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올 마스터#155
“....아름답네.”
하나의 세상이 창조되는 모습.
그건 그 어떤 예술 작품보다도 아름다웠다.
수만 년에 한 번도 보기 힘든 세계 창조의 모습을 눈에 담으며 페르세포네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무너져 가는 명계 또한 섬뜩함을 품은 아름다움을 지녔었지만 세계가 창조되며 탄생하는 광경은 무너짐보다도 더욱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사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다.
무너짐보단 창조가 더욱 고결하고 아름다운 일이었으니까.
“끝났다.”
마지막 작업을 끝내고 손을 털며 다가오는 강혁의 말에 페르페포네는 그제야 놀람에서 깨어났다.
“....진짜 신이구나.”
“당신도 신이면서 말은.”
피식 웃으며 페르세포네의 말을 흘려듣는 강혁.
하지만 페르세포네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반문했다.
“신 중의 신. 주신. 그리고 그들 중에서도 가장 높은 곳에 오른 존재. 단 한 명 뿐인 존재이기도 한 이. 최고신. 그게 왠지 너인 것 같다는 말이야.”
“....그 말은 조금 끌리네. 하지만 그런 칭호는 모든 신들을 내 발 아래에 꿇린 뒤에나 불러달라고.”
최고신.
신 중 신이라는 그의 이름을 입에 담는 페르세포네의 말이 구미가 당기는 지 입맛을 다시며 고개를 끄덕인 강혁이 입을 열었다.
“흩어져 가는 영혼들의 관리는 맡겨도 되겠지?”
명계의 복구 및 재생성은 끝이 났다.
하지만 지금부터가 가장 중요했다.
흩어져가는 명계의 주민들을 수습하는 것.
그것만큼은 강혁이 해줄 수 없었기에 강혁은 페르세포네에게 부탁했다.
그리고 그런 강혁의 부탁에 페르세포네는 맡겨달라는 듯이 팔을 걷어붙이며 나섰다.
“명계에서 오랫동안 지내면서 내게 남은 거라곤 그것 밖에 없어. 명계의 주민을 다스리고 이끄는 일. 하데스는 하지 못했던 그 일은 내가 도맡아서 했었지. 그게 지금에서 도움이 될 줄이야.”
거의 평생을 명계에서 보낸 그녀다.
당연하게도 할 일을 찾아다니는 건 지겹도록 많이 한 그녀인 만큼 그녀는 자신에게 딱 맞는 일을 찾아냈다.
명계의 주민들을 다스리는 일.
힘만 쎈 하데스에게는 없는 재능과 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한 그것에 페르세포네는 매달렸다.
그래서일까?
명계의 주민들은 그녀를 ‘봄의 여왕’이라고 부르며 찬양했고, 사랑을 보냈다.
그랬던 그녀가 자신에게 준 사랑에 대한 보답을 하기 위해서 나섰다.
“모두 내게로 오라!”
찬란한 빛이 그녀에게서 터져나온다.
봄의 따스함을 빛으로 표현한 듯한 따스함이 주위로 퍼져나감과 동시에 혼란에 빠진 명계의 주민들이 홀린 듯 그녀에게로 이끌린다.
-아아, 여왕님!
-우리의 봄이시여!
찬란한 빛에 이끌린 나방처럼 그들은 감격이 깃든 얼굴로 서서히 페르세포네에게로 다가왔다.
점점 가까워지는 그들을 바라보며 강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이런 쪽은 전문가가 필요하긴 하지.”
-동감이다. 너 같은 녀석이라면 오히려 공격을 하지 않았을까 싶군.
“....말이 좀 심하네. 내가 그 정도는 아니지.”
-장난이다.
킬킬거리며 장난을 던져대는 분노의 말에 강혁은 아무런 말 없이 명계의 주민을 모으고 있는 페르세포네를 바라보았다.
-뭔 생각을 하는 거냐. 평소처럼 떽떽거리지 않고.
“....언제 내가 떽떽거렸다고.”
-장난이다.
하루 종일 장난만 치는구만.
분노도 처음 만났을 때와는 꽤 많이 달라졌다고 생각하며 강혁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슬슬 끝이 보인다고 생각하니 생각이 많아지네.”
-....끝이라. 확실히 그렇긴 하군.
전투 능력이 거의 전무하다고 볼 수 있다지만 신은 신인 페르세포네가 신 중 신이라며 치켜세울 정도로 강혁은 완성되어 있었다.
마지막 남은 칠죄 또한 먹어치운다면 정말 그 누구도 강혁을 막을 수 없게 될 터.
그건 신과 악마라고 할 지라도 마찬가지였다.
“모든 일이 끝나면 뭘 해야 할까.”
강력한 힘을 쥐고.
세상을 장난감 취급한 이들을 개처럼 두들겨 패준 뒤에는 무얼 해야할 지.
지금의 강혁은 알지 못 했다.
그렇기에 씁쓸한 얼굴로 하나둘 모여드는 명계의 주민들을 바라볼 때.
담담한 분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가 잘하는 걸 해라.
“...내가 잘하는 거?”
-그래, 네가 잘하는 거.
내가 잘하는 게 뭐가 있더라. 너무 많아서 꼽을 수가 없는데.
남들이 듣는다면 재수 없다고 하겠지만 강혁은 진심이었다.
너무 많은 재능을 가졌기에 특출난 재능이 뭔지.
무얼 더 잘하는 지를 알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분노의 말에 강혁은 깊은 고민에 빠져들었다.
‘대체 뭘 잘하는 걸까.’
자신이 무얼 잘하는 지에 대한 고민.
점점 깊어져 가는 고민 속에서 분노가 버럭 소리쳤다.
-이런 멍청한 놈 같으니. 전투 말하는 거잖느냐! 전투!
“아, 그거. 그러라면 뭐....내 18번이지.”
전투.
이제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된 그것을 입에 담는 순간 정답을 알아낸 사람처럼 마음이 따스해졌다.
짐을 덜어낸 것과도 같은 느낌이랄까?
답을 알아냈지만 그래도 의문은 남아 있었다.
“그런데 전투가 뭔 상관이야? 신과 악마들. 그놈들을 모조리 족치는 끝나는 일인데.”
전투란 무릇 싸울 상대가 있어야 할 수 있는 법.
신과 악마들을 모조리 때려부순 뒤에는 싸울 상대가 없는 게 당연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이어진 분노의 말에 강혁은 뒤통수를 망치로 얻어 맞은 듯한 충격을 느꼈다.
-그놈들이 어떤 놈들이 싸우고 있는 지를 잊었느냐. 그놈들을 모조리 때려 잡으면 당연히 그들과 싸우던 놈들이 활개를 치겠지. 넌 이제부터 그들과 싸워야 할 텐데 싸울이 없기는 왜 없어?
“....아, 그건 그렇네. 흐음, 그러면 일손이 조금 부족하겠는데.”
신과 악마와 자웅을 겨루는 세력.
괴생명체를 부리는 그들을 막아내려면 자신 혼자서는 불가능할 것 같다는 판단을 내린 강혁은 혀를 차며 생각에 잠겼다.
신과 악마를 없애는 것은 무조건 해야 하는 일이었다.
여태까지의 목표였고, 이제 와서 그들과 손을 잡는 것도 우스운 일이었으니까.
실제로 이미 강혁은 신과 악마를 여럿 족치기도 했으니 더더욱.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넌 사이인데 이제 와서 동맹을 맺자니.
‘지나가던 개가 웃겠지. 그럼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뭐, 마땅한 방법이 있나?’
신과 악마를 처리함과 동시에 그들의 빈 자리를 채울 방법.
강혁은 그것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설마 이거 되려나?’
머릿속에 떠오른 한 가지의 방법.
그것을 떠올린 강혁은 자신의 방법이 가능할 지 불가능할 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생각도 잠시.
“일단 한 번 해보지 뭐.”
강혁은 일단 자신의 생각을 실천하기로 마음 먹었다.
될 지 안 될 지 고민하는 것보다 한 번 시도해보는 편이 더 편했으니까.
-....또 무슨 미친 짓을 하려고 그러는 거냐. 이젠 네가 그럴 때마다 걱정이 앞서는 구나.
그런 강혁의 말에 분노가 떨떠름한 기색을 내비쳤지만 강혁은 생각을 바꾸지 않았다.
“시작해볼까.”
저 멀리서 페르세포네가 명계의 주민들을 끌어 모으는 사이.
강혁은 자신이 수습하고 재창조한 명계를 만들고 남은 파편들을 끌어 모았다.
그리고 그 파편에는 죽어 없어진 하데스의 시체가 담겨 있었다.
강혁이 무얼 하려는 지도 모르는 채로 열심히 명계의 주민들을 끌어모으는 페르세포네를 뒤로 한 채로.
츠츠츠츠-
강혁은 막대한 사기를 토해내기 시작했다.
*
“후우, 슬슬 마무리인가.”
멸망한 명계에서 떨어져 나간 명계의 주민들.
그들을 대부분 데리고 온 페르세포네는 짙은 한숨을 토해내었다.
아무리 그들을 이끌고 돌보는 데에 특화된 그녀라지만 명계에서 튕겨져 나간 이들을 등대처럼 인도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오로지 그녀이기에 가능한 일.
-아아, 여왕님 감사합니다.
-덕분에 소멸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페르세포네의 덕을 본 영혼들이 그녀에게 감사를 전할 때.
푸화아악!
저 멀리서 터져나온 죽음의 기운.
사기의 폭발에 그들이 깜짝 놀란 얼굴로 등을 돌렸다.
“....저건 또 뭐야?”
페르세포네마저 놀람을 금치 못하고 사기의 폭발이 일어난 곳을 바라볼 정도로 폭발은 대단했다.
압도적인 폭발을 목도한 명계의 주민들과 페르세포네가 딱딱하게 얼어붙었을 때.
페르세포네는 보았다.
“....이강혁? 그리고 저건....하데스?”
사기의 폭발의 한가운데에 위치한 강혁과 그런 그의 앞에 놓여져 있는 하데스의 시체를 말이다.
죽은 듯이, 실제로 죽어 있는 하데스의 시체는 창백하기 그지 없었지만 그의 앞에서 넘실거리는 사기들은 금방이라도 그를 되살려 낼 것처럼 일렁이고 있었다.
“....말도 안 돼.”
그리고 그제야 강혁이 무얼 하려고 하는 지를 깨달은 페르세포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소생을 시키려는 거야? 아니, 정확하게는 하데스를 언데드로 만들겠다고?”
소생.
혹은 언데드라고도 불리는 작업을 강혁이 하려고 했음을 눈치챈 것이다.
당연하게도 기나긴 신계의 역사 속에서 단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던 일이었다.
‘....인간을 되살린 전적은 몇 번이고 있었지만 신을 되살린 적은 없었어. 근데 그걸 일개 개인이 해낼 수 있다고? 신들조차 해내지 못한 일을?’
단 한 번도 일어나지 않은 일.
신과 악마조차도 해낼 수 없는 일을 일개 개인이 시도한다는 것만으로도 놀라웠다.
하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따로 있었다.
“....난 왜 저게 성공할 것 같지?”
신을 언데드로 소생시켜 부린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지만 페르세포네는 왠지 저 말도 안 되는 일이 성공할 것만 같았다.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자신의 모습이 너무나도 놀라웠기에 그가 하데스의 시체에 사기를 밀어 넣는 모습을 보며 아까 전과 같은 놀람을 느꼈다.
우득- 우드드득-
그와 동시에 변화를 일으키는 하데스의 시체.
사기가 전신을 헤집으면서 일어나는 변화에 페르세포네는 물론이고 명계의 주민들마저 마른 침을 삼켰다.
-....언데드?
-설마 하데스님을 언데드로 만들겠다고?
지금 강혁이 하려는 일을 모르는 존재는 적어도 이곳엔 없었다.
명계.
그곳은 죽은 자들의 세상인 만큼 다시 살아난 자.
언데드에 대한 상식과 지식이 빠삭한 이들이 많았으니까.
그렇기에 서서히 변화가 시작되는 하데스를 바라보며 모두가 마른 침을 삼키며 긴장할 때.
“....정말, 네놈은 미친 놈이구나.”
익숙한 목소리가 그들의 귓가에 들려왔다.
묵직하면서 힘이 실린 목소리.
“나 혼자 싸우기에는 너무 많을 것 같아서. 그래도 성공인가. 덕분에 신과 악마랑 화해한다는 선택지가 사라진 게 마음에 드네.”
“....나를 되살려 내 형제들을 공격하게 할 생각이냐.”
“물론이지. 어서와, 하데스.”
목소리의 주인은 강혁에 의해서 다시 태어난 하데스였다.
“네 녀석에게 죽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지만. 이렇게 네 녀석의 손에 다시금 부활하게 될 줄이야. 언데드인가.”
“정답.”
“....어지간히 미친 놈이로군.”
방금 전까지 싸웠던 대상이 자신을 되살렸다.
그 사실에 하데스는 어처구니 없다는 얼굴로 강혁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런 시선에도 불구하고 강혁은 그저 싱긋 웃을 따름이었다.
‘쓸만한 노예를 얻었네.’
신.
그 중에서도 주신의 반열에 오른 강력한 신을 언데드로서 부하로 부리게 된 강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