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올 마스터#144
“이제 남은 건 딱 넷인가.”
드높은 창공.
이제는 익숙해진 그곳에서 강혁은 곰곰히 남은 칠죄와 칠선의 수를 세었다.
즉, 주신급 존재들과 자웅을 겨루더라도 모자라지 않는 수준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얘기이기도 한 것.
그런 상황 속에서 강혁은 턱을 쓰다듬으며 고민에 빠졌다.
“두 개를 불러볼까?”
-....위험할 거다. 아무리 너라지만 칠선과 칠죄. 그들 중에서 두 개나 빼버린다면....문제가 생겨도 단단히 생길 테니까.
저번과 달리 나태 하나만 뺏은 것과는 별개로 둘을 한 번에 상대하겠다는 말에 분노는 곧바로 우려를 드러냈다.
확실히 나태와의 전투가 쉽지만은 않았기에 강혁도 그것을 이해하긴 했으나.
“한 번 해보지 뭐. 죽기야 하겠어?”
-....하아, 그런 생각이 문젠 거다.
“그럼 부른다?”
-내 의견 따윈 듣지도 않을 거면서 대체 왜 물어본 거....
“와라!”
-빌어먹을 놈.
말이 끝나기도 전에 어디엔가 흩어져 있을 칠죄와 칠선들에게 신호를 보내는 강혁을 보며 분노가 이를 갈았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을 주워담을 수는 없는 법.
빠르게 퍼져나가는 강혁의 기운을 느끼며 분노가 말했다.
-준비해라. 놈들이 언제 나타날지 모르니까.
“알아, 알아. 나도 준비는 제대로 해두고 있다고.”
푸스스....
강혁의 몸에서 기운들이 부스러지듯이 떨어졌다.
기운의 압축을 견디지 못하고 남은 것들이 부숴진 것.
당연한 말이지만 그것들만 보더라도 현재 강혁이 지닌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를 조금이나마 알 수 있을 터였다.
부스러지는 기운들만 하더라도 어지간한 헌터들은 얻어 맞고 죽을 정도로 대단했으니까.
하지만 그와 다르게 서서히 자신에게로 다가온 기파를 느낀 강혁이 얼굴을 굳혔다.
“....잠깐만 설마 이거.”
-네 말대로라면 지금 상황은 좆 됐다. 라는 건가?
“....빌어먹을, 이건 반칙이지.”
서서히 다가오는 기파.
그것은 너무나도 익숙한 기운이었다.
푸화아악!
“마기잖아. 그것도 순도 높은.”
마기였다.
그것도 강혁의 기준으로도 무척이나 순도 높은 마기.
당연하게도 그것은 평범한 인간 따위가 가질 수 있는 힘이 아니었다.
“악마인가.”
악마.
신과 함께 세상을 반으로 분할하여 가진 존재들.
강혁조차도 처음 만나보는 그들이 바로 여기로 오고 있음을 깨달은 강혁은 이를 갈았다.
“칠죄나 칠선을 그놈들이 가지고 있었나.”
-네 신호가 그들을 강림하는 트리거가 되었나 보군. 참 어처구니 없는 일이야.
“그렇게나 조심했는데....하아, 빌어먹을.”
신과 악마가 지상에 강림하기 위해선 조건이 필요하다.
그런데 악마들이 칠선이나 칠죄를 품고 있었고, 그 결과 그들은 악마이되 칠죄 혹은 칠선으로서 강혁의 부름을 받고 이 자리에 나타난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강혁은 자신을 공격할 악마들을 불러낸 것이나 다를 바 없었기에 짜증이 솟구치는 걸 느껴야만 했다.
“젠장할. 피할 순 없겠지?”
-지상이 모조리 초토화 되는 꼴이라도 보고 싶으면 그렇게 하던가.
“사면초가로구만.”
피했다간 지상으로 향할 악마들의 모습이 훤히 보였기에 결국 강혁은 이를 악물면서 앞으로 나서야만 했다.
“멈춰!”
앞으로 나서며 기운을 뿜어낸 강혁의 앞에 두 악마는 제 자리에 우뚝 멈춰섰다.
이른 바 영역을 구축한 강혁의 안으로 들어가는 건 곧 강혁의 홈그라운드에서 싸운다는 얘기.
당연한 말이지만 두 악마들에게도 그건 퍽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었다.
“너흰 누구지?”
앞에 나선 강혁의 물음.
그것에 멈춰선 악마들이 입을 떼었다.
“내 이름은 아스타로트. 위대한 바알의 휘하에 있는 29위의 악마.”
“난 아스모데우스. 네 안에 깃든 색욕의 본체이지. 네 부름을 받고 이 자리에 왔다. 꽤 잘 생겼네?”
담담하게 입을 떼는 아스타로트와는 정반대로 육감적인 몸을 한 아스모데우스의 윙크에 강혁은 눈살을 찌푸렸다.
“넌 더럽게 못 생겼네.”
“....뭐?”
육감적인 몸에 아름다운 얼굴.
누가 보더라도 아름답다고 할 만한 모습을 한 그녀를 두고 할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강혁의 생각은 변함이 없었다.
“너보다 이쁜 사람이 널리고 널렸다, 이 년아. 닥치고 덤벼.”
까득-
두 주먹을 말아쥐고, 자세를 잡은 강혁을 향해 아스모데우스가 이를 갈았다.
“나를 모욕해? 너를 평생 내 육노예로 살게 해주겠어. 그러고도 그 말을 할 수 있는지 지켜보겠다!”
“얼마든지. 그래서 넌 칠죄냐, 칠선이냐?”
“칠선이다, 멍청한 필멸자! 난 칠선, ‘겸손’의 힘을 지닌 대악마 아스모데우스다!!!”
“그럼 저 녀석은?”
고갯짓으로 저 멀리 떨어진 아스타로트를 가리키며 강혁이 묻자 아스모데우스가 코웃음을 치며 답했다.
“저 녀석은 ‘근면’이다.”
“그럼 너희들만 잡으면 이제 칠선은 다 모을 수 있겠네. 하데스를 다시 만나러 가도 되겠어.”
칠선.
그들 전부가 이 자리에 모였음을 확인한 강혁이 씨익 웃음을 머금었다.
자신들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그의 모습에 다시 한번 분노를 토해낸 아스모데우스가 자리를 박찼다.
“어디 언제까지 그런 태도를 유지할 수 있나 지켜보겠다!”
촤르르륵-
허공에서부터 흩뿌려지는 촉수 다발들.
그것들이 강혁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촉수 다발들을 바라보며 강혁이 말아쥔 주먹을 그대로 내질렀다.
팡! 파앙!
허공을 격해서 날아드는 권영들이 촉수 다발들을 무참하게 박살내고, 나아가 아스모데우스에게 닿았다.
“흥! 권영 따위로 날 막을 수 있을 것 같아?”
콰드드득-
기운이 응축되어 만들어진 권영.
물리력과 함께 실체를 지닌 그것들이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짓눌리며 사라진다.
그 모습에 강혁은 자연스레 칠선의 능력임을 파악했다.
‘겸손이라고 했나. 나태와 비슷한 능력인 것 같은데.’
아스모데우스가 흩뿌린 능력으로 자신의 권영이 사라진 것을 확인한 강혁의 생각은 칠선의 권능이구나....였다.
그리고 곧바로 분석에 들어간 강혁은 그의 능력이 나태의 것과 비슷함을 알 수 있었다.
살아있는 것이든 죽어 있는 것이든 모두를 나태하게 만들어 그 힘을 자체를 줄여버리는 힘.
하지만 아스모데우스가 보인 능력은 분명 나태의 능력과 달랐다.
무언가를 숙이게 만드는 힘.
말 그대로 누군가를 겸손하게 만드는 힘이라고 볼 수 있으리라.
“별 거 아니네.”
차라리 나태의 능력이 더 상대하기 까다로운 종류라고 생각할 정도로 강혁에게 그 정도는 아무것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팡-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발로 박차고 날아오른 강혁의 신형이 아스모데우스에게로 향했다.
파바바박-
허공을 어지러이 수놓는 권영들이 아스모데우스의 전신을 후려쳤다.
촤르르륵-
그에 따라 아스모데우스의 몸에서 뿜어져나온 촉수들이 권영을 막아내고, 아스모데우스 본인 또한 겸손의 권능으로 권영들을 짓눌렀다.
까드드득-
다시 한번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권영들이 짓눌리는 순간 아스모데우스가 같잖다는 듯이 웃음을 터뜨렸다.
“역시 넌 아무것도 아니야! 너 따위에게 아폴론 그 등신이 패배했다는 게 믿기지가 않을 정도라고!”
광소.
미친 웃음이 터져나오며 강혁을 휩쓸었다.
웃음에 담긴 마기에 주위가 검게 물드는 것을 바라보며 강혁이 혀를 찼다.
“아무것도 모르는 건 너 같은데 말이야.”
“....뭐?”
“난 애초에 권보다 검이라고.”
스릉-
말이 끝나기 무섭게 검을 빼든 강혁의 검이 번뜩인다.
빛을 반사하여 번뜩이는 검이 움직이는 순간 세상이 쪼개졌다.
스걱-
무언가가 베이는 소리와 함께 아스모데우스의 촉수 다발에 허공에 흐트러진다.
주인에게서 떨어져 나와 흐트러지는 촉수들의 모습은 기괴하기 그지없었다.
화륵-
“징그럽게시리.”
그런 촉수에 불을 붙여 단숨에 태워버린 강혁이 이죽거리는 얼굴로 아스모데우스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상징과도 같았으며 신체의 일부인 그것을 재조차 남기지 않고 태워버렸다.
“이....이 미친 자식이! 내 귀여운 촉수들을!”
“....역시 악마라고 해야 하나. 그게 어딜 봐서 귀엽다는 건데?”
“닥쳐!”
콰드드득-
말이 끝나기 무섭게 허공을 격해 날아오는 아스모데우스.
그녀에게서 느껴지는 강렬한 기파에 강혁도 마냥 방심만 하고 있진 않았다.
“섬.”
촤자자작-
날아오는 그녀를 향해 날아가는 검격의 그물망.
닿기만 해도 신체가 뎅겅뎅겅 잘려나갈 정도의 날카로움을 지닌 그것이 날아드는 아스모데우스의 사방을 점했다.
“....이런.”
자신의 흥분을 그제서야 알아낸 아스모데우스가 침음을 흘렸지만 이미 상황은 늦은 상태였다.
검격의 그물망은 이미 아스모데우스를 동강낼 기세로 그녀에게 다가오고 있었으니까.
이제 와서 뒤로 몸을 빼기엔 자존심이 문제가 아니라 속도의 문제가 있었다.
결국 그녀가 어찌할 줄 모르고 발을 동동 구르고 있을 때.
“아스모데우스. 넌 언제나 그 성격이 문제다.”
촤자작!
어느새 아스모데우스의 곁에 선 아스타로트가 손에 쥔 흑색 거검을 휘둘렀다.
순식간에 박살이나며 흩어지는 검격의 그물.
그리 공을 들이진 않았지만 나름 묘수에 가까웠던 공격이 박살남에 강혁은 혀를 찼다.
“아쉽네.”
그래도 아쉬움만을 드러낼 뿐 강혁은 안타까워하진 않았다.
얼마든지 다시 만들 수 있는 일을 가지고 안타까워하기엔 너무 상황이 급박했기에.
카가가강!
달려든 아스타로트가 아스모데우스가 몸을 추스릴 시간을 벌었다.
무거운 거검이 가볍게 휘둘러지며 강혁의 요혈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하나하나가 위험천만하기 그지 없는 급소들.
그곳을 향해 날아드는 거검은 무겁지만 가벼웠고, 느리지만 빨랐다.
순식간에 달려드는 거검을 막아내기 위해 강혁은 이를 악물었고, 그것을 쳐내기 바빴다.
캉! 카앙!
불똥이 튀고, 눈앞이 그런 불똥으로 가득 차는 동안에도 강혁은 검을 휘두르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멈춘 자리에는 오롯이 죽음만이 남아 있을 따름이었으니까.
그렇게 멈추지 않으면서 조금씩 조금씩 준비를 한 강혁은 이윽고 숨겨온 비수를 날렸다.
쐐에엑!
“....검을 날려?”
자신이 쥐고 있는 신검을 던진 것이다.
쏜살같이 날아가는 검의 모습은 한 줄기의 빛과 같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캉!
흑색 거검으로 날아든 검을 쳐낸 아스타로트는 찌르르하게 울리는 검신과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끝인가. 무기를 버리다니. 멍청하군.”
강혁의 검이 지닌 높은 완성도를 꿰뚫어 보고 하는 말이었으나 강혁은 개의치 않았다.
까닥-
펼친 손가락을 한 번 까닥인 순간 던져진 검이 다시금 주인에게로 돌아가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궤적에 서 있는 아스타로트는 자신의 가슴팍을 노리고 날아드는 검을 보곤 기겁하며 자리를 피했다.
근면.
칠선 중 하나인 그것을 이용해서 몸을 빠르게 만든 덕분에 가능했던 일.
하지만 그 힘을 이용하고도 그는 멀쩡할 수 없었다.
스걱-
간신히 피했지만 팔쪽 부근이 베이는 걸 막을 수 없었던 아스타로트는 베인 팔에서부터 피분수가 치솟는 걸 보며 이를 악물었다.
“이노오옴....”
분노를 짓누르며 강혁을 노려보는 아스타로트.
그의 뜨거운 시선을 느끼며 강혁 피식 웃으며 날아든 검을 붙잡으며 답했다.
“뭐해? 안 들어와?”
두 명의 악마를 앞에 두고도 한 점 물러섬 없이, 오히려 그들을 압도하는 모습을 보이는 강혁이었다.
이윽고 강혁의 도발에 몸을 추스린 두 악마들이 강혁을 향해 쇄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