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올 마스터#143
-죽음을 거스르려 하는가!!!
머릿속에 울려퍼지는 날카롭고 중압적인 목소리.
그 목소리의 주인을 강혁을 잘 알고 있었다.
지하실에 놓인 세나의 시체에 현자의 돌을 올린 순간 발생한 ‘부활’이란 이름의 기적을 부정하는 존재이자 명계에서 만났던 존재.
“하데스인가. 근데 이미 부활했는데 어쩌지. 꼬우면 지상으로 올라오던가.”
-오만하군! 꼬리에 불 붙은 개새끼마냥 도망치던 놈이 감히!
이죽거리는 강 혁의 말에 분노한 목소리의 주인은 다름 아니라 하데스였다.
그는 진정으로 분노한 것인지 이를 아득바득 갈아가며 강혁을 도발했지만 강혁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뭐라고? 지구에도 못 올라오는 찐따라 잘 안 들리는데?”
-이노오오옴!
분노가 깃든 하데스의 목소리가 정신을 어지럽히는 걸 느끼며 강혁이 이죽거렸다.
“걱정하지 마. 네가 안 올라와도 내가 곧 올라갈 거니까. 그러니까 기대해. 내가 네 목을 따러 갈 때까지만 말이야.”
씨익 웃음을 머금으며 그리 답한 순간 하데스의 목소리가 씻은 듯이 사라졌다.
순식간에 사라진 하데스의 기운을 느끼며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면 강혁의 시선이 테이블 위로 향했다.
세나가 누워 있던 바로 그 테이블 말이다.
“세나! 오오....세나....”
“알케미....”
“보기 좋구만.”
그 테이블 위에선 반투명한 영체가 아닌 자신의 몸을 입은 세나가 알케미의 몸을 끌어안은 채로 뜨거운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당연히 알케미 또한 마찬가지로 굵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여태까지의 슬픔을 털어 놓았다.
하나가 된 것처럼 달라붙어 서로를 위하고, 기뻐하는 두 사람의 모습을 눈에 담으며 강혁 또한 왠지 모를 따스함을 느꼈다.
“후우, 잠시 좀 바람이나 쐴까.”
하데스가 마음대로 머리를 헤집은 탓에 느껴지는 두통에 혀를 차며 강혁은 지하실 바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미안하군. 추태를 보였어. 자네를 배려했어야 했는데....”
“뭐, 상관은 없어. 예상도 했었고. 방금 일로 슬픔을 모조리 털어냈으면 다행이지. 그럼 현자의 돌은 완성인가?”
해후를 마치고 퉁퉁 부은 눈으로 찾아온 알케미에게 강혁이 물었다.
현자의 돌.
강혁이 기를 쓰고 명계에서 세나를 데려오고 아폴론의 시체를 알케미에게 넘겼던 이유.
세나가 부활한 것만 봐도 완성이라고 봐도 무방했지만 그럼에도 강혁은 확답을 듣고 싶었다.
그런 강혁의 마음을 이해한 건지 알케미가 고개를 끄덕였다.
“완성됐네. 이제부터는 자네가 신의 시체를 가져온다면 얼마든지 현자의 돌을 만들어 줄 수 있어. 그것도 완벽한 현자의 돌을 말일세!”
기쁨에 절어 있는 알케미를 본 순간 강혁 또한 싱긋 웃음을 머금었다.
‘됐어. 그거면 됐다.’
현자의 돌의 완성.
이제부터 자신은 한 단계 더 높은 경지로 나아갈 수 있다는 사실에 강혁이 두 손을 불끈 쥐었다.
그는 언제나 그렇듯이 강해진다는 사실 자체에 만족스러움을 느꼈다.
‘하데스. 딱 기다려라 곧 찾아갈 테니까.’
신을 여럿 잡은 뒤, 그들의 시체를 바탕으로 현자의 돌을 완성하고 그것을 흡수.
나아가 남은 칠죄와 칠선도 여럿 흡수한다면 자신의 성취가 순식간에 몇 단계나 뛰어오를 것을 예견한 강혁이 스산한 미소를 머금었다.
자신을 곤란에 빠뜨리고, 지금도 머릿속에 한바탕을 욕을 쳐박았던 그를 개박살낼 생각에 흥분이 되었던 까닭.
“근데 신의 시체를 구할 방법이 마땅치 않으니....”
“그건 걱정하지 마. 재료를 구해오는 건 내 몫이니까.”
“크흠, 그럼 네게 맡겨도 되겠나?
신의 신체.
지구에서 그 재료를 구해올 수 있는 존재는 강혁이 유일했다.
그 사실을 알기에 헛기침을 하며 부탁을 하는 알케미의 모습을 눈에 담은 강혁이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든지. 몇 마리든 구해다 줄 테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그래, 믿으마.”
“다음 번에 만날 때에는 양손 가득 신의 시체를 들고오마.”
“그러면 정말 더할 나위 없이 좋지.”
상상만 해도 행복하다는 듯이 웃어 보이는 알케미를 뒤로한 채로 강혁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벌써 가려고?”
“내가 할 일은 정해져 있으니까.”
“세나가 밥을 차려줄 텐데 그거라도 먹고 가지 그래?”
“됐어, 나중에 먹자고. 모든 일이 끝나고, 거칠 게 없어질 때. 그때 한 끼 하지.”
“....네 마음대로 해라. 어차피 내가 말한다고 해서 들을 것도 아닐 테니까.”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는 알케미.
그의 말에 피식 웃음을 터뜨린 강혁이 그의 집을 떠났다.
서서히 멀어져가는 강혁의 뒷모습을 알케미가 바라보고 있을 때.
부엌에서 달려나온 세나가 아쉽다는 얼굴로 그의 뒤를 바라보며 말했다.
“밥이라도 먹고 가지. 맛있는 거 해놨는데....”
“....그런데 여보 오랜만에 요리하는 건데 잘한 거 맞지?”
“응! 믿어도 좋아. 진짜 맛있을 걸?”
“그으래....? 정말 맛있겠다....”
자신과 함께 고통을 나누어 줄 강혁이 사라졌음에 알케미는 진심으로 아쉬워했고, 식사 준비가 끝나고 식탁으로 향한 알케미는 역시 자신의 아내라고 생각했다.
‘음식으로 연금술을 하다니. 역시 내 아내야!’
그리고 그 날 알케미는 하루 종일 화장실을 가야만 했다.
*
“그러니까 결국 오라버니가 죽은 사람마저 살렸다는 거네요?”
“알케미가 다 했지. 난 신을 잡은 것 밖에 없어. 일석이조인 셈이지.”
“....그게 가장 어려운 일 아닌가?”
현자의 돌 만드는 게 더 어려울 걸.
수연의 물음에 강혁은 현자의 돌의 만드는 과정을 떠올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말로만 들었지만 그 과정 속에 있는 어려움이 어느 정도인지 대충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던 까닭이었다.
“그래서 또 신 잡으러 갈 거야?”
“잡아야지.”
“....얼마 전에 잡아 놓고 또 잡아? 너도 진짜 대단하다. 신들이 미쳐서 다 내려오는 거 아니야?”
“에이, 설마. 괜히 신이랑 악마겠어? 내가 아무리 난리를 쳐도 내려오려면 그에 따른 방법은 있어야 할 걸.”
방법 혹은 대가.
신이나 악마를 지상에 강림시키기 위해서는 어려운 방법 혹은 많은 대가를 줘야만 한다.
그것도 일반적인 강림이 아닌 전투를 위해서라면 더더욱 어려운 방법이거나 많은 대가를 줘야할 터.
아무리 신이라고 할 지라도 지금의 지구 상황 속에서 그러기란 쉽지 않았다.
‘신과 악마에 대한 믿음이 현저하게 떨어진 상황에서 그냥 강림도 아니고 나 정도 되는 존재와의 전투를 할 정도의 강림은 말도 안 되지. 아니면 아폴론처럼 죽을 각오를 하던가.’
아폴론은 자신을 향한 도발에 본인의 힘을 대가로 본신이 직접 강림했다.
즉, 다른 신들도 다른 방법이나 제물이 없다면 그와 다를 바 없을 거라는 얘기.
하지만 아폴론이라는 훌륭한 전례가 있으니 힘을 대가로 강림하려는 이는 없을 게 분명했다.
‘뒤지기 싫으면 그렇겠지.’
100퍼센트 완벽한 상태로 내려와도 제대로 승패를 장담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힘을 대가로 지상에 강림한다?
그것만큼 죽여달라고 목을 내미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일도 없을 터.
그렇기에 강혁은 그들을 먼저 잡기보다는 다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제 남은 칠죄와 칠선은 각기 두 개씩. 총 네 개. 이번 기회에 나머지 칠선과 칠죄를 좀 모아야겠어.’
전부 모은다면 신과 악마.
그중에서도 주신이나 대악마급 존재들과 맞서도 모자라기는커녕 압도할 수 있는 힘을 지니게 된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강혁이기에 내린 결정.
“또 가?”
아쉽다는 듯이 볼멘 소리를 하는 니아 아리엘과 한수연의 등을 두들겨 준 뒤.
강혁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기 위해서 발걸음을 떼었다.
“내가 할 일은 해야 하니까.”
“....일만 너무 하는 것도 안 멋있어.”
“그건 다른 부분에서 점수를 따면 되지 않겠어?”
“....그건 그런데....진짜 점수 딸 생각은 있고?”
게슴츠레 자신을 바라보는 니아 아리엘과 한수연의 오묘한 시선을 느끼며 강혁이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일이 끝나면....그때는 딸 수 있겠지. 너희들이 원하는 모든 것이든.”
“....양아치.”
“의자왕 같네요 오라버니.”
샐쭉한 얼굴로 양아치라 말하는 니아 아리엘의 말에 강혁이 당황할 때.
한수연의 의자왕이라는 말이 강혁을 후려쳤다.
완벽한 크리티컬 히트.
그에 정신이 벙벙해진 강혁이 어쩔 줄 몰라할 때, 니아 아리엘과 한수연이 각기 다른 강혁의 팔을 붙들었다.
“각오해.”
“저도요.”
“어차피 나한테만 사랑을 줄 거라고는 기대도 하지 않았어.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 안에서 급은 나누어야겠지.”
“급 좋죠. 제가 위, 니아 아리엘 씨는 제 아래. 맞죠?”
“쳐맞을래?”
으르렁대며 이를 드러내는 두 여인의 살기에 강혁이 등 뒤로 식은땀을 흘렸다.
‘젠장, 알케미 부부의 모습이 너무 좋아서 요즘 벽을 조금 허물었더니 바로 치고 들어오네.’
벽을 철저하게 칠 때만 하더라도 슬슬 힘을 잃는 분위기였던 두 사람이다.
그런데 벽을 살짝 허물기 무섭게 치고 들어오는 그들은 과연 S급 헌터였다.
남의 빈틈을 놓치지 않고 파고드는 것이야 말로 헌터의 기본 소양이었으니까.
숙련된 헌터의 빈틈 물어뜯기에 결국 강혁이 할 수 있는 건 단 하나.
“....나중에 얘기하자.”
“어, 언제!”
“오빠!”
신적인 몸놀림으로 그 자리를 피하는 것이었다.
삼십 육계 줄행랑.
가장 좋은 위기를 피하는 방법.
자신이 눈치채지도 못하는 사이에 빠져나간 강혁의 모습에 당황한 니아 아리엘과 한수연의 목소리가 공허하게 울려퍼지는 것을 느끼며 강혁은 바삐 발을 움직였다.
‘이거 잡히면 죽는다.’
안 그래도 요즘 벽을 허문 탓에 점점 스킨십이나 다가오는 정도가 심해지는 두 사람이 오늘 완전히 마수를 드러냈다.
지금 상황에서 잡힌다면 수십 년 동안 지켜온 순결을 털릴 지도 모를 일.
‘아직은 아니야. 아직은 칠선, 순결의 힘을 극대화 해야 한다고!’
천상 헌터다운 생각을 품은 채로 강혁은 쏜살처럼 올 마스터 길드 본부에서 뛰쳐 나왔다.
*
“후아, 진짜 죽는 줄 알았네.”
-그러게 왜 안 하던 짓을 하고 그러냐. 원래 사람이 바뀌면 죽는 법이다.
“....아는 말이긴 한데 내가 아는 죽음이랑은 조금 다른 죽음 같은데?”
어쩌면 자연사가 아닌 복상사일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던 그때 분노가 입을 열었다.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거냐.
“....마음을 무시할 수 없어서?”
-거짓말 치지 마라. 난 너와 같다. 평소에도 그들의 마음을 모르진 않았음에도 무시하지 않았나. 그런데 이제 와서 갑자기 벽을 허문다고?
몰아붙이는 듯한 그의 말에 강혁은 할 말을 잃었다.
실제로 강혁은 그녀들의 마음을 알고 있었고, 의도적으로 외면했으니까.
하지만.
“알케미 부부가 너무 보기 좋았어. 나도....모든 일이 끝나면 그렇게 살고 싶더라고.”
알케미 부부의 모습을 본 순간부터 그건 불가능해졌다.
자신의 마음 속에 감춰져 있던 본심이자 바램.
그것을 이루고 싶은 마음에 빼꼼 삐져나온 것.
강혁의 대답을 들은 분노는 잠시간 말이 없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네가 원하는대로 해라. 아니, 애초에 신과 악마의 복수를 하지 않아도 돼. 넌 너대로 살면 되니까. 굳이 복수의 굴레에 들어설 필요는 없다. 네가 사랑하고 아끼는 이들과 함께 평화로이 살 수 있는 세상. 넌 그 정도는 충분히 만들 수 있다.
자신을 배려하는 분노의 말에 강혁은 잠시 말을 잃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강혁은 입가에 웃음을 띄우며 고개를 내저었다.
“됐어. 그저 모든 일이 끝나고 그 녀석들이랑 오붓한 시간을 보내는 걸로 만족해.”
-....네가 그걸 바란다면 그대로 하면 되겠지.
씁쓸한 듯 중얼거리는 분노의 말을 끝으로 강혁은 자리를 박차고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그럼 이제 칠선이랑 칠죄 좀 모으러 가볼까?”
-그러지.
창공을 부수며 어디론가로 강혁의 몸이 쭉쭉 늘어나기 시작하더니 이윽고 강혁의 모습이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