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올 마스터#140
[나태]
지독한 나태의 기운을 담은 마기를 주변에 흩뿌립니다.
마기에 닿은 이들에게 상태 이상 : 탈진과 피로를 부여합니다.
“괜찮네.”
나태를 먹어치운 후.
떠오른 메시지창을 본 강혁의 감상평이었다.
괜찮다.
하지만 마냥 괜찮은 수준이 아니란 걸 강혁은 몸소 느꼈다.
‘저 탈진과 피로라는 말이 의외로 사기적이라는 말이지.’
탈진과 피로.
적용 대상이 살아 있는 이들만이 아니라 실체가 없는 것들에게도 해당되는 만큼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지닌 힘과 같았다.
“신과의 대결에서도 큰 도움이 되겠어.”
-당연한 소리. 나태는 우리 중에서도 디버프로만 치면 최고에 가까운 놈이다. 당연히 도움이 되지.
분노의 추가적인 설명에 강혁은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직접 겪어본 나태의 능력은 그로서도 혀를 내두르게 할 만큼 치명적이었다.
‘주신급, 아니면 같은 칠죄나 칠선이 아니라면 못 막겠는데.’
하데스.
명계의 주인인 그와 비슷한 급의 신과 악마가 아니라면 거의 못 막을 법한 디버프.
거기서 만약 강혁이 더욱 강해진다면 그 디버프 또한 성장을 거듭할 테니 그 강함은 말할 필요도 없이 대단하리라.
‘어쩌면 주신조차도 탈진과 피로에 빠지게 될 지도....’
생각만 해도 섬뜩함에 등골이 오싹해지는 기분이었다.
싱글벙글 웃음을 머금은 강혁은 이윽고 드높은 창공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가 보실까.’
서울.
그의 집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기 위함이었다.
*
“하아, 이강혁 이 놈은 대체 어디로 갔길래 모습을 도통 보이질 않는지....”
“그러게~”
“너도 일 좀 해라, 니아.”
“미안, 너도 알다시피 난 서류 체질이 아니라서.”
“누군 체질이라! 하아, 말을 말자. 말을 말아.”
올 마스터 길드 본부.
그 안에서 길드장 대리를 맡은 루카스 폴른은 밀려드는 서류의 폭포 앞에서 진땀을 흘려야만 했다.
그와 다르게 니아 아리엘은 그저 여유롭게 의자에 몸을 걸친 채로 끼익끼익거리며 놀기 바빴다.
그 모습에 성을 내던 루카스 폴른은 어차피 화를 내봐야 변하는 것이 없음을 깨닫곤 한숨과 함께 고개를 숙였다.
‘빌어먹을, 어차피 이강혁 그 녀석이 돌아와도 일은 안 할 테니 결과적으로 달라진 건 없나. 후우, 짜증나는군.’
마법 연구 할 시간도 없이 하루 종일 서류에 파묻혀서 사는 만큼 그가 느끼고 있는 고통은 꽤 컸다.
주변의 이들이 강해지는 것과는 별개로 자신의 강함이 성장하는 느낌을 받지를 못하는 까닭.
“나 왔다!”
바로 그때 문을 열고 들어선 강혁은 그로 하여금 참아왔던 분노를 터뜨리게 하기엔 충분했다.
“너! 대체 어딜 쏘다니길래 연락도 없는 거냐!”
“명계 다녀왔는데?”
“....”
미친놈.
그리스에 위치한 명계를 모를 루카스 폴른이 아니다.
쟁쟁한 헌터들의 무덤이라고도 할 수 있는 그곳을 그가 모르는 게 더 이상할 터.
“거길 다녀왔는데 왜 살아있지?”
“왜? 내가 죽길 바랬나?”
이죽거리며 되묻는 강혁의 모습에 루카스 폴른은 고개를 설레설레 내저었다.
지금의 올 마스터 길드는 이강혁이라는 사람 하나만 보고 운영되는 곳이다.
며칠, 몇 주는 자리를 비워도 문제가 없지만 죽음은 다르다.
‘완전히 와해가 되겠지.’
신과 악마.
나아가 괴생명체와 그들을 부리는 존재마저 암약하는 곳에서 올 마스터는 한 줄기의 빛과 같다.
그런 올 마스터 길드가 사분오열 된다면 인류의 희망이 사라지는 셈.
루카스 폴른은 결코 그걸 바라지 않았다.
그저.
“대체 명계로 가서 어떻게 살아 돌아온 거냐? 그게 믿기지가 않는군.”
열이면 열.
백이면 백.
갔던 이들이 모조리 죽어 버렸던 그곳에서 살아돌아왔다는 게 믿기지 않을 뿐.
하지만 강혁이 그에게 거짓을 말할 이유 따윈 없었다.
쿠구구구-
전신에서 내뿜는 기세.
그에 따라 방안이 거칠게 흔들렸다.
“....와, 쟤 또 강해졌네.”
한층 더 강해진 강혁의 무위에 니아 아리엘이 혀를 차는 걸 시작으로 루카스 폴른의 안색 또한 희게 질렸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강혁이 내뿜는 기세가 정말 180도 달라져 있었기 때문이다.
‘....대체 무슨 삶을 살아야 저런 모습이 되는 건지 알 수가 없군.’
며칠.
고작 일주일도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명계도 다녀오고 기세가 180도 변한 강혁을 괴물 보듯이 바라보던 그때.
니아 아리엘이 고개를 불숙 내밀었다.
“오랜만에 한 판 할까?”
싱글생글 웃으며 주먹을 쥐어보이는 그녀의 모습에 강혁은 고개를 선선히 내저었다.
“지금은 아니야. 할 일이 있거든.”
“에이, 아쉽네. 그럼 나중에 한 판 하는 거다?”
웃음기 맺힌 얼굴로 주먹을 흔들어 보이는 그녀를 뒤로한 채, 강혁은 루카스 폴른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대장간으로 가고 싶은데.”
“검을 찾으려는 거냐?”
“응, 아무래도 곧 써야 할 것 같아서.”
“....하아, 또 뭔 사고를 치려고 그러는 건지 물어봐도 되나?”
대장간에 맡긴 강혁의 검.
강혁읜 팔과 용린을 섞어 만드는 최고의 검이라고 할 수 있는 그것을 강혁이 찾는 이유야 뻔했다.
‘그 검을 써야 할 정도로 위험한 적이라는 거지.’
최근 들어 강혁이 검을 쓰거나 무기를 쓰는 걸 도통 보지 못한 루카스 폴른이었다.
하지만 그런 강혁이 검을 쓴다는 건 곧 그만큼이나 어려운 적을 상대할 예정이라는 의미.
결국 또 다시 재앙이 닥쳐올 거라는 것을 루카스 폴른은 확신했다.
물론,
“....따라와라. 안내해주마.”
그걸 말릴 명분 따위는 그에게 없었다.
그렇기에 그는 착잡한 마음을 품에 안고서 발걸음을 옮겼다.
“땡큐.”
상긋하게 웃는 강혁의 얼굴을 한 번만 후려쳐 봤으면 소원이 없겠다는 생각을 하며 그는 발걸음을 옮겨 대장간으로 향했다.
땅땅땅!
올 마스터 길드 본부 중에서도 가장 크고 보안이 철저한 곳.
열기가 스물스물 기어나오고 망치를 두들기는 소리로 가득한 곳.
“오오....장난 아닌데.”
“적당한 의사소통이 되고난 이후부터는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되었다. 전담해서 드워프들과 의사소통을 할 이들을 구하고, 그들을 통해 작업을 맡기면서 일이 쉬워졌지. 뭐, 도면을 주고 받는 걸로도 대부분의 의사소통은 끝낸 셈이니 말할 것도 없었지만.”
대장간.
그곳에 두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강혁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드워프들과 어떻게 시간을 보냈는지를 입에 담는 루카스 폴른의 설명을 들으며 강혁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뜨거운 열기. 나한테도 뜨겁다는 감정이 느껴질 정도면 과연 최고의 물건들이 나오겠어.’
높은 온도는 곧 다양한 광물을 녹여낼 수 있음을 의미한다.
나아가 그것을 다루는 이가 천고의 장인이라면 말할 것도 없으리라.
결국 드워프들은 제 손으로 신살을 범할 무기를 만들어내리라고 생각하며 강혁은 깊은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오, 오셨구려.”
“왔느냐 망할 놈아.”
드워프들의 대장격인 인물과 강혁의 대장장이 스승과도 같은 최창수가 강혁을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그들의 환대를 받으며 안으로 들어선 강혁은 곧바로 이곳을 방문한 목적을 말했다.
“내가 맡긴 검. 완성이 되었나?”
자연스레 묻는 그의 말에 드워프와 최창수는 서로를 한 번 바라보고는 씨익 웃었다.
“당연한 말!”
“기대해도 좋을 거다.”
두 사람의 자신감 넘치는 대답에 기대감이 차오르는 걸 느낀 강혁은 곧바로 검이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여기 있다.”
최창수가 직접 건네는 보포에 쌓인 검을 받아든 강혁은 두근대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열어도 되나?”
“네 것인데 무어가 안 될쏘냐. 열어라.”
보포를 조심스레 풀어낸 강혁은 두 눈을 휘둥그레 뜰 수밖에 없었다.
“....허, 너무 완벽한데?”
유려한 검날과 단단하게 단조질 된 검.
그것은 하나의 무기라기 보다는 예술 작품과도 같았다.
하지만 그 안에서 용솟음치는 기운은 분명 강혁 본인의 기운이었다.
‘역시 내 팔로 만들어서 그런지 궁합하나는 장난 아니군.’
기뻤다.
자신에게 딱 맞는 무기가 생겼으니 기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기뻐하며 이리저리 둘러보던 강혁이 두 사람에게 감사를 전했다.
“좋은 무기를 만들어주셨네요. 감사를 전합니다.”
“쯧, 우리 사이에 이 정도는 기본이지.”
“만드는 동안 재밌었네.”
그의 감사에도 두 사람은 그저 싱긋 웃거나 퉁명스럽지만 정겹게 답할 따름이었다.
진정 대장장이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는 둘의 모습에 강혁은 빙글빙글 웃으며 그들에게 물었다.
“쓸만한 활 하나 있습니까?”
“활? 있지. 필요한가?”
“예, 활과 화살 몇 대만 주십시오. 쓸 데가 있습니다.”
활과 화살.
최고의 검을 눈앞에 두고 활과 화살을 찾는 강혁이 이상하긴 했으나 두 사람은 상등품의 활과 화살을 가져왔다.
강혁으로선 한 번도 만져본 적 없는 완벽한 활과 화살이었지만 앞서 본 검에 비하면 그 느낌이 퇴색되는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대체 어디에 쓰려고 그것들을....차라리 기운을 쏘아내거나 검을 휘두르는 게 더 편하고 쉬울 텐데 말이야.”
최창수의 의문은 정확했다.
화살 따위를 쏘는 것보다 기운을 쏘아내는 편이 쉽고 정확한 것은 당연한 일.
실제로 강혁도 어지간하면 활을 쥐고 싶진 않았다.
다만.
-놈은 활에 민감하게 반응할 거다. 그러니 꼭 활을 들어라.
분노의 첨언이 있었기에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분노의 첨언을 곱씹으며 강혁은 싱긋 웃음을 머금은 채로 답해주었다.
“신살하러 갑니다.”
신살.
신을 죽이러 갈 시간이었다.
*
“갑자기 사람들은 왜 물리라고 한 거야?”
사람이 드문 인적한 산 정상에서 니아 아리엘이 물었다.
“신 죽이러 가는데 사람이 많으면 쓰나.”
“....진심이었어? 비유인 줄 알았는데?”
놀란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니아 아리엘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준 강혁은 곧바로 화살을 시위에 매겼다.
까드득-
잘 만들어진 활이 금이 갈 정도로 휘어진다.
그리고 시위에 걸린 화살 또한 그 힘에 금방이라도 총알처럼 날아가고 싶은 마음을 담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끼익-
하늘을 향해서 활을 겨누는 강혁을 보며 니아 아리엘이 무어라 물어보려고 할 때였다.
“태양부터 족친다.”
핑-!
강혁의 이해할 수 없는 말과 함께 그가 쏜 화살이 빛살처럼 날았다.
태양을 향해 날아가는 그의 화살이 눈으로 보기엔 태양에게 닿은 것처럼 보인 순간.
“....태양이?”
“나온다, 피해.”
일식과 같이 순식간에 어두워진 태양의 모습에 니아 아리엘이 깜짝 놀랐다.
그런 그녀를 뒤로 물리며 강혁이 이를 드러내며 씨익 웃었다.
“나와라, 아폴론. 둘 중 하나가 뒤질 때까지 싸워보자고.”
-건방진 놈. 감히 내게 화살을 쏴? 오냐, 필멸자 놈이 건방진 버릇을 내 오늘 직접 고쳐주겠다.
그와 동시에 강혁의 머릿속에 울려퍼지는 미성의 목소리.
그의 목소리에 얽힌 짜증과 분노를 느낀 순간.
콰아아앙!
검게 물든 태양에서 한 남자가 떨어져 내렸다.
마치 유성처럼 쏘아져 떨어진 사내가 지상에 착지하는 순간.
스릉-
강혁은 제 팔로 만든 신검을 빼들었다.
“첫 번째 신살은 너다, 아폴론.”
태양의 신 아폴론.
그가 바로 강혁이 노린 첫 번째 신살의 제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