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낡고 투박한 창이다.
하지만 내가 던진다면 충분히 그 위력을 발휘한다.
휘이이익!
낡은 창이 놈을 향해 날아들었다.
콰드드득! 파직!
창이 놈의 복부를 관통했다.
'됐다.'
단검만큼 빠른 속도는 아니지만, 놈의 움직임을 봉쇄했으니.
놈은 내가 던진 창을 피할 수 없었다.
피가 튀어 올랐다.
놈의 눈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분노했다는 뜻이다.
'좋다. 더 흥분해라. 그러면 요리하기 더 쉬워질 테니까.'
자고로 싸울 때, 가장 만만한 게 흥분해서 이성을 잃은 놈들이다.
크아아아앙!
놈이 포효했다.
나는 놈의 체력 게이지를 확인했다.
'체력이 많이 줄었어.'
어느새 놈의 체력은 1/4 가까이 줄었다.
전면전 한 번 치르지도 않은 채, 이 정도 피해를 입힌 거다.
'하지만 아직이다.'
당연히 아직도 내가 챙겨 온 코볼트의 무기는 남아 있다.
확실히 각이 보이기 전까지 전면전은 없다.
놈은 화가 났는지 미친 듯이 전류를 내뿜기 시작했다.
파지직! 쾅! 쾅! 쾅!
사방에서 쉴 새 없이 전류가 터져 나온다.
다행이라면, 전류를 오래 모으지 않아서 크게 위협적이지는 않았다는 것.
그럼에도 내게도 피해가 전혀 없는 건 아니었고.
내 몸을 두르고 있던 코볼트 가죽이 꽤나 그을렸다.
오도독
이클립스 하나를 더 꺼내서 씹었다.
'전류가 뿜어져 나오는 방향은 모두가 일직선.'
방금 전의 공격으로 놈의 전류가 터져 나오는 방향을 모두 파악했다.
놈의 공격 패턴은 꽤나 단순했다.
'놈의 움직임을 집중하면, 충분히 피할 수 있어.'
나는 몸을 날렸다.
공중으로 뛰어오르는 건 안 된다.
내 발이 땅에서 떨어지면, 놈의 전기 공격을 피할 수 없다.
최대한 자세를 낮추고.
언제든 방향 전환이 가능하도록 움직여야 한다.
파지지직! 콰릉!
쾅! 쾅!
놈은 쉴 새 없이 전류를 뿜어냈다.
피하는 게 쉽지는 않지만, 불가능할 정도도 아니다.
역시나 모두가 일직선 공격 밖에는 없었으니까.
그럼에도 남아 있는 전류가 나를 공격하기도 했고.
점점 내 몸을 두르고 있는 코볼트의 가죽이 제 기능을 잃기 시작했다.
오도독
바쁘게 움직이며 이클립스를 조금 씹었다.
순식간에 작은 상처들이 회복됐다.
그러는 와중에도 나는 조금씩 거리를 좁히며 놈에게 단검과 창을 집어 던지고 있었다.
놈의 체력은 빠르게 줄어들었다.
크륵.. 크르릉...
놈은 많이 지쳤는지 숨을 거칠게 내뱉었다.
온 몸에 내가 던진 무기가 박혀 있다.
창과 단검.
놈은 제 자리에서 한 걸음도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고.
원망스러운 눈으로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렇게 보지 마라.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내 몸을 두르고 있던 코볼트 가죽도 어느새 반 이상이 전기에 타들어 가 기능을 상실했다.
계속 거리를 좁히며 놈의 체력을 깎아냈다.
'이제 남은 무기도 얼마 없어.'
내가 챙긴 무기는 13개.
이제 2개밖에 남지 않았다.
나는 틈을 노려 남은 두 개의 무기를 모두 놈을 향해 날렸다.
파직! 파드득!
크르르르릉!
놈이 포효했지만, 처음과 같은 고고함이나 위엄 따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를 경계하며 빈틈을 내보이지 않았다.
다 죽어가는 와중에도 저런 집념이라니.
과연 코볼트의 수호신이라는 설정이 허투루 한 건 아닌 모양이다.
그래도 내 눈에 보이는 녀석의 모습은.
그저 살기 위해 낑낑대는, 조금 커다란 들짐승의 모습이다.
게다가 이제 놈의 전류도 눈에 띄게 약해진 상태였다.
씨익.. 씨익..
놈이 거칠게 숨을 내쉬고 있었고.
그 순간 놈의 빈틈이 보였다.
파앗!
'지금이다.'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빠르게 몸을 움직였다.
검을 꺼내 강하게 움켜쥐었다.
꽈아악
힘줄이 돋아날 정도로 힘을 줬다.
놈과 순식간에 가까워졌다.
놈의 눈이 작게 흔들렸다.
전류를 뿜어내기 위해 곡도를 치켜들었지만.
놈보다 내가 더 빨랐다.
'한 번. 단 한 번에 끝내야 한다.'
두 번은 없다.
여기에서 놈의 목을 치지 못하면 당하는 건 나일 테니까.
하지만 자신 있다.
자신 없었다면 몸을 날리지도 않았을 거다.
파직!
검이 놈의 목을 스쳐 지나갔다.
손끝으로 묵직한 감촉이 전해졌다.
'됐다.'
쿠웅!
놈의 머리가 바닥에 떨어져 내렸다.
놈은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바닥에 고꾸라졌다.
그 순간.
[뇌전 코볼트를 처치했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
.
.
[레벨이 올랐습니다.]
단 번에 레벨이 몇 단계를 뛰어 올랐다.
그리고 그게 전부가 아니다.
[히든피스를 달성했습니다.]
[뇌전검 (S)를 획득했습니다.]
뇌전검.
드디어 내 손에 들어왔다.
"후우..."
나는 쓰러진 뇌전 코볼트를 바라보며 숨을 헐떡였고.
상태창을 펼쳤다.
[상태창]
>이름: 한강민
>레벨 : 16
>스탯
-육체
힘 : 43.85
민첩성 : 41.65
체력 : 40.13
-정신
마력 : 5
>능력
1. 포식자 (S)
2. 뇌전검 (S)
포식 포인트 – 9860p
[뇌전검 –S]
>정신계 스킬
-마력 수치의 영향을 받는다.
>스킬 사용 시 5(+0.5)초간 무기에 전기 속성 부여
>전기 속성 효과
-감전 데미지 추가
-순간 가속 효과
'놀랍다.'
뇌전검의 효과는 실로 뛰어났다.
감전 데미지 추가에, 순간 가속.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옵션들이다.
5초 옆에 있는 +0.5초는 마력 계수의 영향을 받는 모양이다.
'내 마력이 5인 걸 보면.. 마력 1당 0.1초씩 증가하는 것 같군.'
정신계 스킬이라 마력의 영향을 받는다는 점은 조금 아쉽지만.
걱정은 없다.
지금이야 5에 머물러 있을 뿐.
'마력은 나중에 올릴 수 있는 기회가 있다.'
게다가 지금 나의 스탯들은.
감히 16레벨의 스탯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수치였다.
'스탯으로만 따지면, 이미 30레벨은 넘어섰어.'
뇌전 코블트를 처치하고 스탯은 오르지 않았지만.
그런 아쉬움 따위는 충분히 달랠 만한 보상들이었다.
'이제 포식 포인트는 대략 1만인데...'
여전히 감감무소식이다.
'화폐처럼 사용할 수만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텐데.'
마을에서 장비를 싹 갈아 치우기 위해서는 꽤 많은 돈이 필요하다.
몬스터를 사냥하면서 얻은 돈으로는 턱도 없이 부족하지만.
만약 포식 포인트를 화폐처럼 쓸 수만 있다면.
'남들보다 훨씬 유리한 조건으로 탑을 오를 수 있을 테니까.'
어쨌든.
그건 마을에 가서 확인해 보면 될 일이다.
나는 몸을 두르고 있던 코볼트 가죽을 벗겨냈다.
'역시.. 냄새는 끝내 주는구나.'
비린내와 썩은 내, 탄내까지.
환상의 콜라보다.
가죽을 다 떼어 냈다.
이클립스 하나를 꺼내 씹었다.
'남은 건 49개. 뇌전 코볼트에서 40개만 남겨도 괜찮았을 텐데. 생각보다 훨씬 절약했군.'
생각보다 싸움이 빨리 끝난 덕분이다.
그렇게 옷에 묻은 피와 먼지를 털어내고.
마을로 향해 걸음을 옮기려던 순간이었다.
"가, 강민...씨...?"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고개를 돌렸고.
'최민철.'
놈이 저쪽에서 멍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
'뭐.. 뭐지?'
지금 최민철의 머릿속이 하얘졌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고!'
지금 눈앞에 있는 건, 분명 강민이다.
비록 피와 먼지, 땀에 범벅이 되고.
사람의 꼴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들었지만.
'분명 한강민이 맞아. 귀신.. 귀신인가?'
죽은 줄 알았다.
2층에도, 3층에도, 그리고 4층에도.
심지어 여기까지 오는 5층에도 강민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지금 강민이 자신의 눈앞에 있다.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다.
'저놈 혼자서.. 우리보다 더 빨리 탑에 오른 거라고?'
그게 가능이나 한 말인가!
열다섯이다.
제아무리 싸움을 잘한다고 하더라도.
'혼자서 열다섯 명보다 훨씬 빠르게 코볼트를 사냥한 거라고? 게다가.. 왜 이렇게 멀쩡한 건데?'
물론 지금 강민의 꼴은 결코 '멀쩡하다'라고 말하기는 힘들었지만.
어디까지나 사지가 멀쩡했고, 몸 어디를 훑어보더라도 큰 부상 따위는 없어 보이는 건 사실이다.
저벅
"오랜만이야."
강민이 최민철을 향해 걸어왔다.
최민철의 안면 근육이 쉴 새 없이 꿈틀댔다.
좋지 않은 예감이 스쳐 지나갔다.
'아니야. 저, 저 새끼는…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는 모르잖아.'
한오명을 죽이고.
다른 파티원들 위에 군림하며 폭정 아닌 폭정을 일삼았던 그 일들을 강민은 모를 테니까.
"강민 씨!"
최현서가 다급히 한강민을 향해 달려갔다.
눈치를 보던 최기훈과 이혁준도 마찬가지다.
"떨어져라. 냄새난다."
달려오는 그들을 보며 강민이 짧게 말했다.
"으읍.."
"웁."
역시나.
그들은 강민의 몸에서 나는 악취에 잠시 멈칫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강민에게 다가가는 걸 멈추지 않았다.
'이렇게 반가울 줄이야.'
악취 따위야.
강민을 만난 반가움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지금 강민은, 그들의 입장에서 어두운 동굴에 비친 한줄기 빛이었으니까.
"그, 그... 바, 반갑..."
최민철이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어 보였다.
"별로 안 반가워 보이는데. 왜. 나를 만나면 안 될 일이라도 있었던 건가?"
"그, 그럴리..."
그때였다.
퍼억!
"크악!"
뒤에서 누군가가 최민철을 발로 걷어찼다.
"뭐, 뭐야! 이 개...!"
"으아아아!"
"뒈져! 뒈지라고!"
퍼억!
파악!
한 명이 총대를 메고 최민철을 걷어차기 시작한 순간.
뒤에 모여 있던 플레이어들도 이를 악물고 최민철을 걷어차고 짓밟았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강민이 최현서에게 물었고.
최현서는 당장에라도 눈물을 쏟을 것 같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녀는 지금껏 있었던 일들을 강민에게 모두 털어놨다.
아빠에게 고자질하는 딸의 모습으로.
그 얘기를 들은 후, 강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당할 만했군."
"예, 예...?"
예상치 못한 대답이다.
물론 강민의 성격상 지켜주겠다는 얘기는 기대도 안 했다.
'그래도...'
적어도 그들의 마음에 공감해서 최민철을 비난해 주길 바랐는데.
"내가 뭐라고 했지? 약하면 죽는다. 그게 탑이야. 아직도 모르겠어?"
강민은 싸늘하게 말했다.
"그, 그게..."
"죽은 그 녀석은 안타깝지만, 나였으면 혼자라도 진즉 파티를 나왔을 거다. 어떻게 해서라도 고블린을 잡고 레벨을 올렸겠지."
"..."
"너희도 마찬가지다. 너희가 나에게 고자질하면, 내가 저 녀석을 혼쭐이라도 내줘야 하는 건가?"
"...그래도..."
"어리광부리지 마. 내가 보기에 이 탑에 가장 잘 적응한 건, 최민철 저 녀석이다."
최현서와 최기훈, 이혁준은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숙였다.
자신들의 모습이 조금 부끄러워지는 순간이다.
'그래. 강민 씨가 나를 지켜주는 사람이 아니잖아.'
그리고 그때.
저벅
강민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채앵-
검을 뽑아 들었고.
"비켜라."
최민철을 때리고 있는 플레이어들에게 말했다.
"어, 어..."
"예, 예...!"
그들은 최민철 주변에서 멀리 떨어진 채로 강민을 유심히 바라봤다.
강민은 싸늘한 눈으로 최민철을 내려 보고 있었다.
"그, 그래... 나, 나는... 타, 탑에 적응 했을 뿐이야..,!"
최민철이 강민에게 말했다.
강민이 했던 말을 들은 모양이다.
"그건 맞아."
강민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래! 너, 너도 알잖아! 내 말이 맞아! 맞는 말이잖아!"
"물론이다. 거기에 더해서. 네가 개새끼라는 것도, 언젠가 내 뒤통수를 칠 놈이라는 것도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