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올 마스터#157
쿵- 쿵! 쿠구구궁!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는 괴생명체들의 시체.
그것들이 마치 비처럼 떨어져 내리며 지상으로 추락했다.
콰직! 퍼석!
피떡으로 변해버린 그들의 시체를 뒤로한 채로 루카스 폴른은 오랜만에 나타난 자신의 친우를 향해 다가갔다.
“이게 며칠만이야 대체?”
“명계에서의 시간은 나도 잘 몰라서 그런데 얼마나 지났어?”
“2주.”
“....많이도 지났네.”
예상보다 꽤 많이 지나간 시간에 강혁은 놀람을 금치 못했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강혁은 여유로움을 잃지 않았다.
“그래도 걱정하지마. 이제 저 괴물들이 지구에 피해를 입힐 수는 없을 테니까.”
자신이 없는 사이에 피해를 본 지구.
그렇지만 자신이 모습을 드러낸 지금부터 그들은 다시는 지구에 피해를 입히지 못할 것임을 잘 알았기 때문이다.
“....뒤에 있는 존재 때문에?”
“뭐, 그것도 있고. 나 때문이기도 하지. 내가 놈들을 막을 거니까.”
물론 그 이유가 하데스의 덕분도 있지만 강혁 본인의 힘이 상당 부분 차지하고 있음을 반박할 순 없었다.
“그래서 이 뒤에 있는 이는 누구지? 가진 기운만 보면 너랑 비슷한 것 같은데.”
과연 현자라고 부를 법한 눈썰미.
기운을 대부분 감춘 하데스의 기운을 유추해낸 루카스 폴른의 눈썰미에 강혁은 물론이고 하데스마저 슬쩍 놀람을 내비쳤다.
“지구의 수준도 마냥 낮지는 않군.”
“내 친구인데 저 정도는 되야지.”
루카스 폴른을 높히 평가하는 하데스와 그에 당연하다는 듯이 응수하는 강혁.
의외로 합이 잘 맞는 둘의 모습에 루카스 폴른이 다시 한 번 물었다.
“그래서 누구냐니까? 계속 물어보게 할 거냐?”
이제는 짜증마저 섞인 그 물음에 강혁이 익살맞게 웃으며 답해주었다.
“하데스.”
“....뭐?”
놀람이 섞인 대답.
당연한 일이었다.
명계의 주인 하데스.
그 이름을 모르는 사람, 적어도 헌터 중에는 그의 이름을 모르는 이는 없었다.
애시당초 그의 세상인 명계로 이어지는 입구가 존재하는 그리스는 그걸로 유명한 나라라고 할 정도였으니 말 다했다.
‘....그런데 하데스라고?’
하지만 그것도 잠시.
루카스 폴른은 무언가 이상한 것을 깨닫곤 경계를 시작했다.
“네가 왜 하데스와 있는 거지, 강혁? 넌 분명 그와 적일 텐데. 아니, 너만이 아니라 전 세계 전체가 그를 비롯한 신과 악마와 적인데 왜 너는 그와 있는 거냐.”
하데스.
그는 명계의 주인임과 동시에 인류의 주적인 신이었으니까.
그리고 강혁은 그들과 대적하는 대적자이자 인류의 구심점인 존재.
신 중에서도 상위신에 속하는 하데스와 어울릴 존재가 아닌 것이다.
마치 물과 기름과 같은 존재가 어울리고 있으니 그가 경계를 하는 것도 당연했다.
“내가 죽이고 언데드로 만들었어.”
“....뭐? 그게 뭔 말도 안 되는 말이야?”
이윽고 들려온 강혁의 말만 아니었다면 루카스 폴론은 곧바로 대단위 마법을 날렸을 게 분명했을 정도로.
하지만 이어진 강혁의 말에 맥이 탁 풀려버린 루카스 폴른이 어처구니 없다는 얼굴로 강혁을 바라보았다.
거짓말임을 확신이라도 한 듯 강혁을 물끄러미 쳐다보았지만 현자의 눈으로 바라보았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진짜로?”
“진심으로.”
“....뭐, 이런 미친 놈이.”
신을 죽였다.
인정할 수 있다.
이미 전례가 있으니까.
상급신을 죽였다.
그것도 인정할 수 있다.
지금의 강혁은 지구 최강이라는 수식언으로 담기에도 모자랄 지경이 되었으니까.
‘하지만 죽인 상급신을 언데드로 되살렸다는 게 말이 되냐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였던 상급신을 다시금 언데드로 되살려서 부린다는 점을 루카스 폴른은 믿을 수 없었다.
놀람과 경악이 부드럽게 버무려진 얼굴로 한참을 강혁을 바라보던 루카스 폴른은 간신히 감정을 추스렸다.
“대체 어떻게 한 거냐, 아니 대체 왜 그런 거냐. 굳이 죽인 신을 다시 되살릴 이유는 없잖나.”
감정을 추스르기 무섭게 루카스 폴른은 당혹감이 서린 목소리로 물었다.
왜 하데스를 되살렸느냐고.
간신히 죽인 신을 다시금 되살렸다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지 인상마저 찌푸리는 그를 바라보며 강혁이 고개를 내저었다.
“한순간의 객기 따위로 되살린 건 아니야.”
“그렇겠지. 아니, 그래야만 할 거다. 그렇지 않고서야 내가 널 이해할 수 없을 테니까.”
굳은 얼굴로 고개를 주억거리는 루카스 폴른의 말에 강혁은 실소를 터뜨렸다.
“그냥 믿어주는 건 없는 거냐.”
“....당연한 걸 묻기는. 그래서 이유가 뭐냐. 왜 우리의 주적인 신들을 되살린 거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되묻는 루카스 폴른을 눈에 담으며 강혁은 하데스를 되살린 이유에 대해서 설명했다.
“신들과의 전쟁. 그리고 악마들. 나아가 그들과 전쟁을 벌이고 있는 외우주의 존재들을 나 혼자서는 어찌할 수 없으니까.”
“....외우주의 존재들?”
신과 악마.
이제는 익숙한 그들의 이름 뒤로 떠오른 외우주의 존재들이라는 난생처음 듣는 이름에 루카스 폴른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보기 드문 그의 모습에 강혁이 헛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모르는 것도 당연하지. 그들은 우리들에게 감춰져 있는 이들이니까.”
“....넌 그걸 어떻게 알지?”
“하데스한테 대충은 들었거든.”
명계에서 지구로 돌아오는 길.
그 길을 걸어오며 강혁은 하데스와 꽤 많은 대화를 나누었고, 그 결과 지구를 침략하는 중인 외우주의 존재들에 대한 것들도 꽤 많이 알게 되었다.
“하지만 마냥 그들 때문은 아니야.”
“그럼 뭐지?”
“뭐긴 뭐야, 그냥 신과 악마들도 벅차니까 그렇지.”
“....”
이해할 수밖에 없는 말.
신과 악마들은 결코 혼자서 이겨낼 수 있는 이들이 아니었다.
아무리 강혁이 강력하다곤 하나 고작해야 한 명.
수십, 수백에 달하는 신들을 멸하고 악마들을 처단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결국 루카스 폴른은 고개를 떨구었다.
“도움이 못 되어서 미안하다.”
자신과 다른 동료들이 강혁에게 힘이 되지 못 했기에 강혁이 신과 언데드들을 다시금 언데드로 되살린다는 말도 안 되는 선택지를 가져온 것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고개를 숙인 루카스 폴른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강혁은 고개를 내저었다.
“네 잘못이 아니야, 루카스.”
“....하지만 나의 부족함이 네 발목을 붙잡는 셈이니 이러는 게 더 마음이 편하다.”
“뭐, 그렇게 따지면 혼자서 신과 악마 전부를 씹어 먹고 그 다음에 그들과 비슷한 수준의 세력을 일군 외우주의 존재들을 막지 못한 내 잘못 아니겠어?”
“....하, 그런 시덥잖은 위로는 안 해줘도 된다. 최근 들어 나의 부족함을 여실히 느끼고 있으니까.”
고개를 숙인 그에게서 들려오는 힘 빠진 목소리에 강혁이 그를 냅다 밀었다.
퍽-
둔탁한 소리.
그와 함께 바닥을 나뒹구는 루카스 폴른.
“....이게 뭐하는 짓이야!”
흙 먼지가 잔뜩 묻은 모습으로 짜증을 토해내는 루카스 폴른의 성질에 강혁이 히죽 웃으며 답했다.
“넌 그런 모습이 어울리니까 괜히 폼 잡지 말고 다른 애들이나 불러. 앞으로의 일에 대해서 논의 좀 하게.”
“....그래 봤자 어차피 너만 움직일 텐데 우리는 왜 필요하지?”
답지 않게 툴툴대기는.
평소 자신이 어찌 행동했는지를 잘 알기에 마냥 루카스 폴른을 비난할 수만은 없던 강혁이 쓴웃음과 함께 고개를 내저었다.
“하나만. 딱 하나만 나 혼자 해먹고 다음부턴 너희들과 함께 할 거다.”
“그래? 그렇다면 기대해볼만 하군.”
함께 한다.
참으로 오랜만에 강혁의 곁에 설 수 있다는 말에 루카스 폴른은 저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사실 강혁과의 차이가 너무 벌어졌기에 그의 곁을 따라잡기란 반쯤 불가능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금 곁에 설 수 있다는 사실에 루카스 폴른은 마냥 기쁠 따름이었다.
물론 기쁨과 반대로 그게 좋은 일인지는 적어도 지금은 알 수 없었지만.
신과 악마들이 날뛸 전장 속에서 아직까지는 일개 필멸자에 불과한 루카스 폴른과 같은 이들 끼기엔 너무나도 위험천만한 곳이었으니까.
“그래도 내가 굳이 그들을 부를 필요는 없을 거야.”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루카스 폴른의 강혁이 부탁한대로 다른 이들을 불러 모을 생각은 없었다.
“....왜?”
자신의 말을 전면으로 부정하는 그의 모습에 강혁이 어처구니 없다는 얼굴을 지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에 한숨을 토해내야만 했다.
“저기 오고 있으니까.”
“....아, 그런거면 진즉에 말 좀 하지.”
하늘 너머로 보이는 여러 개의 인영들.
그 인영들에게서 느끼지는 기감은 강혁에게 무척이나 익숙했으니까.
*
“엄청 오랜만이네, 우리 자기. 저런 혹도 달고 오고.”
“오빠, 몸이 멀쩡하시죠?”
니아 아리엘과 한수연의 물음에 강혁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들의 걱정을 한 몸에 받기에 모자람이 없을 정도로 강혁이 전전한 곳들은 결코 녹록치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와 반대로 강혁의 몸 상태는 그 어느 때보다 좋았다.
“만족스러워. 그러니까 걱정은 안 해도 괜찮아.”
“칫, 멀쩡하면 나랑 좀 같이 있지.”
“....아줌마는 빠져야 있어도 젊은 저랑 있지, 아줌마랑 있겠어요?”
“말 다했어?”
괜찮다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날카로운 말들이 서로에게로 오고가는 것을 보며 강혁을 혀를 내두르며 둘을 진정시켰다.
“거기까지 하지? 지금부터 할 말이 있으니까.”
“....오빠 덕분에 산 줄 알아요.”
“내가 할 말이야, 핏덩이.”
서로를 향해 마지막까지 눈을 부라리는 걸 끝으로 두 사람을 고개를 홱 돌렸다.
‘여자들이란 참....’
언제 만나도 불편하고 힘든 이들이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내젓던 강혁은 오랜만에 올 마스터의 회의실의 모인 동료들의 면면을 확인했다.
방금 전까지 싸우던 니아 아리엘과 한수연.
가장 먼저 만났던 루카스 폴른은 물론, 조용히 시가를 태우는 발터 밀란과 언제나처럼 과묵하게 검집을 매만지는 장 진 또한 함께였다.
외곽 자리에 앉아서 살랑살랑 손을 흔드는 미즈케 페이도 자리하고 있음은 빼놓을 수 없을 터.
모든 이들이 모였음을 확인한 강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여기 있는 하데스는 모두 알 거고. 나는 마지막 남은 칠죄인 오만과 시기를 획득하면 곧바로 신들과 악마들을 처단하기 위해서 나아갈 거다.”
“....!!!”
칠죄가 고작 두 개만 남았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었지만 곧바로 신과 악마들에게로 쳐들어간다는 말에 이 자리에 모인 모두 놀람을 금치 못할 때.
딱 한 명.
그 말을 내뱉은 강혁만이 서늘한 미소를 머금은 채로 그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니까 모두 내게 돌아올 때까지 신과 악마들에게 뒤쳐지지 않는 수준까지 단련해두도록 해.”
“말도 안 돼!!!”
절규에 가까운 외침.
그것을 들으면서도 강혁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그저 선선히 미소를 머금은 채로 그들을 바라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