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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상태창이 달라졌다-27화 (27/277)

27화

우걱

쩝쩝

몰른은 내가 꺼낸 음식을 바쁘게 먹어 치우고 있었다.

한눈에 봐도 굶은 게 꽤 오래된 것 같아 보였는데.

어쩌면 내가 생각한 것 이상일지도 모르겠다.

"이 정도면 거래는 성립됐다고 생각해도 괜찮겠지?"

우걱

몰른은 대답도 채 하지 못한 채 고개를 바쁘게 끄덕였다.

마지막 남은 음식까지 다 먹고 난 뒤에야 크게 한숨 내쉬며 입을 열었다.

"우허.. 허어.. 살 것.. 살 것.. 같습니다.."

얼마나 열심히 음식을 먹었는지 숨까지 헐떡이고 있다.

"별 건 없다. 앞으로 너는 내 모습을 잘 지켜보고 너의 노래로 만들어."

"으음?"

몰른이 고개를 갸웃했다.

겨우 그거냐는 표정으로.

"그래. 겨우 그거다. 하지만 내게는 아주 중요한 일이야. 물론 그것 말고도 더 중요한 게 있어."

"오호호! 그게 뭐죠? 노래란 본래 저의 일! 그 정도야 얼마든 해 드릴 수 있답니다!"

"앞으로 적어도 몇 달 동안은 너는 나를 쫓아다니면서 계속해서 노래를 만들고 나에 대한 노래만 하는 거다. 대륙 어디를 가든지 말이야."

이게 바로 포인트다.

단발성은 안 된다.

적어도 내가 20층을 돌파하기 전까지, 놈은 나에 대한 무용담을 널리널리 퍼트려야 한다.

그래야 나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포인트를 쌓아 올릴 수 있을 테니까.

"오호호.."

몰른의 웃음이 조금 작아졌다.

하지만 이내 생각을 마친 몰른의 표정이 밝아진다.

돈에 욕심 없다고 말한 것치고는 머리 굴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오는 것 같았지만.

상관은 하지 않는다.

어차피 나도 공짜로 부려 먹을 생각 따위는 없으니까.

세상 모든 것에는 오고 가는 것이 있어야 한다.

"싫은가?"

"그럴 리가요! 열심히 하겠습니다! 오호호호!"

몰른의 표정이 밝아졌다.

지금 이곳이 노예 상단의 마차라는 사실을 이미 한참 전에 잊어버린 것 마냥.

'어린애 같군.'

멍청한 건지, 순수한 건지.

몰른은 그 오묘한 경계를 넘나들고 있었다.

***

"이번에는 괜찮은 애들 좀 들어오려나."

"몇 명이나 온답니까."

"듣기로는 사십 명 좀 넘는다는데."

"크. 돈 더럽게 깨지겠네요."

남자가 인상을 찌푸리고 고개를 저었다.

"어쩌겠냐. 할당량 채우려면 그것도 모자랄 지경이야. 그나마 돈 떼어먹을 만큼은 남긴 거니까 어쩔 수 없지."

"하여간. 저번에 쓸데없는 것들만 데리고 오는 바람에 많이 못 남겼잖아요. 이번에도 쓰레기밖에 없으면 상인 한 번 털어 버립시다."

"그러던가."

그곳에는 열 명 남짓의 플레이어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은 곧 도착할 노예상을 기다리며 모여 앉아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지금 그들이 있는 곳은 숲속 한가운데였는데, 숲이라고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훌륭한 저택이었다.

웬만한 부잣집 부럽지 않을 정도의 가구들까지.

"야, 거기. 똑바로 일 안 해? 확!"

"죄, 죄송합니다!"

집 안에는 하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여럿 집을 정리하며 그들에게 끊임없이 음식을 나르고 있었다.

값비싸 보이는 저택과 가구와는 별개로 그들은 모두 피골이 상접해 있는 상태.

"이건 어떻습니까."

"뭔데?"

한 남자의 제안에 대장으로 보이는 플레이어가 되물었다.

"그냥 탑 올라가 버리는 거죠. 솔직히 이제 우리 정도 짬밥이면 아래에서 이러고 있을 필요는 없잖아요?"

"확! 씨!"

"왜요.."

대장은 고개를 저었다.

"너도 알 거 아니야. 우리한테 돈 이렇게 보내주는 사람들이 누군지."

"음.. 그렇죠."

"근데 그런 생각을 해? 우리는 그냥 여기에서 이렇게 놀고먹으면 돼. 그러면 돈이 끊임없이 들어온다고."

"으으음..."

남자가 입맛을 다셨다.

"하기야. 그 분들 정도면 돈줄이 끊길 걱정은 없을 테니까."

"그래. 그러지. 그리고 어차피 여기에 발을 들인 이상 괜히 말 안 듣고 탑 올랐다가 그분들한테 걸리면..."

"그건 안 되죠. 안 돼."

남자는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는 듯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우리는 여기에서 앞으로도 쭈욱~ 안락하게 즐기면 된다, 이 말이야. 탑을 왜 올라? 뭐하러 그런 개같은 고생을 하느냐는 거지."

"그 말도 맞네. 쩝."

남자는 다시금 입맛을 다시며 맥주를 삼켰다.

"그래, 맞다. 이렇게 사는 것도 좋지, 뭐. 크하하하!"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며 맥주를 마시고 있을 무렵.

"주, 주인님..."

문밖에서 여자 한 명이 걸어 들어왔다.

역시나 삐적 말라 있었고, 옷은 다 해져서 허름하기 그지없다.

"뭐야."

"사, 상인이.. 도착했습니다."

"생각보다 빨리 왔네."

"그러게요?"

그 말과 함께 대장과 그 바로 옆에 있는 플레이어가 플레이어 몇몇을 가리켰다.

"야, 몇 명 나가서 물건 상태 확인해."

"예. 알겠습니다."

대장의 지목을 받은 이들은 들고 있던 맥주를 한입에 비우고 몸을 일으켰다.

"좋다 좋아. 그치?"

그들은 지나가며 일하는 하인들의 뒤통수를 때렸다.

뒤통수를 맞은 하인은 아픈 내색도 하지 못한 채 다시 자신의 일에 열중하기 시작했다.

벌컥!

세 명의 플레이어가 밖으로 집 밖으로 나왔다.

저 먼 곳에 마차 몇 대가 보였고.

지금 막 노예상의 주인이 마차 밖으로 몸을 내리고 있었다.

"하긴! 오랜만이다? 흐흐."

하긴.

그것이 노예상주의 이름이었다.

하긴은 총총걸음으로 집 밖으로 나온 플레이어들을 향해 달려왔다.

"아이고. 이렇게 번번이 찾아 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요!"

그러고는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

"근데 뭔 일 있어? 표정이 왜 그래?"

"하하.. 아, 아닙니다. 배가 탈이 났는지.. 흐흐.."

그러면서도 하긴은 슬쩍슬쩍 마차 뒤를 살폈다.

강민이 있는 마차 말이다.

그는 지금 내색은 못 하지만 머리가 터져 죽을 것만 같았다.

'젠장. 젠장. 젠장. 어떡하지?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하긴은 강민의 속셈이 무엇인지 대충 눈치는 챌 수 있었다.

뻔하다.

자신을 노예로 만들어 팔라는 미친놈이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이 괴물들하고 싸우려는 건가? 진심으로?'

이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하긴이 알기로 지금 눈앞에 있는 플레이어들은 괴물이다.

벌써 이곳에 머무른 게 족히 4년은 넘었고.

노예상을 단속하기 위한 기사단들조차 몇 번이나 괴멸시킨 전력이 있다.

'하지만 진짜 무서운 건 그것뿐만이 아니지.'

하긴은 몸서리를 쳤다.

바로 이들의 뒤에 있는 세력 때문이다.

'몇 번 토벌대가 괴멸된 이후로 토벌대는 아예 발길조차 끊겼어. 이 자들의 뒤에 있는 배후 세력 때문에...'

하긴은 대륙의 소식에 대해서는 꿰뚫고 있다.

그는 노예거래뿐만이 아니라 이런저런 곳에 손을 뻗고 있는 나름 이름 있는 상단주였으니.

각종 소식에는 능통할 수밖에.

'지금 이들의 뒤에 있는 배후 세력은 모험가들의 길드야. 그것도 웬만한 귀족들도 함부로 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길드...'

절대 엮이면 안 된다.

기사단을 궤멸시키고도 이곳에서 눌러 앉아 있을 수 있다는 것만 생각해도, 그 배후의 세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쉽게 유추 할 수 있다.

하긴은 이번 거래를 끝으로 노예 거래에는 아예 손조차 떼어 버릴 생각이다.

'설령 그 녀석이 이들을 쓸어버린다고 해도. 그것도 문제다.'

이들의 배후에 있는 모험가 길드가 강민을 결코 가만히 두지 않을 테니까.

하긴은 조심스럽게 마차로 다가가 그가 데리고 온 노예들을 밖으로 꺼냈다.

"나, 나오.. 거라..."

강민이 있는 마차에 다가가서 하긴은 저도 모르게 목소리가 떨려오는 것만 막을 수 없었다.

상단의 일꾼들이 노예들을 마차 밖으로 한 명씩 밖으로 꺼냈다.

첫 번째 마차부터 하나씩 노예들이 나와 줄을 서기 시작했다.

마침내 강민이 들어가 있는 마차 안에서도 노예들이 하나둘씩 몸을 내렸고.

결국.

"오래 걸렸군."

강민이 모습을 드러냈다.

너무나도 태연한 강민의 모습을 보며 하긴의 심장은 터질 듯이 두방망이질 치기 시작했다.

***

상단주는 나를 본 순간 몸을 경련하듯 떨었다.

"앞장서라."

"그, 그것이.. 제 역할은 이제 끝이..."

"아니지. 돌아갈 때 나를 데리고 가야 할 것 아니야?"

"...허, 헉.."

"뭐 해! 하긴! 빨리 데려 오라고!"

저 쪽에서 외침이 들려왔다.

'하긴이 이 녀석의 이름인가보군.'

이름 따위는 중요한 게 아니다.

사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놈의 역할은 고작 운송뿐이 아니다.

'저 녀석들의 배후를 확실히 털어 내야지. 내 예상대로 뒤에 마법 명가가 있는 게 맞는다면. 사냥꾼을 박멸한 것과는 차원이 다르게 놈들에게 피해를 입힐 수 있을 거다.'

저 앞에 있는 이들은 플레이어가 확실하다.

동양인.

11층에서 20층 사이에 존재하는 동양인은 9할 이상이 플레이어라고 보면 되니까.

"오라는데?"

"크읍.."

하긴은 입술을 잘근 깨물고 플레이어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나도 노예들 뒤쪽에 가서 줄을 섰다.

내 옆에서는 몰른이 뭐가 그리 신나는지 히죽거리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아무래도 벌써 가사를 쓰고 있는 것 같은데, 이 녀석도 확실히 제정신은 아니다.

저 앞에서는 하긴과 플레이어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고.

플레이어들은 노예들을 하나씩 살피며 점점 내가 있는 곳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한 사람, 한 사람.

훑어보며 옆으로 보내고 있던 중.

이제 곧 내가 서 있는 열까지 다가왔다.

'이제 움직여야겠군.'

나는 몰른의 어깨 위에 손을 얹었다.

꽈악

내 악력을 느낀 몰른이 눈을 번뜩였다.

"잘 봐라. 그리고 최대한 괜찮은 가사를 뽑아 보도록."

몰른이 고개를 바쁘게 끄덕였다.

카앙!

나는 아공간으로부터 검을 뽑아 들었다.

장인의 손을 거친 도검.

그 날카롭고 물결무늬가 새겨 있는 검이 햇빛을 반짝이며 검광을 뿜어냈다.

그와 동시에.

"저, 저자는 흑심을 품고 있습니다!"

하긴이 소리쳤다.

"저, 저는.. 저는 아무 잘못이 없어요! 저 녀석이 저를 겁박했습니다!"

발을 뺐다.

"뭐? 뭐라고?"

"이, 이 새끼 플레이어잖아!"

그제야 나를 발견한 세 명의 플레이어가 다급하게 외치며 무기를 뽑아 들었다.

하지만 늦었다.

타다닥

이미 뇌전검은 활성화되었고.

휘익!

내 시야가 순식간에 세 명의 플레이어와 가까워졌다.

파가각!

순식간에 허공을 가르며 전류를 흩뿌린 뇌전검.

푸학!

찰나의 순간에 허공에 피가 흩날렸다.

"크어어억!"

"카아악!"

"커흑!"

세 명의 몸통과 하체를 갈라낸 뇌전검은 멈추지 않았고.

파직! 파득! 콰가각!

순식간에 세 명의 플레이어는 바닥에 쓰러졌다.

"꺄아아아악!"

"허어억!"

"뭐, 뭐야! 무슨 일이야!"

옆에 있던 노예들은 혼비백산하며 괴성을 내질렀다.

하지만 그들은 차마 도망 칠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이 사태를 살피기에 정신이 없었다.

"몰른."

"예, 예!"

몰른의 목소리에는 군기가 가득 잡혀 있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묘하게 들떠 있다는 게 여실히 느껴졌고.

"저 사람들 잘 달래고 있어."

"예, 예! 여러분들 제가 노래를 불러 드리겠습니다! 오호호!"

그러더니 다시 류트를 꺼내 들고 현을 튕기기 시작했다.

치지직-

이제야 뇌전검의 사용 시간이 끝이 났다.

"허, 허어윽...!"

하긴은 순식간에 벌어진 참경에 뒷걸음질 치고 있었다.

"잘 떠들던데."

나는 입꼬리를 한껏 비튼 채로 하긴을 향해 다가갔다.

"사실 이렇게까진 안 하려고 했는데."

"제, 제발...! 아, 안돼!"

파직!

나는 놈의 발목을 짓밟았다.

"그러게 가만히 있지 그랬어."

대답은 없었다.

놈은 이미 기절을 했는지 눈을 까뒤집은 채 기절했으니까.

그리고 그때.

"뭐야! 무슨 일이야!"

저 앞에 있는 화려한 저택에서 몇몇의 플레이어가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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