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그 순간에도 역시 최민철의 머리는 빠르게 굴러가고 있었다.
'어쩌면.. 지금의 내가 한강민처럼 강할지도 몰라.'
이 추측에는 분명 최민철 '나름의' 근거가 있다.
'나는 내 따까리들을 굴리면서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성장했어. 파티 보너스 덕분이야. 그런데 저 녀석은 파티 보너스가 없었을 거야.'
분명히 혼자 사냥하는 것보다는, 파티 사냥이 더 빠르게 레벨을 올릴 수 있는 방법이다.
같은 시간이라도 더 빠르게 몬스터를 사냥할 수도 있고.
미약하지만 보너스 경험치가 추가되니까.
실제로도 현재 최민철의 레벨이 강민의 레벨보다 높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그래. 어쩌면 나도 놈처럼 혼자서도 5층까지 충분히 돌파할 능력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다만 하지 않았을 뿐. 못 한 게 아니라!'
그것도 틀린 추측은 아니다.
이미 20레벨에 가까워진 최민철.
그 역시 혼자 탑을 올랐다면 충분히 5층까지 솔로 플레이가 가능했으리라.
다만, 그의 추측에서 완전히 배제된 것은 바로 강민의 능력인 '포식자.'
같은 레벨이라도 강민의 스탯은 동 레벨의 스탯을 한참이나 뛰어넘는다.
심지어 레벨이 높은 최민철의 스탯도 강민의 스탯을 따라갈 수 없다.
이 사실을 최민철이 알 리가 없다.
그 순간 최민철의 눈이 번뜩였다.
'내가 더 세다.'
이것이 최민철의 결론.
그 순간.
"으아아아아!"
최민철이 무기를 움켜쥐고 강민을 향해 달려들었다.
강민은 생각했다.
'귀여운 새끼.'
강민 역시 최민철이 가만히 당해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가 본 최민철은, 탐욕이 가득하고 결코 쉽게 고개를 숙이는 인물이 아니었으니까.
'잘 됐어. 뇌전검의 위력을 시험해 보고 싶었는데.'
강민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의 검에서 옅은 빛무리가 뿜어져 나왔다.
타닥- 타다닥-
스파크가 튀어 올랐다.
하지만 최민철은 강민의 검에 생겨난 변화를 눈치채지 못했다.
지금 그는 이성을 잃은 상태였고.
어떻게 해서라도 강민을 죽이겠다는 집념에 사로잡혀 있을 뿐.
휘이익!
최민철의 검이 강민을 향해 날아들었다.
강민은 일말의 위협도 느끼지 못했다.
'그냥 레벨만 올렸군.'
허술하기 그지없는 최민철의 몸놀림은, 강민이 보기에 어린아이의 아우성에 불과했다.
강민이 상체를 작게 비틀었고.
최민철의 검이 허공을 갈랐다.
파지직!
강민의 검 위로 전류가 흘렀다.
'충전까지 걸리는 시간은 1초 남짓. 지속 시간은 앞으로 5.5초라고 했지.'
뇌전검의 지속 시간이었다.
뇌전검이 활성화된 순간, 강민의 몸에서 충만한 힘이 느껴졌다.
뇌전검의 옵션인 공격력 증가와 속도 증가 덕분이었다.
강민의 몸이 빠르게 움직였다.
"허, 허엇!"
최민철이 급하게 숨을 들이켰다.
순식간에 강민이 자신의 시야에서 사라졌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압도적인 민첩성을 보유한 상태인데, 거기에서 뇌전검의 효과까지 더해졌으니.
감히 최민철로서는 눈으로도 따를 수 없을 정도였다.
파각!
"...?!"
투둑
무언가 떨어져 내렸다.
'내.. 팔..?'
떨어져 내린 왼팔.
멍한 눈으로 왼팔과 강민을 번갈아 가며 바라봤고.
그제야 최민철의 왼팔에서 타들어 가는 통증이 느껴졌다.
그와 함께 전신을 관통하는 전류의 짜릿함까지.
"끄아.. 끄아아아악!"
최민철이 경악에 물든 채 괴성을 내질렀다.
"괜찮군."
귓가에 들려온 강민의 한 마디.
"미, 미...미친 새끼야!"
최민철이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오른팔에 들려 있는 검을 허공에 휘둘렀다.
그 순간.
강민은 너무도 가뿐히 공격을 피해냈고.
그와 동시에 최민철의 허벅지를 강타한 강민의 발차기.
빠득!
'어.. 어...?'
최민철의 몸이 무너져 내렸다.
최민철은 다리에 힘이 풀린 채 바닥에 자빠졌다.
쿵!
"으아아아악!"
한 박자 늦게 몰아친 끔찍한 고통에 그가 비명을 내질렀다.
다시 일어나려고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다리를 바라봤다.
기괴하게 비틀려 있었다.
부러진 거다.
발차기 단 한 방에.
"16레벨에 이 정도 힘이라니. 확실히 사기적이야."
다시 한번 들려 온 강민의 목소리.
그 말을 들은 순간 최민철은 다시 한번 충격에 휩싸였다.
분명 추측했던 대로 자신보다 레벨이 낮다.
그런데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가.
대체 한강민은 어떤 인간이기에.
말도 안 되는 일을 벌이고 있는 것인가!
동시에 그의 머리를 스쳐 지나간 한 문장.
'나와의 싸움은 안중에도 없다.'
그 사실을 이제야 깨달았다.
지금 강민은, 자신과의 전투보다는 뇌전검과 신체 능력을 파악하는 데 주력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만큼 최민철의 공격에서 일말의 긴장감도 느끼지 못했다는 뜻.
강민의 검에서 전류가 사라졌다.
"흐음."
강민의 짧은 탄식.
최민철은 어찌할 바를 모른 채 강민을 바라봤다.
아무런 감흥도 느껴지지 않는 강민의 표정.
그래서 더 두려웠다.
조금 흥분이라도 한다면.
감정이라도 내비친다면, 차라리 사람 같기라도 하겠지만.
자신의 팔을 베어 내고도, 허벅다리 뼈를 부러트리고도 일말의 감정 변화도 느껴지지 않는다니.
강민은 최민철에게 시선도 주지 않은 채 검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최민철은 어이가 없으면서도, 저렇게 여유 넘치는 강민의 모습에 압도되었다.
최민철은 도망이라도 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도 없다.
이미 다리가 부러졌고, 몸을 가눌 수조차 없었으니까.
타닥- 타다닥-
다시 강민의 검 위에서 스파크가 튀어 올랐다.
"다시 충전되는 데 대충.. 30초."
그렇게 중얼거리며 강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강민이 고개를 들어 최민철을 바라봤다.
그의 입이 열렸다.
"조금 짜릿할 거다."
"뭐, 뭐..."
푸훅!
"....!"
최민철의 온몸에 전류가 타고 흘렀다.
"끄아아아아아!"
그가 비명을 내질렀다.
죽을 것 같았다.
너무 고통스러웠다.
"역시. 감전 효과는 확실하군. 마음에 들어."
푸학!
검이 빠져나갔고.
눈앞에 무언가 날아들었다.
강민의 발이었다.
빠각!
가슴팍이 무너져 내렸다.
끔찍한 고통이 몰아쳤다.
"끄아아악!"
최민철은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바닥에 쓰러졌다.
피를 토하며 시야가 어두워졌다.
하지만 끝이 아니다.
빠드득!
이번에는 최민철의 오른팔을 짓밟았다.
"으아아악!"
최민철은 다시 한번 고통에 몸부림치며 비명을 내질렀고.
"그동안 즐거웠겠지."
싸늘한 강민의 목소리가 최민철의 귀를 두드렸다.
그가 들을 수 있는 마지막 목소리였고.
이내 최민철의 의식이 꺼졌다.
"멍청한 놈."
그 모습을 지켜보던 플레이어들은 말을 잃었다.
'...괴물이다.'
'믿을 수 없어... 그 최민철을...'
'대체 뭐 하는 사람이지...?'
그들의 입장에서는 최민철도 충분히 두려운 존재였건만.
그런 최민철을 압도하는 플레이어가 있을 줄이야.
그것도 자신들과 같은 5층에.
하지만 강민은 아무런 감흥도 없다는 듯이 몸을 돌렸고.
마을이 있는 곳을 향해 걸음을 옮길 뿐이었다.
플레이어들은 감히 강민을 붙잡을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그만큼 강민의 존재감은 압도적이었으니까.
강민의 모습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채로.
잠시 후.
"저, 저… 우리도… 마을로… 갈까요…?"
한 플레이어가 말했다.
"그, 그래…요…"
방금 지나간 폭풍에 이제야 겨우 정신을 수습할 수 있었고.
플레이어들이 마을을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시에 생각했다.
'내가 과연 탑을 오를 수 있을까?'
강민을 본 순간 모든 의욕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저런 괴물들이 득실거리는 게 탑이라면...'
과연 자신이 탑을 올라갈 수 있을 것인지 머리가 복잡해지던 찰나였다.
그런데 그때.
"저희는 조금 더 여기에서 사냥하다 마을에 갈게요."
최현서의 목소리였다.
"조금 더 레벨을 올려야 할 것 같아요."
최현서의 옆에 서 있는 최기훈과 이혁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셋은 지금, 강민의 모습에서 큰 충격을 느꼈고, 결심했다.
'강해져야 해. 탑에 들어 온 이상 무조건 강해져야만 해. 강민 씨가 말했던 것처럼, 스스로의 힘으로 탑을 오를 수 있을 정도로.'
최현서의 말에 몇몇 플레이어는 동조했고.
몇몇은 치를 떨며 마을을 향해 걸어갔다.
"자, 그럼 우리끼리라도 사냥해 봐요."
남은 플레이어는 다섯.
모두가 강민의 말과 행동에 큰 감명을 받은 이들이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사냥하고 레벨을 올릴 수밖에 없어.'
그들은 움직이기 시작했다.
***
뇌전검은 확실히 뛰어났다.
감전 효과도 괜찮았지만, 역시나 마음에 드는 건 공격력 증가와 속도의 증가.
'꼭 검으로 하는 공격이 아니고도 육체 능력 자체가 상승하는 것 같았어.'
최민철의 다리를 공격하면서 그 효과를 확실히 체감할 수 있었다.
나중에 마력을 증가시키고, 지속시간이 증가된다면, 더욱 더 효과적으로 뇌전검을 사용할 수 있겠지.
'게다가 10층의 히든피스까지 더해지면, 말도 안 되는 시너지 효과가 발생할 거야.'
입꼬리가 절로 올라가는 기분이다.
나는 지금, 마을로 향하는 포탈에 몸을 올렸다.
내 몸이 빛에 휩싸였고.
순식간에 눈앞의 풍경이 변했다.
***
'사람이 꽤 많네.'
나는 마을에 들어와서 주변을 살폈다.
이야기로만 들었을 뿐이지, 초창기의 탑을 내가 직접 본 적은 없었으니.
꽤나 낯설고 새로운 풍경들이다.
'하긴. 초창기라고 해도 대한민국의 플레이어들이 탑을 오른 지 10년이 지났을 시간이니까.'
아마 대부분은 탑을 오를 생각도 하지 않고 머무르고 있는 이들일 것이고.
나머지 일부는 망설이는 이들.
또 나머지는 탑을 오르기 위해 준비하는 이들일 거다.
"으 냄새. 뭔 냄새야?"
"아윽. 토 쏠려."
내가 지나갈 때마다 이런 소리가 들려온다.
우선 빨리 장비부터 갈아 치울 생각이다.
처음 제공 받은 장비는 더 이상 사용할 수 없다.
냄새 때문만은 아니고, 아무래도 혼자 사냥하다 보니 제 기능을 한참 전에 상실했다.
나는 지체 없이 장비 상점을 향해 움직였다.
장비 상점은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상점의 주인은 탑의 원주민들.
플레이어들은 NPC라고 부르는 존재들이다.
내가 상점 안에 몸을 들인 순간.
"뭔 냄새야! 누구요?"
주인은 나를 보더니 미간을 좁혔다.
"무기 보러 온 거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흐으음... 우선 한 번 보시오."
아무래도 내 행색을 보고 거지라고 생각했는지 의심쩍은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 시선을 뒤로한 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선 검부터.'
내게 가장 필요한 건 쓸만한 검이다.
아무래도 지금 쓰는 검은 너무도 낡아 있었으니까.
'5층에서 파는 무기들도 딱히 쓸만한 건 없겠지만...'
어쨌든 기본적으로 제공되는 검보다는 무조건 나을 수밖에 없다.
벽면과 한쪽 구석에 각종 무기들이 놓여 있었다.
나는 그곳에 다가가서 대충 훑어봤다.
내가 웬만한 무기는 다 다룰 수 있지만, 그중에서도 내게 가장 익숙한 무기가 따로 있을 수밖에 없다.
내게 가장 익숙한 무기는, 당연히 도(刀)다.
양날검이 아닌, 외날 검.
내 눈에 적당한 크기의 도가 들어왔다.
나는 도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런데 그 순간.
[포식 포인트를 사용하여 무기의 잠재 옵션을 포식할 수 있습니다.]
[현재 보유한 포식 포인트 : 9690p]
그와 함께 주변에 있는 장비들 위에 숫자들이 떠올랐다.
"허어."
나도 모르게 탄성을 쏟아냈다.
조금은 충격적이었다.
고작해야 화폐처럼 사용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생각지도 못한 능력을 감추고 있었을 줄이야.
적게는 10p부터 많게는 수백 포인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숫자들이었다.
아마도 잠재된 능력에 따라 필요한 포식 포인트가 달라지는 모양인데.
'뷔페가 따로 없군.'
오직 나만을 위한 고급 뷔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