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올 마스터#164
하늘이 열린다.
개천(開天).
말 그대로 구름이 갈라지고, 그 너머의 푸른 하늘마저도 갈라지는 장엄한 광경.
-뭐야? 이게 무슨 일이야?
-영화? 아니, 그럴 리가 없잖아!
-하늘이 갈라진다니....무슨 말도 안 되는 일이....
도심 속 사람들은 바쁜 발걸음을 멈추고 하나둘 하늘 위를 쳐다본다.
셋이서 하늘을 올려다 보면 모두가 고개를 들고 하늘을 보기 마련.
그런데 모두가 하늘을 올려다 본다면 응당 모두가 하늘을 올려다 보는 게 당연한 일일 터.
“준비해. 문이 열렸다. 이제 올라갈 일만 남았어.”
그런 와중에 강혁은 덤덤하게 동료들에게 시작을 알렸다.
하늘이 열린 것은 비단 신기한 일이 아니었다.
신과 악마가 득시글거리는 그들만의 세상으로 향하는 문을 강혁이 열어젖혔으니 당연한 일.
물론 비단 강혁만의 힘으로 열어젖힌 건 아니었다.
-내가 좌표며 개문까지 다했건만....싸가지 없는 놈.
‘이제 너랑 나는 한 몸이잖아? 네가 한 건 내가 한 거나 다를 바 없지. 안 그래?’
-....빌어먹을 놈. 이럴 때만 한 몸 타령이구나. 되었다, 이제 출발하기나 해라.
칠죄 중 하나이자 가장 오랫동안 강혁과 함께 한 분노가 신들의 세상으로 향하는 좌표를 알고 있었고, 그곳으로 향하는 문을 여는 방법을 알고 있었기에 가능한 것.
문을 여는 데에 소모한 기운은 강혁이 부담했지만 그 외의 모든 것은 분노가 다 했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렇기에 툴툴대는 분노를 어루만지며 강혁은 몸을 풀었다.
우득- 우드득-
섬뜩한 울림과 함께 조금씩 비틀렸던 강혁의 몸이 순식간에 제 모습을 되찾았다.
만반의 준비를 갖춘 강혁이 긴장한 동료들의 어깨를 툭툭 두들겼다.
“다들 정신 차리고 가자. 선봉을 내가 맡을 테니까.”
“너만 선봉이 아니란 걸 깨달아줬으면 좋겠군.”
그런 강혁의 옆에 나란히 선 건 당연하게도 하데스였다.
신들의 세상으로 향하는 마당에 강혁의 옆은 사지라고 봐도 무방했다.
사지에서 멀쩡히 움직일 수 있는 건 언데드가 되면서 많이 약해졌다곤 하나 최강이라는 이름에 가까웠던 신인 하데스가 제격이리라.
“쳇, 강혁의 옆자린 내 건데....”
“....제가 모자라서 오빠의 옆을 외간 남자에게....”
“아쉽네- 나도 옆에서 싸우고 싶었는데.”
“멀리서나마 기도를 드릴게요.”
강혁의 동료들이라면 모두가 탐낼만한 자리였고, 탐냈던 자리지만 그 자리에 선 건 결국 하데스였다.
모두가 아쉬움을 드러내면서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존재.
그렇게 선봉이 정해지고, 모두가 차차 자리를 잡으며 나아갈 준비를 마쳤을 때.
“그럼 가지.”
강혁이 성큼 앞으로 발을 내디뎠다.
그리고 발을 내디딘 강혁의 모습이 순식간에 눈앞에서 사라졌다.
자취를 감춘 강혁을 두리번거린다거나 하는 일 따위는 강혁의 동료에게는 주어지지 않았다.
“먼저 가서 자리를 닦아놓지. 늦지 말고 오도록. 또한 방심 또한 내려놓고.”
강혁 다음은 하데스였다.
그와 같은 선봉을 맡았기에 두 번째 타자로 그가 나서는 건 당연했다.
아기새들에게 하듯 말을 마친 하데스가 강혁의 뒤를 따라 모습을 감추자 니아 아리엘이 앞으로 걸어나오며 말했다.
“늦으면 딱밤.”
“....니아, 네 딱밤을 맞으면 곧바로 저승이다.”
“꼬우면 늦지 말던가!”
타닥-
말을 마치기 무섭게 자리를 박차는 니아 아리엘과 그런 니아 아리엘을 바라보며 고개를 가로 젓는 루카스 폴른의 신영이 자취를 감추었다.
장난스럽지만 언제나 전장에서 가장 위험한 곳을 자처하는 니아 아리엘과 루카스 폴른의 만담 덕분에 긴장이 풀린 다른 이들로 차례대로 앞으로 나아갔다.
“자네들과 다르게 좀 늦게 온 몸이지만 그래도 중요한 순간까지 늦게 갈 생각은 없네. 먼저 갈 테니 늦지 않게 따라오게나.”
묵직한 저음의 부드러운 울림의 목소리.
검성, 장 진의 목소리였다.
가장 연장자답게 자신의 뒤를 따라올 이들이 부담감을 느끼지 않도록 배려하던 그의 목소리가 바람처럼 흘러간 뒤.
장 진 또한 모습을 감추었다.
하나둘, 사라져 가는 모습을 눈에 담으며 다음은 할론 부녀가 앞으로 나섰다.
“....먼저 간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어주러 가야겠네.”
“저도 그 분들을 위해서 기도를 올리고 싶어요. 물론 기도의 주체는 신도 악마도 아니지만요.”
강렬한 빛을 내뿜는 백색 갑옷을 입은 루터 할론과 반대로 부드러운 실크를 연상케하는 백색 성복을 차려 입은 엘리자베스 할론.
두 사람은 보기만 해도 성스러운 분위기를 내뿜으면서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이윽고 두 사람도 앞선 이들과 다르지 않게 사라졌다.
“흥, 다들 짝 지어서 가는데 왜 나만 이 녀석이야?”
“....미즈키, 누군 좋아서 선 것 같나? 대충해라, 대충. 어차피 이런 짝 따윈 올라가면 아무런 의미도 없는데 왜 성질이야.”
다음 주자는 미즈키 페이와 발터 밀란이었다.
물과 기름을 연상케하는 두 사람의 티격거림은 살짝 굳어버린 분위기를 풀어내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투닥거리던 두 사람은 서로의 어깨에 팔을 걸고는 함께 발을 내디뎠다.
언제나 싸우지만, 언제나 의지가 되는 존재임을 저들 스스로 보여준 셈.
그들은 모두에게 믿음을 보여주며 남들처럼 모습을 감추었다.
“용용아, 누나랑 같이 갈까?”
-웅!
알마드와 블라드를 제외하면 마지막 남은 둘.
한수연과 용용이가 ‘문’ 앞에 서서 미소를 지었다.
수연의 품에 안긴 채로 고개를 붕붕 끄덕이는 용용이의 귀여움 대답과 함께 두 사람도 다른 이들과 다르지 않았다.
서서히 물에 녹듯이 사라지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알마드와 블라드는 떨떠름한 얼굴로 발걸음을 떼었다.
“....다들 주접을 떤다고 말해도 되려나 모르겠군.”
“마음대로 해. 어차피 들을 사람도 없는데.”
“그래, 그것도 그렇지. 그럼 갈까.”
“그래, 평생의 염원이 이루어지는 날이군.”
앞선 이들의 태도를 떠올리며 고개를 가로젓던 그들까지 사라진 자리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지구의 모든 사람들도 그들의 떠남을 알지 못 했다.
모두가 모르는 그 순간 그들은 가장 처절할 전투를 시작했다.
“....이런 젠장, 지각인 것 같은데 여보?”
“....그러게 빨리 가자고 했잖아요. 빨리 뒤쫓아가요.”
“쯧, 왜 이렇게 다들 부지런한 거야, 젠장. 신과 악마와의 전쟁인데!”
물론 지각생 또한 존재했다.
그들은 벌써 사라진 이들을 향해 투정거림을 토해낸 뒤에 거침없이 그들의 뒤를 따르는 걸 택했다.
*
“후우, 여기가 놈들의 세상인가?”
-그래, 지금부터는 언제 어디서 놈들이 튀어 나와도 이상하지 않다. 물론 엉덩이 무거운 그것들이 곧바로 튀어나올 것 같진 않지만 그래도 놈들이 부리는 놈들만 하더라도 충분히 위협적이겠지.
“뭐, 어때. 어차피 모조리 쓸어버려야 할 놈들에 불과한데 말이야.”
어깨를 으쓱이며 대꾸하는 강혁의 말에 분노는 그것도 옳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것도 그렇군. 놈들이 약한 놈부터 보내든 강한 놈부터 보내든 결과적으로 남은 건 그들을 쓸어버려야 한다는 것 뿐이니까.
“정답이야.”
이미 주사위는 굴려졌다.
상대가 강하든 약하든 그들을 모조리 박살낸다는 선택지에 변함은 없다는 얘기.
당연하게도 이 자리에 선 강혁에게 뒤돌아간다는 건 선택지에 존재하지 않았다.
전진.
오로지 전진만이 강혁의 선택지에 존재하는 단어였다.
“슬슬 거의 다 온 것 같지?”
“늦군.”
“이 정도면 빠른 셈이지. 아무리 선택을 했다곤 하나 여기에 들어온 이들 중에서 살아돌아갈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 지는 그 누구도 알지 못하니까.”
옆에 선 하데스의 중얼거림에 강혁은 자신의 동료이자 친구들을 두둔했다.
지금 발을 디딘 이곳.
신과 악마가 득시글거리는 그들의 본거지라고 할 수 있는 이곳에 따라와줬다는 것만으로도 그들은 최대한의 열의를 보여준 것과 다르지 않았으니까.
그렇기에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는 동료들을 강혁은 잠자코 기다렸다.
“강혁!”
“여기가 신계....아니면 마계라고 해야할 곳인가.”
니아 아리엘과 루카스 폴른이 먼저 모습을 드러냈고.
“흐음, 신성함이 넘쳐흐르는구나.”
“반대로 악함도 넘쳐흐르네요.”
두 번째로는 할론 부녀가 모습을 드러냈으며.
“벌써부터 검을 뽑고 싶어서 손이 근질근질하군.”
검집을 만지작거리며 참을 수 없다는 듯이 몸을 부르르 떠는 검성 장진도 뒤이어 모습을 드러냈다.
들어왔던 순서대로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는 강혁의 동료들.
미즈키 페이와 발터 밀란, 한수연과 용용이, 알마드와 블라드.
“케헥, 늦지 않았지?”
“....조금 일찍 더 나왔어야 했는데....죄송해요, 여러분.”
마지막 지각생인 알케미와 그의 부인인 세나까지.
모두가 모습을 드러낸 순간.
강혁은 더 이상 기다릴 것도 없다는 듯이 자리를 툭툭 털고 일어났다.
“모두 도착했으니 더 밍기적거릴 이유도 없겠네.”
“바로 갈 생각인가?”
“그래, 모두의 역할군을 분배한 뒤에 바로 간다.”
“....빠르군. 나쁘지 않아.”
전력의 분배만을 마친 뒤, 곧바로 출발하겠다는 말에 하데스는 놀람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만족스러운 미소를 흘렸다.
“그들은 내게도 적과 다를 바 없었지. 동 떨어진 나를 잡아 먹으려고 한 건 비단 악마들 뿐만이 아니었으니까.”
“....너네 사정도 꽤 팍팍하구나.”
“오히려 너희들보다 더할 거다. 가진 것에 만족하지 못한다는 점은 너희나 그들이나 똑같겠지만.”
과거를 떠올리는지 인상을 살짝씩 찌푸리는 하데스의 모습에 강혁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박수를 쳐 이목을 끌어 모았다.
“자자, 잡담은 여기까지 하고. 곧바로 역할 분담 해줄 테니까 각자의 역할을 잊지 마.”
“....그러지.”
가장 강한 하데스마저 입을 다물고 강혁의 말에 동의를 한 순간 다른 이들 또한 강혁의 말에 따르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알케미, 세나는 당연하고, 엘리자베스는 후방이다.”
“....쳇, 어쩔 수 없지.”
“당연한 일이죠.”
“....곁에서 돕고 싶었는데 아쉽네요.”
알케미와 세나는 전투 중이 아닌 전투 후에 필요한 자원.
당연히 후방에 배치하는 게 옳았다.
엘리자베스는 전투 중에 필요한 자원이지만 보조의 역할이 크기에 후방에 배치했다.
“다음으로 할론 아재와 니아, 수연이는 전방에서 몰려오는 적들을 깨부수고 다른 이들을 지켜주는 걸로 하지.”
“알았다.”
“나랑 딱 맞는 역할이구만!”
“....나쁘진 않네요.”
다음에 배치한 것은 전방에 있을 인력들이었다.
루터 할론, 니아 아리엘, 한수연이 바로 전방에 배치한 전력들이었다.
각자 1인분 이상을 전방에서 해낼 수 있는 이들로 구성된 만큼 설령 신과 악마가 나타난다고 한들 거뜬하게 버텨낼 수 있을 터였다.
그걸 바라고 강혁이 그들을 전방에 배치한 것이기도 했고.
“중앙은 루카스 폴른과 검신 어르신, 알마드, 블라드, 용용이가 맡는다.”
“흠, 마법사로선 이상적인 배치도야.”
“나쁘지 않군. 충분히 검이 닿을 거리니까.”
“중앙이라면 확실히 언데드들을 부리기 적당한 거리군요.”
“피를 빨기엔 조금 멀지만 어쩔 수 없지. 조금 보조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임하겠다.”
마지막으로 중앙에는 남은 인력들을 모조리 때려박았다.
말 그대로 남은 인원들 모두가 들어갔기에 인원이 꽤 많았지만 나쁜 결정은 아니었기에 반발은 없었다.
그렇게 모두의 배치가 완료되었을 때.
“그런데 강혁, 너는 어디지? 전방? 중앙? 그것도 아니면 후방인가?”
루카스 폴른이 오직 강혁만이 배치되지 않았음에 궁금증을 드러냈고.
“내가 있을 곳은....”
그에 대한 답을 하기 위해서 강혁이 입을 떼는 순간.
쿠르르릉-!
그들이 발을 디딘 대지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온다.”
이곳의 주인이라고 할 수 있는 이들.
신과 악마의 힘을 빌은 존재들이 강혁과 동료들이 있는 곳을 향해 쳐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