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화
"뭐라고요...?"
"내가 뭘 잘못 들은 건가?"
"이 정신 나간 사람아! 장난 쳐요?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고 있어?"
어느 정도 예상된 반응이기는 하다만.
어쩔 수 없다.
나는 반드시 10층의 히든피스를 손에 넣어야 하니까.
내가 그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럼 먼저 가시죠. 나는 당신들 실패하고 나면 그때 오우거를 잡을 테니까."
"이런 미친!"
앞에 선 남자가 화가 났는지 고함을 치며 나를 향해 씩씩대며 걸어오기 시작했다.
"어떻게 10층까지 살아 왔다고 뭐라도 된 것 같습니까? 오우거 만나 본 적이나 있어요?"
만나 본 적 있다.
당연한 말씀을.
그때였다.
"그렇게 하시죠."
내 뒤쪽에서 들려온 목소리였다.
"...?"
내 앞에 서 있는 남자는 멍한 표정으로 내 뒤를 바라봤고.
"저는 강민 씨가 하자는 대로 하겠습니다."
그건 리더 주강현의 목소리였다.
"나도요. 강민 씨가 그렇다면 그런 거지."
"오케이, 나도."
"그래 뭐... 오우거가 얼마나 센지는 모르겠는데. 강민 님이 그렇다면 그런 거지 뭐.. 하하.."
나는 남자를 바라보며 피식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그렇다는데?"
"이런 미친.."
그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나와 파티원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실 내가 생각해도 파티원들의 반응은 조금 의외다.
그래도 한두 명이라도 반박할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나는 파티원들을 쭉 돌아봤다.
하지만 그들은 눈을 껌뻑이며 나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당연히 나를 향한 맹목적인 충성심은 아닐 거다.
그럴 리가 없다.
저들과 내가 만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고, 또 나 역시 저들에게 그리 친절한 사람은 아니었으니까.
'체념이겠지.'
어차피 내가 뭐라고 하던 내 고집을 꺾을 수 없다는 걸 이미 깨달았을 테니까.
물론 개중에는 나에게 맹목적인 신뢰를 보내는 이들도 없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불만이 있다면 다음 파티를 기다리시던가."
내가 그렇게 말하자 생존자들은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어차피 나와 함께 온 아홉 명의 플레이어들이 내 선택에 따르기로 한 이상, 저들에게도 선택권은 없다.
일말의 희망을 걸고 내 싸움을 구경하거나, 내 말대로 다음 파티를 기다리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 거다.
"...자신 있습니까?"
생존자 중 한 명이 내게 물었다.
그리고 나는 대답했다.
"자신이 없으면 말도 꺼내지 않았겠지. 나라고 목숨이 남아도는 건 아니니까."
"..."
그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그저 자신을 스쳐 지나가는 나를 보며 멍한 시선을 보낼 뿐이었다.
***
결국 생존자들도 우선은 내 결정에 따르기로 했다.
우선은 말이다.
하지만 여전히 영 미덥잖다는 표정들이다.
사실 당연하다.
나도 저들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한다.
만약 내가 저들의 입장이었어도, 다짜고짜 혼자 오우거를 처치하겠다고 떠들면 욕부터 내뱉을 테니까.
특히나 직접 오우거를 상대해 봤다면, 그리고 동료를 잃어 봤다면 말할 것도 없다.
그러니 나도 저들을 굳이 자극하지는 않았다.
잠시 후 오우거의 영역에 들어섰다.
이곳에서는 더 이상 어떤 몬스터의 흔적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만큼 몬스터들에게도 오우거는 두려운 존재였고.
오우거는 10층의 최상위 포식자다.
싸늘한 공기가 우리를 맞이했다.
생존자들은 벌써부터 겁에 질렸는지 숨소리가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파티원들에게도 그들의 긴장감이 전염되기 시작했는지 그들의 숨소리도 점차 거칠어졌다.
이곳에서 태연한 건 오직 나뿐이었다.
물론 나는 긴장할 이유가 없다.
'확실하니까.'
반드시 오우거를 처치할 수 있다는 확고한 믿음 덕분이다.
뒤에서 떨고 있는 저들에게 고블린을 사냥하라고 하면 긴장하겠는가.
아니다.
긴장할 이유가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고블린을 처치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실력이 있으니까.
나 역시 마찬가지다.
잠시 후.
그르르-
어디선가 거친 숨소리가 들려왔다.
생존자들 몇 명은 그 숨소리만으로도 발작을 일으키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저래서야 아무리 많은 파티가 모인다고 해도 오우거를 사냥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피어 때문이야.'
오우거의 포효에 담긴 피어.
포식자는 존재만으로도 먹잇감을 얼어붙게 만든다.
이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하면 오우거와의 싸움에서 승산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그때였다.
쿠웅
육중한 발소리와 함께 숲속에서 거대한 신형이 모습을 드러냈다.
몸집 하나가 아름드리 솟아있는 나무만큼이나 거대했다.
서늘한 안광에 입 밖으로 튀어나온 송곳니.
그리고 사람의 몸통보다도 두꺼운 팔뚝.
터져 나온 듯이 꿈틀대는 근육.
그 모습만으로도 두려움에 떨게 만들 만한 위용을 지니고 있었다.
"커허억..."
"으, 으어어..."
뒤쪽에서 신음소리가 들려온다.
오우거를 처음 마주한 파티원들도 마찬가지다.
오우거를 상대하는 데에 있어서 가장 큰 분기점은 바로 저 공포를 극복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저 공포만 극복해 낸다면 괜찮은 파티라면 어쨌든 처치는 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게 쉽지 않다는 게 문제지만.
"꼼짝 말고 거기 있어. 괜히 가까이 다가왔다가는 나도 책임질 수 없으니까."
내가 말했다.
아무런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내 말이 없어도 저들은 아마 꼼짝도 하지 않았을 거다.
그게 살기 위한 방법이라는 건 가르쳐 주지 않아도 본능으로 깨달을 수 있다.
나는 오우거를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오우거는 내 몸에 잔뜩 배어 있는 피 냄새를 맡고는 코를 벌렁거렸다.
놈의 입에서 걸죽한 침이 흘러내리고 나를 보며 입맛을 다셨다.
다시 한번 봐도 정말 꼴도 보기 싫은 상판이다.
"조, 조심... 꺄아아아아!"
쿵!
오우거가 달리기 시작했다.
나를 향해서.
나 역시 달렸다.
최대한 파티원들과 거리를 벌려야 한다.
괜히 놈의 사정거리 안에 파티원들이 포함되면 성가실 테니까.
"크아아아아아!"
오우거가 입을 쩍 벌리고 포효를 내질렀다.
하지만 애초에 겁을 먹지 않은 내게 놈의 포효는 아무런 효과도 발휘하지 못했다.
놈 역시 무언가 심상치 않다는 걸 느꼈는지 잠시 멈춰 서서 나를 경계했다.
파앗!
나는 조금 더 속도를 높여서 놈을 향해 달려들었다.
'지금.'
타다닥-
뇌전검을 사용했다.
검 위로 전류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고.
치지직!
뇌전검이 완전히 장전된 순간.
쇄애애액!
내 몸이 엄청난 속도로 움직였다.
오우거가 순간적으로 내 움직임을 놓칠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파직!
전류가 흐르는 검이 놈의 발목을 후볐다.
80이 넘은 힘 덕분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일격으로 놈의 가죽을 뚫고 검을 박아 넣는 건 불가능한 일일 테니까.
"크어어어어!"
오우거가 포효를 내질렀다.
그와 함께 발목에서 시작된 전류가 놈의 한쪽 다리를 완벽하게 마비시켰다.
부우웅!
놈은 그런 상태에서도 나를 향해 거대한 주먹을 내질렀다.
하지만 저런 주먹 따위 피하지 못할 내가 아니다.
힘이 아닌 민첩성과 체력 역시 80을 넘었기 때문이다.
콰아아아앙!
땅이 흔들릴 정도로 거센 힘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미 몸을 날린 상태였고.
아직 전류가 흐르는 검이 이번에는 놈의 무릎을 향해 날아들고 있었다.
콰직!
검이 놈의 무릎을 파고들었다.
놈의 무릎에서 피분수가 터져 나왔다.
"쿠어어어어!"
오우거는 다시 한번 괴성을 내질렀다.
놈의 무릎을 검이 파고든 순간 그 안으로 전류가 흘러들었을 것이고.
놈의 관절은 이제 제 기능을 해낼 수 없으리라.
동시에 뇌전검의 지속 시간이 끝이 났다.
하지만 충분하다.
이미 놈의 한쪽 다리는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망가졌다.
이게 바로 오우거를 혼자 처치하기 위해 육체 스탯을 80에 맞추라는 이유다.
그렇지 않으면 놈의 가죽을 뚫을 수도 없을 것이고.
놈의 공격을 피할 수도 없을 테니까.
물론 아직 끝이 아니다.
이제 본격적인 싸움이 시작됐을 뿐.
'이번에는 충격파.'
우우웅!
충격파를 사용한 순간에 다시 검이 작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그으으으...!"
오우거는 섬뜩한 안광과 함께 나를 바라봤다.
하지만 눈만 간신히 내 움직임을 좇을 뿐, 몸은 따르지 못했다.
그렇다고 해서 방심할 수는 없다.
오우거의 회복 속도는 빠르다.
잠시 관절 조금 파괴했다고 안심하면 안 된다는 뜻.
'완전히 박살을 내 주마.'
다시 한번.
콰드드득!
충격파와 함께 놈의 발목을 향해 검을 박아 넣었다.
놈의 다리가 가늘게 진동했다.
그와 함께.
콰아아앙!
충격파가 놈의 발목을 안에서부터 파괴했다.
다시 한번 피가 분수처럼 터져 나왔다.
'이번엔 잘라낸다.'
제아무리 오우거라고 해도 잘려나간 부위는 곧바로 재생할 수 없다.
물론 오랜 시간이 있으면 그마저도 재생해 내겠지만.
적어도 싸움이 끝나는 도중에 발을 다시 만들어내는 건 불가능하다.
나는 다시 한번 온 힘을 다해 놈의 발목을 내리쳤다.
콰지직!
놈의 두꺼운 뼈는 쉽게 잘려나가지 않았지만, 손끝에서 확실한 감촉이 전해졌다.
'뼈에 금이 갔어. 내 예상보다 훨씬 빠른 속도야.'
한 번의 공격으로 오우거의 뼈에 금이 가게 만들 줄이야.
나도 조금은 놀랐다.
이건 다 충격파 덕분이다.
내 힘과 그만큼 증폭된 충격파의 위력이 놈의 뼈에 균열을 만들어 낸 것.
놈은 다시 괴성과 함께 나를 향해 거대한 주먹을 휘둘렀다.
하지만 그때.
파직!
"그어...?"
과도하게 힘을 실은 나머지 놈은 제 무게를 견디지 못했다.
놈의 발목이 기괴하게 꺾였고, 놈의 몸이 기울기 시작했다.
'멍청한 놈.'
나의 노력을 덜어 주려는 것인지, 스스로가 자신의 발목을 분질러 버렸다.
쿠우우웅!
오우거의 몸이 나자빠졌다.
놈은 고통에 몸부림치며 바닥에서 허우적대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놈에게 쉽게 접근할 수는 없었다.
바닥에 자빠진 상태로 휘두르는 주먹과 발길질은 충분히 위협적이니까.
하지만 괜찮다.
'하나씩 조지면 돼.'
아직 내게 시간은 많았고.
이제 슬슬 뇌전검의 재사용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다음은... 오른쪽 어깨다.'
저 성가신 팔을 봉쇄하면, 곧 놈의 심장에 가까워질 수 있을 거다.
***
"거 보십쇼."
어느새 정신을 추스른 주강현이 나직이 한 마디를 뱉어냈다.
"한강민 저 사람. 평범한 사람이 아닙니다. 아니, 인간이 맞는가 싶을 정도죠."
"..."
생존자들 역시도 주강현의 말에 감히 반박할 수 없었다.
처음 전투가 시작된 순간부터 느끼고 있었다.
주강현의 말 그대로였다.
과연 정말로 한강민이 자신과 같은 인간이 맞을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다.
오우거 앞에서 조금도 긴장하지 않는 태도는 그렇다 치더라도.
검을 한 번 찔러 넣을 때마다 유효한 타격을 입히는 모습을 볼 때는 숨이 멎는 것만 같았다.
그만큼 강민의 힘은 충격적이었다.
'저놈의 가죽이 얼마나 두꺼운지는 나도 잘 알고 있는데.'
그래서 더 놀라웠다.
온 힘을 다해 검을 박아 넣어도 고작 가죽 조금 뚫어내는 게 전부였고 그마저도 금세 회복해 버리기 일쑤였건만.
상처 조금 내는 것 정도가 아니라, 아예 발목을 부숴버리다니.
자신의 상식 안에서 강민은 한참이나 벗어나 있는 존재였다.
'탑이 만들어 낸 괴물인가.'
그 역시 들어 본 적 있다.
탑을 오르는 플레이어들 중에서는 인간이면서도 인간 같지 않은 괴물들이 존재한다고 말이다.
'혈계. 그리고 S급 능력자들.'
그런 존재에 대해서는 말로만 들어왔지 직접 본 적은 없다.
당연한 이야기다.
그들은 자신들만의 카르텔을 구축하며 외부에 그들의 정보를 노출시키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지금... 내 눈앞에 그런 사람이 있는 거라고?'
스스로 보면서도 믿기 힘든 장면의 연속이다.
강민의 검이 움직일 때마다 오우거의 몸에서는 피가 튀어 올랐으며 오우거는 고통과 함께 비명을 내질렀다.
오우거의 방어력도, 회복력도 강민의 무용 앞에서는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한 채로 무너지고 있었다.
'천외 천.'
하늘 위의 또 다른 하늘.
오우거라는 높은 하늘은 지금 강민이라는 또 다른 하늘에게 찢겨 나가고 있었다.
'나... 정말 탑을 오를 수 있을까?'
강민을 보며 경외감이 들기도 했지만.
오히려 너무도 압도적인 힘 앞에서 자신의 모습이 너무도 초라해 보일 지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