능력을 분석했다.

'없다. 아쉽게 됐어.'

쓸 만한 능력은 없다.

그렇게 시간이 조금 더 지났을 무렵.

"한강민! 그리고 데크!"

접수원이 내 이름을 불렀다.

드디어 내 차례가 다가왔다.

어느새 데크는 내 옆으로 다가왔다.

"죽이지는 않을게. 다리 두 짝에 팔 하나. 그 정도면 남은 인생 동안 밥은 먹을 수 있지 않겠어? 크하하하하!"

나보다 머리 하나 만큼은 더 큰 키.

나는 데크를 바라보며 말했다.

"무섭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