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올 마스터#151
갑작스럽게 자신을 찾은 인연이 자신의 현 남편을 찾는 데에 좋은 의미는 없을 거라는 걸 페르세포네는 잘 알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한들 하데스의 위치를 말하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내가 평생을 바래왔던 일을 이제 와서 숨기거나 미룰 이유는 없지.’
페르세포네.
명계의 여왕이자 봄의 여왕이라고 불리우며 모든 것을 누리며 살았지만 그녀는 그 모든 것이 필요가 없었다.
납치 되어 만들어진 삶 따위에 행복을 느끼는 게 더 이상한 일일 터.
그렇기에 그녀는 한숨과 함께 손가락을 들어 천장을 가리켰다.
“위. 위에 있어.”
최상층.
하데스의 탑의 최상층을 가리키는 그녀의 말에 강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되물었다.
“그래, 병력은?”
적진 한복판에 들어왔지만 그래도 전투를 할 때에도 전 병력을 마주할 생각은 없었기에 물은 질문이었다.
그런 강혁의 질문에 페르세포네는 고개를 내저으며 답했다.
“하데스의 방은 그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요새와도 같지. 그곳엔 나조차도 함부로 들어갈 수 없어.”
“없다는 말이네. 확인.”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요새.
그렇기에 자신의 부하들마저 들어설 수 없는 곳에 하데스의 본체가 있다는 말을 확인한 강혁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바로 갈 생각이야?”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하데스에게로 향하려는 강혁을 페르세포네는 어처구니 없다는 얼굴로 쳐다보았다.
“그럼 뭐, 더 할 얘기라도 있나? 그의 약점이라던가 하는 것 말이야.”
자신을 붙잡는 페르세포네의 말에 강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신에게 더 할 얘기가 있어서 그녀가 자신을 붙잡는 건가 싶어서 물은 것.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지. 그리고 있더라도 이미 진즉에 고쳤을 거야. 괜히 혼란만 중첩시킬 테니 안 말하는 게 낫지.”
하지만 페르세포네에게는 그런 것 따윈 없었다.
애초에 주신급 존재에게 약점이라고 할만한 것은 없었다.
기나긴 세월 또한 수많은 적들을 마주하면서 자연스레 약점들을 지워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하데스의 약점들을 지워내며 그녀는 고개를 내저었다.
있더라도 말할 수 없다.
전투에서 찰나의 실수는 곧 패배로, 패배는 곧 죽음으로 연결되기에.
“문제는 없다는 말인데....더 있어야 할 이유라도 있나?”
“....없어.”
그리고 그 말은 곧 강혁이 떠나는 걸 붙잡을 이유 따위는 없다는 말이었다.
곧바로 하데스를 만나려 하는 강혁을 붙잡을 방법 따윈 없다는 걸 깨달은 페르세포네는 결국 그를 놓아줄 수밖에 없었다.
“꼭 이겨. 나도 버틸 수 있는 건 이번이 마지막인 것 같으니까. 아마 이런 기회도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지도 모르지.”
절망.
납치범에게 붙잡혀서 그 어떤 이들보다 호화로운 삶을 살지만 원치 않는 삶이기에 포기하고 싶은 삶.
그걸 포기하고 싶음에도 포기하지 못하는 데에서 오는 절망을 페르세포네는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다.
앞으로 기껏해야 몇 년.
길어봐야 수십 년으로 신치고는 무척이나 짧은 시간 정도만을 버틸 수 있을 거라는 게 페르세포네의 생각이었다.
“내가 살아 있는 한 도전은 계속 될 거다. 그리고 어쩌면 두 번째 도전은 필요 없을 지도 모르지.”
“....기대할게.”
마지막 도박.
그리고 자신이 베팅을 건 말의 당당함에 페르세포네는 슬쩍 웃을 수밖에 없었다.
주신.
그 중에서도 꽤 고위의 신인 하데스를 상대로 겁을 먹지도 않고 싸워도 절대로 죽지 않을 거라는 믿음을 지닌 사내.
오만 같지만 결코 오만 같지 않으면 두 번째 도전은 필요 없을 것 같다는 말 또한 진실처럼 들렸다.
그렇기에 페르세포네는 이제 겨우 두 번째 보는 강혁에게 왠지 모를 믿음을 느꼈다.
타닥-
말을 마치고 순식간에 방을 빠져나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페르세포네는 두 손을 모았다.
‘신이 아닌 너를 위해서 기도하지. 강혁.’
지금 이 순간.
그녀에게 신이란 강혁 밖에 없게 되었다.
그리고 강혁의 신도가 된 그녀는 두 손을 꼬옥 모은 채로 강혁을 향해 기도를 올렸다.
자신을 이 절망의 구렁텅이 속에서 구원해주길 바라면서.
*
탁-
페르세포네의 방을 빠져나온 강혁은 서서히 자신에게로 다가오는 기척들을 느낄 수 있었다.
“빠른데?”
-여긴 놈의 뱃속 안이나 마찬가지야. 제 뱃속을 훤히 볼 수 있는 놈이니 당연한 일이지.
페르세포네와 대화를 한 지 그리 오래 되지 않았음에도 곧바로 병력을 보내왔다는 것에 혀를 차며 강혁은 자세를 잡았다.
“저놈들 하나하나 다 잡고 있으면 분명 더 큰 게 올 테지. 맞지?”
-당연한 말을 하는군.
“방법은 하나 뿐이네.”
서서히 몰려오는 적군들을 느끼며 강혁은 단 한 가지의 방법을 떠올렸다.
-뭔데?
당연하게도 분노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되물었고.
“정면돌파.”
강혁은 씨익 웃으며 자신의 방법을 말해주었다.
-....이런 미친 놈이....멈춰!
“한 번 시작하면 멈추는 일 없이 끝까지 가야지. 그게 나 이강혁 아니겠어?”
-그건 그냥 미친 놈이고!
정면돌파라는 말도 안 되는 방법을 채택한 강혁을 향해 갖은 욕을 분노가 퍼부었지만 그런다고 강혁의 선택은 바뀌지 않았다.
오히려 서서히 기세를 끌어올리는 것이 금방이라도 주변을 쳐부술 것만 같았기에 분노는 결국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망할 놈. 마음대로 해라. 어차피 언제나 네 마음대로 해서 잘 되었으니까.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었어!”
분노의 허락 아닌 허락이 떨어지기 무섭게 강혁은 자리를 박찼다.
그리고 강혁이 자리를 박차고 향한 곳은 전방이 아닌 천장이었다.
-너 설마?
“그래, 졸병들 잡아봐야 아무런 소용도 없잖아. 당연히 머리부터 치는 게 정상이지!
-미친 놈 같으니!!! 곧바로 하데스에게 찾아갈 생각이었냐!
“당연한 걸 묻고 있어? 그럼 간다!”
콰득- 콰아아앙!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자리를 박찬 신형이 그대로 천장을 꿰뚫고 위로 치솟았다.
“....뭐야?”
“천장을 부수고 위로 올라갔다고? 뭐 이린 말도 안 되는....”
강혁이 사라진 지 조금 지나고 나서야 그 자리에 도착한 하데스의 병사들은 질린 얼굴로 박살이 난 천장을 올려다 보았다.
하데스의 탑은 하데스의 힘으로 보호되고 있는 만큼 가벽처럼 보이는 얇은 벽조차도 함부로 뚫을 수 없다.
그런데 두께로만 따지면 하데스의 탑 중에서 가장 두꺼운 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 천장을 단번에 부수고 사라져버린 강혁의 신위는 놀라울 정도란 얘기.
“....뭘 보고만 있어? 빨리 쫓아!”
“....예!”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들을 이끄는 대장의 거친 목소리에 그들은 놀람에서 깨어나 빨리 다음 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향해 뛰어갔다.
물론.
콰앙! 쾅! 콰아아앙!
“....미친, 대체 어디까지 올라간 거야.”
그들이 계단을 오르는 와중에도 쉴 새 없이 울려퍼지는 폭음은 결코 강혁이 한 층으로 멈추지 않았음을 알리는 결정적인 증거와도 같았다.
서서히 멀어져가는 폭음을 쫓아서 그들은 미친 듯이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뭐, 그래봐야 멀어져가는 폭음을 쫓기란 불가능했지만.
본디 미로를 길 따라서 가는 이와 미로를 부수면서 전진하는 이가 똑같은 속도일리가 없었으니까.
*
쾅!
“여기가 끝인가.”
더 이상 천장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 층에 도달한 강혁이 아무도 없는 곳에서 중얼거렸다.
넓은 층.
그리고 눈앞에 놓여 있는 거대한 문.
길다고도 짧다고도 할 수 없는 시간이었지만 강혁은 페르세포네가 있던 층부터 하데스가 있을 걸로 추정되는 꼭대기 층까지 도달했다.
정석으로 걸어온 것이 아닌 하데스의 힘이 깃든 탑을 깨부수면서 전진한 것이지만 말이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고 했으니 상관은 없나.”
그래도 강혁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과격한 방법을 쓰긴 했으나 결국 하데스가 있는 곳 앞까지 도달했으니 당연한 일.
-저 문만 넘으면 놈이 기다리고 있다. 준비는 됐느냐?
“난 언제나 준비되어 있었어.”
-그럼 가라. 여기까지 온 이상 미룰 것도 없겠지.
처음엔 부정적이었던 분노조차도 이제는 강혁을 말리지 못했다.
아니, 말릴 이유도 없었다고 해야 할까.
이미 강혁은 하데스의 앞에 도달해 있었고, 여기까지 온 이상 무를 수도 없었다.
결국 남은 건 하나 뿐이었다.
“전진인가.”
전진.
앞으로 나아가 저 두껍고 거대한 문 너머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하데스를 향해 나아가는 것.
그것만이 강혁이 해야 할 일이었다.
터벅터벅-
텅 빈 커다란 층의 끝에 놓인 거대한 문을 향해 천천히 나아간다.
이윽고 거대한 문 앞에선 강혁이 전신의 힘을 끌어올렸다.
쿠구구구-
인간의 수십 배는 될 법한 거대한 문이지만 신위에 오른 강혁의 괴력을 견디기에 무리였다.
성벽이 무너지는 것 같은 묵직한 소리가 귓가를 때렸다.
그와 함께 서서히 열리는 거대한 문.
그리고 그 안에서 쏟아져 나오는 환한 빛무리에 강혁이 눈살을 찌푸릴 때쯤.
“왔는가. 필멸자여.”
묵직한 목소리가 강혁의 귀를 넘어 뇌를 흔들었다.
마치 들어서는 안 되는 걸 들은 것처럼 거세게 흔들리는 뇌와 고막에 헛구역질마저 할 정도였으나 강혁만큼은 멀쩡했다.
그는 평범하지 않았으니까.
“이렇게 실제로 본 건 처음이지?”
“그래, 처음이구나. 온갖 인간들이 명계를 방문하고 신살을 하겠다며 설쳐댔지만 여기까지 온 이는 아무도 없었지. 내로라하는 영웅들마저 그러했었지.”
“내가 처음이란 얘기네.”
오히려 하데스와 태평하게 대화를 나눌 정도로 강혁은 여유로웠다.
그런 여유로움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하데스는 인상을 찌푸리며 강혁을 바라보았다.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겠지.”
다시는 강혁과 같은 특이한 경우를 남기지 않겠다는 선언.
그럼에도 강혁은 태연했다.
“그럴 수밖에. 넌 내 손에 죽을 테니 네 앞에 설 사람은 없겠지. 아니, 네 묘비 정도는 오려나?”
“....오만하구나!”
콰아아앙!
포효.
그저 분노를 담은 거친 목소리를 토해냈을 뿐이지만 강력한 충격파가 일어나며 강혁을 덮쳤다.
평범한 사람쯤은 가볍게 갈아버렸을 충격파 앞에서 강혁은 태연하게 그것을 흘려냈다.
콰가가각!
그의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손길을 따라 충격파가 하데스의 집무실 이곳저곳을 박살냈다.
파편들이 작렬하고, 먼지 구름이 자욱하게 일어나는 순간.
“그럼 한 판 붙자고.”
강혁은 처음으로 주신급 존재와의 전투를 시작했다.
“바라던 바다. 필멸자여. 네 목숨을 취해 명계 한복판에 걸어두고 너의 오만을 벌해주겠다.”
그리고 그런 전투 속에서 하데스 또한 참으로 오랜만에 자신의 옥좌에서 일어나 강혁을 향해 쇄도했다.
주신급 대 주신급.
어지간해서는 일어날 수 없는 매치업에 분명 강혁의 적이라고 할 수 있는 신과 악마들 또한 명계에 시선을 보냈다.
따끔따끔 전해지는 그들의 시선을 느끼며 날카롭게 미소 지은 강혁의 신영이 주욱 늘어나며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하데스에게로 움직였다.
콰아아앙!
명계 전체를 울리는 폭음과 함께 두 사람의 전투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