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올 마스터#147
세나의 연금술 사건 이후로도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강혁은 밥 때만 되면 급한 일이 생겨서 집을 떠나곤 했지만 대부분은 알케미의 집에서 함께 시간을 보냈다.
“....넌 정말 쓰레기야.”
어두컴컴한 지하실.
그곳에서 전 세계 제일의 부자인 알케미가 누군가에 욕을 하고 있었다.
“미안하지만 내 독 저항으로도 견디기 어려운 음식이었다.”
“....미친, 그런 걸 나한테만 먹이려고 도망을 가? 인류의 구원자라는 녀석이 친구는 구원할 생각은 없나? 차라리 옆에서 시켜먹자고나 해주던가!”
당연하게도 그 누군가는 언제나 알케미를 버리고 도망을 쳤던 강혁이었다.
자신을 향해 푸념을 늘어 놓는 알케미를 애써 무시하며 강혁이 질문을 던졌다.
“현자의 돌은?”
현자의 돌.
그가 알케미의 집에서 머무르게 된 가장 큰 이유.
물건의 제작을 맡긴 주인의 물음에 알케미는 푸념도 잠시 그에 대한 답을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
“....젠장, 오늘 완성이다.”
“좋군. 이젠 더 이상 피하지 않아도 되겠어.”
강혁이 피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 가리키는 이가 누구인지 단박에 알아챈 알케미가 분통을 터뜨렸다.
“망할 놈 같으니. 배달 음식이라도 시켜 먹자고 말이라도 해줄 것이지.”
“네가 미움 받기 싫은 것처럼 나도 마찬가지다. 세나는 좋은 여자지. 그녀에게 미움을 받는 건 그리 좋은 일이 아니야.”
“....그건 맞지.”
공처가답게 아내의 칭찬에 금방 화를 누그러뜨리는 알케미였다.
그것도 잠시.
조용해진 알케미를 향해 강혁이 재촉했다.
“빨리 만들어라 현자의 돌을 복용한 다음에 곧바로 기자 회견을 열 생각이니까.”
“기자 회견? 갑자기 무슨 기자 회견을 연다는 거냐 세상이 뒤숭숭한 판국에.”
갑작스런 그의 재촉에 알케미가 당황했다.
그리고 기자 회견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드러냈다.
신과 악마.
그들의 배신에 세상이 혼란에 빠진지는 꽤 되었다.
심지어는 그게 나아지기는커녕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으니 더더욱 문제라고 할 수 있을 터.
그렇기에 알케미의 물음은 타당했다.
하지만 강혁은 단호했다.
“그러니까 더더욱 해야 한다는 거다.”
“....뭐에 대한 기자 회견인데?”
단호한 그의 대답에 결국 기자 회견에서 그가 할 말에 집중하는 걸 골랐다.
당연하지만 강혁은 자신이 기자 회견에서 할 말을 숨기지 않았다.
“신을 죽인다. 악마도 죽인다. 그리고 그건 이미 반쯤 성공했다. 이 정도?”
오만하디 오만한 발언.
그 발언에 알케미는 즉각적인 반응을 보였다.
“....미친, 세상을 아주 혼란에 빠뜨리려고 작정했구나. 그보다 그 말로 인한 파장은? 그건 생각했나?”
혼란스러운 세상인 건 맞다.
그리고 강혁이 할 말은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한 줄기 등불이 되어줄 터.
다만 그만큼 파장이 올 것은 당연했다.
신에게 버림 받은 이들이 신을 죽이려는 이에게 환호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으니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따로 있었다.
“신이랑 악마가 짜증을 지구의 다른 사람들한테 푸는 거?”
“....그래, 그거.”
신살을 입에 담은 강혁으로 인해서 환호할 사람들과 그에 분노할 신과 악마들.
그것이 바로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당연하게도 일반인들에겐 신벌을 피할 방법이 없기에 알케미가 그를 걱정하는 건 당연한 일.
하지만 강혁은 고개를 가로 저으며 대꾸했다.
“그럴 일은 없을 걸?”
100퍼센트 확신하는 그의 얼굴에 알케미가 인상을 찌푸렸다.
“뭘 확실하지? 놈들은 자존심으로 뭉친 덩어리나 다를 바 없다는 걸 너도 잘 알 텐데?”
자존심 덩어리.
신과 악마를 표현하는 데에 있어서 안성맞춤이라고 할 수 있는 단어.
그렇기에 알케미가 인상을 찌푸리며 묻자 강혁은 당연하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잘 알지.”
“....잘 아는 놈이 그래? 그들은 절대로 모욕 당한 걸 참지 않아.”
“그것도 잘 알고.”
“....말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전부 아는 걸로도 모자라 이 세상 사람 누구보다 잘 아는 놈이 그런 말을 하려고 해? 제정신이야?”
화를 버럭 내는 알케미.
그의 화는 당연했다.
강혁이 하려는 일은 안 그래도 힘든 지구인들을 괴롭게 만드는 걸 넘어 위험하게 만들 게 뻔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강혁은 자신의 생각을 바꾸지 않았고, 그 이유를 늘어 놓았다.
“그들은 절대로 그럴 수 없으니까 하려는 거다.”
“....이유는?”
강혁의 확신에 알케미 또한 화를 누그려뜨리곤 이유를 물었다.
절대로 그럴 수 없다.
절대라는 명제가 붙은 이상 확실한 이유가 있을 거고, 정말 그 이유가 합당하다면 기자 회견을 막을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강혁은 알케미를 설득시킬 확실한 이유를 가지고 있었다.
“이제부터 놈들은 고작 일반인 따위에게 시선을 돌리지 못하게 될 거니까.”
“....그게 대체 무슨?”
신과 악마의 눈은 전 세계에 퍼져 있다.
당연히 신살을 논하는 강혁의 생각은 곧바로 신과 악마에게 닿을 거고, 그건 곧 그들이 움직일 명분이 된다.
일반인들이 대량학살 당하게 되는 끔찍한 결과가 나올 지도 몰랐지만 강혁은 당당했다.
마치 그들이 절대로 움직일 수 없음을 확신하기라도 하듯이.
그 이유는 얼마 가지 않아 강혁의 입을 통해서 알려졌다.
“지금부터 놈들이 할 일 때문에 바쁠 텐데 다른 곳에서 눈 돌릴 시간이 어딨겠어?”
“....너 설마?”
바빠진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였다.
“그래, 하데스는 시작에 불과해. 본격적으로 신과 악마들을 사냥할 때가 왔다. 그들이 우리에게 했던 것을 그대로 돌려줄 시간이 왔다는 거지.”
“....드디어 시작인 건가. 자신은 있는 거냐?”
“물론, 얼마든지 잡아족칠 준비가 되어 있다. 중요한 것들도 대부분 얻었으니까.”
“중요한 것들?”
“그런 게 있어.”
자세한 것을 말해주지 않는 강혁을 향해 퉁명스러운 시선을 보내긴 했으나 알케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생각을 정리했다.
‘어차피 저 녀석이라면 어떻게든 해내겠지. 굳이 생각하려 들지 말자.’
강혁에 대한 믿음.
평소 강혁이 하는 것에 대해서 짜증을 품고 있긴 하나 그가 인류의 구원자이자 수호자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다.
무엇보다 세나를 다시금 지상으로 데려와 준 강혁은 알케미에게 있어선 은인과 다를 바 없으니 더더욱 그러했다.
“....너라면 알아서 잘 하겠지. 알았다. 마침 현자의 돌 제작도 끝났으니 먹던가 가져가던가 알아서 해라.”
“고맙다, 그럼 가볼게.”
“밥은?”
“너 혼자. 알지?”
“....망할 놈.”
끝까지 세나가 한 밥은 안 먹겠다는 듯 말하는 그의 말에 알케미가 쓴소리를 하자 강혁은 피식 웃으며 자리를 박찼다.
“나중에 보자. 언제가 될 지는 모르겠지만....그래도 그때도 잘 부탁해.”
“얼마든지 와라. 그게 너와 나의 약속이었고, 그걸 깰 생각은 없으니까.”
“친구 좋다는 게 이런 건가? 알았다.”
툴툴대면서도 얼마든지 와도 된다 말하는 알케미를 향해 피식 웃어보인 강혁이 텔레포트를 사용했다.
순식간에 자취를 감춘 강혁이 있던 자리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을 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간 거야?”
“갔지. 원래 저런 놈이야 지가 필요한 것만 챙기면 사라지는 놈.”
“친구한테 그런 말 하면 안 되지. 그리고 강혁 씨는 우리 은인이잖아.”
“....그건 맞지.”
세나.
알케미의 부인인 세나가 바로 목소리의 주인이었다.
그녀의 핀잔에 알케미 또한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말마따나 강혁은 두 사람에게 다시 없을 은인이었다.
죽음이라는 이름의 이별을 겪은 두 사람을 다시금 만나게 해준 은인.
그런 그에겐 어떠한 변명도 할 필요 없는 은인이란 이름이 잘 맞았다.
“또 한동안은 쓸쓸해 하겠네.”
“....쓸쓸하긴 누가! 당신이 있는데 내가 쓸쓸할 일이 뭐가 있겠어!”
쓸쓸하겠다는 세나의 말에 알케미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강혁이 사라지고 쓸쓸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을 부정하기라도 하는 듯한 그의 모습에 세나가 쿡쿡 웃음을 머금었다.
“당신도 여전하네. 거짓말 할 때마다 언성 높히는 건.”
“....그거야 당신이 내 말을 거짓이라고 치부하니까 그런....!”
“또또 말대꾸. 내가 당신을 하루이틀 봐?”
“....그건 아니지.”
부부로서, 가족이 된 두 사람은 하루에도 수십 번씩 만난다.
당연히 서로를 누구보다 잘 알게 되는 것도 사실.
결국 알케미가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게 되었을 때.
세나가 그의 팔을 끌었다.
“올라가자. 여기 오래 있어 봐야 좋을 것도 없고, 일할 때는 맨날 있어야 하는 곳이니까.”
자신을 걱정하는 세나의 목소리에 알케미도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러자. 배고프네.”
주린 배를 문지르며 알케미가 중얼거리자 그럴 줄 알았다며 세나가 씨익 웃었다.
“그럴 줄 알고 밥 차려놨어. 가자.”
“....갑자기 배가 안 고픈데.”
“쓰읍-”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때는 이미 늦었고, 알케미는 결국 세나에게 붙잡혀 지상으로 올라올 수밖에 없었다.
“차라리 배....배달이라도!”
“여기까지 누가 배달을 와? 말이 되는 소리를 해. 온다고 해도 배달원에게 민폐야. 내가 맛있는 밥 했으니까 오늘은 이걸로 먹자. 응?”
“....어제도 그제도 그리 말했던 것 같은데.”
“그랬었나? 아하핫.”
환하게 미소를 짓는 세나의 모습은 천상에서 내려온 천사와도 같았으나 그녀의 웃음과 함께 도달한 식탁에 놓인 건 천국이 아닌 지옥이었다.
아니, 어쩌면 천국이라는 말도 맞았으리라.
‘저걸 먹으면 천국으로 가겠지?’
식탁에 놓인 음식들은 그야말로 천국행 프리패스나 다를 바 없었기에.
알케미는 자신의 품에 담긴 구토억제제와 소화제 등을 만지작거리며 어설프게 미소를 머금었다.
“....밥 먹자.”
“응!”
차마 환하게 미소 짓는 아내에게 밥이 너무 맛없어서 천국으로 갈 것 같다는 말을 할 수는 없는 알케미였다.
*
텁-
입안에 현자의 돌을 털어넣은 강혁이 올 마스터의 길드 본부를 거닐었다.
지나가는 이들이 고개를 돌려 자신을 바라보았음에도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목적지를 향해 성큼성큼 나아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목적지에 도달한 그가 벌컥 목적지의 문을 열었다.
“....노크 좀 해라.”
“루카스, 기자들 좀 모아줘. 지금 당장.”
“하아, 오랜만에 와서 한다는 게 기자 회견이야? 나 일 쌓여 있는 거 안 보여?”
당연하게도 그 목적지는 루카스 폴른의 집무실이었다.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일감들을 가리키며 인상을 찌푸리는 그에게 강혁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불러. 길드장의 명령이야.”
“빌어먹을, 이럴 때만 길드장이지. 그래서 무슨 이유로 부르는 건데? 그건 알아야 기자들을 부를 때 말이라도 해두지.”
길드장의 명령.
거부할 수 없는 그의 말에 결국 전화기를 꺼내든 루카스 폴른이 기자 회견의 이유를 물었고.
그에 강혁은 이렇게 답했다.
“신살을 하기로 결정했다고 전해. 그게 기자 회견의 주요 골자니까.”
“....뭐?”
툭-
그리고 그 말을 들은 루카스 폴른은 빼들었던 전화기를 놓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