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올 마스터#170
막대한 분노.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거대한 분노를 강혁은 느낄 수 있었다.
이 감정을 말로 표현하자면 단 한 번도 상상조차 한 적 없는 일을 경험한다면 느끼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막대한 분노였다.
으드득-
“....그 애를 어쩐 거냐.”
이가 절리고 곧바로 갈가리 찢어버리고 싶었지만 참았다.
저 노인이, 크로노스가 용용이를 보낸 곳이 어디인지는 들어야 했으니까.
그런 강혁의 물음에 꼬마 악마 라플라스가 히죽 웃으며 답했다.
“어딜 것 같은데?”
“....그게 용용이에게 그리 나쁜 환경이 아니길 바래야 할 거다.”
이죽거리는 그의 말에 강혁은 다시금 이를 갈았지만 공격을 이어나가진 않았다.
드래곤이라지만 새끼 드래곤인 용용이가 과연 무사한 지에 대해서 확인해야 했기 때문이다.
“걱정 말게나, 필멸자여.”
그리고 그에 대한 대답은 용용이를 어딘가로 날려버린 노인, 크로노스가 답해주었다.
“그 아이는 영원한 시간이 흐르는 곳에서 영원히 삶을 지속하게 될 테니까.”
“....후우, 그래. 그렇단 말이지.”
영원한 시간이 흐르는 곳에서 영원히 삶을 살아간다.
영생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강혁은 그 삶이 결코 평범한 영생이 아님을 안다.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는 삶이 평범할 리가 없지.’
뿌득-
절로 이가 갈렸다.
아직 어리디 어린 아이가 어른들의 싸움에 끼어들어 영겁의 시간에 갇혀 고통 받게 되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한들 강혁은 멈출 수 없었다.
와아아아-!!!
저 멀리서 들려오는 함성 소리.
저 함성은 강혁에게 닿는 목소리는 아니었다.
다만 그 함성이 강혁의 동료들에게 닿는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모두 살아서 만나자.”
닿을 지 모를 작은 목소리를 끝으로 강혁은 라플라스와 크로노스를 향해 몸을 날렸다.
용용이는 살아 있을 거다.
정신이 무너지지 않고서-
그런 희망을 품은 채로 강혁은 앞으로 나아갔다.
이제 더 이상 강혁에게 물러설 곳이란 존재하지 않았으니-
*
“....용용이는 괜찮을까?”
“....괜찮겠죠. 아니, 괜찮지 않아도 오빠가 어떻게든 해줄 거에요.”
니아 아리엘과 한수연은 사라진 용용이가 있던 자리와 싸움을 시작한 강혁과 라플라스와 크로노스를 바라보았다.
용용이가 있었던 흔적마저 사라진 그곳에서 마족과 천족들이 물 밀 듯이 밀려오고 있었다.
까마득한 숫자.
파도가 치듯, 해일이 지상을 덮듯 자신들을 뒤덮어 버리려는 압도적인 숫자의 군대에 피부에 닭살이 돋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한들 니아 아리엘이나 한수연을 비롯한 다른 이들에게 선택지란 없었다.
“진형을 유지해!”
“하데스에게서 떨어지지 마라!”
이미 그들은 신계라는 적진 한복판에 들어와 있었고, 도망칠 곳 따위는 없었으며 무조건 앞으로 나아가야만 했다.
그리고 그 나아가는 길의 선두에는 강혁이 서 있었다.
“강혁에게 도움이 되진 못해도 짐이 되진 말라고!”
“으아아아아아!!!”
강혁은 이미 한 차원이 다른 존재가 되어 있었다.
강혁이 아니었다면 그들은 시간이 멈춰진 상태에서 생각만 할 수 있을 뿐 아무것도 하지 못 했을 테니까.
철저한 무력감.
하지만 그에 잡아 먹힌 이들은 이 자리에 존재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무력감을 연료 삼아서 앞으로 나아가려는 이들만이 존재했을 뿐.
콰가가가강!
덤벼드는 마족과 천족에게서 터져나온 기운들이 주변 대지를 말 그대로 갈아버릴 때.
강혁의 동료들 또한 앞으로 나아갔다.
적어도 강혁에게 짐은 되지 않기 위해서.
*
쾅!
“....컥!”
“아파? 근데 어쩌지, 이제 시작인데. 그리고 뭐 죽여 버리겠다며. 언제 할 건데?”
히죽거리는 꼬마 놈의 면상을 깨부수고 싶다는 열망을 애써 억누르며 강혁은 두 팔을 교차했다.
인간의 살갗 아래에 자리 잡은 수십, 수백의 몬스터들의 능력들이 녹아들어 완벽한 방어 형태를 만들었다.
하지만 그런 방어 형태마저도 라플라스의 앞에선 무용지물이었다.
퍽-! 퍼억-!
‘....영혼이 울리는 고통이라는 게 이런 건가 싶은데.’
라플라스의 조막만한 주먹이 복부를, 다리를, 팔을 두들길 때마다 전신이 박살나는 듯한 고통이 들었다.
검은 피를 울컥울컥 토해내고, 그걸로도 모자라서 남아 있는 뼈와 내부 장기들이 모조리 박살나는 듯한 느낌이 연속해서 느껴진다.
‘포기라....’
포기.
그런 단어가 머릿속에 슬금슬금 모습을 드러내고, 맴돌기 시작하는 걸 느끼며 강혁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웃어? 어디 언제까지 웃나 보자.”
퍽! 퍼억! 퍽!
자신의 말에도 그저 웃음을 흘리는 강혁의 모습에 분노한 라플라스가 주먹을 내질렀다.
눈앞을 가득 채우는 조그마한 주먹의 세례는 무척이나 가벼웠지만 무거웠다.
감당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묵직한 공격들이 연속적으로 뿜어져 나오며 강혁을 두들겼다.
물론 그 공격은 고통은 줄지언정 강혁을 부술 수는 없는 공격들이었다.
“....계속 때려라. 얼마든지 버텨줄 테니까.”
“....이 자식이-”
고통에 일그러진 얼굴임에도 불구하고 포기할 생각도, 물러설 생각도 하지 않는 강혁의 모습에 라플라스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포기해! 포기하라고! 너 같은 한낱 필멸자 따위가 우리를 어찌할 수 있을 것 같냐! 저기 있는 네 동료들의 목숨은 너 때문에 바닥에 버려진 쓰레기마냥 버려지게 될 거다!”
성질을 박박 긁는 걸로도 모자라 멘탈이 긁으려고 드는 라플라스의 말에 강혁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날 포기하게 만들고 싶으면 일단 내 무릎부터 꿇리고 말하지 그래? 결국 너도 날 어찌할 수 없으니까 이러는 거 아니야?”
“....이잇! 크로노스!”
“알았다.”
결국 강혁이 물러서지 않자 라플라스는 크로노스와 함께 공격을 시작했다.
라플라스와 크로노스.
두 존재가 강혁을 향해 자신의 공격들을 마구 퍼부었다.
하나하나가 세상을 멸망시킬 막대한 힘을 지닌 공격들.
크로노스와 라플라스라는 상위신과 악마마저도 함부로 사용할 수 없는 공격들이었건만 그들은 개의치 않았다.
쫘아악-
“....수분이, 아니 노화인가.”
여태까지 공격들을 잘 막아내던 강혁의 신체가 물 먹은 피부처럼 쪼그라 들었다.
하지만 그것이 다른 어떤 것이 아닌 ‘시간’의 공격이라는 걸 강혁은 곧바로 깨달았다.
쪼그라든 피부.
수분기가 사라진 퍽퍽해진 피부만이 아니라 팔 전체에서 힘이 급격하게 떨어졌다.
노화.
늙어서 피부의 탱글함이 사라지고, 근육의 질김과 강함이 무뎌졌다.
“이게 크로노스의 힘인가.”
주위의 시간을 멈출 때부터 대충이나마 짐작했지만 크로노스의 힘은 강혁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더 대단했다.
대상의 시간을 더 빠르게 하거나 더 느리게 하는 것.
지금 크로노스는 거의 수십, 수백 년 분의 시간을 강혁의 팔에만 집중시켰다.
그 결과 다른 부분은 별 반 다를 바가 없었지만 오로지 팔만큼은 80 먹은 노인마냥 쪼그라 들어 있었다.
당연하게도-
퍼석-
“....크윽-”
“뭐야 이거? 나뭇가지 아니야? 나뭇가지?”
여태까지 튼튼하게 라플라스의 공격을 막아내던 강혁의 양팔이 가볍게 부러졌다.
하지만 강혁의 회복력은 그렇게 부러진 팔을 다시금 회복시켰다.
서서히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오는 팔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강혁은 확신했다.
‘이 정도로 노화시키기 위해선 어느 한 부위에만 집중해야만 하는 건가. 이거라면 위험하지만 죽을 수준은 아니다. 조금 더 버틸 수 있겠어.’
노화라는 최고의 공격 방법은 그 대단함 만큼이나 적용할 수 있는 범주가 좁았다.
팔, 다리 정도가 전부일 터.
강혁이라는 존재 자체를 수백 년 늙게 만드는 건 불가능하다는 얘기.
무엇보다 그렇게 찾아온 노화마저도 서서히 되돌릴 수 있는 힘이 강혁에게는 있었기에 강력하지만 무서운 힘은 아니었다.
다만 계속해서 이런 식으로 힘을 소모한다면 언젠가 패배하게 되는 것은 강혁이라는 사실 만큼은 변치 않았기에 강혁은 여태까지와 다르게 살짝 생각을 달리해야만 했다.
‘놈들을 이기려면 마냥 버티기만 해서는 안 돼. 내가 무언가를 해내야 한다. 그래야 다른 동료들도, 용용이도 구할 수 있어.’
버티는 것이 능사가 아니며 자신의 주도적으로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것.
물론-
푸스스스-
다시금 크로노스의 힘에 의해서 다리가 노화가 되고, 힘이 풀린 강혁이 무릎을 꿇었다.
“무릎 꿇었나?”
강혁에게 좋은 감정이 있을리가 없는 라플라스가 아까 전 강혁이 했던 말을 비꼬며 이죽거렸고, 이내 주저 앉은 강혁의 턱에 발차기를 꽂아 넣었다.
“....컥!”
짧은 단말마와도 같은 비명을 토해낸 강혁이 비틀거리며 바닥에 널부러졌다.
하지만 그와는 반대로 라플라스와 크로노스는 거칠게 강혁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신과 악마에게 대적한 인간의 처참한 최후를 모두에게 보여주겠다라고 생각한 듯한 두 사람의 모습과 함께 강혁에게 기나긴 고통의 시간이 찾아왔다.
*
힘이 빠진 강혁에게 라플라스와 크로노스가 가장 먼저 한 것은 다름 아니라 주변의 시간 흐름을 다르게 만드는 것이었다.
1초가 10초가 되고 다시금 1분이 되는 시간 속에서 그들을 미친 듯이 강혁을 몰아 붙였다.
두들겨 패고, 각종 공격들로 사지를 꿰뚫어 버리는 등-
인간이라면 몇 번만 겪어도 정신이 무너질 법한 공격들을 아낌 없이 토해내던 그들의 압박 앞에서도 강혁은 굴하지 않았다.
“....독한 놈.”
오히려 때리던 라플라스가 식은 땀을 닦아야만 했을 정도.
그렇지만 강혁도 멀쩡하진 않았다.
“크으으....”
절로 신음 소리가 터져나올 정도로 고통스러운 시간.
폐에는 물도 아닌 피가 찼고, 심장은 반쯤 우그러졌으며, 갈비뼈는 몇 조각인지 셀 수조차 없을 정도로 부숴져 있었다.
-정신 차려라. 이대로 무너질 생각이냐?
“....절대 그럴 일 없으니까 걱정하지마라.”
그런 강혁의 기운을 복돋기 위해서 분노가 채찍질을 해댄 덕분에 강혁은 다시금 일어설 수 있었다.
당장에 죽어버려도 이상하지 않은 상처를 품고도 멈추기는커녕 오히려 더 이를 악물고 나아갈 생각을 하는 강혁의 모습에 라플라스와 크로노스가 혀를 찰 때.
“그냥 끝내지.”
“....좋아, 나도 힘을 보탤게.”
크로노스와 라플라스가 자신들의 힘을 한 데 모으기 시작했다.
강혁이 포기하게 만들어 그를 쉽게 죽이려고 했지만 그 고결한 정신력은 결코 무너질 것 같지 않았기에 어쩔 수 없었다.
쿠구구구-
시간과 미래 예지의 힘이 합쳐지며 강혁이 결코 피할 수 없는 공격이 완성 되었다.
세상을 파괴하고도 남을 힘이 오로지 강혁만을 위해서 준비되고, 피할 수 있는 위치마저 모조리 봉쇄 되었을 때.
콰아아아아아!!!
어마어마한 기운이 터져나오며 강혁에게로 향했다.
강혁이 죽을 거라고 모두가 확신해마지 않을 때.
쩌적-
강혁의 바로 옆에 구멍이 생겼다.
차원에 생겨난 구멍.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곳은 신계.
정해진 입구가 아니라면 결코 누구도 구멍을 낼 수 없는 곳.
그런데도 구멍이 뚫렸다.
그리고 그렇게 뚫린 구멍에서는-
콰아아아아아!!!!
크로노스와 라플라스가 합친 힘과 비교하더라도 쳐짐이 없는 분노의 브레스가 터져나왔다.
-아빠! 괜찮아?
뻥 뚫린 구멍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
크로노스에 의해서 외차원으로 날아갔던 용용이의 목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