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상태창이 달라졌다-5화 (5/277)

5화

[레벨이 올랐습니다.]

[힘 0.3를 포식했습니다.]

[민첩성 0.2를 포식했습니다.]

.

.

.

[체력 0.1을 포식했습니다.]

몬스터를 사냥할 때마다 떠오르는 포식 메시지.

더 이상 헤아리기도 귀찮을 정도다.

전생에선 감히 상상도 못 했던 일이었다.

스탯 하나를 올리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던가.

'재밌군.'

성장 속도는 무시무시할 정도로 빨랐다.

이제 고작 5레벨이지만, 모든 스탯이 20을 넘었다.

힘은 22.2, 민첩성은 20.4, 체력은 20.6.

10레벨 수준을 훌쩍 뛰어넘은 스탯이다.

스탯을 더 많이 올리지 못한 건, 시간이 흐르면서 포식할 수 있는 스탯이 계속해서 줄어든 탓이다.

처음엔 1에 가까웠던 포식 스탯이 어느새 0.1 이하로 떨어졌다.

이대로라면 어느 시점부터는 스탯이 아예 오르지 않을 정도로 줄어들 것이다.

내 예상대로라면, 줄어든 스탯은 다음 층에서 다시 원래의 상태를 회복할 테고.

"허억.. 허억.."

"조, 조금만.. 쉬어도 괜찮을까요?"

플레이어들은 숨을 헐떡이며 내 옆에 서 있었다.

"이제 충분해. 내 목표는 달성했거든."

내가 말했다.

목표한 스탯을 달성했으니, 이제는 1층에 머무를 이유가 없다.

그 순간, 그들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저 들도 내 말뜻을 이해했겠지.

목표를 달성했다는 건, 내가 곧바로 2층으로 떠나겠다는 소리니까.

그리고 그 말은 저들이 더 이상 나의 보호를 받을 수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하, 하지만... 강민 씨!"

여자가 나를 다급하게 불렀다.

여자 이름이... 아마 최현서였지.

나는 자선사업가가 아니다.

그렇다고 거래했던 내용을 그저 무시한 채 저들을 버리고 갈 생각도 없다.

딱 5분.

앞으로 5분만 더 할애하면, 저들은 1층에서 죽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다.

적어도 5층까지는 무난하게 클리어 할 수 있으리라.

"우선 너희의 상태창을 펼쳐 봐라."

내 말에 그들은 머뭇거리면서도 상태창을 펼쳤다.

물론 저들의 상태창은 내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레벨이 몇이지? 스탯도 한 번 읊어 봐."

플레이어들은 순서대로 자신의 레벨과 스탯을 읊었다.

사실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서로의 상태창을 공개하는 건, 굉장히 꺼려지는 일이지만.

저들이 나를 크게 신뢰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저, 저는... 7레벨에 힘 14, 민첩성 13, 체력 15요."

최현서가 먼저 말했다.

역시.

가장 열심히 뛰더니 체력에 가장 많은 스탯을 분배한 모양이다.

다른 두 사람도 자신의 상태창을 읊었다.

여자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두 사람의 레벨은 7과 8.

스탯도 최현서와 엇비슷했다.

'다들 나보다 레벨이 높은 건, 몸의 원래 주인이 죽어있는 동안 저들은 계속 사냥했기 때문이겠지.'

이렇게 보니 새삼 포식이라는 능력치가 얼마나 대단한지 새삼 느껴지기도 했다.

나는 이제 고작 5레벨이면서도, 모든 스탯이 저들보다 한참이나 뛰어나다.

지금은 그리 큰 차이가 아니지만.

이 차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더욱 벌어질 것이다.

"그래. 아마 몹몰이를 하면서 너희도 레벨이 올랐을 거다. 그만큼 스탯도 증가했고. 그렇지?"

"예. 마, 맞아요. 정말 감사합니다."

여자가 고개 숙여 내게 인사했다.

과도한 리액션이다.

그만큼 내게 잘 보이려고 노력하는 것 같은데.

그렇다고 해서 저 여자를 데려갈 생각은 없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 고블린 사냥하는 거."

당연한 이야기다.

내가 빙의하기 전만 하더라도.

1레벨의 플레이어 세, 네 명이 모이면 능숙하게 고블린을 사냥했다.

7레벨이라면 1층에서 죽을 리가 없다.

물론 고블린을 상대하는 방법을 확실히 알고 있다는 가정하에서.

나는 그들에게 그 방법을 알려 줄 생각이다.

물론 내가 마음만 먹는다면, 저들을 5층이고 10층이고 데려가 줄 수 있지만.

그건 결국 저들을 위한 게 아니다.

스스로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이 탑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내 시간도 낭비되는 건 당연하고.

"아마 너희가 눈이 있으면 봤겠지. 내가 고블린을 사냥하는 방식 말이야."

플레이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식으로 사냥하면 된다. 어려운 일이 아니잖아?"

"..."

그들은 말을 잇지 못했다.

내 말이 맞다.

너무도 간단하다.

이걸 못하면, 그건 저능아다.

게다가 7레벨, 8레벨 세 명이 모이면, 그런 방식이 아니더라도 고블린을 사냥할 수 있다.

"10레벨까지만 고블린 사냥해. 그 이후로는 무난하게 5층까지 올라갈 수 있을 테니."

이 정도 해 줬으면 난 다 했다.

더 이상 여기에서 떠들고 있는 건 시간 낭비.

나는 어서 5층으로 올라가야 한다.

5층에서 내가 얻어야 할 히든피스가 존재한다.

지금 이 시기에, 그 히든피스는 아직 깨지지 않았다.

그 히든피스가 있으면, 10층에서 등장하는 보스 몬스터를 손쉽게 처치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의 도움을 빌리지 않고, 나 혼자서도.

앞으로도 기동력과 히든피스들을 독식하기 위해서는 나 혼자 탑을 올라야 한다.

5층의 히든피스가, 바로 솔로 플레이를 위한 기초 작업인 셈이다.

나는 몸을 돌렸다.

"자, 잠시만요!"

뒤에서 나를 다급하게 부른다.

하지만 대답하지 않았다.

말했듯, 나는 저들에게 줄 수 있는 걸 다 줬으니까.

거래는 끝이다.

"따, 따라만 갈게요! 따라만.. 가면서.. 강민 씨 방해 안 될 정도로만 연습해 볼게요. 고블린 사냥..!"

"방해가 되는 즉시 버릴 거야."

"네, 네! 당연하죠! 멀리 떨어져서 갈게요!"

그렇다면.

따라오는 것 정도까지 말릴 정도로 냉혈한은 아니니까.

아무래도 보는 것과 직접 사냥하는 건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니 적어도 내 보호 안에서 연습해 보고 싶은 마음일 것이다.

그렇게 나는 걸음을 옮겼고.

세 사람은 조금 떨어진 채로 내 뒤를 따랐다.

'이클립스는 보이는 대로 따야 돼.'

지금 가지고 있는 이클립스는 총 48뿌리.

5층에 있는 마을에서 물약을 살 수는 있지만.

이클립스가 있으면 굳이 물약에 돈을 쓸 필요가 없다.

게다가 5층에서 파는 물약은 효율이 극도로 낮다.

가격은 더럽게 비싸고.

거기에서 돈을 쓰는 건, 멍청한 이들이나 하는 짓이다.

그 돈으로 장비를 바꾸는 게 훨씬 이득이다.

'이클립스 60뿌리 정도면, 한동안 물약 걱정은 없겠어.'

내가 이클립스를 따는 걸 보며 저들이 조금 수군거리기는 했지만.

내게 직접적으로 묻지는 못했다.

얼핏 들어보니, 괴상한 취미 정도로 여기는 모양이다.

그렇다고 저들이 나를 따라 이클립스를 따지는 않았다.

그들 역시 탑에 있는 풀을 함부로 먹는다는 건, 두려울 수밖에 없으니까.

사실 이게 정상적인 반응이다.

이클립스의 용도를 처음 밝혀낸 또라이에게 경의를 표하는 바다.

그렇게 나는 고블린을 사냥하고, 이클립스를 채집하며 걸어 나갔다.

뒤에서는 내 시야에 들어오지 않은 고블린을 두고 자기들끼리 연습하는 것 같았다.

"이거구나! 와!"

"된다! 돼! 해냈어!"

"할 만한데? 이놈들! 강민 씨 아니었으면 정말 큰일 날 뻔했잖아."

"그러게요. 강민 씨가 생명의 은인이에요."

이렇게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처음 몇 번은 비명 소리가 들려오더니.

이제는 어느 정도 적응된 모양이다.

"사람들이 보여요!"

"이번에 탑에 들어왔던 사람들인가 봐!"

2층의 문 앞에 생존자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의 꼴은 말이 아니었다.

다들 사색이 되어서 모여 있었는데, 그 수는 고작해야 열 명이 조금 넘었다.

나머지는 아마 다 고블린에게 죽었겠지.

그만큼 초창기의 탑 생존율은 극악이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새, 생존자다!"

"어서 오세요! 사람들이 더 살아 있었어!"

그들은 우리의 모습을 보며 기쁜 모습으로 소리쳤다.

아무래도 생사를 넘나들며, 사람의 모습이 그리웠으리라.

우리는 그곳으로 다가갔고.

그들은 우리에게 다가왔다.

"고생하셨어요. 정말. 그런데 이 파티는 생존율이 높군요."

"그러게요. 네 명이 살아 있는 걸 보면... 특별한 능력을 가지신 분이 있는 건가요?"

모여 있던 사람 중 한 남자가 우리에게 물었다.

"강민 씨요. 강민 씨가 없었다면.. 우리는 전부 다 죽었을 거예요."

"맞아요. 덕분에 우리가 살아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나와 함께했던 이들이 말했다.

모두의 시선이 동시에 나에게로 향했다.

복잡한 시선들이 얽혀 있었다.

가장 처음 우리에게 말을 걸었던 남자가 내게 다가왔다.

"반갑습니다. 최민철이라고 해요."

"한강민입니다."

나는 내 이름을 짧게 말했다.

그러면서 내 전신을 훑는다.

훑은 뒤에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다.

아무래도 내 몸만 보고 자신보다 약하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물론 겉모습만 보면 최민철이라는 남자가 훨씬 더 다부지긴 하다만.

중요한 건 근육량이 아니라, 스탯이건만.

이건 탑의 뉴비들이 빈번하게 저지르는 실수다.

남자는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자, 아마 여기까지가 이번 차수 1층의 생존자인 것 같습니다. 지금 오신 분들까지... 열여섯이군요."

아마 저 남자가 이 무리의 대장이 된 것 같았다.

한 눈에 보더라도 몸이 다부진 걸 보니, 나름 실력도 있는 모양.

아마 그러니 1층에서 살아남은 이들 중에서도 리더가 된 거겠지.

지금 살아서 여기에 도착한 이들은, 나름 대단한 녀석들이기도 하다.

기본적인 교육도 없는 상태에서, 탑에 들어와 고블린을 사냥했다는 뜻이니까.

하지만 거기까지다.

내가 보기에는 아직 미숙하고도 미숙한 플레이어일 뿐.

"그럼 나는 이만."

나는 여기에 모여서 소꿉놀이 따위 할 생각은 없다.

내가 2층으로 걸어 오르려는 순간.

"잠깐만요!"

최민철이라는 남자가 나를 불러 세웠다.

"할 말 있습니까?"

내가 물었다.

"혼자 갑니까? 당신 그러다 죽어요."

"내가?"

그럴 리가 없다.

70층까지 올라갔던 나인데.

2층에서 죽을 리가.

"실력에 자신이 있으신 것 같은데. 다시 생각해 보시죠. 이곳은 위험합니다. 제 지시에 따라서 파티를 이루시죠. 그러면 생존율이 훨씬 더 올라갈 겁니다."

"...걱정은 고마운데. 괜찮습니다."

성가시다.

물론 내가 2회차라는 걸 모르니까 하는 소리겠지만.

나는 다시 몸을 돌렸다.

내 뒤에서는 최민철의 목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지만, 뒤돌아보지 않았다.

세 명도 귀찮았는데, 열다섯 명?

내 몸에 족쇄를 다는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다.

따라오는 것조차도 싫다.

그러면 내가 사냥할 몬스터의 숫자가 줄어들 테고.

내가 포식할 수 있는 능력치도 줄어들 수밖에 없으니까.

그러는 동안에 등 뒤로 따가운 시선이 느껴진다.

그렇게 나는, 2층에 올라섰다.

"오랜만이네."

풀밭이 펼쳐졌다.

코볼트의 숲이었다.

***

"저 사람… 뭡니까?"

최민철이 최현서를 향해 물었다.

"강민 씨요? 사실 우리 파티였는데…."

그리고서는 한강민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놨다.

그 말을 들으며 최민철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건방진 자식.'

아무래도 한강민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는 지금 자신이 1층에서 살아남았고, 또 살아남은 이들 중에서 리더가 됐다는 사실에 큰 자부심을 느끼고 있는 중이었으니까.

'사람을 무시해도 정도가 있지.'

사실 생각해 보면, 강민이 크게 잘못한 일은 없다.

그저 혼자 빠르게 성장하기 위해 2층으로 혼자 넘어간 것뿐이지만.

최민철은 그런 강민의 태도를 모욕으로 느끼고 있는 중이었다.

그의 자존심에 상처가 난 것이다.

최민철은 빠르게 주변을 살폈다.

'어쨌든 지금 이 사람들은 나를 크게 의지하고 있어. 이런 식으로 차차 세력을 늘려 가는 거다.'

그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자, 그럼 결정을 내릴 차례군요. 2층으로 갈지, 아니면 1층에서 더 사냥할지."

어차피 그는 무리들의 의견을 들을 생각은 없다.

이미 탑이라는 생태계에 어느 정도 적응한 뒤였고.

힘이 전부라는 사실을 깨달았으니까.

여기에서 가장 강한 건, 자신이라고 확신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는 스스로 결정을 마친 뒤 말을 이었다.

"제 생각에는…."

"아, 저희는 우리 셋이 조금 더 사냥하고 가려고요."

그의 말을 끊고 최현서가 말했다.

"…예?"

예상치 못한 일이다.

당연히 최현서도 자신을 의지하고 자신의 무리 안에 들어올 거라고 생각했건만.

"아, 우리가 강민 씨의 사냥 법을 배웠거든요. 그래서 우리끼리 조금 더 사냥하다 2층으로 올라갈 생각입니다. 그러실 거죠?"

최현서가 함께 온 두 사람에게 물었다.

사냥 법을 배웠다는 말에 모여 있던 이들 중에서 잠시 동요가 일었다.

그들이 보기에도 강민은 범상치 않았고.

그런 강민에게서 사냥 법을 직접 배웠다는 건, 탑에 대해 무지한 그들에게 엄청난 메리트였으니까.

"예. 물론이죠. 정말 강민 씨는 대단한 사람이라니까요."

"저도요. 그럼 저희 먼저 가 볼게요."

그렇게 최현서를 포함한 두 사람은 최민철에게 인사하고 몸을 돌렸다.

그들 역시 조금이라도 빨리 고블린을 직접 사냥해 보고 싶었으니까.

'뭐라고… 이 미친….'

최민철은 미련도 없이 몸을 돌린 그들을 보며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속에서 울화가 치밀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그때.

"우, 우리도.. 저 사람들 따라가 보는 게 어떨까요?"

한 남자가 최민철에게 물었다.

그 말에 최민철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당장이라도 욕지거리를 내뱉을 것 같은 표정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