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인생에는 분명 무언가가 있다.
그건 확실하다.
문제가 있다면, 그 무언가가 내게만 없다는 게 큰 문제겠지.
내게 없는 건 너무도 많지만.
굳이 하나를 꼽아 보라고 하면 망설이지 않고 이렇게 말하리라.
내겐 능력이 없다.
전부 다 가지고 있는 그 능력, 그게 나에게는 없다는 말이다.
카가각 카각
늘어진 검이 바닥을 긁으며 파찰음을 만들어냈다.
지긋지긋하다.
검을 휘두르기는커녕, 몸을 움직이는 것도 버거울 지경이다.
몬스터들이 나를 향해 달려든다.
결코 만만한 녀석들이 아니다.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은 탑의 70층.
70층에 등장하는 몬스터라면, 하나하나가 웬만한 콘크리트 건물 정도는 우습게 부숴 버릴 수 있는 녀석들이다.
그리고 지금, 그런 괴물 다섯 마리가 동시에 나를 향해 내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물러서지 않았다.
어차피 물러선다고 해 봐야 갈 곳도 없다.
"와라, 이 망할 새끼들아!"
고함을 내지르며 검을 휘둘렀다.
일종의 기합이다.
이렇게라도 안 하면, 당장 무너져 버릴 것 같거든.
파각!
검이 몬스터의 두개골을 박살냈다.
뇌수가 튀어 올랐다.
하지만 역시나 놈의 두개골은 단단해도 너무 단단했다.
카득!
내 어깨에서 괴상한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리고 끔찍한 고통이 몰아친다.
어깨뼈가 뒤틀린 모양이다.
검을 들고 있는 팔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내 몸이 멀쩡했다면 모르겠지만, 이미 나도 지칠 대로 지친 상태다.
풀썩
결국 나는 쓰러졌다.
더 이상 몸을 움직일 기운조차 나지 않았으니, 서 있는 것 자체가 기적이었을 테지.
"허어… 허억…."
거친 숨이 뱃속 깊은 곳에서부터 뿜어져 나왔다.
쿨럭!
뜨거운 숨과 함께 솟구치는 피 한 줄기가 나의 수명이 다 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듯 했다.
그때였다.
저벅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곧 죽겠네요."
"그래도 꽤 버텼지?'
"예. 예상 이상으로 버텨준 덕분에 70층을 클리어 하기 위한 데이터를 충분히 쌓을 수 있었습니다."
흐릿해진 시야로 비쳐 보이는 몇 명의 사람들.
"사, 살… 살려…."
나는 마지막 순간에도 그들에게 목숨을 구걸하고 있었다.
하지만 저들은 내게는 시선도 주지 않았다.
"확실히 대단하긴 했어."
"그렇죠. 아무런 능력도 없는 주제에 이 정도로 해 낼 수 있다는 게, 놀랍긴 하네요."
죽어가는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떠들고 있는 저 녀석들은.
마법 명가의 플레이어들이다.
70층에 올라온 지 어느새 세 달.
그렇게 나는 죽어가고 있었다.
지독하리만치 끔찍한 인생이었다.
내 나이 스물아홉.
19살에 각성을 해서 10년.
정말 지독하고도 악착같이 살아남았고, 여기까지 버텨왔다.
나보다 몇 년, 길게는 수십 년이나 먼저 탑을 오른 이들의 뒤를 쫓았고.
결국 그들과 같은 선에 서기까지.
얼마나 많은 피와 땀을 흘렸는지, 그건 세상 누구도 알지 못하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버텨 온 원동력은 오직 강함에 대한 열망이었다.
강해지고 싶었다.
강해지고, 탑을 오르고 싶었다.
능력이 없다는 이 불합리한 상황을 극복하고 나를 증명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강해져야 했다.
강해지고 끝없이 강해져야 했다.
하지만 개꿈이었나 보다.
다른 플레이어들이 모두 가지고 있는 그 망할 놈의 ‘능력’이라는 것을 하나도 갖지 못했으니까.
19살이 되는 날, 나도 다른 플레이어들처럼 상태창이 생겨났다.
나도 다른 플레이어들처럼 각성을 한 거지.
말했듯, 각성만 했다는 게 이 모든 문제의 시작이었다.
그 망할 놈의 상태창.
내가 가진 건 오직 레벨과 스탯뿐이었다.
근력 강화, 민첩성 증가, 체력 강화, 마력 증폭 등.
이런 기본적인 능력을 필두로 시간 왜곡, 절대 영도, 폭렬 지옥이니 뭐니 하는 괴상하고 무식하게 강력한 그런 능력들이 내겐 전혀 없었다.
그저 네 개의 스탯만 나열된 초라한 상태창뿐.
내가 강해지는 방법은, 몸을 단련하고 레벨업 한 뒤 스탯을 올리는 것밖에는 없었다.
그렇게 단련한 신체로 나만의 검술을 갈고 닦았다.
그리고 기회가 왔다.
이 탑의 정상에 군림하는 명가들.
그들이 내게 먼저 손을 내밀었다.
오만하고, 거만하지만 그 누구보다 강한 그들이 내게 손을 내밀었다.
'함께 탑을 오르겠나.'
나도 알고 있다.
명가라는 것들이 결코 나에게 호의적이지 않은 녀석들이라는 것을.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내게 있어서는 천재일우의 기회였으니까.
그리고 그 때에는 몰랐다.
오만하다는 건 알았지만, 이 정도로 쓰레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더욱이 그 제안을 거절할 수 없었던 건.
그들의 '강함'은 나에게 있어서 선망의 대상이었으니까.
아니, 나 뿐만 아니라 탑의 많은 이들은 그들을 동경했다.
평생 강함을 추구해 온 나에게, 명가라는 이들의 독보적인 힘을 동경하는 건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겠지.
게다가 이 기회는 나의 실력을 증명해 낼 수 있는 찬스기도 했다.
그 누구도 아닌 명가와의 협동.
아직 그 누구도 정복하지 못한 70층이라는 미지의 영역을 내 손으로 개척할 수만 있게 된다면.
그래서 여기에서 나의 실력만 증명해 낸다면.
내 인생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나는 속았다.
명가라 불리는 것들의 꾐에 넘어가 나는 결국 실험체가 되었을 뿐이다.
검술 명가와 마법 명가, 그리고 다른 세 개의 명가들.
그 망할 녀석들이 나를 지원하겠다는 그 꾐에 넘어가 그들과 함께 70층에 올라섰다.
모두 거짓이었다.
"끝 난 건가?"
그때 한 무리의 플레이어들이 더 다가왔다.
저 녀석들은, 검술 명가의 플레이어들.
마법 명가와 함께 탑을 양분하는 거대 세력.
"보시다시피."
"이딴 녀석이 정말 유의미한 데이터를 쌓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물론. 완벽한 표본이지. 우리가 다 가지고 있는 이능이 없는 유일한 존재. 오로지 인간 육체의 힘을 극한으로 끌어 올린, 그야말로 훌륭한 실험체잖아."
"……."
"원한다면 봐라."
"흠…. 그렇군."
그래.
저 두 세력이 바로 나를 이렇게 만들었던 주동자들이었지.
쿠헉!
다시 한 번 입에서 핏줄기가 솟구치고.
"그러게 적당히 분수를 알고 너한테 맞는 삶을 살았으면 좋았잖아."
마법 명가의 플레이어가 나를 내려보며 말했다.
그의 표정에 담겨 있는 감정은, 경멸이었다.
명가라는 자부심.
일반 플레이어에게는 없는 '혈계'라는 것을 보유했다는 선민의식이 가득한 경멸감.
뭐부터 잘못된 건가.
이 던전에 들어오게 된 거?
탑의 끝에 대한 호기심을 붙었던 것?
아니다.
전부 다 아니다.
이 망할 놈의 상태창만 아니었어도.
상태창에 쓸만한 능력 한두 개만 담겨 있었어도.
이렇게 텅 비어 있는 상태창만 아니었어도!
젠장.
죽어가는 마당에 푸념이 길었다.
후생이 있다면, 그때에는 부디 나에게도 좋은 능력 하나만 던져 주소서.
만약 다시 태어나서, 평범한 상태창 하나만 주어진다고 하면.
나는 망설임 없이 다시 탑을 오르리라.
그리고 저 망할 명가 놈들을 박살내리라.
다 씹어먹고 처참하게 뱉어주리라.
놈들이 내게 그랬던 것처럼.
"쿨럭!"
나는 다시 피를 토했다.
여기까진가 보다.
점점 숨이 가빠진다.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못하겠다.
눈꺼풀이 점점 무거워지고 있다.
그러는 와중에 내 바로 옆에 떨어진 노트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닳고 닳은 노트다.
내 삶의 흔적이다.
내가 각성한 이후로 등장한 던전과 보스 몬스터, 그리고 각종 아이템들에 대한 정보가 가득 담긴 노트.
그뿐이랴.
인간들이 본격적으로 탑을 오르기 시작한 순간부터의 역사가 빼곡히 적혀 있었지.
나의 영웅들이었으니까.
그들의 행적을 기억하고 나 스스로를 채찍질해 왔던 거다.
몇 번을 봤는지 모르겠다.
보고 또 보고.
조금이라도 레이드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공부했던 나의 모든 것.
당연히 이제는 안 보고도 줄줄 외울 만큼 모든 게 내 머릿속에 담겨 있지.
물론 이제 와서 아무런 의미도 없는 정보들이긴 하다만.
풀썩
몸이 바닥에 고꾸라졌다.
주변에서 몬스터들이 내 몸을 할퀴고 물어뜯는다.
아프지만, 아프다고 소리칠 기운조차 없었고.
이내 의식이 흐려졌다.
"……."
그때였다.
이상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내 눈앞에 이상한 글자들이 떠오른 것 말이다.
[에러 코드 #454]
[에러명 접속 불량 – 시스템 누락]
[시스템 오류를 수정합니다. 서버에 접속합니다.]
[결과 - 접속 실패]
[강제 접속을 시도합니다.]
[탑이 사용자에게 시스템 누락에 대한 보상을 지급합니다.]
[각성 능력이 상태창에 각인 됩니다.]
이게 무슨 소릴까.
잠시 머리가 혼란스러워진 순간이었다.
띠이이이-
***
눈이 떠졌다.
"허억!"
나는 급하게 숨을 들이켜며 몸을 일으켰다.
"끄으악!"
나는 비명을 내질렀다.
머리가 어지럽다.
속이 울렁거리고, 몸 전체에서 끔찍한 고통이 느껴졌다.
분명히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나는 죽어가고 있었는데.
분명히, 내가 죽어가고 있던 그곳은 아니다.
70층에 나를 구해 줄 사람 따위는 없다.
말했듯, 나는 이용당했을 뿐이니까.
'…….'
조금 혼란스러운 마음을 추슬렀다.
꿈을 꾸고 있는 건가?
아니다.
그럴 리는 없다.
죽고 난 뒤에 꾸는 꿈이라니.
'그렇다면 저승?'
그럴 가능성도 없지는 않지만, 문제는.
'익숙한 풍경이야.'
나는 주변을 둘러봤다.
분명히 기억 속 깊은 곳에 묻혀 있던 풍경들이었다.
'…탑의 1층….'
그게 말이 되는가.
70층에서 죽어가던 내가 어떻게 탑의 1층에 와 있을 수 있겠는가.
'…….'
머리가 조금 지끈거린다.
그리고.
"끄읍…."
다시 한번 나를 괴롭히는 끔찍한 통증들.
고통이란 반가운 감각은 아니지만.
동시에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또 다른 불쾌함이기도 하지 않은가.
내가 고통을 느끼고 있다는 건.
'내가 살아 있다는 건가? 그것도 탑의 1층에?'
나는 천천히 내 몸을 살폈다.
확실히 조금 전의 내 몸은 아니다.
군데군데 상처가 나 있기는 하지만, 그 위치가 달랐으며 상처의 크기나 깊이도 확실히 다르다.
내 몸이 아니라는 확실한 증거가 있다.
'나약해.'
아무 능력도 없이 70층에 올랐던 나다.
그 육체 능력이 진즉 말도 안 될 수준에 올랐다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에 비하면 지금의 몸은 엉망이라고밖에는 할 수 없었다.
그때 떠오른 마지막 순간의 그 메시지.
'새로운 능력이 상태창에 각인…이라고 했나.'
그 기억이 떠오른 순간, 나도 모르게 마음 깊은 곳에서 고양된 감정이 치솟기 시작했다.
분명히 그러지 않았던가.
새로운 '능력'이 상태창에 각인된다고.
그 메시지가 사실이라면.
내가 꿈을 꾸거나, 저승에서 환각에 빠져 있는 게 아니라면.
능력.
그토록 내가 바라마지 않던 그 능력이라는 것이 생겼다는 말이지 않은가!
꿀꺽
침이 목구멍 너머로 한 번 넘어간다.
손이 가늘게 떨려온다.
나는 떨리는 입꼬리를 억누르며 상태창이라는 것을 펼쳤다.
그 순간.
[상태창]
>이름: 한강민
>레벨 : 1
>스탯
-육체
힘 : 10
민첩성 : 9
체력 : 9
-정신
마력 : 5
>능력
1. 포식자 (S)
"하...!"
나는 상태창을 본 순간, 탄성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꿈에도 그리던 능력.
그것이 정말로 내게 생겨났으니까.
그리고 나는 새로운 능력의 이름을 바라봤다.
포식자.
마음에 든다.
그 순간 내가 죽기 전 마지막에 중얼거렸던 한 마디가 떠올랐다.
모조리 씹어 먹고 처참하게 내뱉어 주겠다는 그 한 마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