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올 마스터#154
-크아아아아!
죽어가는 하데스의 목소리가 귓전에 꽂히지만 강혁은 개의치 않았다.
으적으적으적으적-
그저 열심히 그의 파편이라고 할 수 있는 명계의 파편들을 집어 삼키는 식욕에게만 집중할 뿐.
-정말 해낼 줄은 몰랐는데.
“나도 몰랐어. 아카식 레코드의 힘이 컸지.”
-그건 그렇군.
놀라워하는 분노의 목소리에 강혁은 그저 고개를 가로 저을 따름이었다.
분노의 말마따나 놀라운 건 그만이 아니었으니까.
강혁 본인도 첫 번째 도전에 그를 물리칠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혁은 그것을 해냈고, 지금은 하데스를 집어삼키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전투 예지를 특성 강화로 강화해서 도달한 아카식 레코드가 큰 도움이 되었음은 말할 필요도 없으리라.
“이걸로 명계는 끝인가.”
-그렇겠지. 명계와 하나가 된 하데스를 죽였으니 하데스와 하나가 된 명계 또한 부숴지는 게 수순일 터. 당연한 얘기다.
무너져가는 명계를 먹어치우면서 강혁은 생각했다.
명계는 정말 끝인가? 하는 생각을 말이다.
이어진 분노의 말마따나 하데스는 명계와 하나가 됨으로서 강력한 힘을 발휘했고, 그 대가로 그의 죽음과 함께 명계가 무너져 내렸다.
그와 함께 강혁은 떠오른 생각은 얼굴을 굳혀야만 했다.
“....그럼 명계의 주민들은? 이미 한 번 죽었던 그들의 영혼은 어디로 가는 거지?”
명계.
무너져가는 그곳에서 살아가는 주민들에 대한 생각 때문이었다.
신위에 오른 그이지만 무너져가는 명계에서 살아가던 주민들이 어떻게 되는지는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와 오랜 시간을 함께한 분노만큼은 그 대답을 알고 있었다.
-....모두 죽을 거다. 정확하게는 소멸하게 되겠지. 어쩌면, 아주 운이 좋다면 다른 죽은 자들이 가는 세상으로 흘러갈 수도 있지만 그건 극히 희박한 일이라는 것만 알아둬라.
“....그럼 결국 다 죽는다는 거네?”
-그렇게 되겠지.”
이건 좀 아닌 것 같은데.
하데스와 자신 사이의 전투만으로 인해서 마치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듯한 느낌이지 않은가?
그들은 아무런 잘못도 없음에도 그저 하데스의 과욕으로 인해서 원치 않는 죽음.
나아가 소멸을 하게 될 그들이 죽음을 맞이하는 게 정녕 맞는 일인가?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 맴도는 순간.
저 멀리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진짜 해낼 줄은 몰랐는데.”
하데스의 죽음 이후로 그의 병사들 또한 자취를 감춘 상황.
당연히 들려온 목소리의 주인은 강혁의 편이었다.
“페르세포네.”
페르세포네.
하데스의 부인이자 봄의 여왕이라고 불리는 그녀가 바로 목소리의 주인이었다.
그녀의 목소리에 강혁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녀를 불렀다.
자신이 이곳에 있을 수 있는 가장 큰 이유가 그녀 때문이었기에.
‘페르세포네가 아니었다면 진즉에 죽었어도 이상하지 않지.’
처음 명계를 방문했을 때 그녀가 하데스에게서 도망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지 않았더라면 지금 강혁은 이곳에 있을 수 없었을 터였다.
물론 시간은 조금 걸렸겠지만 오는 데에 시간이 걸렸을 거라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실제로 명계에서 하데스에게 쫓길 당시 강혁은 진심으로 죽음이라는 단어를 떠올렸으니까.
아무리 강력한 재생력을 지녔다고 한들 죽음에서 살아 돌아올 수는 없는 법.
그렇기에 강혁은 페르세포네에게 빚은 진 셈이었다.
그런 만큼 강혁은 페르세포네를 따스하게 맞이해주었다.
“이걸로 우리가 한 약속은 끝난 셈인가.”
“....그래, 난 드디어 자유의 몸이 되겠네. 하데스 그 자에게서 벗어나는 건 꿈에도 꾼 적 없는 일인데.”
약속.
페르세포네가 강혁과 했던 약속은 하데스를 무찌르고 그녀를 명계에서 꺼내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약속을 달성했음에도 두 사람은 씁쓸함을 떨칠 수 없었다.
“이젠 떠나도 돼. 아니, 무조건 떠나야겠네.”
“....명계가 무너지고 있구나.”
무너져가는 명계를 눈에 담으며 페르세포네는 슬픈 눈을 만들었다.
오랜 시간 몸을 담아온 세계가 무너진다는 건 그것만으로도 무척이나 슬픈 일이었으니까.
“명계의 주민들을 부탁해도 될까?”
명계를 떠날 페르세포네에게 강혁은 한 가지 부탁을 했다.
명계의 붕괴에 따라 함께 소멸할 명계의 주민들.
그들을 부탁하는 것이 강혁의 부탁이었다.
이해가 되지 않는 부탁이었기에 페르세포네는 곧장 의문을 드러냈다.
“그들을? 굳이 네가 고려하진 않아도 될 텐데....”
페르세포네 본인도 걱정이 되긴 했으나 강혁에게 그들은 쌩판 남이나 다를 바 없는 이들.
당연히 그가 그들을 걱정할 이유 따윈 없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곧바로 의문을 드러냈다.
혹시 그가 무슨 꿍꿍이를 가지고 그들을 걱정하는 지에 대한 의문이었다.
하지만 강혁은 그런 꿍꿍이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저 원초적인 이유.
“그들이 죽지 않기를 바래서. 괜히 고래 등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꼴이니까.”
명계의 주민들이 자신 때문에 갈 곳을 잃은 걸로도 모자라서 소멸되는 모습을 보기 싫었기 때문이다.
난생 처음 듣는 이유였지만 그에 페르세포네는 방긋 웃음을 머금었다.
“....하데스라는 정 반대구나.”
하데스.
이제는 죽어 사라진 그와 정반대에 가까운 모습이 퍽 신기했던 까닭.
본래 명계를 다스리는 신이 가졌어야 할 마음을 명계를 부수게 된 싸움을 만든 장본인이 가지고 있으니 퍽 신기할 수밖에.
하지만 그렇다고 한들 그녀에게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나라고 해서 뾰족한 방법이 있는 건 아니야. 그들은 명계의 주민들. 명계와 비슷한 성질의 세상에서만 살 수 있어. 그렇다고 그들을 지상으로 데려가면 귀신 혹은 악귀 밖에 더 되겠어?”
“....흐음, 확실히 그건 문제네.”
명계의 주민들이 사는 세상은 명계.
혹은 그와 비슷한 세상이었다.
지구와 같은 지상은 결코 그에 적합하지 않은 곳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그래서일까?
강혁은 턱을 괸 채로 고민에 빠졌다.
우걱우걱-
물론 한 쪽 손은 열심히 명계의 파편을 먹어치우는 중이었음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그것도 잠시.
명계의 파편들을 먹어치우는 자신의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강혁이 페르세포네에게로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그러면 명계의 주민들이 머물 곳이 있다면 사라지지 않아도 된다는 거네?”
“그건 그렇지만....다른 명계라고 할 수 있는 곳들에서 받아줄 지도 의문이고, 그곳에서도 적응하지 못해서 도태될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겠지.”
“머물 세상이 있어도 문제는 있구나.”
명계가 아닌 다른 곳에서의 텃세 등의 이유 또한 존재한다는 말에 강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구 또한 다른 나라 사람이 찾아오면 그에 맞는 비자 등이 필요한 것과 비슷한 이치일 터.
‘다른 나라 가면 적응 못하고 도태되는 것까지 비슷하네. 사람 사는 곳이 다 비슷하긴 한가 봐.’
지구나 명계나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하면서 강혁은 자신의 생각을 늘어 놓았다.
“내가 만들어 줄게. 새로운 명계. 그곳이라면 저들 모두를 수용하는 데에 문제가 없겠지.”
“....진심이야? 세상을 창조한다니. 그건 말 그대로 창조신의 힘과 같은 건데....”
새로운 명계의 창조.
그것이 바로 강혁이 내놓은 방안이었다.
당연하게도 페르세포네는 놀람을 드러냈다.
그녀 또한 신이지만 무언가를 창조할 수는 없었다.
아주 작은 벌레일 지라도 그건 하나의 생명이었으니까.
생명이 깃든 무언가를 창조하는 이들은 주신급에 다다른 존재.
하지만 그런 그들마저도 세상을 창조할 수는 없었다.
그저 태초부터 만들어져 있던 세상을 다스리기만 할 뿐.
하데스 또한 마찬가지였다.
명계를 늘리지도 줄이지도 못한 채로 그저 본인이 명계 동화되는 것 말고는 명계를 움직일 방법이 전무했을 정도.
‘....그런데 몇 년 전만 하더라도 필멸자였던 이가 새로운 세상을, 그것도 명계급 되는 세상을 창조한다니....그게 말이나 되는 일인가?’
그렇기에 페르세포네는 믿을 수 없었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신들의 기준으로 찰나에 불과한 시간을 산 인간이 명계를 창조하겠다고 했으니 믿기지 않는 것도 당연했다.
하지만 강혁은 자신이 있었다.
“물론 처음부터 만들겠다는 건 아니야. 현재의 명계의 대부분은 이 녀석이 먹어치웠으니까.”
툭툭-
명계를 먹어치운 식욕.
그 안에는 명계를 구성하는 모든 요소가 들어 있었다.
그걸 베이스로 새로운 세상을 세운다는 얘기.
물론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주신이라고 할 지라도 불가능한 일.
그럼에도 페르세포네는 강혁이라는 해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품었다.
“왜 이렇게까지 해주는 거지?”
그치만 그런 강혁의 의도가 궁금한 건 어쩔 수 없었다.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그녀가 의도를 묻자 강혁은 그저 씨익 웃으며 아까와 같은 말을 할 뿐이었다.
“나 때문에 피해를 입은 이들을 위한 방법일 뿐이야. 자기 만족이지.”
“....세상 그 누구도 자기만족 때문에 그렇게는 못해.”
자기만족이라는 말에도 페르세포네는 그저 고개를 가로저을 뿐이었다.
그녀의 기준에서 자기만족이란 오로지 자기만을 위해야만 했다.
그런데 강혁이 하는 말대로라면 자기만족을 위해서 남을 돕는다는 얘기였으니 그녀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당연하리라.
물론 강혁은 그녀가 이해하든 말든 상관하진 않았다.
“하지만 난 할 수 있어. 할 수 있으니까 할 뿐이야. 나도 내가 못 했으면 그냥 포기했을 거야. 하지만 할 수 있잖아? 그러니까 하는 거야.”
할 수 있으니까 한다.
그저 그 뿐이었다.
“그럼 시작한다.”
츠츠츠츠-
말을 마치기 무섭게 식욕이 먹어치운 명계 중에서 세상을 구성할 요소만을 골라내서 빼어낸 강혁이 그 위로 새로운을 만들어나가기 시작했다.
세상이 창조되는 새롭고도 장엄한 광경에 페르세포네가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볼 때.
세상을 창조하던 강혁이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런데 새롭게 창조한 명계를 관리해줄 사람이 필요한데.”
“....나보고 그걸 맡으라는 말이야?”
명계를 관리할 존재.
지금 이 자리에서 그걸 맡을 사람은 페르세포네가 유일했다.
그녀는 언제나 지상으로 올라가고 싶어했으니 그 말은 곧 그녀에게 다시금 족쇄를 채우겠다는 말과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강혁은 고개를 선선히 내저으며 덧붙였다.
“선택은 자유야. 하지만 네가 맡지 않으면 명계는 공석으로 운영 되겠지. 내가 가끔 맡기는 하겠지만....그걸론 부족할 걸. 애초에 그런 쪽으로 재능도 없고.”
선택은 자유.
페르세포네가 원치 않는다면 맡기지 않겠다는 말이기도 했다.
그런 강혁의 말에 고민을 하던 페르세포네는 결국 결단을 내렸다.
“다른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만 맡겠어. 그 뒤로 지상으로 올라갈 거야.”
“그거면 충분하지.”
적어도 지금 당장은 자신이 맡겠다는 그 말.
그 말에 강혁은 씨익 웃으며 세상을 창조해냈다.
태초 이후로 한 번도 생성되지 않았던 명계가 생성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