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한참이나 내 몸을 살피고, 주변을 살핀 결과.
결국 나는 결론을 내렸다.
나는 다시 살아났다.
내 몸이 아닌, 다른 사람의 몸에서.
'…어찌된 일인지 알 수는 없지만 현실이다.'
여기는 분명 탑의 1층 초입이 맞다.
하지만 내 기억과는 조금 달랐다.
내가 막 탑에 오를 때쯤에, 1층에는 뉴비들을 위한 시설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는데.
"그러면.. 내가 처음 탑에 오를 때보다 과거라는 말인데."
과거인 건 확실하지만.
얼마나 더 과거로 온 건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사람을 만나게 된다면 그때 물어보는 수밖에.
우선 움직이기 전에 지금 내 상태를 완벽하게 파악해야 한다.
그래야 앞으로의 내 행동 방식과 전략을 수립할 수 있으니까.
나는 천천히 내 몸을 살폈다.
팔과 다리의 길이가 이전 내 몸보다 훨씬 길고.
골격 자체도 원래의 내 몸보다는 훨씬 뛰어나다.
유일한 단점은, 말했듯 아직 단련이 되지 않았다는 것뿐.
신체조건 자체는, 이전의 나보다 훨씬 뛰어나다.
희소식이다.
탑에 대한 수많은 지식과 내가 익혔던 그 기술들은 내 머리에 있다.
그런데 더 좋은 신체조건이라면.
내 지식들을 훨씬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다는 뜻이니까.
'그러니까 기초 스탯도 꽤 훌륭한 수준이었던 것이겠지.'
나는 다시 상태창을 바라봤다.
[상태창]
>이름: 한강민
>레벨 : 1
>스탯
-육체
힘 : 10
민첩성 : 9
체력 : 9
-정신
마력 : 5
>능력
1. 포식자 (S)
분명히 내 이름이다.
강제 접속이라는 메시지를 통해 추측해 보건대 두 가지 가능성이 존재한다.
강제로 내 이름을 덧씌웠거나.
아니면, 원래 몸 주인의 이름 역시 한강민이었다거나.
그것까지는 지금 내가 알 수 있는 방도가 없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
상태창에 적혀 있는 '수치'들이다.
우선 상태창만 본다면.
'최고다,'
1레벨의 스탯은 기초 스탯이라고 불린다.
각성하는 순간, 이미 모든 플레이어는 평범한 인간의 리미트를 해제하게 되고.
그가 지닌 잠재력에 따라 1레벨의 기초 스탯을 부여받는다.
'우선, 이 녀석의 잠재력은 뛰어나다.'
1레벨에 이미 힘10, 민첩성 9라는 건, 이미 신체 능력에 있어서는 잠재력이 상위 0.1%의 수준을 상회한다.
게다가 체력도 9.
이 수치 역시도 상당히 뛰어난 잠재력을 가진 셈이다.
스탯을 증가시키는 법은 크게 세 개다.
아이템, 훈련, 레벨 업.
아이템에 달린 옵션으로 스탯을 증가시키는 게 가장 빠른 방법이지만, 쉽지 않다.
마을에서 파는 무기는 대부분 보급용이고, 쓸 만한 아이템은 강력한 몬스터를 사냥해야 하기 때문이다.
반복되는 훈련으로도 스탯을 증가시킬 수도 있다.
증가하는 수치는, 잠재력에 큰 영향을 받는다.
지금 이 신체의 잠재력은 높다.
그렇다는 건, 훈련을 통해서도 훨씬 높은 효율을 뽑아낼 수 있다는 뜻.
부익부 빈익빈이라는 표현이 딱 적절하리라.
나머지 하나가 레벨 업.
1레벨이 오를 때마다 주어지는 세 개의 스탯 포인트를 스탯에 분배하는 것이다.
이 외의 방법은 없다.
이건 모든 플레이어들이 동의하는 바다.
'5미만의 기초 스탯은 평범한 잠재력.'
5~6의 스탯은, 뛰어난 잠재력.
상위 10%의 수준이다.
7~8은, 그 자체만으로도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났다고 생각해도 충분한 수치.
퍼센트로 따지자면, 상위 1% 이내다.
'9에서 10은... 말 할 필요도 없지. 최상급이야.'
0.1% 이내의 잠재력을 지닌 이들이 바로 9에서 10의 기초 스탯을 부여받는다.
이 몸의 주인은, 확실히 신체 능력에 있어서는 평범한 플레이어들의 재능을 한참이나 압도하는 수준이다.
비록 기초 마력이 5로서, 그닥 훌륭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나와는 크게 상관없는 일이다.
애초에 나는 '마법' 계열이 아니라, 검을 다루는 검사 계열이니까.
'만족스럽다. 그것도 엄청나게. 평균 육체 스탯이 9를 넘어서는 수준이야.'
결론은 하나다.
이 몸의 주인은 육체만 뛰어난 녀석이다.
전투 센스 따위는 비루할 정도로 하찮은 게 분명했다.
그러지 않고서 이런 잠재 스탯을 가지고 1층에서 이 꼴을 당한다는 건 불가능 한 일이다.
'내가 처음 각성했을 때 평균 육체 능력치가 7이었지.'
그럼에도 나는 능력 하나 없이 탑을 올랐고.
70층에 도착했다.
'내 전투 센스와 이 녀석의 육체 능력이 더해진다면.'
최상의 조건이다.
더할 나위 없다.
내가 갖지 못했던 능력과 천부적인 잠재력이 더해진 이상.
나는 지금 날개를 단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다.
게다가 능력.
드디어 내게도 능력이라는 게 생겨났다.
심지어 S급.
'어떤 능력인지는... 이제 알아봐야겠지만.'
아직은 알 수 없다.
포식자라는 능력에 대한 정보는 조금도 알려주지 않은 상태.
나 스스로 밝혀내라는 뜻이겠지.
게다가.
'포식자라는 능력은 한 번도 본 적 없는 능력이다.'
이미 내 머릿속에는 수많은 능력들에 대한 정보가 담겨 있다.
하지만 포식자라는 능력은 생소하다.
어쩔 수 없다.
내가 직접 이 능력의 비밀을 밝혀내는 수밖에.
'사실 S급이라는 것 자체로 이미 그 효과는 충분히 기대할 만하겠지.'
S급 능력의 가치는 상상을 초월한다.
말했듯, 이 탑에는 여러 명가들이 존재한다.
검술 명가, 마법 명가, 창술 명가, 궁술 명가, 체술 명가.
그들의 무서운 점은, 자신들의 자식에게 '혈계'라는 사기적인 능력을 전해줄 수 있다는 것.
그 혈계는 보유하고 있기만 하더라도 순식간에 랭커의 반열에 들 만큼 굉장한 것들이다.
그런 이들과도 감히 비벼볼 수 있는 게, 바로 S급 능력이니까.
어쨌든 하나는 확실하다.
'이렇게 뛰어난 육체에 S급 능력이라니. 이 상태라면, 탑을 끝까지 오르는 것도 결코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탑 내부의 웬만한 정보들은 내 몸과 머리가 기억하고 있으며.
심지어 그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신체와 능력이 주어졌다.
가능하다.
분명히 가능한 일이다.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런데.
"크읍."
옆구리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나는 옆구리를 바라봤다.
꽤 아물었지만, 아직도 상처의 흔적이 남아 있다.
옷은 찢어졌고, 피로 흥건히 젖어 있었다.
아무래도 부상을 당해서 죽어가고 있었던 몸인 것 같다.
"하아.."
나는 간신히 몸을 일으켰고.
주변을 살폈다.
'1층에서 쓸만한 약초가 있었지.'
탑에 처음 플레이어들이 등반하기 시작했을 때는 밝혀지지 않았던 약초다.
시간이 흐르며 많은 플레이어들이 연구한 끝에 그 정체를 밝혀낸 것이다.
'이클립스 허브.'
심지어 흔히 보이는 잡초다.
그런데도 플레이어들은 감히 이클립스를 약초로 사용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생각해 보면 간단하다.
감히 던전에 자란 풀을 먹을 생각을 하기는 힘들었겠지.
처음 그 정체를 밝혀낸 플레이어도 아마 제정신은 아니었으리라.
어쨌든 그의 그런 희생정신 덕분에 탑 초반의 생존율이 비약적으로 상승했다.
나는 주변을 살폈다.
"있다."
역시.
탑 1층을 오를 때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약초다.
나는 이클립스 허브를 땄고.
바닥에 떨어져 있던 검을 집어 들었다.
이전 몸의 주인이 쓰던 검인 것 같다.
스윽- 슥
나는 이클립스를 손질했다.
반은 상처 부위에 바르고 또 반은 입으로 씹었다.
"후우.."
시간이 조금 흐르고, 상태가 호전됐다.
탑의 축복이라고 불리던 약초다.
그만큼 회복 속도 역시 뛰어나다.
이 약초를 얻을 수 있는 건, 1층뿐.
앞으로 보이는 대로 최대한 수집해야 한다.
약초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특히나 '마을'이 존재하는 5층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가자."
나는 상처가 어느 정도 아물자마자 움직이기 시작했다.
당연히 길에 보이는 이클립스를 모두 따서 인벤토리에 집어넣었다.
나는 계속 걸었다.
이제는 고통이 완전히 사라졌고.
이 몸에도 어느 정도 적응을 한 상태다.
처음 이 몸에 들어왔을 때만 하더라도, 수십 배는 약화된 신체 능력이 어색했지만.
1레벨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몸에 적응했더니 너무도 흡족하다.
'인생은 역시 운칠기삼…, 아니 운구기일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야.'
누구는 이런 재능을 타고난다.
또 누구는 어정쩡한 재능을 타고나서 개고생을 하지.
나 같은 사람들 말이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나에게는 감히 누구도 따르지 못할 '재능'이 생겨났으니까.
그때였다.
키륵!
키르르륵!
고블린이다.
정겨운 목소리다.
탑의 1층에서 등장하는 몬스터.
그리고 탑에서 가장 약한 몬스터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절대 무시할 수는 없지. 이래 봬도 몬스터는 몬스터다.
고블린의 평균 육체 능력은, 10에 육박한다.
평범한 인간은 맨손으로도 찢어 죽일 수 있는 게, 바로 탑의 최하층에 서식하는 고블린.
키륵!
고블린들이 나를 발견했다.
나는 빠르게 놈들을 살폈다.
숫자는 셋.
쉽지는 않겠지만, 불가능한 싸움도 아니다.
물론 이건 나의 이야기다.
평범한 플레이어가 탑에 올라와서, 1레벨에 혼자 고블린을 만난다면?
죽음이다.
하지만 나는 다르다.
고블린의 전투 방식과 약점을 완벽하게 꿰뚫고 있으며.
탑에 오르며 내가 익혔던 각종 기술과 생존기를 기억하고 있으니까.
'여기에서, 포식자가 어떤 능력인지 알아보면 되겠어.'
나는 몸을 움직였다.
고블린이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우선은, 옆으로.
휙!
나는 순식간에 방향을 틀었다.
케르륵!
푸숙!
놈의 옆구리를 찔렀다.
고블린들은 조악한 방어구를 착용하고 있지만.
단지 몸의 앞면을 조금 방어할 뿐.
옆은 완전히 비어 있다.
그게 1레벨에 고블린을 손쉽게 사냥할 유일한 방법이다.
이걸 모르고 무작정 싸우면, 놈들의 압도적인 육체 능력 앞에 무력하게 박살 날 수밖에 없다.
이런 기초적인 정보도 모른 채 탑에 올라왔다니.
뭐 하는 녀석인 건지.
'아니, 어쩌면..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과거일 지도 모르겠는데.'
내가 탑에 오를 때만 하더라도.
탑에 대한 정보를 공유한 선배 플레이어들 덕에, 몬스터의 공략법들은 퍼진 상태였다.
특히나 고블린을 상대하는 방법은 모든 플레이어가 숙지할 정도였으니까.
만약 제대로 훈련을 받고 탑에 오른다면.
그래서 세 사람 정도의 평범한 플레이어가 힘을 합치면, 고블린에게 당할 이유는 없을 텐데.
실제로 내가 활동했던 전생에서 1층의 생존율은 100%에 육박했을 정도다.
그 뒤로는 아예 탑의 바깥에 아카데미에서 훈련을 시킨다고 들었다.
어쩌면, 내 생각보다 과거로 돌아왔을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뭔가 더러운 일을 당했을 수도 있고.'
예를 들면 파티원들에게 미끼로 이용당한 채, 버려졌다거나.
내가 겪었던 그런 일처럼.
'…….'
괜히 혀끝이 쓰다.
키아악!
고블린이 괴성을 내질렀다.
나는 재빠르게 검을 뽑아들었고.
빠각!
놈의 옆구리를 발로 걷어찼다.
놈이 자빠져서 허우적대고 있다.
죽이는 건, 나중에.
고블린은 늘 무리 지어 등장한다.
한 녀석에 정신을 팔려 있으면, 언제 뒤통수를 맞을지 모른다.
정말 기초적이고 또 기초적인 공략법이다.
나는 다른 두 녀석의 위치를 파악했다.
그리고 몸을 움직였다.
이번에도 역시 방향을 틀어 고블린의 옆면을 향해 검을 찔러 넣었다.
푸학!
놈의 옆구리를 깊게 찔러 들어간 검 끝에 묵직한 촉감이 느껴졌다.
이 정도 일격이면, 놈은 가만히 놔둬도 알아서 죽는다.
마지막 하나.
놈은 조금 당황한 눈치다.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곧바로 놈의 겨드랑이를 향해 검을 박아 넣었고.
키르르륵!
놈은 공격 한 번에 목숨을 잃었다.
그런데 그 순간.
[고블린 - 단검을 처치했습니다.]
[11의 포식 포인트를 획득했습니다.]
[고블린의 스탯 중 가장 높은 수치의 스탯을 포식합니다.]
[민첩성 0.6을 포식합니다.]
이런 미친.
지금 내 눈앞에 믿을 수 없는 글자들이 떠올랐다.
잠깐만.
조금 더 확인해 보자.
나는 즉시 그 옆에 누워 생사를 오가는 고블린의 목에 검을 박아 넣었다.
[고블린 – 장검을 처치했습니다.]
[8의 포식 포인트를 획득했습니다.]
[고블린의 스탯 중 가장 높은 수치의 스탯을 포식합니다.]
[힘 0.5을 포식합니다.]
맙소사.
똑같은 메시지가 떠올랐다.
"이게.. 포식자.."
손이 가늘게 떨려온다.
나는 남아 있는 녀석 하나도 완전히 처치했다.
다시 한번 떠오르는 메시지.
마지막 녀석은 고블린 – 철퇴.
놈에게서는 체력 0.1을 포식했다.
[현재 보유 포식 포인트 – 30p]
"맙소사. 정말 맙소사."
사기다.
이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사기적인 능력이다.
말했듯, 스탯을 성장시키는 방법은 세 가지.
하지만 지금 나는 몬스터를 사냥할 때마다 스탯을 증가시킬 수 있는 능력이 생겨났다는 뜻이다.
남들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빠르게 성장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이러면.. 계획을 전면 수정해도 괜찮겠어."
새로 태어난 나는, 내 생각보다 훨씬 뛰어난 존재로 거듭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