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올 마스터#150
촤아악-
강물을 가르며 날아가는 강혁은 카론의 배와 비슷한 속도를 유지했다.
“이래도 내가 배를 탈 필요가 있어 보이나?”
“....빌어먹을, 강에 깃든 규율마저 깰 정도라니. 정말 주신급은 되는 건가?”
“그 정도가 아니었으면 다시 돌아오지도 않았어.”
주신.
그 이름을 입에 담은 카론의 말에 강혁은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주신을 넘어설 각오나 능력이 없었다면 명계에 강혁은 오지 않았을 거다.
그도 목숨이 소중한 줄 알았으며 완벽한 준비를 기반으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하데스를 죽이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지만 그렇다고 능력도 없는데 달려드는 건 불나방보다도 못한 일이지. 지금이 딱 좋아.’
주신급과 대결해도 지지 않을 수준.
너무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준비를 끝낸 강혁이기에 스틱스 강에 얽힌 규율을 깨버릴 수 있었다.
그렇게 모든 준비를 마친 강혁이 강 끝에 다다라 지상에 내려앉았다.
착-
높은 곳에서 떨어져 내렸음에도 가볍게 내려앉는 그의 발걸음은 무척이나 가벼웠다.
“....하데스를 만나러 가는가?”
“응, 아마 다음에 볼 때에는 놈의 목을 들고 나타나겠지.”
“....길고 긴 시간이었다. 너는 그를 정말로 이길 수 있겠나?”
“못할 것도 없지.”
강혁을 뒤따라 강 끝에 나룻배를 정박한 카론의 물음에 강혁은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데스.
주신이라고 불리우는 그는 분명 강한 존재였고, 이미 한 번 패배의 쓴맛을 겪었으나 지금의 강혁은 그때의 강혁이 아니었다.
‘충분히 해볼만한 상황이다. 비등비등하다고는 하나 놈은 자만할 수밖에 없는 위치. 설령 자만하지 않더라도 내게 충분히 유리한 상황이다.’
홈그라운드인 명계에서도 질 자신이 없는 강혁이다.
당연히 정 불리하다면 명계를 도망치는 것도 썩 불가능하진 않을 터.
즉, 강혁은 불리하면 도망가면 되지만 반대로 하데스는 그것조차 불가능하다.
결국 남은 것은 단 하나.
‘하데스. 넌 언제고 죽는다. 그것이 오늘이 될 지 아니면 언젠가가 될 지는 모르겠지만 그건 확신할 수 있어.’
하데스의 필연적인 죽음이었다.
그것이 언제가 되었든 간에 말이다.
“이제부터는 너 혼자다.”
“알아. 그리고 난 원래 혼자였어.”
나루터에 배를 정박한 카론의 말이었다.
혼자라는 말이 무겁게 다가오기는 했으나 그럼에도 강혁은 물러섬 없이 나아갔다.
저벅저벅-
물기를 머금은 흙길을 걸으며 들려오는 소리가 천둥처럼 주위에 울려퍼졌다.
주위가 고요해서도 있었지만 강혁의 발걸음에 담긴 힘이 결코 적지 않았음도 크게 한몫했다.
“그럼 나중에 보지. 놈의 목을 들고 돌아올 테니 잘 기다려두고. 그때는 술이라도 한 잔 하면서 대화를 나눌 수도 있을지도.”
“기대하지.”
태연하게 하데스의 목을 가져오겠다는 강혁의 당당한 태도에 카론은 헛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오만한 발언이었으나 그에 따른 힘이 있었기에 진실되게 느껴진 건 덤이었다.
그렇게 강혁은 카론을 뒤로한 채로 명계로 향하는 문으로 나아갔다.
지옥견, 파수견 케로베로스가 위치한 그곳으로.
*
-컹컹!
개 짖는 소리.
하지만 그 소리에 담긴 힘은 결코 적지 않았다.
지옥견 케르베로스.
명계로 향하는 이들을 막아서는 존재.
당연하게도 개답지 않은 강함을 지닌 그는 명계를 방문해 죽은 이를 되살리려는 이들에게 통곡의 벽처럼 자리 잡았다.
물론.
“안 비켜?”
-....케엥.
이미 주신들마저도 함부로 경시할 수 없는 존재가 된 강혁의 앞에선 하룻강아지에 불과했다.
그리고 하룻강아지는 범 앞에서 짖을 수 없었다.
짖으려면 못 짖을 것도 없지만 범 앞에서 짖은 하룻강아지의 말로는 정해져 있었기에 머리가 좋은 케르베로스는 짖는 걸 포기했다.
“그래, 옳지. 착하다.”
-갸르릉....
거기에 한 술 더 떠서 케르베로스의 목덜미를 북북 긁어주자 케르베로스는 아예 배를 드러내고 갸르릉 거리며 아양을 떨었다.
수많은 유골들을 만들어낸 존재답지 않은 모습.
만약 그에게 당한 망자들이 보았다면 어이가 없는 얼굴이 되었겠지만 망자들에게 이지란 없었다.
그들에겐 오히려 이지가 없는 게 다행이 된 셈.
“문 열어.”
-....케엥.
하지만 그것도 잠시.
서늘한 목소리로 강혁이 명령을 내리자 케르베로스는 뻘쭘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나 힘 없이 철문을 밀기 시작했다.
얼마 전 명계를 방문 했을 때는 때려 눕히고 직접 열고 들어갔지만 지금은 정반대가 된 셈.
끼이익-
거대한 철문이지만 지옥견이자 파수견인 케르베로스는 별 다른 큰힘을 들이지 않고도 문을 열 수 있었다.
애초에 그의 직업이 파수견이니만큼 문 정도야 가볍게 여닫을 수 있는 것.
물론 침입자에게 문을 열어주는 건 그의 역할을 아니었으나 목숨이 오락가락하는 상황에서는 그 누구도 제 업무와는 맞지 않은 일을 하리라.
완전히 열린 철문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강혁은 자신을 향해 내리꽂히는 하데스의 시선을 느끼며 명계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럼 가볼까?”
-긴장해라. 저 너머부터는 어떤 공격이 날아올지도 모르니까.
“나도 알고 있어.”
철문 너머의 세상은 고작 한 번 가봤을 뿐인 명계.
그리고 대적해야 할 적인 하데스의 홈 그라운드.
어떤 준비를 하고 가더라도 모자라기 그지 없는 곳을 향해서 강혁은 부드럽게 걸음을 옮겼다.
쑤욱!
열린 철문 너머로 몸이 빨려들어가고.
쿠웅!
케르베로스가 가볍게 연 철문이 묵직하게 닫혔다.
-켕! 케엥!
사라진 강혁을 바라보며 잘 됐다며 한창을 켕켕거리던 케르베로스는 늘어지게 낮잠을 자기 시작했다.
저 건방진 인간은 자신의 주인이 알아서 처리해줄 테니 자신은 나중에 저 인간의 시체나 발라먹으면 되겠다고 생각하면서.
*
터벅- 터벅-
명계.
세나를 데려가기 위해서 방문했던 그곳에 오랜만에 방문한 강혁은 텅 빈 도시를 거닐었다.
“아무도 없네.”
-아무도 없군.
이곳이 정말 사람이 사는, 아니 정확하게 따지자면 죽은 영혼들이 머무르는 세상이 맞는지가 의심될 정도로 휑한 전경이었다.
분명 자신이 처음 왔을 때와는 무언가 많이 다른 주위의 풍경에 강혁이 인상을 찌푸렸다.
“제대로 하려나 본데?”
-조심해라. 도시까지 싹 비운 걸 보면 놈은 전력을 다할 생각인 것 같으니까.
텅 빈 명계의 도시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한 가지였다.
자신의 안마당이 망가지더라도 강혁을 꼭 잡고 말겠다는 하데스의 의지가 바로 그것이었다.
“어디 한 번 해볼 수 있으면 해보라지. 무조건 받아쳐줄 테니까. 아, 그리고 그 전에 만날 사람부터 만나야겠네.”
-만날 사람? 혹시 너....?
만날 사람이 명계에 있을리 없는 강혁이 만날 사람이라니.
믿을 수 없는 일이었기에 머리를 굴리던 분노가 이윽고 누군가를 떠올리곤 거세게 소리쳤다.
-안 된다. 페르세포네 그 여자를 만나러 간다니. 그건 미친 짓이야!
페르세포네.
강혁이 얼마 전 명계를 방문했을 때 약속을 했던 여자.
그녀를 만나러 가겠다는 건 곧 하데스가 있을 하데스의 탑에 가겠다는 말과 다르지 않았다.
즉, 제 발로 적진 한 가운데로 들어가겠다는 말.
하지만 강혁은 고개를 내저었다.
“그러니까 가는 거다. 적도 깜짝 놀라겠지. 분명 바깥에서 싸우려고 했을 놈이 갑자기 제 집 안방에서 튀어나오는 셈이니까.”
-....그래도 위험하기는 매한가지다. 놈은 분명 위험한 놈이야. 당연히 제 집에도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겠지.
“바깥보다 더?”
-....하아, 마음대로 해라.
아무리 제 집을 방비한다고 한들 주 전투지가 될 명계의 도시 쪽에 병력을 깔아두는 게 일반적인 상황.
하데스 또한 굳이 강혁을 대비한답시고 자신의 본거지에 병력을 두툼하게 쌓아두진 않았을 터였다.
그것을 노린 강혁의 기습.
어느 정도 먹혀 들어가리라는 건 불보듯 뻔했다.
다만 그 대가로 강혁이 부담해야 할 어마어마할 위험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럼 간다?”
-말린다고 들어먹지도 않을 놈이 괜시리 물어보기나 하는구나. 가기나 해라!
자신의 말을 듣지도 않을 거라는 걸 알기에 분노가 짜증을 내며 축객령을 내렸다.
자신을 내쫓는 듯한 분노의 말에 강혁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말 안 해도 그러려고 했어!”
콰득- 파앙!
대지가 박살이 날 정도로 강하게 자리를 박찬 강혁의 신형이 순식간에 어디론가로 쏘아져 날아갔다.
저 멀리 보이는 거대한 흑색탑.
하데스의 탑이 있는 곳을 향해서.
*
“후우, 난리도 아니네.”
거대한 흑색탑.
하데스의 탑이라고도 불리는 그곳의 최상층과도 같은 곳에서 한 여성이 창밖으로 고개를 내민 채 푸념했다.
휑해진 명계의 도시들.
그곳에서 살던 윤회를 기다리는 영혼들이 혹시 모를 전투의 여파를 피해서 피신하고 비어버린 그곳을 바라보는 그녀의 마음마저 휑해진 까닭이었다.
“내가 쓸데없는 걸 부탁한 걸까. 그 녀석이 이렇게 빨리 돌아올 줄은 몰랐는데.”
그 녀석.
얼마 전 명계를 찾았던 필멸자, 강혁을 말하는 것.
하지만 그녀는 이윽고 고개를 내저어 그런 생각을 털어냈다.
“아냐, 어차피 내가 아니었어도 명계로 찾아와 하데스와 싸움을 벌였을 녀석이니 차라리 잘 됐지. 이렇게 되면 정말 내 꿈에 가까워진 셈이니까.”
그녀의 꿈.
감옥 같은 명계를 떠나서 지상으로 향하는 것이 바로 그녀의 꿈이었다.
결과적으로 그녀가 내린 선택으로 인해서 명계가 휑해졌지만 반대로 그녀의 꿈은 더욱 가까워진 셈.
그렇게 자기 위로를 하며 창밖을 구경하던 그때였다.
쐐에에엑-
“....저건 뭐야?”
창밖으로 보이는 무언가.
바람을 가르고 날아오는 무언가의 모습에 그녀가 고개를 갸웃거린 순간.
타닥-
어느새 도착한 무언가가 탑의 외벽에 달라붙었다.
그리고 모습을 드러낸 무언가가 그녀를 향해 인사를 건넸다.
“오랜만이네. 약속 지키려고 왔어.”
“....미친놈. 여기가 어디라고 찾아와? 너 미쳤어?”
존대 따위는 땅바닥에 처박을 정도로 페르세포네는 놀람을 금치 못했다.
지금 자신이 턱을 괴고 있는 창가 바로 아래의 외벽에 붙은 무언가는 다름 아니라 강혁이었으니까.
온 명계가 강혁을 막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는 마당에 적읜 본거지라고 할 수 있는 곳에서 당당히 모습을 드러냈으니 그녀가 그런 반응을 보이는 것도 당연했다.
하지만 정작 강혁은 당당했다.
“들어간다?”
“....후우, 일단 들어오기나 해. 괜히 바깥에 있으면 눈에 띄니까.”
당당하게 들어가도 되냐고 묻는 강혁의 모습이 어처구니 없었지만 페르세포네는 결국 그를 안으로 들일 수밖에 없었다.
외벽에 달라붙어 있는 것보다는 그래도 자신의 방에 숨기는 게 더 안전할 터였으니까.
그렇게 페르세포네의 방에 두 번째로 들어서게 된 강혁이 자연스레 그녀의 방에 놓인 의자에 걸터앉으며 말했다.
“하데스 잡으러 왔는데 그 녀석 어딨어?”
집주인을 잡으러 온 도둑놈 같은 발언을 서슴치 않는 강혁의 모습에 페르세포네는 결국 한숨과 함께 고개를 떨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