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올 마스터#138
“세나!”
“알케미!”
서로의 이름을 울부짖으며 서로를 부둥켜 안는 두 사람의 모습에 강혁은 흐뭇함을 감추지 못했다.
‘보기 좋네. 그래도 부부라는 건가.’
오랜 시간 떨어져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서로의 애정 넘치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절로 마음 한 켠이 따스해졌다.
‘흠, 나도 모든 일이 끝이 나면 결혼이나 해볼까.’
주제 넘는 생각이지만 자신을 좋아해주는 이들이 꽤 많다는 걸 알기에 강혁은 결혼은 생각했다.
그 정도로 다시 만난 알케미 부부의 모습은 보기 좋았다.
‘나도 모든 일이 끝나면 결혼이나 한 번 해볼까.’
강혁이 결혼이라는 생각을 머릿속에 담을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결혼이 아니었기에 강혁은 상념에서 빠져나와 알케미의 어깨를 두들겼다.
“부부 사이의 좋음을 알리는 건 좋은데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잖아. 안 그래?”
“....그래, 그렇지. 아직 세나를 살리려면 한 가지가 더 남았으니까.”
“맞아, 신의 시체. 그걸로 만든 현자의 돌이 필요하지. 하지만 그래도 몸에 영혼을 넣고 움직여 보는 것 정도는 괜찮겠지. 지금 네가 껴안고 있는 상태는 영 이상하잖아?”
“....맞는 말이군. 세나, 따라와주겠어?”
“물론이지.”
환하게 웃음을 머금은 채로 고개를 끄덕이는 반투명한 형태의 세나를 데리고 알케미는 엉망이 된 주변을 내버려둔채로 지하실로 걸어내려갔다.
그런 두 사람의 모습 눈에 담던 강혁은 그대로 고개를 돌려 자신의 손에 붙잡혀 있는 침입자를 바라보았다.
“어디 놈이야?”
“어디긴....곧 있으면 죽을 놈이지. 군말 말고 그냥 죽여라.”
태연하게 죽음을 논하는 그의 모습에 살짝 인상을 찌푸린 강혁은 그의 팔을 아무런 말도 전조도 없이 비틀었다.
우드득-
팔이 180도 돌아가며 발생하는 섬뜩한 소리.
그것이 망가진 알케미의 방을 가득 채웠다.
“....크흐아아악!”
통곡에 가까운 비명 소리는 덤이었다.
“이래도 말 안 할 거야?”
“....고통 따위에 굴복할 거였으면 이 직종에 발을 들이지도 않았다.”
“심지하고는.”
우득-
상대방의 대답을 들은 강혁은 더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이 놈의 목을 분질렀다.
깔끔하지만 확실한 소리가 울려퍼지고, 생을 잃은 침입자의 몸이 스르륵 무너졌다.
쿵-
묵직한 소리와 함께 시체가 바닥을 나뒹구는 순간.
강혁은 더 볼 것도 없다는 듯이 자리를 비웠다.
“어차피 네가 말 안 해도 짐작가는 곳이 없는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정 힘들면 다른 곳에 정보 수집을 부탁하면 그만이지.”
알케미를 노릴만한 곳.
당연히 제약 회사들이다.
알케미 하나로 인해서 막대한 손해와 프리미엄을 잃게 된 그들.
그들이 이번 침입과 이전의 침입들의 주요 고객일 터.
거기까지 생각을 마친 강혁은 터벅터벅 알케미가 사라진 지하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뭘 하다가 그리 늦게 오는 건가! 중요한 순간이 코앞이거늘!”
“네 아내인 걸 왜 나까지....”
“네가 큰 도움을 주었고, 세나 또한 그걸 바라고 있으니까. 나도 마찬가지고.”
“....쯧, 준비는 끝난 건가? 세나가 보이지 않는 걸 보니 그런 것 같긴 하다만.”
지하실.
어두컴컴하지만 세나의 시체가 놓인 곳만큼은 환하기 그지 없는 곳.
그곳에서 강혁은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알케미만을 볼 수 있었다.
같이 내려온 세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기에 합리적인 추론을 하였고, 그의 생각은 옳았다.
“맞아, 그녀는 오랜만에 자신의 몸에 안착할 준비를 하고 있지.”
“시간은?”
“....역시 알고 있나.”
시간이라는 말에 씁쓸한 얼굴로 담담하게 그는 입을 떼었다.
“끽해야 1시간 정도겠지. 그녀에겐 아마 맞지 않은 옷을 입은 듯한 거부감이 들 거야. 지금 상황은 대충 빙의나 다를 바 없는 일이니까.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기 위해선 그만한 대가가 필요해.”
“짧네.”
“짧지. 네가 그 고생을 해서 데려와도 바뀌는 건 그리 많지 않다는 게 문제긴 해. 그리고 더 해야 할 일이 남았다는 것도 문제고.”
“미안해 하지 마. 어차피 내가 해야 할 일이고, 그에 대한 대가도 두둑하게 받았으니까. 무엇보다 프로토타입 현자의 돌도 먹었으니까 그 값은 해야지.”
“....고맙다.”
강혁의 말을 듣다 울컥한 나머지 그렁그렁한 눈물을 눈가에 머금는 알케미.
그의 모습에 강혁은 어처구니 없다는 듯이 헛웃음을 터뜨렸다.
“나 보면서 울지마라. 남자가 우는 거 그리 보고 싶진 않거든. 꼴 뵈기도 싫고.”
“....싱겁기는.”
무뚝뚝한 강혁의 대답에 눈물이 뚝 그쳐진 그가 강혁을 흘겨볼 때.
강혁은 턱짓으로 지하실 중앙에 마련된 테이블 위에 가지런히 놓여진 세나의 시체를 가리켰다.
“안할 건가?”
“....해야지. 일단 그녀가 다시 깨어나긴 해야 할 테니.”
덤덤하게 말하곤 테이블을 향해 다가간 알케미가 품에서 여러 포션병들을 꺼내 그녀에게 뿌리기 시작했다.
부족한 생명력을 채워주는 갖가지 포션들이 세나의 몸으로 흘러들어가고, 이내 흡수되어 사라진다.
이윽고 완전히 사라진 포션들을 뒤로한 채, 몇 걸음 뒤로 몸을 뺀 알케미가 부드럽게 손을 맞잡고는 눈을 감고 기도했다.
“내 앞에서 신들한테 기도하는 건 조금 선 넘는다고 생각하지 않아?”
“....신한테 하는 거 아니다. 세나에게 하는 거지. 지금 이건 세나의 정신력으로 극복해야 하는 문제니까.”
“....그런 거라면야.”
신이 아닌 세나에게 향하는 기도.
그렇기에 인정한다는 듯 가볍게 고개를 끄덕거린 강혁의 시선이 테이블 위에 세나에게로 닿았다.
마치 살아있는 듯한 상태인 것은 물론이고 그와 동시에 서서히 생기가 흘러나오는 것을 느끼며 강혁은 마른 침을 삼켰다.
‘정말 그녀는 되살아날 수 있을까?’
직접 명계에서 데려오기는 했으나 죽은 자가 살아돌아오는 일이 쉽지만은 않은 일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강혁이었다.
생과 죽음이란 본디 그런 법이었고, 지금 알케미가 하는 것은 그것을 부정하는 일이었다.
역천은 언제나 위험했으며 가능성이 낮았다.
하지만.
드드드드-
넘쳐나는 생명력은 테이블을 넘어 지하실 전체를 뒤흔들었다.
서서히 진동하는 지하실 안에서 가볍게 자세를 유지하는 강혁은 옆에서 비틀거리는 알케미를 부축했다.
“괜찮나?”
“괜찮아야지. 안 괜찮아도 괜찮게 만들어야지. 곧 세나가 돌아오는데 안 괜찮으면 그게 더 이상한 일 아니겠나.”
허허로이 웃으며 부축을 받아들이는 알케미는 순수하게 기뻐하고 있었다.
사랑하는 그녀가 돌아온다는 사실의 기쁨을 느끼며 시선을 떼지 않는 알케미를 부축한 채로 강혁 또한 테이블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두 눈 똑바로 뜨고 봐라. 그래도 네 아내가 다시금 살아나는 모습인데 놓치면 안 되지. 안 그래?”
“....맞는 말만 골라서 하니 뭐라고 할 수도 없고.”
핀잔 하나 던지는 걸 잊지 않는 강혁의 모습에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면서도 알케미는 서서히 변화가 생겨나는 테이블 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화아아악-
밝은 빛무리가 눈앞을 가득 채우는 순간.
“....알케미?”
부드러운 여성의 목소리가 지하실을 가득 채웠다.
“....세나!”
두 눈에 눈물이 방울질 정도로 가득 채운 알케미의 목소리에 테이블 위에서 벌떡 일어난 세나가 그에게 달려가 그의 품에 안겼다.
“컥-”
묵직한 충격에 알케미가 비명을 토해냈다.
하지만 그러는 와중에도 알케미는 자신의 품에 안긴 세나의 몸을 놓치지 않았다.
서서히 온기를 되찾아가는 그녀의 몸을 품에 안은 채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그를 뒤로한 채로 강혁은 지하실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지금은 두 사람의 시간이지. 불청객은 잠시 빠져야겠군.’
어차피 한 시간이 남은 이상 대화를 할 시간은 충분할 거라 생각하면서.
*십여 분의 시간이 흐른 이후.
엉망이 된 거실에서 그나마 멀쩡한 의자에 걸터앉아 지하실에 들어간 두 사람을 기다리던 강혁은 지하실 계단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해후는 끝났나?”
“자네 덕분이야. 모든 게 자네 덕분일세.”
“뭐, 그건 맞는 말이긴 하지.”
“아무튼 세나도 자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하더군.”
말을 마치고 자리를 비켜준 알케미의 뒤로 본래의 모습을 되찾은 세나가 서 있었다.
외형 같은 생김새는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입고 있는 옷이나 악세서리 등이 미세하게 다른 그녀가 강혁의 앞에 서서 환히 웃고 있었다.
“이 모습으로는 처음 뵙네요. 그죠?”
“그러게나 말입니다. 처음 뵀을 때부터 느낀 거지만 저 녀석이 복 받았네요. 왜 세나 씨를 살리려고 했는지 이해가 갈 정도입니다.”
입에 바른 말은 아니었다.
세나는 충분히 아름답고 매력이 넘치는 여성이었고, 그녀에게 빠지지 않을 남성은 없다.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완벽했으니까.
하지만 강혁에겐 그녀보다도 아름답고, 매력이 넘치는 여성들이 주변에 많았다.
그렇기에 세나에게 마음을 품기보단 그저 순수한 칭찬을 건넬 뿐이었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세나 또한 빙그레 웃으며 순수하게 기뻐했다.
“칭찬 고맙네요. 이렇게 대화할 수 있는 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게 슬플 따름이에요.”
“꼭 다시 대화할 수 있을 겁니다.”
“믿고 있을게요.”
싱긋 웃으며 강혁의 말에 힘을 보태주었다.
자신을 믿고 웃음을 건네는 세나를 위해서라도 꼭 신의 사체를 얻어야겠다고 각오를 다지던 그때.
“슬슬 시간이 다가와.”
“아직도 30분 넘게 남았는데 뭘.”
“움직이고, 말하고 하는 데에도 생명력이 소모 된다고.”
“....참 빌어먹게도 정가로 움직이는구나.”
족히 한 시간을 살아있을 수 있던 생명력의 소모가 너무 가파르다며 알케미가 안절부절 못했다.
침입자들의 앞에서도 당당하던 그의 처량한 모습에 강혁은 어쩔 수 없다며 한 발자국 물러섰다.
“대화 나눠. 어차피 영혼 상태에서도 대화는 나눌 수 있겠지만....네가 원한 건 그게 아니잖아?”
“....고맙다.”
“고마울 게 뭐 있어. 내가 말했지? 우린 비즈니스 사이라고.”
“크흐....그래, 비즈니스 맞지. 대가는 이따가 주도록 하지.”
비즈니스라는 말에 웃음을 터뜨리는 알케미.
그는 이윽고 강혁의 어깨를 두어 번 두들겨 주고는 세나의 옆에 걸터앉았다.
그리고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눈에 담으며 강혁은 다시금 자리를 비켜줘야만 했다.
“하아, 결혼 안 한 사람 서러워서 살겠나.”
왠지 모르게 옆구리가 추운 강혁이었다.
*“끝났나?”
“그래, 시체를 눕혀주고 오는 길이야.”
얼마 간의 시간이 지났을까?
씁쓸한 얼굴로 곁에 다가오는 알케미의 모습에 강혁은 본능적으로 시간이 다 되었음을 직감했고, 그건 옳았다.
세나의 몸을 눕혀주고 오는 길이라는 그의 말에 강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금방 다시 볼 수 있을 거다.”
“맞아, 그때까지는 방금과 같은 일은 자제할 생각이다.”
“왜?”
“몸에 무리가 가거든. 잘못하면 부활하자마자 다시 죽는 말도 안 되는 일을 겪을 것 같아서.”
“크흐, 그래. 그러면 안 되지. 나도 두 번은 무리라고.”
앓는 소리를 하는 강혁을 향해 미소를 드러내는 알케미는 이윽고 그의 어깨를 두들겼다.
“꼭 부탁하지.”
“....후우, 그럼 얼굴도 봤으니 난 가봐야겠다.”
“어딜? 조금 쉬지 그래.”
명계에 갔다 오고, 세나와 대화도 하지 못한 그가 떠난다는 말에 알케미는 걱정어린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지만 강혁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빨리 세나가 본래의 모습을 되찾으려면 빨리빨리 움직여야지. 걱정하지마. 멀쩡하니까.”
말을 마치기 무섭게 날개를 펄럭이며 자리를 박차고 날아오른 강혁은 이윽고 그 모습을 감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