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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상태창이 달라졌다-16화 (16/277)

16화

이건 분명 놈들이 한 짓이다.

놈들이라는 건 플레이어 사냥꾼들.

내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마법 명가가 싸질러 놓은 똥과의 첫 만남이다.

내가 탑을 오를 때에는 거의 모습을 감췄지만 탑의 초창기만 하더라도 악명을 떨치던 놈들이다.

탑을 오르는 걸 포기하고 탑 내부에 본거지를 만든 녀석들.

탑의 난이도에 겁먹은 채 더 이상 탑을 오르지 않는 녀석들이다.

'올라오는 플레이어들을 사냥하고 그들이 가진 아이템이나 식량을 약탈하며 레벨을 올리는 것.'

종국에는 마법 명가의 하수인이 되어 놈들이 저지르는 더러운 일들을 대신 수행하게 된 녀석들.

'마법 명가에서 놈들을 기르는 이유는 하나다. 자신들의 손으로 하기 성가신 더러운 일들을 시키는 것.'

쉽게 말하면, 6층부터 10층은 쓰레기를 육성하기 위한 [유스 시스템]이다.'

이곳에서 두각을 드러낸 사냥꾼들은 마법 명가 녀석들에게 간택을 받고 탑 위로 올라가게 되는 것.

나 역시 전생에서 마법 명가 녀석들의 뒤를 캐다가 알게 된 사실이었다.

플레이어 사냥꾼들의 존재는 모두가 인식하고 있었지만, 놈들의 뒤에 마법 명가가 있다는 걸 아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다만 놈들의 가장 골치 아픈 점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악랄함이야.'

플레이어 사냥꾼들은 나보다 탑의 지형을 훨씬 더 잘 알고 있을 수밖에 없다.

'여기가 바로 놈들의 집이니까.'

그게 내가 걱정하는 이유다.

나는 8층의 지형을 '대략적'으로 파악하고 있지만.

이곳에서 오랫동안 플레이어들을 사냥했던 놈들은 이후의 지형을 '꿰뚫고' 있을 테니까.

"무슨 일이 있는 겁니까."

리더가 물었다.

"주변 경계를 더욱더 삼엄하게 해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리더는 더 이상 묻지 않고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나라고 해도 언제 어디에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놈들을 대비하기는 힘들다.

'게다가 놈들은 꽤 강할 거다. 적어도 몇 개월, 어쩌면 몇 년을 이곳에서 죽치고 있었을 테니까.'

한 층에서 오래 머무르며 약탈하고 성장하기를 반복하는 녀석들이다.

아주 조금씩이지만 결국 레벨은 오르기 마련이고.

초창기라는 극악의 상황에서 8층까지 올라섰다는 건 이미 실력이 어느 정도 증명 됐다는 뜻.

그런 녀석들이 한 곳에서 집단을 형성한 채로 오래 머물렀다면.

이제 막 탑을 오르는 플레이어에 비해 강하다는 건 당연한 사실이다.

'플레이어 사냥꾼들의 레벨은 보통 30에서 40대로 형성되어 있다고 들었어. 개중에는 50 이상의 플레이어도 있고.'

6층부터 10층에서 50레벨을 달성한다는 건 감히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오로지 오랜 시간 한곳에 머무르는 사냥꾼들이기에 달성할 수 있는 레벨.

물론 내 스탯은 이미 50레벨 수준을 훌쩍 뛰어넘었다지만.

놈들이 내 뒤통수를 노리고 다수가 공격해 온다면 나라고 해도 결코 쉬운 상대가 아니다.

게다가 파티원들은 그들 앞에서 쪽도 못 쓴 채로 죽어 나갈 게 분명하다.

그렇다고 나쁜 소식만 있는 건 아니다.

'놈들 중에 괜찮은 능력을 가지고 있는 녀석이 있을 수도 있다.'

아직 비어 있는 포식 슬롯.

현재 파티원들 중에는 내가 포식할 만한 능력이 없었으니.

놈들 중에 괜찮은 능력이 있으면 바로 집어 삼키면 되겠지.

"내 말 기억하세요. 절대 긴장을 늦추면 안 됩니다."

리더는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였고.

우리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여기서 사냥꾼들을 박멸한다.'

마법 명가에게 직접적인 타격을 줄 순 없겠지만.

지금 내 위치에서 할 수 있는 만큼 놈들을 후벼 팔 수 있는 대로 파 줘야겠지.

'놈들이 탑에 구축한 시스템을 밑바닥부터 하나씩 무너트리는 거야.'

***

"아이고.. 기석 형님. 어쩐 일로 누추한 8층까지 행차를 하셨습니까."

그 말에 기석이라는 남자가 무심하게 눈앞의 남자를 바라봤다.

그 시선에 남자는 잔뜩 몸을 움츠렸다.

"하, 하하..."

"쓸 만한 아이템은?"

"에이, 개털입니다. 벌써 파티 몇 개를 조졌는데도 쓸모 있는 건 없어요."

"그렇군."

기석이라는 남자는 나무로 된 의자에 몸을 걸쳤다.

그 모습을 보여 그 앞의 플레이어들은 다시 고개를 조아렸다.

"6층에 올라선 지도 일 년이 훌쩍 지난 것 같군."

우기석.

그는 현재 플레이어 사냥꾼들의 우두머리였다.

일년 전 호기롭게 6층에 올랐다가 파티원들이 몰살당했고, 그만 간신히 살아남았다.

그러다가 결국 플레이어 사냥꾼들을 만났다.

'그때 정우 형님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정우.

그가 바로 우기석을 차기 우두머리로 선점했던 인물이다.

그는 기석의 실력을 눈여겨보았고, 플레이어 사냥꾼 무리에 그를 끼워준 채로 기석을 성장시켰다.

그리고 반년 전, 정우는 15층을 돌파하고 다음 마을로 올라갔고.

그와 동시에 우기석을 사냥꾼들의 우두머리로 삼은 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상태창을 살폈다.

[상태창]

>이름: 우기석

>레벨 : 54

>스탯

-육체

힘 : 66

민첩성 : 61

체력 : 60

-정신

마력 : 11

>능력

1. 충격파 (AA)

.

.

.

"54레벨이라.. 오래도 있었군."

6층에서 10층에서 몬스터를 사냥하며 일 년 동안 54레벨을 달성한 우기석이었다.

54레벨이라는 말에 그의 앞에 조아린 플레이어들이 급하게 숨을 들이켰다.

여기 있는 모두가 달려들어도 우기석 한 명을 감당할 수는 없을 게 분명했다.

"나도 슬슬 올라갈 때가 되었나."

그 말에 눈앞의 남자가 눈을 번뜩였다.

그렇다는 건, 차기 리더가 임명될 차례라는 뜻이었고.

그가 가장 유력했기 때문이다.

'이 새끼만 없으면...'

그는 고개를 숙인 채 입꼬리를 비틀었다.

그 역시 레벨은 우기석과 크게 차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기석은 결코 당해내지 못했다.

'저 새끼 능력이 너무 사기적이니까...'

몇 번 우기석의 전투 장면을 본 뒤로는 우기석의 자리를 노리는 건 꿈에도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때.

"너."

우기석이 남자를 불렀고.

남자는 눈을 번뜩이며 우기석을 바라봤다.

"뒈져."

"예, 예...?"

그 순간.

콰아아아앙!

우기석의 몽둥이가 남자를 내리쳤다.

그와 함께 남자가 숨을 거뒀다.

단 일격에 말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주변에 있는 플레이어들마저도 순간 몸을 비틀며 피를 쏟아냈다.

"커어억.."

"크아아아악!"

그의 능력인 충격파 때문이었다.

충격파라는 이름 그대로 평범한 물리 공격을 범위 공격으로 바꿔주는 사기적인 능력이었다.

"너희들도 내 자리가 가지고 싶어?"

우기석이 입꼬리를 비틀었다.

그의 공격을 받은 남자는 죽었지만, 옆의 플레이어들은 간신히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우기석이 충격파를 컨트롤 한 덕분이다.

"아, 아닙, 아닙니다!"

"그럴리가요!"

그들은 다급하게 고개를 저었고.

우기석은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의 입가에는 장난기 가득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올라가긴 올라가야지. 그런데 저 새끼처럼 노골적으로 내 자리를 탐내면, 죽여 버리고 싶잖아. 그치?"

그 역시 언제까지 여기에 머물러 있을 순 없다.

이미 마법 명가의 인원들에게 곧 탑을 오르라는 지령을 받은 상태였으니까.

'흐흐. 이제 내 출셋길은 보장된 거나 다름없지. 마법 명가라니. 감사합니다. 정우 형님. 크흐흐흐.'

그가 몸을 돌렸다.

"어디 장난감 없을까."

그는 지금 탑을 오르는 플레이어를 찾아 8층을 배회하기 시작했다.

탑을 오르기 전, 마지막 유흥이었다.

***

지금은 8층의 중반부다.

아직까지는 사냥꾼들을 마주치지 않았다.

다만 리더에게 설명을 들은 파티원들은 잔뜩 긴장한 채로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이제 힘은 대충 75. 민첩과 체력은 각각 67, 68.'

이 속도라면 10층에 오를 때까지 충분히 올스탯 80을 달성할 수 있을 거다.

게다가 내 레벨도 어느새 23이 됐다.

어쨌든 덕분에 오크 한 마리를 사냥하는 데 1초가 채 걸리지 않았다.

뇌전검까지 활성화 되면 오크 다섯 마리를 처치하는 것도 3초면 충분할 정도다.

파티원들도 이제는 꽤 능숙해져서 오크에게 둘러싸여서 고전하는 일은 없다.

덕분에 더욱더 주의를 기울여 주변을 살필 여유도 생겨나고 있었다.

어쨌거나 나에게도 좋은 소식이다.

저들이 주변을 경계하는 덕분에 사냥에 더욱 집중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때였다.

파사삭!

저쪽에서 수풀을 헤치고 플레이어 한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허억, 허억. 사, 살려주세요!"

그는 8층의 초입에서 봤던 사람과 비슷한 몰골이었다.

온몸에 잔 상처가 나 있었고, 옷은 다 해졌다.

게다가 얼굴에는 흙과 피가 범벅이 되어 있었다.

파티원들은 남자를 향해 무기를 치켜들었다.

남자는 싸울 의사가 없다는 듯이 손을 들었다.

남자의 손에는 무기도 들려있지 않았다.

"저, 저는... 적이 아닙니다."

남자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손에 무기가 들려있지 않다는 걸 확인한 파티원들이 경계를 늦췄다.

"어떻게 된 일이죠?"

리더가 그에게 한 걸음 다가가서 물었다.

하지만 여전히 거리를 벌려 놓은 상태다.

리더는 조금도 경계를 풀지 않았다.

"허억.. 허억.. 어, 어떤... 사람들이 저를 죽이려고 했어요. 저는 그 사람들을 피해 여기까지 도망 왔습니다."

"정말인가 봐."

"진짜 그런 미친놈들이 탑에 있다고?"

"X발!"

"개 같은 새끼들!"

파티원들이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그 수는 얼마나 됐습니까? 레벨은요?"

"여, 열 명이 넘었어요.. 레벨은... 대충 봐도 30은 훌쩍 넘어 보였습니다."

"미친..."

"30이 넘었다고? 말이 돼?"

"열 명..."

그 말에 파티원들의 안색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지금 파티원 중 레벨이 가장 높은 리더가 고작해야 26레벨이다.

30이 넘는 플레이어 열 명이 달려든다면 저들은 결코 감당해 낼 수 없으리라.

"괘, 괜찮으시다면.. 다음 층까지 함께 갈 수 있겠습니까..?"

남자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파티원들이 잠시 술렁이기 시작했다.

의견이 반반으로 나뉘었다.

심지어 몇몇은 방금 나타난 플레이어를 동정하기 시작했다.

나는 남자를 향해 다가갔다.

플레이어들이 긴장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강민 씨. 저분 데리고 가죠."

머저리 하나가 내게 물었다.

나는 입꼬리를 비틀었다.

멍청한 놈.

저 녀석을 머저리 대장으로 임명하리라.

카앙

나는 검을 뽑아 들었다.

"무, 무슨.. 무슨 짓입니까..!"

방금 전 튀어나온 남자가 대뜸 내게 소리쳤다.

내가 묻고 싶다.

어디서 같잖은 수작을 부리고 있느냐고.

푸훅!

남자의 가슴팍에 검을 박아 넣었다.

"커허...억..."

남자가 피를 토하며 바닥에 쓰러졌다.

"꺄아아악!"

"무슨 짓입니까! 그 사람을 왜 죽여요! 피해자잖아요!"

머저리 대장이 내게 물었다.

"피해자?"

나는 피식, 웃으며 머저리 대장을 바라봤다.

그가 움찔하며 한 발짝 뒤로 물러선다.

"봐라. 이 녀석의 몸에 어떤 검상이라도 하나 있는지."

파티원들은 남자를 살폈다.

없다.

작은 상처는 있지만, 치명적인 상처는 하나도 없다.

"설마..."

"맙소사.."

파티원들이 탄식을 흘려보냈다.

멍청한 것들.

찰랑

심지어 남자의 장비 속에서 무기가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온다.

파티원들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내가 머저리 대장에게 말했다.

"누가 누구를 동정하는 거야? 너 같은 머저리가 대체?"

머저리 대장이 발끈하며 앞으로 나섰다.

"...말이 조금..."

"너 하나로 파티원이 전멸할 수도 있다는 생각은 안 해 봤나?"

"…."

머저리 대장이 입을 다물었다.

나는 검을 뽑아 들었고.

파티원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뒈지려면 혼자 뒈져라. 제발. 나한테까지 똥물 튀게 하지 말고."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내 말이 심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 역시 알량한 동정심으로 저들을 챙길 생각은 없다.

그런 짓을 했다가는 나도 같이 죽는다.

"살고 싶으면 누구도 동정하지 마. 여기에서 제일 불쌍한 건 너희들이니까."

"…."

진심이다.

내가 아니었으면 저들은 여기에서 잠시 후 몰살당할 게 분명하다.

나는 몸을 돌렸다.

"죽기 싫으면 알아서 살아. 도와줄 여유는 없다."

그리고 그때.

"헤헤헤. 눈치가 빠르시네."

"어떻게 알았지?"

"크흐흐. 쓸 만한 놈이 한 명 있구만."

놈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사냥꾼들이다.

뻔한 결과다.

이게 바로 놈들의 수법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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