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올 마스터#165
“신들의 이름을 더럽힌 필멸자들을 죽여라!”
“악마의 위상을 드높여라. 놈들에게 뒤처지지마!”
거친 목소리가 전장을 채찍질한다.
천족들과 마족들.
각자 신들과 악마들의 힘을 빌어 탄생한 존재들.
당연하게도 영원을 사는 그들은 무척이나 강력했다.
애초에 태생부터가 평범한 인간들과 다른 만큼 그들은 막말로 태어나자마자 인간들을 쳐죽일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쿠구구구-
전장을 뒤흔드는 그들의 신성력과 마기 앞에선 평범한 인간은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전신이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더니 터져나가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
더군다나 누군가를 죽이겠다는 살기로 그득한 전장은 숨조차도 제대로 쉬기 힘들 정도였다.
하지만 그들을 상대로 앞에 선 이들도 평범한 인간은 아니었다.
쿵-!
“대답을 들을 시간 따위는 없겠지.”
거대한 백색 카이트 실드를 바닥에 박아 넣으며 루터 할론이 줄기차게 신성력을 뿜어내며 소리쳤다.
거친 목소리였지만 힘이 담긴 목소리는 자신의 위치를 말하려던 강혁의 입을 다물게 하기에 충분했다.
“애초에 강혁이 중앙이든 전방이든 후방이든 알게 뭐야? 우린 우리가 할 것만 하면 돼!”
마찬가지로 루터 할론과 함께 전방을 맡은 발터 밀란이 거칠게 소리치며 양손을 휘저었다.
푸스스스-
그의 손을 타고 흘러나온 독의 안개가 전장에 짙게 깔린다.
코끼리조차도 한 모금은커녕 반 모금 마셔도 죽음으로 인도하고, A급 헌터는 물론이고 S급 헌터조차도 한 모금으로 보내버릴 수 있는 극독.
그런 극독이 신과 악마들의 세상에 만들어진 전장에 흩뿌려졌다.
“....쿨럭쿨럭!”
“....독이다!”
“우리에게도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독이니 그냥 마실 생각하지 말고 정화하거나 베리어로 막아라!”
극독의 힘은 대단했다.
천족와 마족.
아무리 진짜 신과 악마는 아니더라도 그들의 힘을 빌어 태어난 이들이 독에 중독 되어 허덕이는 모습은 경이로울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그걸로도 그들을 막아내기엔 부족했다.
쿠구구구-
천족과 마족들이 한 걸음, 한 걸음 가까워져 올 때마다 느껴지는 막강한 기세만 보더라도 그들이 지닌 힘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을 테니.
파아아앗- 푸화아아악!
“....허어, 이런 망할 놈들. 독도 제대로 안 먹히네.”
실제로 터져나온 신성력과 마기의 앞에서 발터 밀란이 뿜어낸 독연은 가로 막혔다.
결국 다시금 전진을 시작한 그들의 모습과 함께 전방에 선 다른 이들도 공격에 힘을 보탰다.
“일어나라, 죽음의 군대여.”
드드드득-
알마드의 힘.
죽음의 군대, 언데드들이 그 모습을 드러냄과 동시에 천족과 마족의 군대를 향해서 몸을 날렸다.
-키에에엑!
-캬아아악!
폭급한 성질을 고스란히 가진 언데드들의 돌진은 그 위용과는 다르게 마족과 천족들에게 그리 위협적이진 않았다.
“....큭, 비켜라!”
“뼈다귀들 주제에 거슬리구나. 꺼져라!”
퍼석- 퍼서서석-!
박살이 나 흩어지는 죽음의 군대.
지구에서였더라면 능히 한 나라를 정복하고도 남을 군대였지만 개개인의 강함이 너무나도 쳐졌기에 일어난 일이었다.
하지만-
“블라드.”
“맡겨둬라, 이 세상을 핏빛으로 물들여줄 테니까!”
알마드는 자신의 군대가 박살이 나는 광경을 눈에 담으면서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자신의 동료이자 자신과 같은 강혁의 수하인 블라드.
언데드들은 그를 위한 버림패였으니 말이다.
알마드의 부름과 함께 블라드는 곧바로 자리를 박찼다.
“세상이 핏빛으로 물들지어다.”
나지막이 울려퍼지는 블라드의 목소리.
그와 동시에 눈앞에 보이는 모든 곳이 붉게 물들었다.
푸화아아악-!
“컥....”
“커거걱....”
여기저기서 목, 혹은 주요 혈관들이 자리 잡은 곳이 갈라지고 그 안에서 피가 뿜어져 나온 까닭이었다.
천족과 마족이라고 할 지라도 피가 흐른다는 점은 다르지 않았다.
먼 옛날.
그들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신과 악마들 또한 피가 흐르는 존재들이었고, 그건 지금도 다르지 않았으니까.
불멸의 삶을 산다고 한들 그들이 마냥 불멸은 아니었고, 피가 흐르지 않는 냉혈한인 것은 아니었으니.
터져나온 핏물이 바닥을 적시고, 세상을 적실 무렵 하늘이 어두워졌다.
쿠르르릉-
하늘 위에 떠오른 거대한 먹구름.
하지만 일반적인 자연 현상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듯 먹구름 안에서 번개가 거칠게 몰아치고 있었다.
서로가 부딪치며 힘을 섞고, 늘리길 반복하길 얼마나 되었을까.
“인벌(人罰).”
콰르르르릉!
하늘에서 말 그대로의 벌(罰)이 떨어져 내렸다.
번개라는 이름의 벌이 천족과 마족의 머리 위로 떨어진 순간.
콰드드득-!
땅이 갈라지고, 세상이 격동한다.
당연하게도 대마법이 지닌 파괴력 때문임을 모르는 사람은 적어도 이 자리에는 없었다.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파괴력이람.”
전방에서 대치를 준비하던 한수연은 그 광경을 보고 혀를 내둘렀다.
아무리 자신이 세 개의 직업의 능력을 온전히 다루는 능력자라고는 하나 방금
떨어진 벼락과도 같은 파괴력을 보이는 건 불가능하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절망하거나 하진 않았다.
“난 내가 할 일을 하면 돼. 루카스 씨와 난 달라. 그리고 루카스 씨가 하지 못하는 걸 난 할 수 있어.”
루카스 폴른.
지구 제일의 마법사이자 강혁의 이전에도 반신에 가까웠던 존재.
니아 아리엘과 장 진이라는 거대한 산과 같은 얼마 안 되는 이들 중 하나.
굳이 그와 자신을 비교하면 매몰될 이유가 없다는 게 이유였다.
짝짝-
찹쌀떡 같이 탱탱하면서도 흰 볼을 두들기며 한수연은 정신을 가다듬었다.
츠츠츠츠-
가다듬은 정신과 함께 순백의 검신에 신성력이 뒤덮혔다.
이윽고 뒤덮은 신성력이 정련되고, 길러짐과 동시에 검강이 만들어졌다.
가르지 못할 것이 없다는 그 검강이 한수연의 손에 의해서 만들어진 순간.
“일섬(一殲).”
순백의 그 색과는 다른 광폭한 살기를 품은 난무(亂舞)가 펼쳐졌다.
촤자자자작-!
“....끄으아아악!”
“팔....팔이!”
“이런 젠장, 저 여자를 잡아!”
루카스 폴른이 떨어뜨린 재앙, 인벌을 맞고 우왕좌왕하던 병력들이 수연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만큼 수연이 보인 힘이 강했다는 의미였고, 위험하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지금 이 자리에는 수연 혼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누나는 내가 지킬 거야.
용용이.
드래곤의 새끼, 해츨링이지만 그 강함만큼은 이미 성룡의 그것에 다다른 아이.
그 아이가 한수연에게로 달려드는 병력의 앞을 가로 막았다.
그리고.
푸화아아악-!
쩍 벌어진 입에서 뿜어져 나온 파멸의 힘을 품은 브레스.
드래곤 최강의 기술임과 동시에 신과 악마마저도 무시할 수 없는 공격이 천족과 마족에게 휘몰아쳤다.
콰과가가가가!
지상을 박살낼 듯이 폭급한 힘을 토해내는 브레스가 주위를 휘저음과 동시에 망가진 지상이 무너져 내린다.
신과 악마의 세상 또한 다른 차원의 세상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그저 그들의 세상은 평범한 힘이 아니라 신적인 존재들의 개입으로 유지되고 이어질 뿐.
하지만 브레스는 물론이고 그 전에 이루어진 공격들로 인해서 충격을 견디지 못한 대지가 서서히 붕괴 되어갔다.
“사이에 빨려 들어가지마!”
“젠장, 드래곤을 막아라!”
브레스 앞에서 우왕좌왕하는 천족과 마족들을 눈에 담으며 나머지 인원들도 각자의 공격을 뿜어냈다.
저벅-
무너져가는 대지를 향해서 니아 아리엘이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간다.
이윽고 한 걸음 만큼 적에게 다가선 니아 아리엘의 주먹이 무겁게 말려들어갔다.
이내.
“멸권(滅拳).”
팡-!
짧은 말 한 마디와 함께 주먹이 내질러졌다.
공기막을 터뜨리는 자그마한 소음.
하지만 자그마한 소음과 달리 그가 가져온 결과물은 작지 않았다.
푸쉭-
일권.
한 번의 내지름이 담긴 주먹이 불러온 결과물은 파괴도 뭣도 아니었다.
소멸(燒滅).
고작해야 주먹질 한 번으로 세상을 이루는 대지와 그 위에 발을 디디고 선 이들을 지워버린 것.
놀라운 이적이었지만 상대도 상대였다.
콰드드득-
터져나온 신성력과 마기가 세상 그 자체를 멸하는 주먹을 막아세운다.
그 대가로 신성력과 마기가 거하게 소모 되었지만 그것을 막았다는 점에서 충분히 이득인 상황.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벨 맛이 있는 녀석들이군. 시작부터 기운이 좋아.”
검성 장 진.
그가 니아 아리엘의 옆에 섬과 동시에 허리춤에 매달린 검을 빼들었으니까.
스릉-
날카로운 검명이 시끄러운 전장 속에서 울려퍼지는 순간.
“천공섬(天空殲).”
하늘을 찢어발기는 그의 기술이 터져나왔다.
촤자자자작-
그의 검이 닿는 모든 것들이 베어진다.
신성력도, 마기도, 단단하기로는 강철보다 더한 마족과 천족의 신체마저도 무참하게 베어져나간다.
물론 그들도 가만히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푸화아악- 화아아악!
터져나온 마기와 신성력.
그것들이 강혁의 동료들을 덮쳤다.
“....큭, 확실히 묵직하군.”
“....밀리자 마쇼, 아재.”
“알고 있네.”
그나마 단단한 루터 할론과 독공을 통해 마기와 신성력을 부식시켜가며 버티는 발터 밀란이 강렬한 기운의 파도를 막아세웠지만 마냥 피해가 없는 건 아니었다.
서서히 밀리는 걸로도 모자라 힘과 체력 그리고 기운들의 소모가 극심해질 무렵.
파아아앗!
그들의 뒤편에서 강렬한 신성력이 터져나왔다.
천족들의 신성력과 같지만 다른.
오히려 더욱 강력한 그것에 발터 밀란과 루터 할론은 미소 지었다.
“딸래미 하나는 제대로 키웠군.”
“말하지 않아도 모두가 아는 이야기이지.”
엘리자베스 할론.
성녀라고 불리우는 그녀의 등장이었다.
터져나온 신성력이 상처 입은 루터 할론과 발터 밀란을 회복시키고, 나아가게 만들었다.
계속해서 얻어 맞다가 날린 공격이 성공하여 기뻐하던 마족과 천족들은 자신들의 공격을 무난하게 버텨내는 전방의 이들의 모습에 놀람을 금치 못 했다.
하지만 강혁의 동료 쪽이 마냥 편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쓸모없는 놈들.”
“저런 놈들을 데리고 높으신 분들은 대체 뭘 하라는 건지.”
쿠구구구구-
등장과 함께 자신들의 부하들을 싸잡아 낮춰 보는 말을 하는 존재들.
하지만 그만한 위치에 선 존재들.
“저게....”
“신과 악마인가....”
신과 악마.
이 세상의 진정한 주인들이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등장만으로 주위를 떨리게 만들고, 전장을 지배하는 존재들.
물론-
“아까 했던 말에 대한 대답을 할 시간이 온 것 같군.”
그들에게도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었다.
아까 마저 하지 못한 대답을 논하는 존재.
“강혁!”
바로 올 마스터 이강혁이었다.
지금 이 상황을 만든 이.
모두가 그의 이름을 목 놓아부를 때.
부름의 당사자가 싱긋 웃으며 앞으로 나섰다.
“하데스, 넌 내부의 프리롤이다. 내 동료들이 있는 주변이라면 그 무엇이든 마음대로 해도 좋아.”
“마음에 드는 군.”
자신과 비슷한 존재이자 자신을 제외하면 유일하게 신과 악마들을 홀로 상대할 수 있는 이.
하데스에게 내부의 프리롤을 부여한 강혁이 자리를 박차며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네가 내부의 프리롤이라면 나는 외부의 프리롤이지.”
안전은 하데스에게 그럼 남은 건 돌진 뿐.
거기까지 생각을 마친 강혁의 신형이 전장에 모습을 드러낸 신과 악마들을 향해서 거칠게 쇄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