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올 마스터#137
똑똑-
“누구지? 딱히 올 사람이 없을 텐데.”
미국.
그곳에서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외진 곳에 지어진 대저택.
당연하게도 그곳에 올 수 있는 이는 드물었다.
더군다나 자신의 집 밖에 마련된 모든 함정을 뚫고 들어올 수 있는 드문 이 중에서도 다시 한번 손에 꼽을 정도.
“....이강혁 그 녀석이 그리스에서 사라진 뒤로 며칠이나 지났다만 그래도 곧바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닐 텐데....암살자인가?”
명계와 지구의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
당장 스틱스 강에서 보낸 시간은 몇 시간 뿐이고, 페르세포네와의 대화 또한 그리 길지 않았건만 이미 지구에선 며칠이란 시간이 흐른 뒤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강혁이 벌써 돌아오진 않았으리라고 생각하며 알케미는 품속을 뒤졌다.
차라락-
아공간.
돈 많은 이들의 전유물이자 헌터들로서는 바라마지 않는 아이템에서 수십 개의 포션을 꺼내든 알케미는 차분하게 그것들을 마시기 시작했다.
여러 종류로 이루어져 각기 다른 효과를 지닌 포션들이 하나둘 알케미의 뱃속으로 사라지고 모든 포션이 그의 배 안으로 사라졌을 무렵.
그는 문앞에 도달했다.
“과연 이번엔 어떤 놈들이려나.”
강혁이 명계로 떠나기 전이나 후에나 그는 언제나 암살의 위협에 시달려왔다.
그도 그럴 것이 알케미가 가지고 있는 것은 돈 뿐만이 아니라 목숨도 살 수 있는 것들.
당연히 날파리가 꼬이지 않는 게 더 이상한 일일 터.
그렇기에 알케미는 언제나 그들을 잡아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 적도 많았다.
철컥-
생각을 마치고 문고리를 돌린 순간.
콰챵-
집에 달린 유리창이 터져나감과 동시에 인영들이 깨진 유리창 너머로 들어서기 시작했다.
“흡!”
그들의 습격을 바라봄과 동시에 몸을 날린 알케미의 몸이 첫 번째 침입자에게 닿았다.
“일단 한 놈.”
쩡-
다가섬과 동시에 복부에 틀어박히는 단단한 주먹.
신체 강화 물약과 경질화 물약, 거기에 근력 증가 물약까지 더해진 결과물은 훌륭했다.
“....켁-”
최소 A급은 되어 보이는 헌터가 연금술사로서 일반인보다 조금 더 나은 수준의 몸을 가진 알케미의 주먹질 한 번에 먹은 것들을 게워낸다.
순식간에 더러워진 바닥에 눈살을 찌푸린 것도 잠시.
“순순히 가진 걸 내놓는다면 목숨만은 건질 수 있을 거다.”
“지랄. 내가 가진 걸 내놓고 목숨도 취해갈 놈들이 말은.”
방금 전 때려눕힌 헌터와는 비교도 안 되는 기세를 풍기는 대장으로 보이는 침입자.
그의 말에 알케미는 인상을 찌푸렸지만 그래도 포기하진 않았다.
‘세나가 곧 돌아온다. 그런데 목숨을 저버릴 수는 없지.’
강혁을 만나기 전이었다면 그냥 죽을까? 하는 생각도 했을 그이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더불어 강혁이 세나의 영혼을 데리러 명계까지 감으로서 그녀를 되살리는 일은 거의 막바지에 이른 상황.
알케미는 자신의 보잘 것 없는 목숨을 포기할 수 없었다.
‘S급 헌터라고 하더라도 무적, 불사는 아니다. 충분히 틈을 노리고 싸우면 돼.’
세나.
그리우면서도 정겹고 평생을 함께 해왔던 바로 그 이름.
그 이름을 가진 존재가 언제가 되었든 다시금 자신의 곁으로 올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상 그는 살아야만 했다.
“크아아압!”
기합을 내지르며 자리를 박찬 알케미의 신형이 침입자들을 향해 쇄도했다.
공격은 최고의 방어라는 말을 지키는 완벽한 모습에 침입자들도 마른 침을 삼켰다.
‘여태까지 많은 암살자가 그를 찾았음에도 우리 차례까지 왔다는 건 그의 실력이 대단하다는 증거.’
‘고작 연금술사라지만 우리가 모르는 어떤 물약이 있을지도 모르니 조심해야 한다.’
수십 번이 넘는 암살자들의 습격에서도 건강하게 살아남은 알케미.
그를 얕보는 것은 죽여 달라고 목을 내미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그렇기에 긴장감 어린 얼굴로 공격에 대비하려던 그때.
“이거나 처 먹어!”
콰챵!
십여 개의 물약병이 허공을 격해 날아가 침입자들에게 닿았다.
치이이익-
“....끄아아악!”
“모....몸이!!!”
순식간에 녹아내리는 옷과 살들을 바라보며 그들은 비명을 내질렀다.
마취도 하지 않은 채로 녹아내리는 살점들은 그들에게 끔찍한 고통을 주기엔 모자람이 없었다.
녹아내리는 신체와 동시에 전투 능력을 대부분 상실한 이들이 무너져 내리고, 갑작스레 무너져 내린 앞열에 의해서 뒷열의 헌터들 또한 당황했다.
“제....젠장! 막아!”
앞열은 대부분 전사 계열.
즉, 몸빵을 하기 적합한 이들로 이루어져 있었고, 뒷열은 원거리 공격이 가능한 유리 대포들로 가득했다.
앞에서 시간을 끌며 뒷열은 알케미를 무력화 시킬 생각이었던 것.
하지만 그들의 계획은 초장부터 어그러졌다.
알케미의 물약에 대한 정보가 없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음을 그들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그들 또한 하나 같이 A급 혹은 S급에 필적한 헌터들.
“프로스트 필드!”
“인탱글!”
각자의 능력을 완벽하게 다룰 수 있는 그들은 다가오는 알케미를 막아내기 위해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능력들을 모조리 끌어내는 데에 성공했다.
바닥이 얼어붙을 정도의 냉기와 함께 갑작스레 자라난 나무 뿌리는 알케미를 막아내기엔 충분했다.
“....쯧.”
자신의 몸을 옭아맨 냉기와 나무 뿌리들.
그것들을 쳐내기 위해서 새로운 물약을 꺼내들려는 찰나.
침입자들이 반격이 시작되었다.
“프로스트 혼.”
“파이어 스피어.”
“하압!”
여러 개의 마법들과 기합성을 내지르며 달려드는 침입자들의 모습에 알케미의 안색이 딱딱하게 굳었다.
‘젠장, 이래서 빠르게 처리하려고 했는데.’
연금술사로서의 재능은 탁월하지만 그의 전투 능력은 거의 전무하다.
물론 전투 센스 자체는 꽤 좋은, 이른바 뇌지컬 타입.
하지만 물약을 이용하는 것이 주된 공격인 만큼 몸 자체가 묶이게 되는 경우엔 할 수 있는 일이 크게 줄어들게 된다.
“지금이다, 묶었으니 빨리 제압해!”
“살아있기만 하면 된다. 죽지 않는 선에서만 마음껏 공격해!”
귓가를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목소리에 알케미는 이를 악물었다.
“이거까지 사용하긴 싫었는데. 애써 만든 보금자리가 엉망이 되잖아.”
최후의 보루이자 알케미가 지금까지의 습격들을 모조리 견뎌낼 수 있었던 이유.
“알케미 타워 가동.”
자신의 별명인 알케미를 따서 붙인 성.
알케미 타워.
그가 머무는 집 자체가 하나의 성이 되며 그 이름대로 알케미의 내부에 들어선 것처럼 변하게 되는 것.
막대한 자금과 연금술 지식이 집대성된 그의 집은 하나의 요새와도 같았다.
집 내부에서 모습을 드러낸 각종 화기와 물약들.
나아가 무기들이 알케미를 향해 달려드는 침입자에게 쇄도했다.
콰과과광!
마호가니 나무로 만든 테이블이 박살이 나고, 의자가 가루가 되었지만 알케미는 멈추지 않았다.
“방어! 방어!”
“마법사, 실드를 쳐!”
전쟁 수준을 방불케하는 장비들의 향연에 침입자들은 놀람을 금치 못했다.
결국 뒤로 물러서며 방어를 하려고 했지만 그걸 가만히 두고 볼 알케미가 아니었다.
“저격.”
탕-!
저격이라는 말과 동시에 숨겨진 곳에서 쏘아진 한 발의 총알.
그것이 마법사를 꿰뚫었다.
타다다당!
이윽고 한 발에 이은 여러 발의 탄환의 소리가 집안을 시끄럽게 만듬과 동시에 다른 마법사들의 머리를 박살냈다.
수박 터지듯 박살이 난 머리와 그 파편들이 바닥을 나뒹구는 모습을 바라보며 알케미는 한숨을 내쉬었다.
“젠장, 이래서 이걸 꺼내기 싫었다고.”
망가져가는 집안.
그곳은 세나와의 추억이 서린 그의 마음의 안식처나 다를 바 없었다.
그녀가 물걸레질을 하던 바닥.
그녀가 쓰다듬던 벽지.
그녀가 아끼던 찻잔 등.
최대한 보존에 보존을 거듭하던 물건들이 전부 다 박살이 났다.
여태까지 단 한 번도 사용한 적이 없던 자신의 최후의 보루를 사용한 순간.
알케미는 포기했다.
‘어차피 세나가 돌아오면 다시금 새롭게 채워질 물건들이다, 여기에 연연해서 목숨을 버리는 것보단 낫지.’
목숨만큼 소중하다는 것은 상대적이다.
새로운 목숨만큼 소중한 것이 나타나는, 그것도 본래 있던 것보다 더 갚진 것이 되돌아오는데 그깟 찻잔이나 벽 따위는 그에게 생각할 필요조차 없이 버릴 수 있는 것에 불과했다.
아깝긴 했지만 그것이 상념의 전부.
“쓸어버려.”
서늘한 시선으로 자신을 죽이고 자신의 업적을 강탈하려한 침입자들을 처리한다.
그것이 그가 해야 할 일이었다.
콰과과광-
튼튼하게 지어진 집이 휘청거릴 정도의 폭격이 커다란 집 안에서 계속해서 이루어진다.
한 번은 피해도 두 번은 제대로 피할 수 없었고, 상처 입은 몸으로 세 번째 공격을 막기란 불가능.
하나둘 쓰러져가는 침입자들의 모습을 눈에 담으며 한숨을 토해낼 때.
“아쉽지만 당신을 잡는 것으로 만족해야겠군.”
“....!!!”
멀쩡한 모습의 침입자 하나가 알케미의 앞에 내려섰다.
S급 헌터.
유일한 S급 헌터였던 침입자였다.
그는 S급 헌터답게 알케미 타워의 파상적인 공세에도 불구하고 멀쩡한 모습이었다.
‘역시 일정 이상의 강자에게는 통하지 않는 건가. 제길! 이대로 죽어야 하나? 세나와의 만남을 목전에 두고? 말도 안 돼!’
자신의 죽음이 임박했음을 절로 느낄 수 있는 상황 속에서 알케미는 이를 악물었다.
하지만 그런 알케미의 모습에도 불구하고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까득-
“꼭 이렇게까지 해야 되나?”
“그럼? 나를 믿고 의뢰를 맡겨둔 사람에게 뭔말을 하라고? 자료라도 넘겨주면서 해야 이치에 맞지 않을까 싶은데?”
어깨를 으쓱거리며 자료를 요구하는 그의 모습에 알케미는 짜증이 치솟았다.
‘빌어먹을 놈. 어차피 죽일 거면서 생색은.’
자료를 주든 안 주든 자신의 입막음을 위한 처리는 분명할 터.
결국 알케미는 가장 하기 싫었던 자신의 배경 자랑을 시작했다.
“내 뒤에 누가 있는 줄 아나? 올 마스터 이강혁. 그가 있다. 그런데도 날 죽이려고? 네 의뢰주는 물론, 너와 네가 속한 조직 전체가 박살이 날 거다.”
“....그건 좀 섬뜩한 말인데.”
올 마스터 이강혁.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그의 이름에 침입자는 살짝 굳은 눈으로 알케미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래도 내가 할 일은 변하지 않지.”
“자....잠깐....!!!”
아랑곳하지 않고 손을 뻗는 그의 모습에 알케미가 허겁지겁 물약들을 꺼내려고 했지만 상대가 더욱 빨랐다.
“그런 것도 모르고 내가 이곳에 왔을까 봐. 이미 모든 준비는 끝났다. 그는 우리가 이곳에 왔는지도 모를 거야.”
자신의 모든 것을 지워낼 준비를 마친 그의 서늘한 음성에 알케미는 모든 것이 끝났음을 깨닫곤 눈을 감았다.
‘세나....당신을 살리기 위해서 많은 것들을 준비했는데 결국 내 손으로 직접 당신을 살린 순 없을 것 같군. 이강혁 그 녀석이 부디 당신을 제대로 살려주길 빌 수밖에 없나.’
자신에게 연금술을 가르침 받은 이강혁 그가 부디 자신의 염원을 이루어지길 바라면서 그가 자신의 최후를 기다릴 때.
“누구 마음대로 남의 스승을 죽인다 만다야? 뒤질래?”
익숙하지만 날이 서 있는 목소리와 함께 자신을 향해 날아들던 팔이 멈추는 걸 느낀 알케미가 설마하는 얼굴로 눈을 떴고.
“오랜만? 아니 나한테만 오랜만인가?”
그곳에는 자신의 친구이자 제자인 강혁과 그에게 팔을 잡혀 어쩔 줄 몰라하는 침입자.
그리고.
“....세나!”
반투명하지만 분명 자신의 아내인 세나가 존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