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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상태창이 달라졌다-4화 (4/277)

4화

놈이 목숨이 끊어진 순간, 메시지가 떠올랐다.

[플레이어 박현덕의 가장 높은 스탯 '힘'의 일부를 포식합니다.]

[힘 1을 포식했습니다.]

스탯은 올랐지만, 포식 포인트는 획득하지 못했다.

차라리 이쪽이 마음이 편하다.

나도 사람을 죽이며 성장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사람을 처치하고 얻어냈다는 사실이 꺼림칙했지만.

인과응보다.

나는 상태창을 펼쳤다.

[상태창]

>이름: 한강민

>레벨 : 2

>스탯

-육체

힘 : 15.8

민첩성 : 13.2

체력 : 12.8

-정신

마력 : 5

>능력

1. 포식자 (S)

포식 포인트 – 1350p

2레벨의 상태창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수치.

3개의 스탯 포인트는 힘, 민첩성, 체력에 고루 분배했다.

방금 얻은 힘 1 덕분에 안 그래도 높았던 힘이 독주하고 있었다.

레벨로 치자면 이미 7~8레벨 수준에 도달했을 정도니까.

안 그래도 기본 스탯이 높은 상황이건만.

거기에 포식과 높은 잠재력으로 인한 훈련 스탯까지 더해진 결과다.

'이 속도라면, 확실히 5레벨이면 2층에 올라갈 수 있겠어. 계획대로다.'

아직도 포식 포인트에 대한 사용법은 알 수 없었지만.

지금은 이것만으로도 포식자라는 능력에 크게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주변을 돌아봤다.

사색이 된 채 나와 죽어 있는 박현덕을 바라보는 플레이어들.

"하, 한강…민…!"

"강민 씨! 이게 대체 무슨 짓…"

떨리는 눈으로 눈물을 쏟아내고 있는 여자와, 사색이 된 얼굴로 뒷걸음치는 남자 둘.

"저 녀석이 먼저 칼을 뽑아 든 거 보지 못했나?"

"하지만…"

"나도 지금 굉장히 불쾌해. 나라고 사람을 죽이고 싶은 건 아니었으니까. 그러면 내가 묻지."

"…?"

"만약 저 녀석이 너에게 칼을 뽑아 들었으면. 너희는 순순히 당해 줄 텐가?"

"그, 그건…"

"봐라. 그런 눈으로 볼 필요 없어. 이제 너희도 탑에 올라 온 이상, 많은 사람을 죽이게 될 거야.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죽을 테니까."

내 말에 모두가 말없이 입술을 깨물거나 고개를 숙였다.

이제야 조금 탑에 올라왔다는 사실이 체감되는 모양이다.

"하나만 더 묻지."

그냥 지나치려고 했지만, 생각이 바뀌었다.

저들을 통해 내가 빙의한 시점이 어느 때인지 정확하게 밝혀낼 생각이다.

그래야 앞으로 내가 얻어 낼 수 있는 히든피스를 예측하고, 행동할 수 있을 테니까.

"…"

대답이 없다.

아직도 많이 혼란스러운 모양이다.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지금이 몇 년도지?"

"뭐...요..?"

"몇 년도냐고. 아무래도 충격에 기억을 잃은 모양이다."

대충 둘러댔다.

빙의했다고 해 봐야 미친놈으로 바라볼 게 뻔하다.

"하아... 2130년이요."

2130년.

역시 과거다.

이때는.

'한국의 플레이어들이 탑을 오르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

그리고 내가 탑을 오르던 시점보다 한 세대 전.

확실히 지금 이 시점은 탑의 초창기다.

플레이어들 사이에 의심과 투기가 난무했고.

덕분에 그 누구도 자신이 가지고 있는 정보를 누구에게도 공개하지 않았던 시간.

그러니까 저들이 이 꼴인 거겠지.

탑에 대한 어떤 정보도, 초보자를 위한 기본적인 시설도 없는 것 말이다.

하지만.

내게는 오히려 희소식이다.

한국의 플레이어들이 지지부진하며 이제 막 50층 정도를 돌파했을 시점이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히든피스에 대해서 거의 무지했던 시절이다.

우연히 히든피스를 달성한 이들은 그 사실을 절대로 발설하지 않았으니까.

'그렇다면.. 탑에 숨어 있는 대부분의 히든피스가 아직 그대로 남아 있다는 뜻이다.'

이 말은 곧, 남아 있는 히든피스를 내가 독식 할 수 있다는 말.

이 당시의 플레이어들은 정보를 공유하지 않았다.

서로를 극도로 견제했으니까.

정보를 공유하는 건 고작 해봐야 자신들의 가문, 혹은 길드원들 내부에서만이다.

그것도 몇몇에게만 비밀리에.

지금의 플레이어들은 굉장히 파편적인 정보만을 가지고 탑을 오르고 있다는 뜻.

그렇게 앞으로 10년은 더 서로 견제하고 싸우다 결국 정보를 공유하게 된다.

'고층에서는 결코 혼자 힘으로 탑을 오르는 게 불가능하다는 걸 인지했었지.

그렇게 세상에 공유된 정보들과, 내가 경험으로 얻어 낸 정보들.

그게 나에겐 있다.

지금 탑의 랭커들도 가지지 못한, 미래의 지식이 말이다.

'잘 됐어. 그러면 그 망할 놈들을 짓밟는 것도 어렵지 않은 일이다.'

명가들 중에서도 가장 나를 가장 못살게 굴었던 마법 명가의 쓰레기들.

'결국 나를 실험체로 쓰도록 다른 명가들을 꼬드긴 것도 마법 명가였지.'

그놈들이 내 첫 번째 목표다.

마법 명가가 싸놓은 똥들은 탑 곳곳에 퍼져 있었고.

놈들에 대한 정보들을 빠르게 되새겼다.

"그렇군."

내가 말했다.

혼자 이런 말을 지껄이니 플레이어들은 마치 나를 미친 놈 보듯이 바라본다.

내 머릿속에 좋은 생각이 하나 스쳐 지나갔다.

더 빠르게 탑의 2층으로 오를 수 있는 방법이 떠올랐다.

노력은 줄이고, 더 빠르게 성장할 수 있는 방법.

"나와 거래를 하자."

그건 바로 저들을 이용하는 것이다.

"거래..?"

"그래. 너희는 2층에 올라갈 수 없을 테니까. 절대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닐 거다."

한 남자가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아니, 듣자 듣자 하니까. 너무한 것 아닙니까?"

나는 우선 들어보기로 했다.

"계속해 봐."

"당신도 조금 전 고블린한테 둘러싸여서 죽어가고 있었어. 근데 마치 너는 혼자서 2층에 올라갈 수 있는 것처럼 얘기하는 거. 웃기지 않아?"

"그것도 그러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진 것 같은데."

내 말에 남자는 다시 악을 내질렀다.

"달라졌다고? 그건 또 무슨 개소리야?"

"조금 전 너도 봤다시피. 나는 너희 네 명이 고블린을 사냥하는 것보다 훨씬 빠르게 고블린을 사냥했어."

"그, 그건..."

"머리가 있다면 충분히 나 혼자 1층을 뚫어낼 수 있다는 결론을 낼 수 있지 않을까?"

나는 검지 손가락으로 머리를 콕콕 누르며 말했다.

잔뜩이나 비꼬는 어투였지만, 남자는 반박하지 못했다.

명백한 사실이니까.

그리고 바쁘게 눈을 굴린다.

내가 갑자기 변해버린 이유가 궁금한 모양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궁금한가 본데. 나도 설명할 방법이 없다. 탑이 나를 도왔다는 말밖에는 할 수 없겠군."

"...!"

틀린 말도 아니다.

실제로 탑이 내게 보상을 준다는 메시지가 떠올랐으니까.

"확실히 말하지. 나는 너희가 없어도 이 탑을 오를 수 있다. 충분히 가능해. 하지만 너희는?"

"…."

"…."

말이 없다.

자신이 없겠지.

당연한 일이다.

탑의 극초창기.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플레이어나 혈계를 보유한 이들이 아니고선, 많은 숫자가 1층에서 죽어나갔다.

지금 탑 위에 올라 있는 이들도, 대부분은 나중에 랭커의 반열에 올라 있는 이들이다.

물론 개중에는 기지를 발휘하거나 뛰어난 팀워크로 탑을 올라가는 이들도 많다지만.

저들은 결코 아니다.

이대로 있으면 여기에서 반드시 죽을 것이다.

"나는 너희를 위층으로 올려보내 줄 능력이 있어. 물론 언제까지고 너희를 품어 줄 생각은 없다. 내가 너희를 케어해 줄 수 있는 건, 2층까지야."

"2층..."

"물론, 너희가 5층까지는 헤쳐 올라갈 수 있는 플레이어로 만들어 줄 수도 있지. 너희가 내 말을 얼마나 잘 듣느냐에 따라서."

나는 미끼를 던졌다.

거래라면 응당 오고 가는 것이 있어야 하는 법.

물론 내 이득이 훨씬 큰 거래지만.

내 말에 플레이어들의 얼굴에 아주 미약하게나마 화색이 돈다.

5층이 바로 마을이 있는 곳이니까.

이 정도 정보는 초창기에도 공개되어 있는 사실이다.

"하, 할게요!"

"나.. 나도! 5층까지만 갈 수 있다면...."

"어쩔.. 수 없지. 나도 동의한다."

세 사람이 대답했다.

거래는 성립됐다.

"좋다. 그러면 너희가 해야 할 일을 알려주겠다."

나는 그들에게 그들이 해야 할 일을 설명했고.

내 말을 듣고 있는 그들의 얼굴은 점점 굳어갔다.

하지만, 거절하지는 못했다.

우선은 살아야 하니까.

그것이 생존율이 높은 방법이니까.

바로 내 말에 따르고, 내 옆에 조금이라도 오래 붙어 있는 것 말이다.

나는 설명을 끝낸 뒤, 말했다.

"움직여. 빨리."

머뭇거리던 그들은, 이내 내 지시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

이준혁.

그는 지금 이 어이없는 상황에 분노했다.

하지만 동시에.

강민의 말에 따를 수밖에 없는 자신의 처지가 한탄스러웠다.

탑 밖에서는 나름 엘리트로 승승장구하고 있던 그였다.

결국 각성하게 됐고, 자신에 찼다.

자신 있었다.

말했듯, 탑 밖에서의 그는 공부깨나 하는 엘리트였으니까.

순식간에 탑에 오르고, 랭커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욕심은 처참히 깨져버렸다.

탑을 오르는 건 고사하고, 1층에서 죽다 살아난 지경이었으니까.

지금 자신의 처지를 본다면 눈물이 앞을 가릴 지경이었다.

'X발... 몹몰이라니...'

그가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강민이 지시한 일은 바로, 몹몰이였다.

조금 더 빠르게 성장해서 목표했던 육체 스탯 20을 달성하기 위해.

강민은 남아 있는 세 명의 플레이어들에게 몹몰이를 지시했던 것이다.

플레이어들이 직접 싸울 필요는 없다.

처치하는 건 오로지 강민의 몫.

그쪽이 훨씬 효율이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강민의 속내는 따로 있다.

몬스터를 직접 잡아야 스탯을 포식할 수 있으니까.

레벨은 같이 오르더라도 강민의 성장과 저들의 성장은 차원이 다르다.

물론 파티원들도 결코 손해라고 볼 수는 없다.

강민의 전투 방식을 보고 배우면서 고블린을 사냥하게 될 수도 있을 테니까.

'그래도... 이딴 짓을 하려고 탑에 올라온 건 아닌데...'

눈물이 쏟아져 나올 지경이었지만.

이렇게라도 해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소량의 경험치는커녕 당장 죽게 생겼으니까.

'젠장... 참자. 조금만 더 참자. 언젠가.. 나도 탑 위층까지 오르고, 강해지면 돼. 그때까지 잠시 웅크리고 있는 거야.'

그는 속으로 다짐하며 칼을 갈았다.

하지만, 그런 원대한 꿈을 꾸기에 그의 지금 모습은 너무도 초라했다.

키르륵! 키륵!

"으아아아아!"

지금 그는 뒤를 쫓아오는 고블린을 몰고 죽을힘을 다해 달리고 있을 뿐이었으니까.

탑에 올라 강해지기까지는, 너무도 멀고 고된 여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저 앞에서 마침 최현서와 최기훈이 몰고 온 고블린을 사냥하는 강민의 모습이 보였다.

최현서와 최기훈은 잠시 옆에서 숨을 고르고 있었다.

강민은 혼자서 무려 열 마리가 넘는 고블린을 상대하고 있다.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장면이다.

고블린에게 단 한 번의 공격도 허용하지 않았고.

한 마리의 고블린을 그로기 상태로 만드는 데에는, 두 번 이상의 칼질이 필요하지 않았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모습이다.

조금 전 강민을 향해 욕지거리를 내뱉었지만.

지금 저 모습에는 스스로도 압도될 지경이었다.

'격이 달라.'

저도 모르게 뱉어낸 한 마디.

말 그대로다.

강민의 전투 방식은 정말이지 격이 달랐다.

조금 전 처참하게 죽어가던 강민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어서 와라. 너희는 다시 고블린을 몰아오고."

쓰러져서 괴성을 내지르는 고블린의 몸에 칼을 박아 넣으며 강민이 말했다.

"아, 알겠습니다."

"그, 그래...!"

최기훈과 최현서는 다시 바쁘게 고블린을 찾아 나섰고.

모든 고블린을 처치한 강민은 이준혁이 몰고 온 고블린을 처치하기 시작했다.

이준혁의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소량이지만 경험치가 조금씩 오르고 있었다.

"5분 정도 쉬었다가 너도 다시 출발해."

"..."

이준혁은 묘한 눈으로 강민을 바라봤다.

'생각해 보니, 그리 나쁜 녀석은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어쨌거나 그들의 목숨을 구해줬고.

또 어쨌거나 레벨 업을 도와주고 있지 않던가.

"아, 알겠어...요..."

저도 모르게 존댓말을 뱉어낸 이준혁이 자신의 뺨을 두드렸다.

'정신 차려, 이준혁. 나는 반드시 랭커야 돼야 해. 이 정도로 기뻐하면 안 된다고.'

하지만, 다시 한번 강민의 싸움 장면을 본 순간.

'멋있다.'

감탄사를 내보낼 수밖에 없었다.

화려하진 않지만, 너무도 능수능란한 그의 모습.

그건 자신이 오래도록 머릿속에 그리던 '완성된' 플레이어의 모습이었으니까.

5분이 지났을 무렵.

저쪽에서 최기훈이 고블린 여섯 마리를 몰고 달려오고 있었다.

강민은 이준혁이 데리고 온 고블린을 모두 처치한 상황.

"뭐 해? 안 가?"

강민이 말했다.

"어, 어! 출발하겠습니다!"

그는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다시 강민을 흘끔 바라봤다.

낯선 강민의 모습에서 풍겨 나오는 여유.

그런 강민이 멋있어 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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