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제 손을 잡아 보시겠습니까?"
리더로 보이는 남자가 말했다.
파티 가입 조건을 걸어 둔 모양이다.
사실 파티 따위야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지만 어쩔 수 없다.
6층에 가려면 열 명의 파티원이 필요하니까.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손을 잡았다.
그러자 메시지가 떠올랐다.
[파티 가입 조건 : 15레벨 이상]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파티에 가입합니다.]
"와아아아! 나이스!"
"드디어! 드디어 6층에 간다아아!"
파티원들이 기쁨에 겨워 소리치고 있다.
꽤 오래 기다린 모양이다.
나를 바라보는 리더의 표정이 꽤나 야릇하다.
그렇다고 불쾌한 건 아니다.
조금 야릇할 뿐이지 음흉한 녀석 같지는 않으니까.
딴생각을 품고 있는 것 같아 보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나저나 15레벨 조건이라니.
어중이떠중이들이 모인 파티는 아닌 모양이다.
리더가 말했다.
"가시죠."
나는 잠시 멈춰서 리더를 바라봤다.
그 전에 할 말이 있다.
"우선 파티는 했지만 저는 같이 움직일 생각은 없습니다."
6층에 올라가기 전에 말해 둬야 한다.
그래야 괜히 트러블을 만들지 않을 테니까.
혹시 마음에 안 든다면 파티를 나가면 된다.
내 말에 파티원들의 표정이 조금 묘하게 바뀐다.
최현서와 두 명 역시 급변한 분위기에 조급해 하고 있다.
나는 리더를 바라봤다.
어쩔래.
결정해라, 하는 표정으로.
"으음.."
리더는 잠시 고민에 빠졌고.
파티원들을 바라봤다.
"이러면.. 우리가 기다린 의미가 없잖아."
"차라리 저 사람 내보내고 조금 더 기다리자. 설마 한 명이 안 나타나겠어?"
이런저런 의견들이 오고 간다.
리더가 다시 나를 바라봤다.
결정을 마친 표정이다.
"아뇨. 같이 갑시다. 마음대로 하셔도 됩니다."
조금 의외의 대답이다.
파티원들의 의견은 대부분 나를 내보내는 쪽으로 모아지고 있었으니까.
"괜찮겠습니까. 저는 그쪽 파티를 도울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다시 한번 확답을 받기 위해 물었다.
리더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괜찮습니다."
"그럼 뭐. 갑시다."
그렇게 말해주면 나야 고맙다.
시간 낭비할 필요도 없을 테니까.
그나저나, 저 리더로 보이는 녀석. 결코 평범한 어중이떠중이가 아니다.
하긴.
초창기의 암울한 상황에서 파티원들을 이끌고 여기까지 왔다는 건, 분명 범상치 않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탑을 오를 당시 저 녀석을 본 기억은 없다.
아마 어딘가에서 죽었다는 뜻이리라.
'분명 범상치는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탑을 오르는 게 만만치 않다는 뜻이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탑은 그만큼 잔혹한 곳이니까.
아무리 파티원을 잘 이끌어도 한 번의 실수에 전멸하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실력만큼 운도 따라줘야 탑을 오를 수 있다.
그렇게 우리는 6층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러는 와중에도 파티원들이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온다.
'진짜 괜찮겠어? 한 명이 비는데?'
'괜찮아. 어쨌든 다음 마을이 나타날 때까지는 저 사람도 우리랑 같은 파티에 속해 있는 거니까.'
'하아..'
'저 사람이면 된다. 같은 파티에 속해 있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는 사람이야.'
이런 말들이었다.
확실히 리더의 촉은 뛰어나다.
내가 직접적으로 전투에 도움을 주진 않는다고 하더라도.
나 정도의 플레이어가 파티에 있다는 건 엄청난 이득이다.
다음 층에 오르기 위해서는 다음 층으로 향하는 게이트 앞에 파티가 한데 모여야 한다.
나눠져 있지만 결국 같은 공간 안에 함께 있을 수밖에 없다.
따로 움직이지만 완벽히 나눠질 수는 없다는 뜻.
어쨌든 저러니까 여기까지 파티원들을 이끌고 왔겠지.
잠시 후 우리는 6층에 도착했다.
"후우.."
나는 짧게 숨을 내쉬었다.
눈앞에는 울창한 밀림이 펼쳐져 있었다.
6층.
결코 만만한 곳이 아니다.
한 가지 몬스터만이 아니라, 여러 몬스터들이 생태계를 이루고 있는 곳.
언제 어디에서 어떤 몬스터가 공격할지 쉽게 예측할 수 없다.
물론 나에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나는 이미 6층의 생태계를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다.
훗날 6층부터 10층의 생태계가 분석되고, 몬스터들은 각자의 영역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니까.
'오크의 서식지는.. 6층의 남동쪽부터 시작된다.'
계획했던 대로 오크를 사냥할 생각이다.
"당신들은 최대한 서쪽에서 사냥 하는 걸 권장합니다."
내가 말해줬다.
어쨌든 파티원들이고, 딱히 악의는 없어 보이니까 작은 선물을 준 셈이다.
6층의 서쪽에서 등장하는 몬스터가 비교적 상대하기 편하다.
게다가 저들이 서쪽에 있어야 내가 사냥할 오크들의 영역과 겹치지 않을 테니까.
"엥? 당신이 왜 그걸 정하..."
"알겠습니다. 너는 조용히 해. 우리는 서쪽으로 간다."
파티원의 반발에 리더가 바로 제지했다.
"감사합니다."
리더가 고개를 끄덕이며 내게 감사를 표했다.
나도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돌렸다.
"그럼 7층 게이트에서 만납시다."
"예."
리더는 나의 안위를 걱정하지도 않았다.
당연히 내가 살아남을 거라고 확신하는 표정이다.
나는 지체 없이 오크 군락지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해야 할 일이 많다.
***
"아니, 저 사람 뭔데? 너무 나대는 거 아니야?"
강민이 사라진 뒤, 파티원 한 명이 불만을 토로했다.
안 그래도 따로 움직인다는 것에 큰 불만을 품고 있던 차였다.
"애초에 여기에서 혼자 움직이는 건 자살하겠다는 거 아니야? 근데 뭐 잘났다고 우리한테 이래라 저래란데?"
쉴 새 없이 불만을 토로하는 파티원.
하지만 리더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냥 말 들어라."
그가 최현서를 바라봤다.
"저 사람하고 같이 탑 올라 온 거죠?"
"아, 예."
최현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던가요?"
리더의 물음에 최현서의 표정이 조금 밝아졌다.
강민에 대해서 진즉에 말하고 싶었지만 파티원들의 기세에 눌려 입을 다물고 있던 참이다.
"저분이 아니었으면 우리 세 명은 진즉에 죽었을 거예요. 그렇죠?"
최현서가 뒤를 돌아보며 물었고.
최기훈과 이혁준이 바쁘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정말입니다. 강민 씨는 사실 말이 필요 없는 플레이어예요. 이미 완성된... 정말 이상적인 플레이어죠."
이혁준이 신이 나 떠들었다.
강민의 업적을 칭찬하는 것뿐인데, 오히려 자신이 신난 것 같아 보였다.
그 말을 들으며 파티원들은 조금 의심쩍은 표정을 지었다.
'말이야 누가 못 해.'
그러면서 리더의 표정을 바라봤다.
리더는 그들의 말을 전적으로 신뢰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아...'
리더가 저러니 그들로서도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최현서 무리가 강민을 신뢰하는 것처럼 그들도 리더를 전적으로 신뢰하고 있으니까.
'그래 뭐. 혼자 죽겠다는데 말릴 이유는 없지.'
이내 강민에 대한 생각을 지웠다.
지금은 남 걱정을 할 때가 아니었다.
6층은 확실히 1층에서 5층과는 풍겨오는 분위기부터가 차원이 달랐다.
'긴장해야 돼. 그런 놈 신경 쓰지 마.'
그들은 경계를 놓치지 않으며 천천히 서쪽에 도착했다.
조금 더 걸어 나갔을 때, 그들의 시야에 첫 번째 몬스터가 모습을 드러냈다.
"모기? 모기 맞지?"
"응. 근데 조금 커다란.."
조금이 아니라 굉장히 커다란 모기였다.
그 수는 많았지만 한눈에 보더라도 그리 강해 보이지는 않았다.
"자, 나부터 간다."
리더가 앞으로 나섰고, 파티원들은 능숙하게 자신들의 포지션을 찾아갔다.
최현서와 두 명도 포지션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들 역시 5층에서 열심히 실전 경험을 쌓아 왔으니까.
그들은 바로 전투를 시작했다.
전투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긴장했던 것과는 달리 모기는 약했다.
"덩치만 컸네. 6층이라서 그런지 경험치는 많이 올라. 코볼트 그 똥개들이랑은 차원이 다른데?"
파티원들은 첫 번째 승리에 신이 나기 시작했다.
벌써 6층을 클리어한 것처럼 떠들어 대기도 했다.
"어때."
리더가 파티원들에게 물었다.
"진짜 쉬울 것 같지 않아? 그분 말처럼."
"..."
리더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걸렸다.
파티원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이제 시작일 뿐이잖아. 아직 모른다고.'
그러면서도 무언가 묘한 감정이 스치고 지나갔다.
'아직 몰라. 모른다고. 절대로 긴장을 풀면 안 돼.'
***
오크다.
놈들이 저쪽에서 숨을 씩씩거리며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이렇게 또 만나니 감회가 새롭다.
전생에서는 저 오크 한 마리를 잡으려고 얼마나 죽을힘을 다했었는지.
다시 생각해도 처참하기 짝이 없었지.
'생각해 보면 탑도 참 잔인하지. 코볼트 다음에 바로 오크라니.'
코볼트와 오크는 차원이 다른 몬스터다.
오크의 근력은 지구의 동물로 따지자면 적어도 코끼리 수준은 될 거다.
웬만한 철판 따위는 어렵지 않게 짓뭉개 버릴 정도의 괴물들이니까.
과거의 나는 저 오크를 사냥했다.
서쪽이 더 쉽다는 건 알았지만, 오기 때문이었다.
하여간 나도 제정신은 아니다.
좋은 길을 피해 두고 어려운 길만 찾아다녔다니.
'그래도 그런 경험이 없었으면, 지금의 나도 없었을 거다.'
이렇게 스스로를 위안하며 오크를 향해 몸을 움직였다.
'지금이라면 놈을 사냥하는 게 그리 어렵지 않을 거다.'
지금의 나는 강하다.
과거의 나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그렇다고 공격 한 번에 놈들을 죽이는 건 불가능하겠지만.'
현재 내 힘은 아직 50이 채 안 된다.
이 정도의 힘으로는 놈들을 한 번에 보낼 수 없다.
파사삭
나는 떨어져 있는 오크 한 마리를 향해 조용히 다가갔다.
놈과 가까워진 순간.
타닷 타다닥
뇌전검을 사용했다.
파앗!
전류가 완전히 충전된 순간 놈을 향해 몸을 날렸다.
내 몸이 전광석화같이 쏘아져 나갔다.
휘이익!
나는 놈의 겨드랑이를 향해 검을 내질렀고.
푸훅!
검이 놈의 옆구리를 향해 파고들었다.
그와 함께 놈의 전신을 타고 전류가 뿜어졌다.
파지짓!
"취에에엑!"
놈이 괴성을 내지른다.
역시 뇌전검을 사용했음에도 한 번의 공격으로 사냥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괜찮다.
놈은 뇌전검의 효과로 인해 잠시 스턴에 빠졌으니까.
파각!
나는 놈의 목을 향해 검을 내리쳤다.
검이 반쯤 목을 파고들었다.
재빠르게 검을 뽑아냈고.
다시.
파각!
쿠웅!
오크의 목이 바닥에 떨어졌다.
그때 마침 뇌전검의 효과가 사라졌다.
오크 하나를 사냥하는 데 대략 5초가 걸렸다는 뜻.
'말도 안 돼.'
뇌전검의 효과가 사라진 상태라면 아마 두 배 정도는 걸릴 테지만.
이것만 하더라도 굉장한 속도다.
평범한 플레이어들이 오크를 잡으려면, 파티를 이룬다고 해도 족히 1분은 걸릴 수밖에 없다.
과거의 나만 하더라도 혼자 오크 한 마리를 잡기 위해 족히 3분은 쏟아 넣어야 했으니까.
메시지가 떠올랐다.
[오크를 처치했습니다.]
[힘 1을 포식했습니다.]
[포식 포인트 50p를 획득했습니다.]
역시나.
내 예상대로 힘 스탯이 내 손에 들어왔다.
게다가 한 마리에 1.
고블린과 코볼트에 비해서 더 많은 양의 스탯을 포식할 수 있었다.
'이 정도면 힘 70까지는 얼마 안 걸리겠어.'
내 계획이 착실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뇌전검을 다시 사용할 때까지 30초가 걸린다.
나는 곧바로 몸을 날렸다.
당연히 뇌전검이 없다고 사냥을 쉴 생각은 없다.
'30초면 대략 두 마리 정도는 사냥 할 수 있을 거다.'
1초라도 낭비하지 않고 모든 시간을 최대한으로 활용해야 한다.
"취엑! 취엑!"
"취르륵!"
마침 오크 두 마리가 나를 발견한 채 달려오기 시작했다.
제 놈들의 운명도 모른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