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
괴물은 괴물이다.
관절이 망가지고 뼈가 부러져도 놈은 악착같이 나를 향한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완전히 파괴했다고 생각한 관절은 끊임없이 재생됐다.
뼈의 회복 속도는 관절의 회복 속도보다 훨씬 더 빨랐다.
이제 막 놈의 오른쪽 어깨를 완전히 망가트렸다.
그럼에도 놈은 기필코 다시 자리에서 일어섰다.
잘려나간 발을 재생시키지는 못했지만 발이 없는 상태로 몸을 지탱하고, 왼쪽 팔을 맹렬히 휘두르며 나를 위협했다.
'침착하자. 상황은 내게 훨씬 더 유리하니까.'
나는 잠시 놈과의 거리를 벌렸다.
한순간이라도 방심했다가는 뼈도 못 추릴 게 분명하다.
나는 놈을 바라봤다.
놈 역시 가만히 서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녀석은 내게 만만치 않은 상대라는 걸 인정했다는 듯이 쉽게 달려들지 못했다.
'오른팔은 너덜너덜해. 당분간 20분 정도는 제대로 된 공격을 할 수 없을 거다.'
싸움을 오래 끌 순 없다.
앞으로 20분.
놈이 팔을 완전히 회복되기 전에 놈을 쓰러트려야 한다.
내가 체력이 높다고는 하지만 오우거에 비하면 한참 모자라다.
'기회를 잡았을 때 완벽하게 몰아쳐야 해.'
나는 다시 놈을 향해 몸을 날렸다.
뇌전검이 활성화되며 순간적으로 민첩성이 치솟았고.
나는 순식간에 놈의 뒤쪽에 도착했다.
놈은 다급하게 몸을 돌렸지만, 내 속도를 따를 수는 없었다.
'무릎 뒤쪽.'
지금 내가 노리는 부분이다.
발이 잘린 반대 쪽 무릎 말이다.
휘이익!
뇌전검이 허공에 전류를 흩뿌리며 놈의 무릎을 향해 날아들었고.
파득!
놈의 무릎 관절을 관통했다.
아직도 뇌전검의 효과는 끝나지 않았다.
'충격파도 함께.'
우우우웅!
일순 내 검이 강하게 공명하기 시작했다.
아직도 검은 놈의 무릎에 박혀 있는 상태다.
그때.
콰드드득!
충격파가 놈의 무릎을 안쪽에서부터 파괴했다.
"그어어어어!"
놈은 괴성을 내질렀다.
몸을 격하게 흔들며 나를 떨쳐내기 위해 발버둥 쳤다.
하지만 나는 악착같이 버티며 검을 뽑지 않았고.
꽈아아악!
더 강하게 힘을 줬다.
그 순간.
파직!
검이 놈의 무릎을 완전히 관통하며 반대쪽으로 돌출됐다.
검을 한 번 비틀며 당겼다.
검이 뽑혔다.
콰드드득!
놈의 무릎이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놈의 몸이 빠른 속도로 고꾸라졌다.
'지금을 놓치면 안 된다.'
완벽하게 놈의 숨을 끊어 낼 수 있는 절호의 타이밍이다.
뇌전검의 효과는 끝이 났다.
하지만 괜찮다.
'놈의 심장에 충격파만 박아 넣을 수 있으면.'
채앵!
놈의 무릎에서 뽑혀 나온 검이 번뜩였다.
나는 쓰러지는 놈의 몸을 타고 오르며 등 쪽을 향해 내달렸다.
그 와중에도 놈은 내게 등을 보이지 않기 위해 몸을 뒤틀었다.
부우웅!
거대한 왼 주먹이 나를 향해 날아들었고.
나는 공격을 피해내기 위해 짧게 도약했다.
콰아아앙!
놈의 주먹이 자신의 옆구리를 강타했다.
갈비뼈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놈은 다시 한번 포효했고.
처억!
공중에서 검을 역수로 고쳐 잡았다.
양손으로 검을 부여잡은 채 놈의 가슴팍을 향해 치달렸다.
놈의 눈이 거세게 흔들리고 있었다.
놈은 다급하게 자신의 갈비뼈를 내리친 주먹을 회수했다.
놈의 주먹이 나를 향해 날아들고 있었다.
'길어야 1초 남짓.'
놈의 주먹이 나에게 닿을 때까지의 시간이다.
갈비뼈가 고통스러운 지 놈의 주먹에 담긴 힘은 그리 강하지 않았다.
덕분에 주먹의 속도도 느려졌다.
그렇다고 해서 만만한 공격이라는 뜻은 아니지만.
놈의 심장이 격동치고 있다.
쿵! 쿵! 쿵!
놈의 심장이 요동칠 때마다 내 몸으로 그 떨림이 느껴졌다.
그 순간.
파직!
검이 놈의 가슴을 꿰뚫었다.
손끝으로 갈비뼈의 묵직한 촉감이 느껴졌다.
여전히 놈의 주먹은 나를 향해 날아오고 있었었고.
나는 멈추지 않았다.
찰나의 순간이다.
1초도 채 되지 않는 그 짧은 순간에, 놈과 나는 서로의 목숨을 노리며 마지막 일격을 가하고 있는 중이다.
이를 악물고 신음을 쏟아내며 온 힘을 다해 검을 박아 넣었다.
검은 여전히 충격파를 내뿜으며 공명하고 있었고.
놈의 심장을 향해 치달렸다.
푸훅!
닿았다.
단말마의 비명이 울려 퍼진다.
투욱
나를 향해 내달리던 놈의 왼 주먹이 허공에서 멈춰 섰다.
내 바로 옆이었다.
하지만 아직이다.
나는 조금 더 힘을 줬다.
검이 파고들었다.
쿠우웅!
저 안쪽에서 무언가 폭발했다.
놈의 심장이다.
"허억.. 허억..."
나는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이제 더 이상 놈의 심장이 움직이지 않았다.
내 몸으로 전해지는 심장 박동도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됐다."
나는 지금 오우거를 처치했다.
그것도 혼자서.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히든피스 '오우거 슬레이어'를 달성했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오우거의 신체'가 사용자의 상태창에 각인됩니다.]
[오우거의 신체 – AAA]
>오우거의 신체 능력을 10분간 빌려 올 수 있다.
>스킬 사용 시 10분간 힘, 체력, 민첩이 증폭된다.
>스킬 사용 시 10분간 오우거의 방어력과 신체 회복 능력이 발동된다.
>재사용 대기시간 : 1시간
드디어 손에 넣었다.
오우거의 신체.
재사용 대기시간이 길기 때문에 자주 사용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런 조건을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의 능력이야.'
설명에 나와 있는 그대로 10분 동안은 오우거의 괴물 같은 신체 능력을 빌려 올 수 있다.
게다가 스탯이 증가할수록 그 위력은 더욱더 증폭된다.
'10분이면 충분히 싸움을 끝마치기에 충분한 시간이지.'
특히나 11층부터 20층을 빠르게 돌파하기 위한 내 계획.
그것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 무엇보다 필수적인 능력이다.
'이것만 있으면 전생에서도 누구도 해내지 못했던 일을 내 손으로 해낼 수 있을 거다.'
나는 이클립스 한 뿌리를 꺼내서 씹었다.
비록 놈에게 직접적인 공격을 당한 건 아니지만, 나도 피해가 없는 건 아니다.
충격파를 반복적으로 사용한 후유증으로 관절과 뼈마디가 욱신거렸다.
또 급격하게 방향을 전환하며 내 근육도 크게 놀란 상태다.
게다가 놈이 땅을 내리치며 튀어 오른 파편들로 인한 상처까지.
"후우.."
이클립스 한 뿌리를 다 씹어 넘겼다.
욱신대던 관절과 찢어질 것 같았던 근육들이 차차 안정되기 시작했다.
풀썩
나는 바닥에 내려와 앉았다.
그리고 쟁여 뒀던 오크 고기 한 덩어리를 꺼냈다.
조금 큰 덩어리다.
입에 넣고 씹었다.
고생한 나를 위한 일종의 선물이다.
그때였다.
저 먼 곳에서부터 생존자와 파티원들이 나를 향해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그들의 걸음은 꽤나 조심스러웠다.
나를 보는 표정들이 마치 인간이 아닌 괴물을 보는 듯한 표정들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열심히 오크 고기를 씹어 넘길 뿐이다.
"대체 뭐하는 사람입니까? 아니.. 사람이 맞긴 한 겁니까?"
생존자 중 한 명이 내게 물었다.
굳이 대답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저 녀석도 대답을 바라고 물은 질문은 아닐 테니까.
우적
그저 놈을 바라보며 열심히 고기를 뜯었다.
잠재적 고객이다.
"하.. 참..."
그런 내 모습을 보며 녀석은 다시 한번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서 이마를 짚는다.
머리가 지끈거리는 모양이다.
지금 그런 거 신경 쓸 때가 아닐 텐데.
어차피 내가 얼마나 강하던 그건 저 녀석과는 관계없는 일이다.
"그보다 중요한 게 있지 않을까?"
내가 놈을 바라보며 물었다.
놈은 잠시 고개를 갸웃했다.
우적
내가 고기를 다시 물어뜯었고.
그 순간 미세하게 놈의 코가 벌렁거렸다.
"허읍.."
이제야 눈치를 챈 모양이다.
놈의 눈이 격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래, 그거다.
어차피 오우거를 혼자 처치하는 건 저 녀석 입장에서는 감히 꿈에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 거 고민할 시간에 당장 눈앞에 놓여 있는 현실을 바라보는 게 더 중요한 법이다.
손을 뻗으면 손끝에 닿을 수 있는 현실.
그건 바로 오크 고기다.
쿵!
나는 아공간에서 다시 한번 거대한 오크 고기를 꺼내 바닥에 내려놓았다.
"허억.."
"커읍!"
"흡!"
"윽!"
순식간에 사방에서 탄성이 터져 나온다.
이미 고기를 맛본 파티원들은 말할 것도 없다.
그리고 나는 그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한 점에 2000골드."
이전보다 두 배 오른 가격이다.
하지만 충분히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수요가 늘수록 가격은 비싸지기 마련이니까.
가격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구매하지 않으면 된다.
자본의 논리는 탑 안에서도 유효한 법이니까.
***
'10만 골드.'
고기를 다 팔고 얻은 수익이다.
덕분에 현재 내가 가진 총 골드는 30만 골드에 가까웠다.
파티원들은 돈을 아꼈다.
이미 한 번 지출을 했으니 그들의 입장에서는 돈을 많이 사용할 수는 없었을 테니까.
지쳐있던 생존자들은 눈물을 머금고 내게 돈을 건넸다.
'이 정도면 다음 마을에서 원하는 장비를 마음껏 구매할 수 있겠어.'
내가 목표했던 금액은 이미 한참 전에 달성했다.
그렇다고 해서 고기를 더 많이 주지는 않았다.
거래는 언제나 정확해야 하는 법이다.
모두에게 정확하게 같은 양의 고기를 판매했다.
"다들 고기를 맛있게 즐겼으면 좋겠군."
나는 한입 가득 고기를 뜯어 삼키며 말했다.
슬슬 배가 불러왔다.
플레이어들은 쓴웃음과 함께 내게 건네받은 고기를 삼켰다.
그 순간 그들의 입가에는 스스로도 주체할 수 없는 미소가 번졌다.
조금 전의 쓴웃음은 눈 녹듯이 사라졌다.
그들은 잠깐의 행복을 만끽하며 고기의 씹는 맛과 단백질을 보충했으리라.
어쨌든 이제 10층의 보스 몬스터마저 처치했다.
게다가 내가 노리던 히든피스도 결국 손에 넣었다.
'일단 언덕 하나 넘었군.'
고작 작은 언덕 하나일 뿐이다.
이제 나는 막 10층에 도달했을 뿐.
미래의 내 경쟁자인 명가의 플레이어들과 S급의 괴물들은 벌써 저 위층에서 바쁘게 탑을 오르고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오래 머무를 수는 없어.'
나는 몸을 일으켰다.
10층에서 저들과 회포를 풀며 기쁨을 만끽할 생각 따위는 없다.
바로 11층으로 올라설 생각이다.
내가 몸을 일으키자 파티원들이 나를 불러 세웠다.
"가, 강민 씨!"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바로 가실 거예요?"
"그럴 생각이다."
내가 말했다.
그러자 파티원들도 함께 몸을 일으켰다.
"같이 가요, 그럼."
"혹시.. 저희도 같이 갈 수 있겠습니까?"
생존자들도 파티원들을 자리에서 따라 일어났다.
저들도 이제는 확실히 깨달았다는 거겠지.
나와 함께 있는 게 생존율을 높이는 최선의 방법이라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아쉽게 됐다.
이제부터는 저들과 나는 함께 할 수 없으니까.
내가 그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이제부터는 나 혼자 갈 생각이다."
그 한마디에 모두의 얼굴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리더 주강현도 내색은 안 했지만 입꼬리가 파르르 떨려오고 있다.
나와 처음 만났던 최현서와 남은 두 명 역시도 마찬가지.
"왜.. 왜 그러시죠. 혹시 저희가 실수한 게 있다면 말해주세요."
"그래요. 더 열심히 할 게요. 제발..."
나를 보며 사정하기 시작하는 파티원들.
하지만 그런 게 아니다.
저들은 충분히 자신의 역할을 잘했다.
나를 방해하지 않았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제 역할을 한 셈이니까.
"이걸 봐. 이게 바로 너희와 함께 갈 수 없는 이유다."
그 순간 메시지가 떠올랐다.
나뿐만 아니라 모두가 같은 메시지를 보고 있으리라.
[11층으로 진입하시겠습니까?]
[11층으로 가기 전 자신의 역할군을 선택해 주십시오.]
[1. 기사단 – 제한 인원 30명]
>난이도 : 어려움
[2. 용병 – 제한 인원 50명]
>난이도 : 보통
[3. 상단 호위 – 제한 인원 25명]
>난이도 : 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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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방랑 무사 – 제한 인원 1명]
>난이도 : 지옥
11층부터 펼쳐지는 맵은 판타지 세계.
그 안에서 역할을 선택해 할당된 포인트를 채워야 한다.
일종의 롤플레잉.
당연한 말이겠지만 난이도가 어려울수록 포인트를 빠르게 모을 수 있다.
"나는 14번을 선택할 생각이거든. 혹시 14번을 노리는 사람이 있다면 육체의 대화를 통해 해결할 의향도 있긴 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