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올 마스터#141
-네가 정말 미쳤구나. 필멸자.
하늘에서 떨어져 내린 남자의 목소리가 머릿속에 직접적으로 울려퍼졌다.
언젠가 신들을 만났을 때와 크게 다르지 않은 그의 대화 방식에 강혁은 미소를 머금었다.
“신과 악마와 상대하려면 제정신으론 안 되지. 미쳐야 너희들을 족칠 수 있지 않겠어?”
-하! 고작해야 그 정도 힘을 가지고 신과 악마를 논하는가. 어리석기 그지 없는 게 딱 필멸자답군. 하지만 오늘로서 네 녀석의 생도 끝이다.
오만함이 깊게 배여든 목소리가 머릿속에 웅웅거리는 걸 느끼며 강혁은 자세를 잡았다.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알겠지.”
-화신체가 아니라 본체다. 그건 알고 있겠지? 진짜 신의 육체란 말이다. 고작 필멸자에 불과한 네놈 따위가 나를 이길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가!!!
오만을 넘어 지금 이 상황 자체에 분노를 토해내는 아폴론.
그의 모습에 강혁은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그걸 바라고 도발을 한 건데 화신체로 나왔으면 쫄보라고 놀려줄 생각이었는데 다행이네.”
-네노오오옴! 영원히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몸으로 만들어 태양불에 지져주겠다. 그때에도 그리 오만할 수 있는지 지켜보겠다!
“할 수 있으면 얼마든지 해. 난 너를 갈아마셔 줄 테니까.”
비유적인 말이 아니라 실제로 그럴 생각이었기에 섬뜩한 미소를 입가에 띄움과 동시에 아폴론의 신형이 움직였다.
“네놈의 말처럼 정말 그리 할 수 있는지 한 번 보겠다.”
머릿속으로 내용을 보내는 텔레파시와 비슷한 대화 방식을 그만두고 입을 통해서 대화를 이어나가려는 그의 모습에 강혁은 씨익 웃어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와라.”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었다, 필멸자.”
팡!
바닥을 박참과 동시에 바람이 터져나오며 아폴론의 등을 떠밀었다.
타다다닥-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고 달려드는 아폴론.
그의 발에 휘감긴 태양의 힘이 강혁을 향해 작렬했다.
퍼어엉!
흑점 폭발.
태양에서 일어난 폭발과도 같은 힘이 압축된 발차기에서부터 강렬한 폭발이 터져나왔다.
치이익-
뜨거운 열기에 입고 있던 옷들이 불타오르고, 단단한 신체를 불태우기 위해서 넘실거리는 불꽃들이 강혁의 몸을 휘감기 시작했다.
그대로 냅두었다간 대번에 몸이 불타오를 것임을 예견한 강혁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먹어.”
으적! 으적!
뱀처럼 몸을 휘감아오던 불꽃들이 있던 자리에 솟아난 입들이 불꽃들을 사정없이 먹어치웠다.
뜨거울 것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멈칫거림 하나 없이 먹어치우는 입들의 모습은 걸신 그 자체였다.
“....탐?”
“그건 뭔지 모르겠고, 이게 끝이냐?”
무엇이든 잡아먹는 용.
탐.
그것을 입에 담는 아폴론이었으나 강혁에겐 알 바 아니었다.
식욕의 죄.
칠죄 중 하나이자 이제는 자신의 힘이었으니.
탐 또한 식욕의 죄에서 빚어진 하나의 생명체에 불과했다.
그렇기에 근원에 가까운 식욕의 죄 앞에선 태양 앞의 반딧굴과 같았다.
“그럼 내 차례지?”
스릉-
빼든 검이 공기를 가르며 날카로운 검명을 자아낸다.
그런 검명을 들으며 자리를 박찬 강혁의 검이 아폴론을 향해 쇄도했다.
캉!
“....고작 검 따위로 신의 몸을 해할 수 있을 것 같으냐!”
강혁이 휘두른 검을 손을 들어 막아낸 아폴론이 거칠게 소리쳤다.
신체.
평범한 생명체의 육체를 말하는 것이 아닌 말 그대로 신의 육체를 뜻하는 단어.
그 단어의 소유자답게 아폴론의 몸은 강철보다 단단하며 필멸자가 만든 무구로는 베지도, 뚫지도 못하는 몸이었다.
하지만.
“그 검이 신살의 검이다 이 빌어먹을 새끼야!”
스걱!
검을 한 번 막아낸 것에 방심한 아폴론의 팔을 단번에 베어내며 소리치는 강혁의 목소리와 함께 아폴론의 팔이 바닥에 툭- 하고 떨어졌다.
“....끄아아악!”
난생 처음 느껴보는 고통 앞에서 아폴론은 다른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신의 육체는 영생을 산다.
불노불사.
하지만 신들이 늙어 죽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안 죽는 것은 아니다.
‘애초에 그랬다면 저들과 싸우고 있는 외적들과의 전투를 두려워하진 않겠지.’
괴생명체.
그들을 다루는 이들과의 전쟁 속에서 그들은 악마와 손을 잡았다.
죽지도 않는 이들이라면 영원히 싸울 수 있을 텐데도 굳이 그와 손을 잡은 이유는 명백했다.
‘저들도 죽는 다는 거지. 그리고 외세의 세력들이 할 수 있다면 나도 할 수 있다.’
외세의 세력.
그들은 신과 악마를 죽일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이 할 수 있으면 자신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강혁이었다.
푸화아악-
잘린 팔의 단면에서 흘러나오는 붉은 선혈.
그를 바라보며 강혁이 이죽였다.
“신의 피도 다를 건 없네. 여태까지 보던 거랑 색도 같고.”
“이노오오옴! 감히 신의 옥체를 상하게 하고도 네놈이 멀쩡할성 싶더냐!”
“멀쩡할 걸? 다른 놈들은 올 기미도 안 보이는데.”
쾌청한 하늘.
태양이 사라지고, 어두워진 것만 빼면 하늘은 맑고 푸르렀다.
그게 살짝 어두워서 그렇지.
다른 신과 악마의 개입은 없다.
그걸 확신한 순간 강혁의 입가엔 짙은 미소가 걸렸다.
“너 하나 정도야 가뿐하게 찜쪄 먹지.”
“....그 오만 잘 받았다. 신의 힘을 보여주마. 팔 하나 따위 없어도 네 녀석 정도는 가볍게 썰어버릴 수 있다는 걸 몸소 보여주겠다.”
으득-
이를 갈며 선전포고를 하는 아폴론의 모습을 눈에 담으며 강혁이 싱긋 웃으며 손가락을 까닥였다.
“들어와, X밥아.”
쾅!
그와 동시에 아폴론이 자리를 박찼고, 그가 박찬 바닥이 박살이 나면서 그 파편이 주위로 비산했다.
순식간에 주변을 어지럽히고, 나아가 주위를 박살내는 파편을 바라보면서도 강혁은 태연하게 검을 휘둘렀다.
카가가강!
날아드는 파편들을 모조리 쳐냄과 동시에 자신을 향해 쇄도해 오는 아폴론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은 강혁이 손을 뻗었다.
쩡!
한 쪽 팔만 남은 아폴론이 내지른 일권.
그것을 뻗은 손으로 가볍게 막아내 강혁이 검을 허공으로 던졌다.
웅웅웅!!!
마나를 가득 빨아 먹고 허공을 자유로이 유영하는 검과 함께 아폴론의 주먹을 막은 반대손이 아폴론을 향해 뻗어졌다.
파앙!
공기가 터져나가는 소닉붐이 고작 주먹 하나 뻗었을 뿐인데 일어나며 주위를 진동시켰다.
고막이 갈려나가는 듯한 착각과 함께 도달한 주먹이 아폴론의 명치를 가격했다.
빠각-
무언가 부숴지는 듯한 소리와 주먹에서 느껴진 촉감에 강혁이 웃음을 머금을 때.
“끄으으....이노오오옴!”
화르르륵!
아폴론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명치에서부터 피어오른 태양의 불꽃과 같은 불이 작열했다.
치이이익-
방금 전의 발차기에 담겼던 불보다 더욱 뜨겁고 강렬한 불꽃이 강혁이 전신을 휘감았다.
“....아프네.”
타는 듯한 불꽃이 전신을 불태우니 그 고통이 이루말할 수 없는 수준인 것은 자명한 일.
하지만.
“그래도 먹을만한 해.”
으적!
아까와 같이 불꽃을 먹어치우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신체에 생긴 입은 곧 강혁 본인의 입과 같다.
당연히 타는 듯한 고통이 입안 가득 퍼지고, 입안이 화상으로 범벅이 되는 기분이 들었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신과 싸우면서 이 정도 고통 정도는 예상했다.’
고통.
죽을 것 같은 고통도 죽지는 않는다.
그리고 죽지만 않는다면 자신은 신을 죽일 수 있다.
그런 확신을 가슴에 품은 강혁은 고통 속에서도 태양불을 모조리 흡수하는 기염을 토해낼 수 있었고.
“꺼억!”
“....이 자식 감히 태양불을!”
“왜, 먹으라고 준 거 아니었나? 주길래 잘 받아 먹었을 뿐인데 무슨 문제라도?”
“....죽여버리겠다!”
화르르륵!
염신.
마치 불의 신이라도 되는 듯한 모습.
전신을 불길이 잠식하되 그를 부리는 모습은 확실히 신이라고 불리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너만 신이냐? 나도 신이거든?”
푸화아악!
강혁 또한 그에 못지 않은 신격을 이뤄낸 상태라는 점이었다.
마기와 신성력.
그것들로 이루어진 기파가 터져나오며 주변을 잠식했다.
백과 흑.
그것들로만 이루어진 세상 속에서 강혁이 발걸음을 떼었다.
쿵! 콰직!
한 걸음이 마치 천근과 같이 무거워며 그의 발걸음에 따라 백과 흑의 기운에 잠식된 세상이 아폴론을 짓눌렀다.
마치 거인의 발아래에 깔린 개미와 같은 상황 속에서 아폴론은 이를 갈았다.
꾸드드득-
‘결코 필멸자 따위에게 무릎을 꿇을 수는 없어....!!!’
지금 이대로라면 자신에게 다다를 때쯤이면 자신이 무릎을 꿇고 있으리라는 것을 그는 본능적으로 느꼈다.
그 결과 이를 악물고 강혁의 기세를 버텨내는 아폴론의 모습은 분명 칭찬받아 마땅했다.
다만.
“너 뭐하냐? 버티기만 하면 이기냐?”
“....언제!”
강혁이 그가 버티는 모습을 보고 가만히 있을리가 없다는 점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그가 기세에 억눌려 무릎을 꿇기 직전까지 몰린 상황 속에서 바들바들 몸을 떨고 있을 때.
강혁은 이미 그의 앞에 도달해 있었다.
찰나라고 할 수 있는 시간만이 지났건만 어느새 자신의 앞에 서 있는 강혁을 바라보며 아폴론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
물론 강혁은 그의 경악을 즐기며 검을 휘둘렀다.
캉!
“단단하네.”
아무런 방비조차 할 수 없는 상태에서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놈이 지닌 신의 육체는 검격을 막아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몇 번이나 막을 수 있는지 보자.”
캉! 카앙! 캉캉캉!
쉬지 않고 내지르는 검격 앞에서 쇳소리를 내던 것도 잠시.
스걱!
무언가가 베이는 소리와 함께 피분수가 치솟았다.
“....끄으아아악!”
검격이 전신에 작렬하는 고통을 이악물고 참던 아폴론이지만 신체가 잘려나가는 고통만큼은 참지 못했다.
결국 참아왔던 비명을 토해내는 아폴론의 앞에서 강혁은 스산하게 웃음을 머금으며 검의 손잡이를 말아쥐었다.
“딱 대. 오늘 네 제삿날이다.”
씨익 웃으며 말을 하는 강혁을 귀신 보듯이 바라보는 아폴론.
그의 시선을 뒤로한 채로 강혁은 제가 할 말을 지키기 위해서 검을 휘둘렀다.
“이번엔 목이니까 각오해라.”
목.
머리와 몸을 이어지는 곳이 잘린다면 아무리 신이라고 할 지라도 무사할 수는 없다.
사지가 잘린 것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 것.
“아....안 돼!”
죽음이 목전까지 다가온 상황에 아폴론의 안색이 창백해지고 새된 비명을 내질렀지만....
“돼!”
그걸 보고 아, 그렇구나- 하면서 지나가기엔 강혁은 지금 칼을 간 상황.
쐐에에엑!
검격이 공기를 가르며 들려오는 파공성과 함께 다시금 강혁의 도끼질(?)이 시작되었다.
아폴론의 목이라는 단단한 나무를 가르기 위한 도끼질을 말이다.
*
“....쟤랑 싸우면 제대로 즐기지도 못할 것 같은데 이제는?”
저 멀리서 보이는 강혁의 도끼질을 바라보며 니아 아리엘이 중얼거렸다.
이제는 자신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 강혁의 무위는 싸움에 미친 그녀마저도 공포에 떨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렇기에 그녀가 잘게 몸을 떨고 있을 때.
스걱-
나지막한 소리가 공허하게 울려퍼졌다.
푸스스-
그와 동시에 백과 흑의 세상이 무너져 내리고 그 안에서 한 사내가 걸어나왔다.
“끝났다, 돌아가자.”
끝이라는 말을 내뱉는 사내, 강혁의 손에는 몸뚱이를 잃은 아폴론의 머리가 들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