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올 마스터#163
루카스 폴른의 칠죄 주입 이후로도 다른 이들에게 칠죄 혹은 칠선을 주입시키는 일은 멈추지 않았다.
“발터, 앞으로 나와.”
두 번째 대상자는 발터 밀란이었다.
은밀한 움직임과 말도 안 되는 변명으로 강혁에게 벗어나려던 그는 곧바로 강혁에게 붙잡혀 결국 강혁의 앞으로 끌려왔다.
“....젠장, 암살자보다도 더 은밀하게 다가오는 건 반칙이지. 그리고 할 일이 있다니까!”
“괜찮아, 이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을 테니까. 그리고 암살자보다 은밀하게 다가오는 거에 대해서는 네 능력 부족이 아닐까 싶은데. 더 노력하도록 해.”
“....빌어먹을 괴물 자식.”
어떻게든 벗어나기 위해서 발버둥쳤지만 강력하게 찔러오는 팩폭 앞에서 결국 발터 밀란은 고개를 숙여야만 했다.
강혁의 말은 구구절절 옳았다.
암살자가 다른 이에게 뒤를 잡혔다는 것만 하더라도 부끄러운 일임을 그도 모르진 않았다.
다만-
‘....진짜 무서운데 어떡하라고!’
이미 앞서서 칠죄의 주입을 받은 루카스 폴른의 최후(?)가 어떠 했는지를 두 눈으로 똑똑히 본 입장에서 본능적인 공포가 앞서는 것도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이윽고 한숨과 함께 발터 밀란은 수긍했다.
“....할 거면 빨리 해라.”
“그래.”
“....컥!”
말이 끝나기 무섭게 곧바로 칠죄를 주입하는 강혁의 모습에 발터 밀란이 두 눈으로 욕을 해댔지만 강혁은 개의치 않았다.
“음, 그래. 발터 네겐 탐욕이 딱이야.”
오히려 발터 밀란에게 주입할 칠죄를 고르기 바빴다.
탐욕.
발터 밀란에게 주입할 칠죄가 정해지기 무섭게 발터 밀란에게 닿은 강혁의 손을 통로 삼아 칠죄가 발터 밀란에게로 빨려 들어갔다.
“끄으으으.....”
그리고 이어진 상황은 좀 전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탐욕이 빨려 들어감에 따라 시시각각 얼굴이 변화하는 과정은 보는 이로 하여금 두려움을 심어주게 하기엔 모자람이 없었다.
발터 밀란이 바닥에서 버르적거릴 무렵.
“후우, 망할 놈 같으니. 다짜고짜 주입하면 어쩌자는 거냐.”
“일어났네.”
루카스 폴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장 먼저 주입을 받은 그는 꽤 멀쩡한 얼굴로 강혁을 향해 독설을 퍼부었다.
하지만 그런 독설을 받은 당사자는 히죽 웃으며 그런 루카스 폴른을 환대했다.
“기분은 어때? 나쁘지 않나?”
“....나쁘지 않은 걸 넘어서 최고에 가깝다. 짜증나긴 하지만 큰 도움이 될 거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군.”
극찬.
칭찬에 인색하기론 세상 누구보다 원탑인 루카스 폴른의 극찬에 사형수처럼 자신의 순번만을 기다리던 이들의 눈빛이 바뀌었다.
‘....현자 루카스 폴른이 극찬할 정도라니....저 정도 고통을 감수할 만큼의 메리트는 확실한 건가.’
‘으음, 역시 오빠가 이상한 걸 주입할 리는 없지만....그래도 역시 아직은 조금 거부감이 드네요.’
최고의 능력자이자 지성인인 루카스 폴른이 인정할 정도의 힘.
당대 최고의 헌터들인 이들이 눈독을 들이지 않는 게 더 이상한 일일 터.
하지만 이어진 루카스 폴른의 말에 다시금 방 안에 냉기가 흘렀다.
“그래도 두 번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일이야.”
질린 얼굴로 고개를 내저으며 몸을 부르르 떠는 루카스 폴른의 모습은 살짝 올랐던 열기를 그대로 냉기로 바꾸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자, 그럼 다음 손님?”
싱긋 웃는 강혁의 모습이 마치 저승사자의 부름처럼 느껴지는 것은 마냥 그들만의 착각은 아니었으리라.
*
발터 밀란 다음 타자로는 루터 할론이 나섰다.
“딸아이보다 늦게 받는 추한 아버지가 될 수는 없지.”
“과연 끝까지 그런 모습을 유지할 수 있을까, 할론? 내가 겪어봐서 아는데 저건 정말 끔찍하거든.”
의연하게 나선 루터 할론이 옆에서 삐죽 던진 루카스 폴른의 말에 몸을 부르르 떨었지만 잠시였다.
“그럼 갈게요, 할론.”
마치 ‘안 아파요, 환자분-’이라고 말하는 듯한 강혁의 말과 함께 그에게 칠선이 주입 되었다.
다른 이들과 달리 성직자 계열인 루터 할론에게 칠죄는 궁합이 잘 맞지 않았기 때문.
파아아앗-
칠선이 주입되기 무섭게 환한 광채가 루터 할론에게서 터져나왔다.
방안을 가득 채우는 광채에 모두가 눈을 가릴 때.
“음, 이게 끝인가?”
“....뭐야! 왜 멀쩡해!”
광채가 사라진 자리에서 멀쩡한 루터 할론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무런 고통도 없어 보이는 그의 모습에 루카스 폴른이 발작을 일으켰다.
자신이 느낀 강렬한 고통을 왜 루터 할론은 느끼지 않는 지에 대한 분노와 발작에 강혁도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왜지?”
강혁이 루터 할론에게 주입한 칠선은 ‘근면’.
언제나 성실하고 앞장 서던 루터 할론에게 어울리는 칠선이라고 판단하고 그것을 집어 넣은 것.
‘궁합이 잘 맞아서인가?’
근면과 루터 할론.
딱 보기에도 잘 어울리는 둘의 조합이 잘 얽혀서 고통이 사라진 건가? 하는 생각을 할 때.
-그럴리가 있겠느냐. 그냥 칠선 녀석들은 사용자에게 고통을 주는 걸 원치 않은 마음이 크기 때문인 거다. 물론 놈들의 신성력이 고통을 주는 데에 특화된 힘이 아니라는 것도 한 몫하겠지. 반대로 마기는 누군가에게 고통을 주는 데에 특화된 힘. 당연히 고통스러운 게 당연한 거다. 뭐, 놈들의 성격이 어디 한 군데 배배 꼬여 있기에 그런 점도 있지만.
“....오, 모두 좋은 소식. 칠선을 받는 사람들은 아프지 않을 거라고 하네. 참 다행이지?”
“....다행은 무슨! 망할, 그럴거면 나도 칠죄 말고 칠선을 주던가!”
자신이 입은 고통에 대한 보상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루카스 폴른의 주장에 강혁이 싱긋 웃으며 답했다.
“칠선도 줄까? 칠죄로는 부족해 보이네.”
“....됐어!”
섬뜩함.
칠죄와 칠선을 몸 속에 양립할 수 있는 존재가 세상에 강혁 혼자 뿐이라는 걸 모를 정도로 루카스 폴른은 멍청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그는 칠선도 주겠다는 말이 살인 예고임을 모르지 않았기에 고개를 홱 돌리며 강혁의 시선을 피할 따름이었다.
결국 루터 할론이 가볍게 칠선의 주입을 마친 뒤, 다음 타자가 타석에 들어왔다.
“잘 부탁드릴게요.”
“그래, 수연이 넌....겸손이 좋겠다. 신성력도 사용하니 너도 칠죄보단 칠선이 낫겠어.”
“....!”
기쁨을 만면에 띄우는 수연을 뒤로한 채로 강혁은 빠르게 칠선, 겸손의 주입을 마쳤다.
아직 칠선을 주입해야 할 이들이 산더미처럼 많았기에 어쩔 수 없었다.
“빨리빨리 끝내고, 신과 악마들 때려 잡으러 가자고.”
조금이라도 빨리 신과 악마들을 두들겨 패고 싶다는 마음을 품은 채로 강혁은 바삐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신과 악마와의 결전까지 정말 얼마 남지 않은 순간이었다.
*
“후우, 끝인가.”
“....죽은 건 아니겠지?”
“설마 그럴리가. 확실하게 처리했으니까 죽진 않았을 걸?”
바닥에 널부러진 이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중얼거리는 강혁의 말에 루카스 폴른이 학을 뗐다.
빠르게 하겠다더니 순식간에 모든 이들에게 칠죄와 칠선을 때려 박아버린 강혁의 경이로운 능력에 혀가 절로 내둘러지는 상황.
하지만 강혁은 여기서 만족하지 않았다.
“용용이랑 블라드, 알마드에게도 줘야겠어. 추가로 알케미랑 알케미의 부인에게도 주는 게 좋을 것 같은데.”
“....굳이 그렇게까지? 그들은 네 펫이거나 비전투원이잖나. 그들에게까지 그럴 이유는 없을 것 같은데.”
용용이는 강혁의 펫이었고, 블라드나 알마드는 강혁에게 얽매인 영혼의 부하와도 같았다.
아니, 그들까지 그러려니 한다고 하더라도 알케미와 그의 부인인 세나는 비전투원의 가까운 이들.
당연히 그들에게까지 칠죄와 칠선을 보급하는 루카스 폴른의 입장에선 과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당연했다.
하지만 강혁의 생각은 확고했다.
“안 돼. 그들은 우리와 함께 신과 악마를 상대해야 할 중요한 존재들이야. 괜히 관리를 소홀히 했다가 그들을 잃기라도 하면 답이 없어.”
“....알케미와 그의 아내까지 데리고 간다고? 대체 왜?”
비전투원인 알케미와 세나까지 데리고 전쟁에 참가한다는 말에 루카스 폴른은 당황을 금치 못 했다.
지금 자신들이 가야 할 곳이 어디인가?
신과 악마들이 득시글거리는 지옥과도 같은 전쟁터가 아닌가?
그런 곳에서 비전투원인 그를 데리고 간다는 건 짐 덩이를 이고 다니는 것과 다르지 않을 터.
루카스 폴른의 거친 반발에 강혁은 선선히 고개를 내저었다.
“위험하지만 확실히 도움이 될 거야. 신과 악마들을 잡을 때마다 그들의 시체를 가지고 지구로 내려올 수는 없지. 그 자리에서 곧바로 그들을 갈아 너희들을 위한 보약을 만들 거다.”
“....미친 짓이야. 그들이 그걸 가만히 두고 볼까?”
피와 각종 무구들이 난무하는 전쟁터 속에서 신과 악마들이 자신들의 시체를 가지고 영약을 만들어내는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을리가 없다.
당연히 그들의 파상공세를 감당해야 하는 것은 그 누구도 아닌....
“너희들이 해야지. 너희들이 먹을 건데. 무엇보다 그러라고 준 칠죄와 칠선이라는 걸 기억해.”
“....젠장, 망할 놈 같으니. 위험하고 어려운 일들은 전부 우리에게 떠넘기는구나.”
짜증이 가득 서려 있는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강혁은 태연하게 어깨를 으쓱거렸다.
“꼬우면 나 대신 주신들이나 대악마들이랑 싸우던지.”
“....후우, 빌어먹을 놈.”
다른 이들이 신과 악마를 처리하고, 그들의 시체를 알케미가 현자의 돌로 탈바꿈 시킬 동안 지키는 고된 일을 맡더라도 강혁이 해야 할 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실제로 주신과 대악마들의 강함은 어지간한 신과 악마 몇 마리를 합친 것보다 강했으니까.
결국 루카스 폴른은 피할 수 없는 위험을 받아 들여야만 했다.
“....다른 이들에게는 내가 전하지. 아주 좋아할 거다.”
“그래야지. 너희들을 믿으니까 맡기는 거다. 뭐, 힘들면 말해. 빼줄 테니까.”
“됐다. 퍽이나 빼준다는 말에 혹하는 놈이 있을 것 같나? 있으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지. 그들을 지키는 건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 넌 네가 할 일이나 해라.”
“그래, 알았다. 그럼 준비하고 있어. 알케미를 비롯한 애들만 칠죄와 칠선 전수한 뒤에 곧바로 출발할 테니까.”
“....후우, 준비하지.”
짙은 한숨을 토해내며 진정을 하는 루카스 폴른의 모습을 뒤로한 채로 강혁은 곧바로 자리를 박차고 알케미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자, 그럼 나도 떠날 준비나 해볼까.”
점점 멀어져 가는 강혁의 뒷모습을 눈에 담으며 루카스 폴른 또한 자리를 박찼다.
강혁이 돌아올 때까지 놀고만 있기엔 앞으로 그가 상대해야 할 적들이 너무나도 강력했기에.
*
“....정말 우리도 가는 거냐?”
“그래, 그리고 우리가 전부 자리를 비우면 오히려 지구가 더 위험할 수도 있어.”
“젠장, 빌어먹을 놈들 같으니. 좋아, 차라리 잘 됐군. 놈들을 모조리 갈아버려주지.”
“좋은 생각이야.”
미국으로 단숨에 날아와 알케미와 세나에게 각각 칠선을 주입한 강혁은 결의가 넘치는 알케미의 말에 미소를 머금었다.
겁을 집어 먹고 있는 것보단 그처럼 화를 버럭 내는 편이 차라리 보기 좋았다.
그렇게 모든 준비를 마친 강혁이 쾌청한 하늘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자, 그럼 전쟁을 시작할 시간이다.”
쿠구구구-
그런 강혁의 중얼거림을 들은 건지 하늘이 심상치 않게 울려댔다.
하지만 그에 굴하지 않은 강혁이 칠선의 주입을 마친 알케미와 세나를 붙들고 자리를 박찼다.
모두가 기다리고 있을 한국으로 떠나기 위해서.
그렇게 서서히 모든 일의 끝이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