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7층에 올라왔다.
7층 역시 오크 군락지가 쭉 펼쳐져 있다.
하지만 6층과는 다르다.
6층은 오직 오크만이 등장하는 층이다.
그 말은 즉, 7층은 완전한 오크의 영역이라는 말이다.
7층부터는 파티원들과 함께 있는 편이 나에게도 유리하다.
오크들이 몰려다니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뒤를 맡길 누군가가 있는 게 안전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저들과 같이 사냥할 생각은 없다.
'이제 힘은 70이 되었으니 민첩과 체력을 올려야 해.'
당연히 7층에서도 내가 필요한 몬스터를 골라서 사냥할 생각이다.
'여기부터는 본격적으로 오크만 등장하기 때문에 오크의 종류도 다양하지.'
활을 사용하는 오크와 방패와 둔기를 사용하는 오크도 등장한다.
'아마 활을 쓰는 녀석은 민첩이, 방패를 들고 있는 놈들은 체력이 높을 테니까.'
그 녀석들을 골라서 사냥하며 민첩과 스탯을 집중적으로 올릴 생각이다.
나머지는 당연히 나를 뒤따르는 머저리들에게 맡기면 될 일이고.
그렇기 때문에 지금은 파티원들이 뒤따르는 게 나에게도 유리하다는 말.
나는 출발하기 전 그들을 향해 몸을 돌렸다.
"여기서부터는 함께 갑시다."
내가 그렇게 말하자 파티원들은 흠칫 놀란다.
당연히 7층에서도 나 혼자 떨어져서 사냥하리라 생각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반발은 없다.
"예. 알겠습니다."
리더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대신 제가 5미터 정도 앞에서 가겠습니다."
"예."
리더가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뒤쪽을 조심스레 살폈다.
역시나 아무런 반발도 없다.
내 말은 곧 저들에게 남은 오크나 주워 먹으라는 뜻인데도 아무런 반발이 없다니.
어쨌든 나로서는 환영할 만한 일이다.
피곤하게 언쟁을 벌일 필요도 없을 테니까.
"저 혹시 고기는 어떻..."
그 말이 나오는 순간 나는 못 들은 체하며 몸을 돌렸다.
떡밥은 잘 뿌려졌고.
물고기들이 떡밥 주변을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당분간은 시선조차 주지 않을 생각이다.
"갑시다."
민첩과 체력을 올려줄 오크들을 사냥하기 위해 나는 걸음을 옮겼다.
***
"여기, 여기요! 악! 저기도!"
"기다려 봐! 이것부터 처치해야지!"
"잠깐만! 저쪽에서 또 튀어나온다!"
파티원들은 정신이 없을 지경이다.
그들을 둘러싼 오크들을 처치하는 것만 해도 버거운데 오크들이 사방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젠장! 6층이랑 난이도가 너무 다른 거 아니야?"
"아오, 우리 6층에서 오크 사냥 안 했잖아!"
"아.. 맞아... 그랬지..."
그들은 지금 죽을상이다.
6층에서의 비교적 안락했던(?) 사냥은 이제 꿈같은 일이 되어 버렸다.
단 한 번 오크를 상대했던 경험만으로 할 만하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헛된 생각이었다.
7층의 오크들은 6층의 오크와는 차원이 달랐다.
무기의 종류도 다양했으며 훨씬 더 강했다.
'이 괴물 같은 오크를 혼자서 처치하고 있다니?'
'한강민은 괴물이야. 정말 괴물이라고.'
'미치겠네, 대체 뭐 하는 인간이지?'
파티원들은 저 앞에서 고고한 모습으로 오크를 사냥하는 강민을 보여 혀를 내둘렀다.
그 역시도 여러 마리의 오크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그럼에도 조금도 당황하지 않은 채 오크를 베어 넘겼다.
'한 방. 또 한 방. 대체 뭐지? 우리랑 같이 탑 오르고 있는 거 맞아?'
강민의 모습은 감히 자신들과 같이 1층에서 시작한 플레이어라고 생각할 수가 없었다.
그야말로 압도적이다.
오크 한 마리를 쓰러트리는 데에 채 3초도 걸리지 않는다.
게다가 드문드문 검에서 전류가 터져 나오기라도 한다면 모여 있는 다섯, 여섯 마리의 오크가 10초도 되지 않아 바닥을 나뒹굴었다.
'어떻게 저런 일이 가능한 거지?'
강민과 1층에서부터 만났던 최현서가 받는 충격은 다른 이들보다 더 엄청날 수밖에 없었다.
'...강민 씨 혼자 시간이 다르게 흐르는 건가...'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냔 말이다.
처음 1층에서 고블린에 둘러싸여 죽어갔던 강민이다.
잠시 어떤 변화가 생겨서 갑작스레 변하기는 했지만.
'왜 저렇게 센 거지?'
말도 안 되는 무력이다.
파티원들이 모여서 오크를 처치하는 속도보다 강민 혼자서 오크를 처치하는 속도가 압도적으로 빨랐다.
그 덕분에 파티원들이 더 힘들어진 건 당연한 일이다.
강민의 압도적인 속도 때문에 탑을 오르는 속도가 너무 빨라졌기 때문이다.
'그래도 덕분에 경험치가 엄청나게 오르고 있기는 하다만.'
그렇게나마 스스로를 위로했고.
최현서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걸렸다.
파티원들 역시 오래 합을 맞춘 결과 점점 오크를 능숙하게 사냥하기 시작했고.
오크의 수가 많은 만큼 경험치도 꽤 괜찮은 속도로 올라가고 있었다.
이제야 본인도 조금이나마 진정한 플레이어가 되어 가는 것 같았다.
'조금 뿌듯하기도 해. 힘들긴 해도 말이야.'
물론 강민과는 감히 비교조차 할 수 없지만.
'강민 씨 덕분이지.'
그건 누구도 부정할 수 없으리라.
강민이 아니었다면 7층은커녕 1층에서 고블린의 밥이 되었을 테니까.
'대단한 사람이야. 정말로'
그렇게 곱씹으며 그녀는 파티원들을 향해 열심히 치유 마법을 사용했다.
파티원들은 강민이 남겨 둔 오크를 하나씩 처치하며 앞으로 계속해서 나아가고 있었다.
***
확실히 몬스터의 숫자가 많아지니 스탯도 빠른 속도로 오르고 있다.
벌써 민첩과 체력은 50을 훌쩍 넘어서 55에 가까워졌다.
정신없이 오크를 학살하다 보니 슬슬 7층의 후반부에 도달했다.
7층을 돌파하는 데 2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기염을 토할 만한 속도다.
전생에서 7층을 돌파하는 데 며칠이 걸렸다는 걸 생각해 본다면 말이다.
'나 스스로도 믿을 수가 없군.'
어디 이게 말이나 되는가.
뒤쪽에서는 지금도 파티원들의 아우성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제발 조금 천천히 가 달라느니.
대체 어떻게 하면 그렇게 강해질 수 있냐느니 하는 말들이다.
하지만 어림도 없다.
속도를 맞춰 줄 생각은 없다.
맞춰야 할 건 내가 아니라 저들이고.
강해지는 방법 따위 알려 줘도 저들은 불가능한 일.
나는 오히려 더 속도를 냈다.
이제 슬슬 바뀐 육체에도 완벽하게 적응이 되었고, 민첩과 체력의 수치가 올라가며 여유가 생겼기 때문이다.
"으아아악!"
"뭐가 그렇게 급해! 천천히 좀 가자고!"
"시끄러! 뛰어!"
파티원들의 아우성은 리더의 한 마디에 종식됐고.
그들은 열심히 내 뒤를 따르고 있었다.
내가 말했던 5m를 정확히 지키면서.
지금까지 지켜본 결과 나를 완전히 신뢰하는 건 네 명.
처음 만났던 셋과 저 리더라는 녀석뿐.
나머지 파티원들은 나를 신뢰하는 게 아니라 파티의 리더를 신뢰하고 있을 뿐이다.
물론 내가 크게 신경 쓸 부분은 아니다.
저들이 있으면 조금 편리할 뿐이지 없어도 크게 문제 될 건 없을 테니까.
'다음 휴식은 8층에 올라가서 하면 되겠어.'
파티원들은 죽을 것 같다고 징징대고 있지만 생각보다 잘 해내고 있다.
'이대로 최대한 빠르게 7층을 돌파한다.'
나는 한 번 더 속도를 높였고, 파티원들의 원성을 더욱더 커져만 가고 있었다.
***
우리는 결국 8층에 올라왔다.
7층에 올라선 지 2시간 반 만에 이뤄낸 쾌거다.
내 예상보다도 빠른 속도다.
여차하면 파티원들을 떼어 놓고 올 생각까지 했지만, 저들은 기어코 내 속도를 쫓아 8층까지 무사히 따라왔다.
'체력과 민첩성은 이제 곧 60. 이대로 10층이 되기 전까지 모든 힘, 민첩, 체력을 80까지만 만들면 된다.'
그렇게만 된다면 10층의 히든피스를 어렵지 않게 달성해 낼 수 있으리라.
"후우..."
나는 짧게 숨을 내쉬었다.
"허억.. 허억.. 제발.. 제발 쉬게 해 주세요..."
"그.. 그래요.. 강민 씨.."
최현서도 지쳤는지 숨을 헐떡이고 있었고.
리더도 말은 없지만 안색이 조금 창백해 보였다.
"안 그래도 쉬려고 했습니다."
내가 말했다.
8층 초입은 오크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여기가 쉬기 딱 좋은 장소라는 뜻.
여기에서 한 번 쉬고 나면 앞으로 10층을 돌파하기 전까지는 제대로 쉴 틈도 없을 거다.
그때를 위해서라도 최대한 체력을 비축해 둘 필요가 있다.
"여기서 잠깐 쉬도록 하지."
나는 자리에 주저앉았다.
파티원들도 기함을 터트리며 바닥에 철푸덕 주저앉았다.
"으.. 이거 또 먹어야 돼?"
"아... 끔찍하다.."
"우엑.."
파티원들은 저마다 전투식량을 꺼내 들고 씹기 시작했다.
다들 죽을상이다.
정말 살기 위해 먹을 뿐.
'하기야. 저걸 맛있어서 먹는 놈은 없지.'
나 역시 전투식량의 맛은 잘 안다.
과거에 질리도록 먹었으니까.
위층으로 갈수록 전투식량의 맛이 괜찮아지는 건 사실이지만.
아무리 나라고 하더라도 5층에서 파는 전투식량은 쳐다도 보기 싫다.
뻑뻑하고 비리고 쓰다.
인간이 싫어하는 모든 맛을 한데 모아 놓은 쓰레기다.
저걸 만든 인간은 분명 인류를 증오하는 인물이 틀림없을 거다.
"아아.. 고기.. 고기 한 점만 먹으면 소원이 없겠다."
"나는 고기도 안 바라. 이 망할 전투식량만 아니면..."
저 소리를 들으니 웃음이 나온다.
과거의 나도 그랬으니까.
하지만 그때는 지금처럼 고기를 구울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그나마 고기를 구워 먹을 수 있는 녀석들은 마법사들 뿐.
놈들은 오크 고기를 구워 팔았다.
'엄청나게 비싼 가격에 팔아 치웠지. 망할 놈들.'
같이 탑을 오르던 녀석들에게 오크 고기를 팔아 돈을 번 마법사들은 다음 마을에서 값비싼 아이템을 두르고 나타났었지.
하지만 나는 고기를 단 한 점도 구매하지 않았다.
악착같이 전투식량을 씹어 삼키며 돈을 모았다.
좋은 장비를 구입하기 위해서였다.
'그럴 때가 있었는데.'
피식 웃으며 아공간에서 고기 한 점을 꺼내들었다.
그와 동시에 수많은 시선이 나에게로 꽂힌다.
와득
고기를 씹었다.
파티원들의 눈에서 꿀이라도 떨어질 것만 같다.
나는 그들의 눈을 그대로 바라보며 고기를 한번 더 씹었다.
파티원 몇몇의 입에서 침이 흐른다.
그렇다고 나를 향해 쉽사리 다가오지 않았다.
파티원들 대다수는 여전히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오고 있었다.
나한테 지지 않겠다는 눈으로 악착같이 전투식량을 씹어 삼킬 뿐이다.
'아직은 버틸 만하다는 거겠지. 어디까지 버틸 수 있나 한번 보자고'
하지만 그것도 얼마 못 갈 거다.
알다시피 다음 마을은 15층이나 되어야 나타난다.
그 전까지는 저 쓰레기를 집어삼켜야 한다는 뜻이니
나는 그때까지 먹고도 남을 만큼의 고기를 가지고 있다.
물론 절대로 공짜로 고기를 줄 생각은 없다.
'돈을 벌어야지.'
그리고 저들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나를 향해 다가오면, 그건 곧 돈이 되어 돌아올 거다.
'어차피 내가 가진 고기는 15층까지 나 혼자서는 절대 다 먹지 못할 정도로 많아.'
이렇게 많은 고기를 쟁여 놓은 건 당연히 저들에게 되팔기 위해서였다.
한 푼이라도 더 많은 돈을 모아 놔야 더 좋은 장비를 살 수 있으니까.
'게다가 다음번에도 분명 장비를 통해서 스탯을 포식 할 수 있을 거다. 어쩌면 더 많은 횟수로 포식할 수도 있을 테고.'
그러니 조금이라도 더 많은 돈을 모아 놔야 한다.
나만이 알고 있는 정보를 최대한 활용하여 이익을 극대화해야 한다.
그래야만이 조금 더 빠르게 탑을 오를 수 있을 테니까.
"맛있군."
나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오크 고기를 씹었다.
훌륭한 맛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저 전투식량에 비하면 산해진미가 따로 없다.
슬슬 배가 불러온다.
나는 고기를 다시 아공간에 집어넣었다.
"30분 정도 쉬고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내가 그들에게 말했다.
"알겠습니다."
리더가 말했다.
터져 나오는 파티원들의 아우성은 금세 사그라들었다.
그들 역시도 내 결정에 큰 불만은 없는 듯했다.
저 녀석들도 알 거다.
오래 쉬어 봐야 달라질 건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때였다.
파사삭
"새, 생존자가..."
풀숲에서 한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몰골은 말이 아니다.
피골이 상접했고 죽다 살아난 사람의 모습이다.
"누, 누구십니까."
리더가 앞으로 나서서 모습을 드러낸 남자에게 물었다.
"저, 저는… 생존… 생존자입니다…."
"생존자?"
"예. 우리 파티는 이미 8층에서 대부분이 궤멸 되었어요. 허억… 허억…."
"맙소사…."
"사, 살려... 커억... 이 곳에 그, 그... 놈들이…."
남자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풀썩
그 말을 끝으로 남자는 숨을 거뒀기 때문이다.
모두의 얼굴에 경악감이 잔뜩 어렸다.
갑작스러운 사태에 잠시 파티원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나 역시 좋지 않은 예감이 스쳐 지나갔고.
그 모습을 보며 나는 리더에게 잠시 눈짓했다.
그가 내 옆으로 다가왔다.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