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올 마스터#172
크로노스는 강했다.
상위신이 약할 리가 있겠는가.
전투 계열 악마인 라플라스를 보조하기 위해서 앞에서 나서지 않았다 뿐이지 크로노스 또한 한 세계를 홀로 멸하기에 모자람이 없는 존재였다.
“엌! 컼! 헠!”
“한 대, 두 대, 세 대.”
“뿌꾸빠! 뿌꾸빠!”
다만 강혁의 앞에선 그런 강함이 빛을 바래기에 충분했을 뿐.
가볍게 툭툭 내지르는 주먹과 그걸 세는 목소리.
거기에 즐거움을 더해주는 용용이의 목소리까지 더해지며 크로노스는 정신 혼미해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에 따라 느껴지는 고통은 점점 커졌고, 기절조차 할 수 없는 상황에서 크로노스는 이를 악물었다.
“타임 스톱!”
세상을 멈추는 그의 권능.
그의 권능 앞에서 멈춰지는 세상 속에서 크로노스가 멈춘 강혁을 향해 주먹을 날릴 때.
“이미 예상했다.”
“....어떻게?”
으적!
순식간에 아가리를 벌리고 크로노스의 신체 일부를 씹어 먹어버린 ‘식욕’의 힘에 크로노스는 놀람을 감추지 못 했다.
하지만 강혁에겐 너무나도 쉬운 일이었다.
이미 몇 번 사용한 시간 정지 권능.
그걸 전투 예지를 통해서 예측 한 후, 그에 맞춰서 자신의 주변만 기운으로 뒤덮어 크로노스의 권능을 피해간 것이었다.
물론 이 상태에서 움직일 때마다 권능의 영향으로 느려지거나 동작이 멈추는 등의 안 좋은 경우가 있었지만 아쉽게도 그걸로 크로노스가 강혁에게서 승기를 따내기엔 어려움이 많았다.
“크으으으-”
“슬슬 끝내자. 너 말고 잡을 놈들이 많아서. 아, 물론 그리 심심하진 않을 거야. 곧 네 곁으로 다른 놈들도 보내줄 테니까.”
크로노스와 라플라스.
이미 두 명의 상위신과 악마가 죽거나 죽을 위기에 놓였다.
“자만하지 마라! 나 말고도 강한 존재는 이곳에 널리고 널렸다. 네놈의 오만과 자만은 그들 앞에서 좌절될 거다!”
신체 일부가 잡아 먹힌 상황.
상위신인 그에겐 그리 큰 상처는 아니었으나 신체가 잡아 먹혔다는 것 자체에서부터 크로노스가 강혁보다 한 수 내지 두 수 아래의 존재라는 걸 인정하는 셈이었다.
그렇기에 크로노스는 자신의 최후를 예견하고 강혁을 힐난했다.
최후는 곧 신과 악마의 승리로 점철될 것이고, 강혁은 오래 버티지 못하고 으스러지리라고 말이다.
그냥 저주라고 보는 게 무방했다.
하지만 상위신이 죽어나가며 목숨을 바쳐 내뱉는 저주는 그것 만으로도 하나의 ‘인과’가 되는 법.
츠츠츠츠-
크로노스의 죽어가는 몸에서 흘러나오는 검은 저주의 기운.
그것이 강혁의 전신을 옭아매려 할 때였다.
콰직-!
-고작 죽어가는 놈 주제에 건방지다, 크로노스.
“분....노! 너 같은 찌꺼기 따위가 감히!”
저주의 기운이 터져나온 분노의 마기 앞에서 으스러졌다.
박살이 난 마지막 저주마저 서서히 흩어지는 모습에 크로노스가 두 눈을 부릅뜨고 분노를 노려보았지만 그런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었다.
애초에-
-네 알량한 저주 따위가 강혁을 해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건 아니겠지, 멍청한 놈.
“분노오오오!!!”
크로노스의 저주는 강혁에게 큰 해가 되지 못 했다.
강력한 인과는 더 강력한 힘 앞에서 굴복하는 법.
인과조차 벗어던질 힘만 있다면 인과는 그저 썩은 포승줄에 불과했다.
그저 가볍게 힘을 주는 것만으로 찢어발길 수 있는 포승줄 말이다.
그렇기에 크로노스는 외마디에 가까운 비명을 끝으로 숨을 거두었다.
“....후아, 좀 빡셌네. 상위 존재 두 명이나 동시에 상대하다니 말이야. 정말 훅갈 뻔 했는데.”
-지금 그러고 있을 시간이 있나? 다른 이들은 어찌 할 생각이지?
“아, 그러네. 용용아, 가자.”
“응!”
크로노스와 라플라스를 처리한 것도 잠시.
자신을 기다리며 전투를 이어나가고 있을 동료들을 떠올린 강혁은 라플라스와 크로노스의 시체를 들고 동료들에게로 다가갔다.
점점 자신이 바라보고 그리던 목표를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는 순간이었다.
*
“아....아아아아!”
“신이시여!”
“악이시여!”
갑작스런 마족과 천족에 비명에 가까운 목소리.
“아....안 돼!”
“왜? 아니, 어떻게?”
이 상황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행동하는 중급 신과 악마의 중얼거림.
그 모든 것에는 강혁이 있었다.
“정말 해낼 줄이야.”
“그러게, 난 진짜 이길 줄 몰랐는데.”
“....어쩔 수 없는 괴물 놈이라니까 정말.”
크로노스와 라플라스.
시간을 멈추고, 미래를 보는 신과 악마를 상대로 당당하게 승리를 쟁취해낸 강혁의 대단함은 더 이상 놀랍지도 않았다.
그렇기에 이제는 그러려니 하는 동료들에게로 전투를 마친 강혁이 내려앉았다.
쿵-
묵직한 울림과 함께 어깨에 얹어 놓았던 크로노스와 라플라스의 시체를 내려 놓은 강혁은 멀쩡한 동료들의 모습에 미소를 머금었다.
“멀쩡하네?”
“멀쩡해야지, 가장 어려운 놈들은 잡는데 우리가 어려울 게 뭐가 있겠어?”
퉁명스레 대꾸하는 니아 아리엘.
하지만 그게 정말 쉬워사 하는 말이 아님을 강혁은 알고 있었다.
“미안, 하지만 너희들을 위험하게 할 수는 없었어.”
“....넌 안 위험하고?”
“난 여기에 있잖아. 놈들은 저기에 있고.”
“쳇, 할 말 없게 하네.”
멀쩡한 자신과 시체가 된 크로노스와 라플라스를 가리키는 강혁의 말에 니아 아리엘은 할 말이 없었다.
자신에겐 위험하지 않는 대상을 자신이 맡고, 남들에겐 쉬운 이들을 맡긴다.
물론 그 쉬운 이들이 중급 신과 악마라는 게 아이러니하긴 하지만 그래도 라플라스나 크로노스에 비한다면 충분히 쉬운 상대였다.
“....우리가 정말 네게 도움이 되는 건 맞을까?”
하지만 니아 아리엘이 이러한 생각을 품는 것까진 막을 수 없었다.
아니, 비단 니아 아리엘 혼자하는 생각이 아니었다.
과연 자신들은 강혁에게 도움 될 수 있는 존재인가?
그에 대해서 누구도 뚜렷하게 확신을 내릴 수 없었고, 그에 대한 답은 오로지 하데스만이 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강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도움이 돼. 분명히. 만약 너희들이 없었다면 나는 홀로 저 군대 전체와 라플라스 그리고 크로노스를 상대했겠지.”
“....하데스도 있잖아?”
믿을 수 없다는 듯이 하데스를 들먹이는 니아 아리엘.
그녀의 말마따나 강혁은 네크로맨서이기도 하다.
그가 부리는 하데스 또한 결국은 강혁의 힘이란 얘기.
하지만 강혁은 그에 대해선 고개를 가로 저었다.
“고작해야 버티는 게 끝이야. 위험도는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갈 거고 더욱 쉽게 지치겠지. 뿐만 아니라 지금만이 아니라 앞으로를 봐. 난 홀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야. 그렇기에 너희들이 필요해.”
하데스라고 해서 만능은 아니다.
최상급 신이었던 과거와 달리 언데드가 되어 많이 약해진 것도 한 몫 했고, 한 손으로 열 손, 백 손을 막을 수는 없는 법.
결국 동료들이 알게 모르게 도움이 되고 있다고 강혁은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정말이지?”
“물론이지, 니아. 넌 정말 내게 필요한 존재야.”
“....바보, 둔탱이, 멍청이.”
빡!
갑작스런 칭찬에 얼굴을 홍당무처럼 붉게 물들인 니아 아리엘이 다짜고짜 욕설을 내뱉고는 강혁의 정강이를 냅다 걷어찼다.
묵직한 충격에 강혁은 어처구니 없다는 얼굴로 한 발로 콩콩 뛰면서 정강이를 붙들었다.
“....왜 저래?”
“알면서 그러는 거냐, 아니면 정말 모르는 거냐?”
“....젠장, 알긴 아는데 방금 그게 맞을만한 짓이었어?”
“....오빠, 그 아줌마랑은 상극이지만 방금은 좀....그랬죠.”
“하아, 이런 망할. 이젠 니아 공략도 짜야 하는 건가?”
웃음기 어린 내 푸념에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호호 즐겁게 웃음을 흘리고 있을 때.
“나 혼자만 싸우는 건가? 다들 놀고 먹고 보고만 있을 거라면 방어는 멈추지.”
“....아, 깜빡했네.”
날카롭게 파고드는 하데스의 핀잔에 강혁은 머리를 긁적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웃고 떠드는 건 좀 이따 하는 걸로 하자고.”
“그래, 저 빌어먹을 놈들을 쳐부수고 난 뒤엔 즐겁게 대화를 나눌 수 있겠지. 마음에 들어.”
아직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그렇기에 그들은 해후를 잠시 뒤로 미루고 밀려드는 적들을 향해서 쇄도했다.
*
크로노스와 라플라스.
상급 신과 악마가 사라졌음에도 마족과 천족들은 충분히 강했다.
특히나 그들을 진두지휘하는 중급 신과 악마를 비롯한 그들의 휘하 신과 악마들은 강혁과 그의 동료들을 막아내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하지만 그들의 전력은 막아내는 데에 그쳤을 뿐.
뚫어내지는 못 했다.
“끄아아악!”
“끄어어억!”
죽어나가는 마족과 천족들.
그들은 강했지만 강혁의 동료들보다 강하지 않았고-
“....크아아악!”
“최상급 신들께서 너희를 벌하리라!”
“대악마이시여!!!”
지휘관들인 중급 신과 악마라고 할 지라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팍- 치니 억- 하고 죽어나가는 그들은 마족과 천족들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으니까.
결과적으로 그들은 강혁보다 약했고, 심지어는 강혁의 동료들 중에서 그들보다 강한 이들도 몇몇 존재했다.
그것들이 모이고 모여 결국 그들의 패배로 이어졌다.
쿵-
마지막 남은 중급 신의 머리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묵직하게 울려퍼졌다.
“끝인가.”
두 번째 전쟁.
그 끝을 알리는 묵직함이었다.
*
전쟁이 끝난 이후.
강혁은 곧바로 크로노스와 라플라스의 시체를 제외한 다른 신과 악마의 시체를 모조리 알케미에게 떠넘겼다.
이윽고 완전히 울상이 된 알케미가 시체들을 들고 떠나는 것을 보며 강혁은 천천히 눈앞에 있는 크로노스와 라플라스에게로 다가갔다.
“일어나라.”
죽은 시체를 다시 깨우는 네크로맨시가 강혁의 손에서 펼쳐지는 순간이었다.
두두두득-
명령과 함께 서서히 자리에서 일어난 신과 악마.
라플라스와 크로노스가 몸을 일으키는 걸 보며 강혁은 옆에 선 하데스에게 준비하라 명령했다.
“슬슬 온다.”
“알고 있으니 너나 잘 해라.”
하데스의 툴툴거리는 말과 동시에-
“크아아악!”
“뭐냐! 분명 난 죽었을 텐데?”
죽기 직전의 모습과 동시에 놀람을 금치 못하는 목소리가 강혁의 귓가를 때렸다.
당황하는 라플라스와 크로노스의 모습에 강혁은 싱긋 웃으며 그들을 향해 다가갔다.
“오랜만이군. 고작 몇 시간 전에 만났으니 오랜만은 아닌가?”
“너어....우릴 언데드로 되살렸구나! 네 옆의 그놈처럼!”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된 라플라스가 이를 악물었다.
그건 크로노스 또한 별반 다르지 않았다.
자신을 향해 격한 살의를 들어내는 두 존재를 눈에 담으며 강혁이 말했다.
“너흰 이제 내 명령에 따라야 하는 존재가 되었지. 자, 그럼 이제 뭘 해야 할 지 알겠지?”
“....우리가 네 명령에 따를 것 같아?”
되살아난 것에 기뻐하긴 했으나 라플라스는 뚱한 얼굴로 강혁을 노려보았다.
주종관계는 명확했으나 명령을 따르는 것까진 라플라스 개인의 의지였기에 가능한 일.
“그럴 줄 알았어, 바라지도 않았다.”
“....뭐? 설득 같은 건 안 하는 건가?”
쿨하게 포기하는 듯한 강혁의 모습에 라플라스가 되묻자 강혁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주먹이 곧 설득인데 뭐하러? 하데스, 잡아.”
“....이런 망할!”
말이 끝나기 무섭게 주먹을 말아쥔 채로 달려드는 강혁의 모습에 라플라스의 처량한 목소리가 신계에 공허하게 울려퍼졌다.
라플라스와 크로노스.
둘이 강혁의 휘하로 들어오게 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