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올 마스터#139
“어디로 가야 할까.”
-네가 가는 곳이 어디든 문제가 될 건 없지.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면서 그러네. 칠죄, 아니면 칠선이 어딨는지를 묻는 거잖아.”
하늘 높이 날아오른 강혁은 곧바로 분노와의 대화를 시작했다.
여태까지 그러했듯 칠죄와 칠선이라는 목표물을 향해 나아가기 위함이었다.
-겸손 근면 오만 시기 나태. 현재 남아 있는 칠선과 칠죄다.
“어디로 먼저 가야 하지?”
다섯 개.
적다면 적고 많다면 많은 남은 수에 강혁은 앞으로의 방향을 논했다.
하지만 분노는 여태까지와 다르게 그에게 갈 방향을 가르쳐주진 않았다.
-네가 원하는 걸 말해라. 그러면 그들은 자연스레 네게 다가올 테니. 넌 이미 과반을 얻었다. 그들이 주가 아닌 네가 주라는 얘기지. 너의 생각에 따라 그들은 자신의 위치를 알릴 것이고 넌 그들을 찾아가면 된다.
“....좋은데?”
여태까지 분노라는 내비게이션에 의지해야 했던 것과 다르게 이제는 알아서 그들이 자신에게 신호를 보낼 거라는 얘기에 강혁은 반색했다.
그리곤 곧바로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생각하기 시작했고, 이내 입을 떼었다.
“나태. 나태가 좋겠어.”
-네가 원하는대로 될 것이다.
나태라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분노는 고개를 끄덕였고, 그 순간 주변의 공기가 격변하는 것을 강혁은 느낄 수 있었다.
“....이건?”
-준비해라. 네 부름에 그가 응답한 결과다. 곧 그가 도착할 터. 아무리 네가 주라고 한들 그들 또한 주에 가까운 부. 방심하지 마라.
“....언제나 방심하지 않았어. 걱정하지 말라고.”
방심을 걱정하는 분노의 말에 괜찮다며 손사래를 친 강혁이 서서히 강해지는 기파에 대비했다.
콰아아앙!
소닉붐에 비견되는, 아니 그보다 더한 폭발과 함께 모습을 드러낸 존재.
“네가 나태인가?”
-네가 올 마스터로군. 흐아아암, 피곤해 죽겠으니 빨리 하자.
칠죄 중 하나인 나태.
그가 강혁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피곤에 쩔어 있는 듯한 목소리에 갸웃거리던 것도 잠시.
강혁의 신형이 나태를 향해 움직였다.
*콰앙-
허공에서 일어났다곤 믿을 수 없는 폭발.
그것이 강혁의 등 뒤에서 일어났다.
순속에 가까운 움직임을 보이게 해주는 폭발과 함께 나태의 앞에 도달한 강혁의 주먹이 그를 향해 내질러진다.
빡!
무언가를 정확하게 가격했을 때에 울려퍼지는 통쾌한 울림과 소리.
하지만 그걸 들으면서도 강혁은 얼굴을 굳혔다.
그리고.
파앙!
곧바로 허공을 박차 뒤로 몸을 날린 강혁이 자신의 주먹을 내려다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태.
나른함이 가득한 얼굴을 하고 있는 청년을 분명 제대로 가격했으나 소리만 요란하고 느껴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심지어는 멀쩡하기까지 하고.’
나아가 맞은 대상인 나태마저도 하품만 할 뿐 고통스러운 기색 따윈 보이지 않았으니 강혁으로선 귀신에 홀린 것 같은 기분.
하지만 그것도 잠시.
“권이 안 되면 검이지.”
까득-
어느새 손에 나타난 장검을 쥔 강혁이 마기와 신성력을 감쌌다.
키이이잉-
섞일 수 없는 것들이 강혁이라는 윤활유를 만나 부드럽게 섞이며 공명한다.
물론 그에 담긴 파괴력이 유순함이라는 막으로 감싸여 있는 시한 폭탄과 다를 바 없었으나 강혁은 그것을 마음대로 조절할 능력이 있었다.
“이것도 한 번 막아봐라.”
파앙-
찌르기.
단 한 점을 노리는 완벽한 찌르기가 나태를 향해 날아든다.
그 안에 담긴 폭발력을 고스란히 품은 찌르기가 나태의 몸을 뚫고 그의 내부에 꽂혔을 때.
콰아아앙!
귓가가 멍멍해지는 폭발음이 주위를 가득 채운다.
당연하게도 그 중심이 된 나태 또한 몸이 성치 못할 정도.
“....이런 미친.”
다만 세상은 언제나 뜻하는 대로, 생각한 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법.
“끝이야? 흐아암, 그걸로 날 굴복시킬 순 있겠어? 나 졸린데 좀 자도 되지? 끝나면 말해~”
멀쩡한 모습인 걸로도 모자라 신경을 박박 긁어대는 나태의 모습에 강혁은 머릿속의 무언가가 뚝- 하고 끊어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마음도 잠시.
“후우, 분노. 저놈은 어떻게 잡아야 하지? 아니, 애초에 왜 저놈은 멀쩡한 건데?”
분노에몽에게 도움 요청을 보내는 강혁이었다.
그리고 분노에몽은 자신이 무얼 해야할 지 아는 참된 도구였고.
-저 녀석의 이름을 생각해라. 왜 나태라고 생각하는 거냐. 놈의 능력 또한 그것과 관련이 깊다.
“....젠장, 그래서 대체 무슨 능력인데?”
입을 쩍쩍 벌려대면서 하품을 해대는 나태는 이미 눈까지 감은 상황.
서서히 치솟는 열이 머리를 끝까지 오르려고 할 때였다.
“....잠깐만. 확실히 뭔가 이상하긴 한데.”
무언가가 머릿속을 스쳐지나가는 걸 느낀 강혁은 곧바로 생각을 실천으로 옮겼다.
자신의 생각이 정말인지를 확인해보기 위한 일이었다.
팡-
가볍게 내지른 주먹에서 뻗어나온 권격이 잠에 든 나태를 향해 날아든다.
퍽-
마나가 주먹이라는 형상으로 바뀌어 날아간 권격이 나태의 얼굴을 후려쳤다.
하지만 잠에 든 나태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고, 멀리서 그 광경을 바라본 강혁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내 생각이 옳았군.”
-이제 알았나?
무언가를 깨달은 듯한 강혁의 모습에 분노가 코웃음을 쳤다.
그런 분노의 말에 강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놈 저거 자기에게 닿는 힘 모두를 흩어버리는 거 같은데 맞나?”
-정답이다.
“빌어먹을 능력이구만.”
자신에게 닿는 모든 것을 무력화 시키는 힘.
정확하게는 힘 자체를 ‘탈진’ 시켜버리는 나태의 권능이었다.
그제서야 자신이 직접 날린 주먹과 같은 공격들이나 폭발 등이 그에게 먹히지 않았는지 알게 된 강혁이 혀를 찼다.
‘공격 자체의 힘을 흐트려 놓는 힘이라....내 것일 때에는 참으로 좋겠으나 지금 상황에선 욕 밖에 나오지 않는군.’
내로남불이라고 하더라도 별 수 없었다.
그만큼 나태의 힘은 대단했다.
‘힘’을 생명체로 규정하여 ‘탈진’시켜 힘을 뺀다.
이 얼마나 압도적인 일이란 말인가?
‘나아가 실제 사람이나 몬스터 혹은 신과 악마마저 탈진시킬 수 있다면....어쩌면 최고의 칠죄일지도.’
물론 얻었을 때의 가정이지만 그래도 나태의 능력이 칠죄 중에서 수위에 꼽히는 능력임은 확실했다.
“....쿠울.”
“짜증나 죽겠네.”
수면 방울마저 둥둥 띄운 채로 깊은 잠에 빠져든 나태를 바라보며 짜증을 내며 방법을 강구하던 진혁이 슬쩍 미소를 머금었다.
“이거라면 혹시 될지도 모르겠네.”
자신의 생각이 성공할지는 모르겠으나 저리 태연하게 잘 수는 없을 거라고 생각하며 강혁이 주먹을 말아쥐었다.
‘어디 이것도 한 번 막아봐라.’
저 태연한 낯짝을 당혹으로 물들여 주겠다는 다짐과 함께 강혁의 몸이 나태를 향해 쇄도했다.
*‘하암, 피곤해, 졸려, 그냥 갈까.’
잠에 빠져든 와중에도 나태의 정신만큼은 멀쩡하게 깨어 있었다.
몸은 자나 정신은 깨어 있는 기묘한 상황 속에서 나태는 지금 이 상황에 대해서 불만을 토해냈다.
‘으, 귀찮아아....’
가진 바 능력은 대단하나 태생 자체가 나태 그 자체인 그에게 있어서 이곳까지 오는 것마저도 귀찮음의 연속에 가까웠다.
그것이 눈 한 번 깜짝할 사이에 이동할 수 있다고 한들 나태 그 자체인 그에게 있어선 그마저도 귀찮았다.
결국 꿈지럭거리며 떠날지 말지에 대해서 고민하던 그때.
“....어라.”
나태는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거대한 기운에 슬쩍 눈을 떴다.
“....저건 또 뭐야?”
그리고 무언가 커다란 입이 쩍 벌려진 채로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걸 보며 그가 어처구니 없어하며 자연스레 능력을 사용했다.
‘탈진.’
힘을 빠지고, 기운이 사라진 상태.
나태스러운 능력은 비단 살아있는 생명체에게만 해당되는 능력이 아니었다.
‘다시 잠이나 잘까.’
힘, 기운.
형체가 없거나 살아있지 않은 것에도 사용할 수 있는 그의 능력은 모든 이에게 평등했다.
으적-
“....어라?”
적어도 좀 전까지는 그러했다.
“뭐야 이거.”
자신의 몸 일부를 씹어먹은 커다란 입.
그 모습에 나태가 고통도 잊은 채로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크아아악!
하지만 그런 그에게로 커다란 입이 재차 공격을 해왔다.
자신의 능력이 먹히지 않는 존재.
“....칠죄?”
칠죄의 힘이었다.
강혁이 지닌 힘 자체는 모조리 강혁의 것이지만 칠죄나 칠선과 같은 힘은 그 범주에서 벗어난 힘.
당연하게도 같은 칠죄의 힘을 무력화시키진 못하는 나태였다.
“이거 안 좋은데.”
졸음이 싹 가시고 섬뜩함이 전신을 채우는 것을 느끼며 나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미 어느 정도 먹힌 신체는 이미 괴물의 아가리 속으로 사라진지 오래였고, 나태가 할 수 있는 건 그나마 남은 것이라도 지키는 것뿐.
쿠구구구-
나태의 기운이 뻗어나가며 주위의 공간을 잠식했다.
다가오는 탐식의 입을 막아내기 위한 방법.
하지만 그것도 완벽한 대비책이 될 수는 없었다.
으적- 으적- 으적-
공간을 씹어먹고, 공기를 빨아들이며, 구름들을 먹어치우는 거대한 입.
그걸 막아내기엔 역부족.
그뿐만 아니라.
“....나태의 기운까지 먹어? 진짜 완전 극상성이네....피곤해.”
나태가 펼친 그의 기운마저 먹어치우는 탐식의 입은 나태에게 너무나도 가혹한 존재였다.
다만 나태의 기운을 먹어치운다고 해서 나태는 기울을 뿌리는 것을 멈출 순 없었다.
“멈추면 잡아 먹히겠지....더 빨리....아아아, 귀찮은데 아픈 건 싫고....어쩌지....”
서서히 다가오는 탐식의 입을 막아세우기 위해서라도 기운을 흩뿌리는 건 선택이 아닌 필수.
결국 나태는 기운을 계속해서 뿌려 대었고, 탐식의 입은 그런 기운을 점점 빨아먹기 시작했다.
한 쪽은 먹이(기운)를 뿌리고 다른 한 쪽은 그걸 먹어치우는 기묘한 모습이 반복되길 수십여 분.
“아, 다 먹혔네.”
바다와 같던 자신의 기운이 바닥을 드러냈음을 깨달은 나태가 나지막한 탄성을 터뜨렸다.
“끝이냐?”
“....처음에 방심한 게 크네. 알아도 그랬겠지만.”
시작할 때 잠을 자느라 탐식의 입의 접근을 알아채지 못하고 신체의 일부를 빼앗긴 것이 크게 작용했다.
나아가 탐식의 입이 기운을 먹으면 먹을수록 점점 그에 적응하여 나태의 기운에 영향을 덜 받은 것 또한 한몫했고.
모든 경우의 수들이 모이고 모여서 만들어진 결과에 나태는 결국 두 손 두 발 전부 들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그의 나태스러움은 과거로 돌아간다고 한들 바뀌지 않을 걸 알기에, 나아가 이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귀찮기에 나태는 순순히 패배를 인정했다.
“먹어.”
“사양하지 않고.”
피곤한 안색의 나태가 두 팔을 쫙- 펼치는 순간.
탐식의 입이 거대한 아가리를 벌리고 나태를 한 번에 삼켰다.
“끄윽, 배부르다.”
처음 먹은 신체에 더해 나태의 기운까지 계속해서 먹어치웠던 강혁이기에 나태를 통으로 삼킨 순간.
극심한 배부름을 느낀 강혁이 트림을 하는 순간.
메시지창 하나가 그의 눈앞에 떠올랐다.
[칠죄 : 나태를 획득하였습니다.]
“이제 네 개 남았군.”
길고 긴 여정의 끝이 보이는 순간이기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