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올 마스터#158
-정말 그 녀석들을 모두 데리고 전쟁에 임할 생각이냐?
강혁의 결정이 끝나고 회의가 마쳐진 뒤.
분노가 강혁에게 말을 걸어왔다.
신과 악마와의 전쟁.
그 지독한 지옥 속으로 그들을 밀어 넣을 거라는 말에 강혁은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 친구들이자 동료인 녀석들이야. 능력에 모자람은 없지.”
한 명 한 명이 각 나라에서 최고 수준에 오른 인재 중에 인재.
나아가 최근 겪어온 여러 사건들로 인해서 담금질이 된 그들의 강함은 차원 단위로 보아도 모자람이 없으리라.
-....목숨을 잃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노는 걱정을 드러냈다.
강혁이 그들을 아끼는 만큼 그들이 죽거나 다쳤을 때 강혁이 보일 반응을 예상할 수 없기에 그러했다.
-넌 그들이 죽거나 다쳤을 때 그걸 감당할 수 있겠느냐?
그렇기에 분노는 강혁에게 물었다.
무게.
자신이 누구보다 아끼는 이들이 죽거나 다쳤을 때 그들을 사지로 몰고 간 자신이 겪어야 할 무게에 대해서 논하는 분노의 말에 강혁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그걸 왜 감당해?”
-....뭐?
“걔들이 애도 아니고 내가 걔들의 피해에 대해서 감당해야 되는데? 물론 걔네가 죽거나 다친다면 슬프겠지. 하지만 그에 짓눌려서 내가 움직이지 못하면 그게 더 병신 아니야?”
당당함.
그 당당함에 분노가 강혁을 어처구니 없다는 듯이 바라보며 대꾸했다.
-네가 끌고 갔으니 네가 책임져야 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니냐?
신과 악마의 전장 속으로 그들을 끌고 간 건 누가 뭐라해도 강혁이었다.
그렇기에 그들을 책임지는 것 또한 강혁이 해야 할 터.
하지만 강혁은 그럴 생각이 없었다.
“그건 그거고. 정 가기 싫으면 가지 말라고 하면 그만이지. 애초에 걔네들 자존심이 장난 아닌데 가지 말란다고 진짜 안 가겠냐.”
자신의 동료들이 세 살 먹은 애들도 아니고 그들 하나하나 오롯이 챙겨야 할 이유 따윈 없었다.
여유가 된다면 못 할 것도 없지만 반대로 그럴 여유가 없다면 당연히 불가능할 터.
-....허, 넌 정말 미친 놈이다.
분노가 이리 말하는 것도 당연했다.
자신을 믿고 따르는 이들을 책임지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과 같은 상황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혁의 생각은 변함이 없었다.
“나도 알아. 하지만 어쩔 수 있나. 그게 맞는 거지. 신과 악마들이 판치는 전쟁통에서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없어. 오로지 자신의 실력만을 믿어야지. 누군가가 도와주길 바란다는 점에서 실격이지.”
신과 악마.
하나 같이 괴물이라고 부르기에 모자람이 없는 존재들.
설령 강혁이라고 한들 방심할 수는 없는 이들로 가득한 것이 바로 신과 악마들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강혁은 자신의 동료들을 데리고 가되, 그들의 안전을 모조리 감당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강혁은 자신이 있었다.
“내가 없이도 분명 자기들끼리 무언가 방법을 강구해낼 녀석들이야. 회의장에서야 앓는 소리를 냈지만 녀석들은 분명 방법을 찾아낼 거야. 부족한 힘으로 신과 악마들을 상대해낼 방법을.”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자신은 있는 거냐? 그들은 제쳐두고서라도 신과 악마. 전체와 싸울 자신은 말이다.
담담한 강혁의 모습에 니아 아리엘을 비롯한 다른 동료들에 대한 생각은 접어둔 분노가 앞으로의 일정에 대한 각오를 물었다.
신과 악마.
막강한 힘을 지닌 괴물 전체와 싸워서 이길 자신이 있느냐는 분노의 물음에 강혁은 선선하게 미소 지으며 답했다.
“당연한 걸 왜 물어? 그리고 그걸 더 확실하게 하기 위해서 마지막 남은 놈들을 한 번에 챙기러 가는 거잖아.”
-....그래, 넌 언제나 그런 식이었지. 그리고 언제나 성공했고. 이번에도 널 믿겠다. 네가 하던 방식대로만 한다면 문제가 없을 테니까.
이제는 익숙해진 강혁의 태도.
그에 분노는 한숨과 함께 강혁 마음대로 하라며 대꾸했다.
그런 분노의 대답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머금은 강혁이 자리를 박찼다.
“오만과 시기. 이놈만 잡으면 이제 정말 끝이네.”
-몇 년도 되지 않았건만 정말 너란 녀석도 괴물은 괴물이구나.
“나보다 더한 괴물들이 득시글거리는데 뭘.”
-그건 그렇구나.
신과 악마라는 이름의 괴물들이 득시글대는 세상에서 괴물은 더 이상 두려움의 상징이 아니었다.
그저 자신 또한 괴물이 되지 않는다면 다른 괴물들에 잡아 먹힌다는 의미일 뿐.
대부분의 인간들은 괴물이 되지 않는 게 아니라 되지 못한다.
그렇지만 강혁은 그들과 달리 틀을 깨고 괴물이 되는데에 성공했고, 더욱 높은 곳을 목표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와라.”
허공에 둥둥 떠 있던 강혁의 외침이 고요하게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오만과 시가.
두 개를 제외한 모든 칠죄와 칠선을 모은 이의 외침에 반응한 두 개의 존재가 이윽고 그 모습을 드러냈다.
쿠구구구-
전 세계에 어디에서든 보일 정도로 거대한 탑.
일전에 나타났던 인내의 탑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거대한 크기.
그에 따라 전 세계가 진동하는 걸 느끼며 강혁이 마른 침을 삼켰다.
“....어마어마하게 크네.”
-오만과 시기. 둘 모두의 기운이 느껴진다.
탑 내에서 오만과 시기의 둘 모두의 기운이 느껴진다는 사실에 강혁은 바짝 마른 입술에 침을 바르며 떠듬떠듬 물었다.
“그렇다는 건....”
하지만 그런 강혁의 물음에 대한 대답이 돌아오기도 전에 탑에서부터 듣기만 해도 오만함이 느껴지는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와라라....오만하군. 나를 취하려는 것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오만하다고 할 수 있지만 더욱 오만해.
“....!!!”
압도적인 중압감.
그것이 강혁의 어깨를 짓눌렀다.
고작해야 칠죄 하나가 품은 기운이라기엔 말이 안 되는 그것에 강혁이 이를 악물며 탑을 노려보았다.
“....오만인가. 너, 시기를 어떻게 한 거지?”
오만을 논하는 상대이기에 상대가 누구인지 파악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하나.
지금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양의 기운을 품은 오만이 시기를 어찌 했는가였다.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는 기운이라면 둘이라면 가능하다는 얘기.
그건 곧 오만이 다른 칠죄인 시기를 어떻게 했다는 말이 된다.
그 예로 느껴지는 기운은 두 개이지만 정작 시기는 조용했으니까.
-시기라....남을 음해하고 쥐어 뜯기 바쁜 녀석이 감히 내게 굴종하지 않았기에 손수 그놈을 굴종시켜줬을 뿐이다. 지금 놈은 내 안에서 조용히 지내고 있지.
강혁의 생각은 옳았다는 것을 증명해주듯, 오만은 당당하게 시기를 자신이 먹었노라고 답했다.
“....살아 있는 거겠지?”
그에 칠죄 전부를 모아야 하는 강혁은 시기의 생사 여부를 물을 수밖에 없었다.
-적어도 아직은.
다행이도 돌아온 대답은 긍정이었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시기가 살아 있다는 오만의 말에 강혁은 심호흡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마지막이라고 꽤 까탈스러운 놈이 걸렸네. 상관 없어. 어차피 너도 내 앞에 무릎 꿇고 내게 흡수될 테니까.”
시기만 살아 있다면 아무래도 좋았다.
어차피 오만이든 시기든 모두 굴복시켜야 할 대상에 불과했으니까.
그래서일까?
강혁은 지나친 자신감을 드러냈고, 그에 오만 또한 빠르게 응수했다.
-그리 될 지는 굳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법이다. 적어도 내 생각에는 네 생각이 결코 현실로 나타나지 않을 것 같구나.
강혁이 자신을 지배하는 미래 따위는 결코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확신하는 오만의 말.
그것이 강혁을 자극했다.
“....그래? 길고 짧은 건 대보면 알겠지. 하지만 한 가진 확실해.”
물론 강혁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곧바로 응수하는 강혁의 모습에 탑에서 들려오는 오만의 목소리에 의문이라는 감정이 끼었다.
-뭐지?
궁금증이라도 생긴 건지 고개를 갸웃거리는 듯한 그의 모습이 훤히 연상되는 강혁이 씨익 웃으며 답했다.
“네가 내 앞에서 무릎 꿇고 흡수되는 건 정해진 미래라는 게 말이야.”
-오만하군. 마음에 들지 않아.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오만할 수 있는 건 나 하나 뿐이다!
물론 오만은 그게 마음에 들진 않았다.
세상에서 오만할 수 있는 존재는 오로지 자신 뿐이라는 생각이 확고한 그에게 강혁의 오만은 자신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듯한 느낌을 주었기 때문이다.
뭐, 그렇다고 해서 강혁이 태도를 바꾸진 않았지만.
“그럼 탑의 꼭대기에서 보자고.”
-....후회하게 될 거다. 넌 내 양분으로서 자리 잡게 될 테니까. 시기 그 놈처럼 말이야.
“아까도 말했지?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안다고.”
씨익 웃으며 마지막 말을 마친 강혁이 성큼 탑을 향해 나아갔다.
-강혁, 조심해야 한다. 탑 내에서 느껴지는 기운은 분명 심상치 않아.
서스럼 없이 나아가는 강혁에게 분노가 걱정 어린 조언을 건넸다.
당연한 일이었다.
저 탑은 평범한 탑이 아니었다.
칠죄 중 두 명의 힘이 집약된 탑.
그 중에서도 최강이라고 불리는 오만이 다른 칠죄인 시기를 굴종시켜서 만들어낸 탑인 만큼 더더욱 그러했다.
“알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멈춰 있을 이유는 없지. 저 녀석이 알아서 내 앞에 무릎을 꿇는 것을 기다리기에는 너무 오래 걸리지 않겠어?”
그렇지만 그게 강혁의 발걸음을 멈춰 세울 이유가 되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렇기에 더욱 앞으로 나아가야만 했다.
멈추면 정체 된다.
정체 되면 죽는다.
그런 말도 안 되는 공식이 존재하는 세상이고, 앞으로 있을 신과 악마의 전투를 앞두고 가장 중요한 피스인 오만과 시기를 내버려 둘 이유도 없었다.
모든 이유들이 복합적으로 얽힘으로서 강혁이 탑으로 향하게 만들었고, 거기서 분노는 더 이상 강혁을 말리지 못했다.
-네 마음대로 해. 애송이! 어차피 내 말 따위는 듣지도 않을 테니까!
마치 기르는 개를 풀어 놓는 듯한 그의 말에 강혁은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답이야. 난 누구도 막지 못해.”
씨익 웃으며 대꾸하는 강혁이 아니 꼬운지 분노가 연신 툴툴거렸지만 더 이상 강혁이 탑으로 향하는 걸 가로 막지는 않았다.
그저 말 그대로 툴툴거리기만 했을 뿐이었다.
시끌시끌해진 머릿속에서 분노를 조용히시키며 강혁은 전 세계 어디에서도 보일 정도로 거대한 탑 앞에 섰다.
“자, 그럼 들어가볼까.”
무저갱처럼 느껴지는 어둠의 입구 앞에서 두려움도 없이 앞으로 나아가는 강혁.
그리고 강혁이 입구 너머로 사라지기 무섭게 탑에서 입구가 모습을 감추었다.
쿵-
묵직한 울림을 끝으로 강혁을 집어 삼킨 입구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이내 탑의 형체 또한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마치 강혁을 이 세상에서 탑과 함께 지워버리기라도 하듯이 말이다.
*
어두컴컴한 공동.
그곳에 강혁이 모습을 드러냈다.
“여긴?”
-탑의 1층이다. 어디 거기서부터 내가 있는 꼭대기까지 올라와봐라. 그것이 내가 네게 내리는 시련일지니.
공동에 울려퍼지는 오만의 목소리.
그에 강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목 닦고 기다려. 금방 갈 테니까.”
-흥, 기대하지. 네가 고통 받는 모습을 즐기며 기다려주마.
웃음기가 맺힌 목소리로 도발하는 강혁을 향해 오만이 코웃음을 치는 것을 끝으로 공동이 조용해졌다.
아니, 조용함은 얼마 가지 못했다.
-키에엑!
-캬아악!
어둠 너머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몬스터들의 울음 소리.
그것이 공동 안을 가득 채우는 순간.
스릉-
강혁 또한 검을 빼들었다.
“등반하면 또 나를 빼놓을 수 없지.”
인내의 탑에 이은 오만의 탑의 등반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