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올 마스터#174
뜨거운 밤이었다.
죽음이 도사리는 신계라고는 믿기지 않을 뜨거움.
서늘함을 가볍게 날려버리는 뜨거움 덕분에 강혁은 참으로 오랜만에 ‘피로’라는 걸 느껴야만 했다.
“끄으....내 안에 있는 모든 게 빨려 나간 것 같은 기분이야.”
밤일(?)을 마친 강혁의 힘들어하는 목소리에 분노가 곧바로 반응했다.
-복 받은 놈. 세상 모든 사람들이 너를 부러워할 거다!
“....알아, 그건 나도 아는데 그거랑 별개로 피로라는 걸 너무 오랜만에 느껴서 그런지 더 힘드네.”
분노의 핀잔에도 불구하고 강혁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을 수밖에 없었다.
어젯밤.
자신을 찾아온 네 여성에 의해서 돌아가며 그녀들을 상대해야 했던 강혁은 정말 무한한 체력의 바닥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흐으응....강혀가....”
“....오빠아-”
“....신이시여.”
“너무 강렬해에엣!”
다른 네 사람의 상태가 더 좋지 않았음은 당연했다.
강혁은 상위신에 필적하는 네 사람을 넉다운시킬 정도의 힘과 체력을 가지고 있었고, 그 대가로 그저 ‘피로’정도 밖에 느끼지 않았다.
자신을 애타게 부르는 네 사람을 보며 부드럽게 천막을 닫은 강혁은 고개를 내저었다.
“....두 번은 못하겠네.”
-한 번 할 때마다 네 명 전부를 상대해야 할 거다.
“그러니까 못 할 것 같다고. 허리 박살나는 줄 알았다.”
각각의 취향에 맞추어 시간을 보내던 만큼 강혁은 정말 다양한 자세들을 선보였고, 그 결과 각 관절에 심각한 무리를 초래했다.
물론 몇 분 쉬면 낫는 무리였지만 그래도 여러 번 할 생각은 없었다.
“내 애가 생긴 건가.”
-확실하지 않지 않나?
“내 정자라면 강할 테니까....거의 확정 아닐까?”
아이.
자신의 대를 이을 아이를 가지는 것이 거의 주목적이었던 만큼 네 사람의 뱃속에서 피어난 새로운 생명의 씨앗을 생각하면 두 번을 할 수는 없었다.
강혁은 이미 최상위신과 맞먹는 존재가 된 만큼 강혁의 정자 또한 강력했다.
아무리 체내에서 정자를 지워내려고 한다고 한들 강력한 힘을 지닌 정자는 그들의 공격을 버텨내고 잉태할 것이 분명했다.
-....그렇군.
분노 또한 그에 고개를 끄덕일 정도로 강혁의 말을 일리가 있었기에 두 사람은 가만히 천막 앞에 서서 다른 이들이 정신을 차릴 동안 우두커니 서 있었다.
*
아침 시간.
아무리 식사와 잠을 잘 필요가 없게 되었다고 한들 그들의 몸은 아직 밥과 잠을 원했다.
그리고 아무리 식사와 잠을 취할 필요가 없어도 잠을 취하고 밥을 먹는다면 본래의 실력을 그대로 낼 수도 있었다.
‘나 같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그렇겠지.’
칠죄, 식욕을 지닌 강혁이기에 강혁은 공기 중의 수분마저도 알아서 먹고, 혈향 만으로도 배를 채울 수 있다.
즉, 식사를 굳이 하지 않더라도 몇 날 며칠이고 계속해서 싸울 수 있다는 얘기.
다만 중요한 점은 강혁 말고도 많은 이들이 이 자리에 있다는 점이었다.
‘나 하나 좋자고 밥도 먹지 않고 적진에 쳐들어갈 수는 없지. 얼마나 오래 싸워야 할 지도 모르는데 말이야.’
다른 동료들은 강혁과 같지 않다.
그들도 며칠 밥을 먹지 않고 자지 않아도 살 수 있지만 전투력의 감소는 필연적.
앞으로 얼마나 고생할 지를 모르는 판국에 아침 밥 하나 제대로 못 먹이고 보낼 정도로 강혁은 유도리가 없지 않았다.
그렇게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르는 아침 식사와 휴식을 마친 뒤.
“자, 그럼 가볼까.”
최상위신과 상위신들로 득시글거리는 신계 중의 신계를 향해서 발걸음을 내디뎠다.
*
콰릉- 콰릉- 콰릉-!
“....장난 아니군.”
“지옥이 있다면 이런 곳이 아닐까 싶은데.”
신계에 발을 들인 강혁과 그의 동료들은 시시각각 변화하는 자연 환경에 눈살을 찌푸렸다.
너무나도 노골적인 견제.
그에 모두가 눈살을 찌푸리며 머리 위로 떨어지는 번개, 우박, 거센 비바람 등을 막아냈다.
그렇게 악천후 속에서도 진행된 강행군.
“놈들을 쳐라!”
“죽이고 그들을 신과 악마께 바쳐라!”
여태까지와 비교조차 되지 않는 수준의 마족과 천족의 공격.
“필멸자들이여! 너희들이 신격을 쟁취했다고 한들 바뀌는 건 없다!”
“모든 악의 정점께서 너희를 짓밟으시리라!”
추가로 속소 모습을 드러내는 중급신과 악마들까지.
점점 최악의 치닫는 상황 속에서도 강혁과 그의 동료들은 멈추지 않았다.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그들은 거침이 없었다.
촤악-
“....그아아악!”
“어....어떻게!”
종종 최하급신에 비견되는 이들이 수두룩한 마족과 천족의 군대도-
“고....고작 필멸자 따위가!”
“오! 위대한 악의 정점이시여!”
중급신.
특히 상급에 가까운 신과 악마들마저도 강혁과 그의 동료들 앞에서 무너졌다.
그들을 쓰러뜨리고, 또 쓰리뜨리며 강혁과 그의 동료들은 점점 더 강해졌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났을까?
정말로 셀 수 없이 오랜 시간이 지났다.
*
타닥타닥-
타오르는 모닥불.
그런 모닥불 주위에 옹기종기 모여든 강혁과 그의 동료들의 몰골은 그리 보기 좋지 않았다.
얼마나 오랜 시간이 지났는지 알 수조차 없는 순간.
제대로 씻은 적이 언제인지는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의 두 눈 만큼은 밝게 빛이 나고 있었다.
강렬한 힘이 담긴 두 눈은 타오르는 모닥불을 노려보다 이내 저 멀리 보이는 거대한 도시에게로 돌려졌다.
“정말 끝이 다가왔네.”
정말 길고 긴 시간이었다.
어지간한 차원 전체보다 큰 신계 중의 신계 깊숙한 곳에 숨겨진 최상급 신과 악마만의 도시.
그곳을 찾아내는 데에 갖은 노력과 피해를 감수해야만 했다.
죽은 이들은 없지만 신체가 박살이 나고 잘리는 고통을 몇 번이고 감수해야만 하는 끔찍한 상황이었지만 포기한 이들은 단 한 명도 없었다는 게 놀랍다면 놀라운 일.
그리고 이젠 정말 끝이 코앞까지 다가왔다.
“너희들 모두 고생 많았어. 이제 마무리를 지을 순간이야.”
몇날 며칠.
제대로 시간조차 세지 않았지만 그 셀 수 없는 시간 동안 자신들이 얼마나 강해졌는지 동료들이 얼마나 강해졌는지를 알고 있기에 강혁과 그의 동료들은 결연한 얼굴로 저 멀리 보이는 도시를 노려보았다.
“정말 괴물 같은 파티야.”
“그래, 인정할 수밖에 없군. 이들은 정말....신계를....멸할 지도 모르겠어.”
“동감한다.”
가장 먼저 파티에 합류한, 정확하게는 합류 당한 라플라스와 크로노스.
그리고 강혁에게 가장 먼저 두들겨 패진 하데스까지.
그들은 강혁과 그의 동료들로 이루어진 파티가 정말 이곳까지 도달했다는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고작 인간들이라고 무시했지만 정말 이들이라면....’
‘이젠 죽기 전의 힘을 대부분 회복했지만 저들 중 하나랑 싸우라고 한다면....고개를 갸웃하게 만들 것 같군.’
‘하나면 필승, 둘이면 필패인가. 참....어렵구만.’
최상급신 혹은 그와 비슷한 상급의 끄트머리에 다다랐던 존재들마저 동료들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그저 필멸자일 뿐이라고, 인간 주제에 감히 신계를 공격했다는 것에 불만을 가졌었지만 지금은 그 생각이 바뀌었다.
‘이 녀석들이라면 그 괴물들을 어찌할 수 있을지도.’
신과 악마.
그들을 한 데 뭉치게 만든 존재.
외우주의 괴물들을 처치할 수 있는 이들이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문득 드는 그들이었다.
‘하지만 속단할 수는 없지. 일단 눈앞에 당면한 커다란 적부터 해치워야 할 테니까.’
신계 중의 신계.
그곳에서도 가장 깊숙한 곳에 숨겨진 최상급 신과 악마들을 위한 도시.
그곳에 도사리고 있을 최상급 신과 악마들을 처치하지 않는 한 외우주의 괴물과의 대적은 꿈도 꿀 수 없다.
물론 그들은 혼자가 아니었다.
지구에서부터 시작된 인연.
그리고-
“젠장, 내가 어쩌다가 내 고향을 치러 오게 된 거지.”
“망할! 돌려보내줘! 난 아버지께 두들겨 맞기 싫다고!”
이곳까지 오는 동안 만난 각종 신과 악마들.
그들은 강혁의 힘으로 다시금 언데드로 재탄생했다.
강혁의 언데드가 되며 신과 악마가 맺은 계약이 풀린 그들은 미친 듯이 신과 악마들을 잡아 먹고 힘을 회복, 성장시켰다.
지금에 이르러선 모든 힘을 회복한 걸로도 모자라 어지간한 최상급 수준과 맞먹게 된 상급신과 악마들.
그들은 충분히 도움이 되는 전력들이었다.
다양한 최상급 신과 악마의 힘을 이은 그들의 자식들.
그들을 등에 업은 강혁과 그의 동료들은 신과 악마들의 도시를 향해 발걸음을 내디뎠다.
*
전투- 전투- 전투-
신들의 도시에 들어설 때부터 예상하긴 했지만 강혁과 그들의 동료 앞에는 오로지 전투 뿐이었다.
평범한 마을 같아 보이던 곳에서 튀어나온 마족과 천족 하나가 어지간한 최하급신보다도 강했다.
그 중에서도 특출나게 강해보이는 이들은 하급 혹은 중급까지도 넘볼 정도.
그런 이들로 가득한 곳에서 강혁과 그의 동료들 편은 존재하지 않았다.
오로지 서로만이 유일한 버팀목인 셈.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멈춤없이 앞으로 나아갔다.
언제나처럼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그들은 그렇게 나아갔다.
강력해진 자신의 능력과 강혁을 위시한 언데드 신과 악마들이 자신감의 원천이라고 할 수 있었다.
쿵-
묵직한 성벽을 앞에 두고 다양한 마족과 천족들.
더불어 상급신들이 강혁과 그의 동료들의 앞을 막아섰다.
“거기까지다.”
“너희들의 운도 여기까지다. 살고 싶다면 돌아가라.”
여태까지 강혁과 그의 동료들이 보인 무위를 보았기에 아무리 상급신이라고 한들 그들을 무시하진 못했다.
하지만 이 이상 나아간다면 그들의 목숨이 위험한 것도 사실이었다.
이 뒤부터는 최상급 신과 악마로 득시글했으니까.
다만 그걸 이미 알고도 강혁과 그의 동료들은 여기까지 왔다.
즉-
“좆까. 여기까지 오면서 그런 것도 몰랐을 것 같아? 너네 대가리나 불러와.”
최상급 신과 악마들이 도사린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강혁과 동료들이 물러설 이유는 되지 못한다는 얘기.
바로 그때였다.
파지지직-
강한 번개의 파동과 함께 거대한 덩치를 한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근육질의 몸을 자랑하며 번개를 전신에 몸을 두른 사내.
“제우스님!”
성벽을 지키던 이들이 그를 알아보곤 고개를 숙였다.
제우스.
최상급 신 중에서 상위에 속한 주신급의 존재.
그는 모든 신에게 존경 받아 마땅할 자리에 올라와 있었다.
그리고.
“오랜만이군.”
“그러게, 그때는 신세를 많이 졌지. 이젠 그 신세를 갚아줄 때가 온 것 같은데.”
강혁과는 구면이었다.
언젠가 강혁과 대치했을 때를 떠올리며 오랜만이라고 말하는 제우스의 말에 가볍게 일갈한 강혁은 주먹을 말아쥐었다.
제우스가 강력한 존재라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쓰러뜨려야 할 존재였다.
물론, 제우스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너, 그리고 네 동료들. 모두 이곳의 주민이 될 생각이 없나? 우리와 함께 어지간한 차원보다도 큰 왕궁에서 지내는 거다.”
영입.
강혁과 그의 동료들을 영입하고 싶다는 마음이 툭- 하고 튀어나온 것.
다만 그에 대한 대답은 이미 정해져 있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좆까.”
“....아쉽군.”
중지를 들이미는 강혁을 보며 입맛을 다신 제우스가 발을 굴렀다.
“그럼 죽어라.”
콰릉-!
그와 동시에 강혁의 머리 위에 천둥번개가 떨어져 내렸다.
콰릉! 콰릉! 콰릉! 콰르르르릉!
그것도 한 번이 아닌 수십 번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