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올 마스터#135
세나를 등에 업고 페르세포네의 창문을 뛰어 넘은 강혁은 자신의 날개를 펄럭였다.
파앙-
공기막이 터져나가는 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경계가 허술해진 검은 인영들의 포위망을 깨부쉈다.
“....컥!”
“막아라! 놈이 여깄다!”
강혁의 위치를 확인한 검은 인영들은 각자 소리를 내지르며 강혁의 앞을 가로막으려 들었다.
하지만 이미 하나의 신격에 오롯이 도달한 강혁의 앞길을 막아서기엔 그들의 능력이 부족했다.
푸쉭-
형체가 없는 검은 인영들이 강혁의 손에 맺힌 마기와 신성력에 얻어맞고 연기가 되었다.
꾸물꾸물 움직이며 다시금 본래의 모습을 되찾으려 하는 검은 인영들의 중심에 마기와 신성력을 심은 뒤, 강혁은 다시금 자리를 박찼다.
“방금은 뭘 한 거에요? 검고 하얀 걸 저 사람들 안에 넣으시던데.”
“응집을 방해한 겁니다. 저놈들의 모습을 가만 보니 형태가 없고, 몸안에 있는 근원을 바탕으로 몸을 재생하는 것 같더군요. 그래서 다른 이질적인 기운을 심는 것으로 그 응집을 더디게 만든 거죠.”
“....그걸 그 짧은 시간 사이에 알아냈다는 게 믿기지가 않네요.”
고작해야 몇 번 만나지도 않았고, 직접적인 전투는 지금이 처음.
그런데 강혁은 곧바로 검은 인영들의 약점을 꿰뚫고, 그들을 방해하기 위한 효과적인 방법을 사용했다.
‘전투 센스가 얼마나 좋은 거야?’
그녀도 뛰어난 연금술사로 이름 높았던 남편의 곁에서 수많은 헌터들을 보았다.
그들은 충분히 뛰어났고, 대단했다.
하지만 그녀가 만난 그 어떤 헌터도 강혁처럼 하진 못했다.
처음 보는 이, 직접적으로 부딪친 건 한 번뿐인 이와의 전투에서 그의 약점을 단숨에 파악하고 그에 효과적은 공격을 하는 이를 그녀는 본 적이 없었다.
‘....그이가 좋은 친구를 뒀구나.’
어마어마한 수준의 헌터를 친구를 뒀음을 다시금 깨달은 그녀가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을 때.
“꽉 잡으세요.”
“....예?”“아무래도 좀 거칠게 나가야 할 것 같으니까.”
-놈을 잡아라!
-막아!
저 멀리서 검은 안개와 같은 검은 인영들의 무리가 자신을 향해 다가오고 있음을 깨달은 세나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그와 동시에 강혁의 전신에서 기세가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죽고 싶은 놈들부터 들어와.”
놈들의 근원이 되는 것을 부수기엔 시간도 없고, 귀찮아서 마기와 신성력을 심는 것으로 본래 상태로 되돌아오는 걸 늦추는 걸 택했다.
하지만 그들이 끝까지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다면 답은 하나 뿐이었다.
‘모조리 죽인다.’
그들이 자신을 쫓을 생각조차 할 수 없도록 무(無)로 되돌려버리는 것뿐.
그런 생각을 끝으로 강혁은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검은 인영들을 모조리 박살을 내버려 강혁은 전진했다.
지구로 되돌아가기 위해서.
*콰릉- 콰릉- 꽈르릉-!
“열심히도 하네.”
창밖을 바라보며 페르세포네가 중얼거렸다.
마치 어두운 날씨에 벼락이 치는 듯한 소리가 지축을 울린다.
남들이 듣는다면 두려움에 벌벌 떨만한 소리지만 페르세포네에겐 그저 즐거운 소리와도 같았다.
“나아가, 더 열심히 나아가서 이 빌어먹을 명계를 빠져나가. 그래야....그래야 나와 한 약속을 지킬 수 있겠지.”
창밖을 향해 새하얀 자신의 팔을 내밀고 거친 기운의 파동을 손끝에서부터 느끼며 페로세포네는 간절히 바랬다.
“무슨 약속을 말하는 거지?”
“....!!!”
바로 그때, 그녀의 뒤에서부터 들려온 익숙한 목소리에 아련한 얼굴을 하고 있던 페르세포네의 얼굴이 야차처럼 일그러졌다.
“하데스!”
“그래, 내 이름이 하데스이긴 하지. 이 명계의 주인이자 당신의 평생을 함께할 남편.”
“아니? 당신은 저열한 납치범에 불과해. 그런 소름끼치는 말을 입에 담지도 마.”
하데스.
명계의 주인이자 죽음의 왕이라고도 불리는 이.
그가 페르세포네의 뒤에 서 있었다.
그녀가 느끼지도 못했을 때, 이미 그녀의 뒤에 다가온 하데스는 부드럽게 페르세포네를 끌어안았다.
“왜 그렇게 화가 난지 모르겠군.”
“당신의 얼굴을 봐서.”
“이런, 그래도 수천, 수만 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함께 봐온 사이 아닌가. 이젠 익숙해질 때도 됐지 않나?”
“빌어먹을 납치범의 얼굴을 그만큼이나 보았으니 미치지 않은 걸로도 족해.”
싸늘함이 가득 담긴 페르세포네의 대꾸에 씁쓸한 미소를 머금은 하데스가 창밖을 바라보았다.
“올 마스터로군.”
“....맞아.”
어마어마한 거리가 떨어져 있었지만 전투를 두 눈으로 지켜본 것처럼 하데스가 중얼거렸다.
그의 시야는 명계 전체에 드리워져 있음을 아는 페르세포네이기에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와 약속을 한 건가? 대체 무슨 약속을 한 거지?”
“당신이 알 필요 없어!”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하데스는 약속이 무엇인지를 물었지만 페르세포네는 앙칼진 목소리로 그런 물음을 잘랐다.
어쩔 수 없다는 얼굴이 된 하데스가 방금 전 페르세포네처럼 창밖으로 팔을 뻗었다.
우웅-
‘대기가 울리는군.’
죽은자들의 세상인 명계라고 하나 실제 세상과 크게 다를 건 없었다.
대기가 존재하고, 태양도 존재하며, 구름도 있다.
지구와 크게 다르지 않는 세상에서 느껴지는 떨림.
그 떨림의 시발점을 하데스는 정확하게 짚어내곤 입꼬리를 비틀며 말했다.
“당신이 말하기 싫다면 나야 어쩔 수 없지. 다른 녀석처럼 고문할 수도 없고.”
“알면 다행이네요. 당신이 제게 그런 짓을 하려고 했다간 어머니께서 가만히 두지 않으실 겁니다.”
“데메테르인가. 뭐, 그녀도 만만찮지만 내가 걱정하는 건 그 위에 있는 존재지.”
자신의 배 다른 동생을 떠올리며 싱긋 웃음을 머금은 하데스가 말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저기 날파리처럼 날아다니는 벌레는 그들도 신경쓰지 않겠지.”
덤덤하지만 의미가 확실한 하데스의 말을 듣고나서야 페르세포네는 그가 하려는 일이 무엇인지를 깨닫곤 새된 비명을 내질렀다.
“....잠깐!”
“늦었어.”
창밖으로 뻗은 하데스의 팔은 페르세포네의 가녀린 팔과 다르게 묵직함을 지닌 근육질에 가까웠다.
그리고 그의 팔과 손을 향해 서서히 몰아치는 강렬한 기세는 이윽고 저 멀리에서 검은 인영들을 뚫어내고 있는 강혁을 향해 쇄도했다.
“날파리를 붙잡아 그대와 날파리가 한 약속에 대해서 알아야겠어.”
“내가! 내가 말해주면 되잖아!”
악에 받친 목소리로 소리치는 페르세포네의 목소리에도 하데스는 쏘아낸 기운을 멈추지 않았다.
“늦었어. 내가 물었을 때 답했어야지.”
악동.
장난기 어린 그의 얼굴에 담긴 생각을 읽은 페르세포네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기 시작했다.
*콰직- 콰드드득-
달려드는 검은 인영들을 박살내며 전진, 또 전진하던 강혁은 등 뒤에서 느껴지는 강력한 기운에 인상을 찌푸렸다.
“잠시만 날고 계시죠.”
“....예? 꺄아아악!”
말이 끝나기 무섭게 강혁은 등 뒤에 업혀 있던 세나를 허공으로 던졌다.
갑작스레 아무것도 없는 수천 미터 상공 위에 내던져진 세나가 앳된 비명을 내질렀지만 강혁의 마법으로 인해 다행히도 추락하진 않았다.
허공에 둥둥 떠서 가슴팍을 그러쥔 채로 놀람을 추스르는 그녀를 뒤로한 채로 강혁은 전방을 바라보았다.
콰가가각-
대기를 가르고 날아드는 검은 기운.
검은 인영들을 상대하면서 많이도 느꼈던 바로 그 기운이었다.
하지만 그들과 비교하는 것 자체가 미안할 정도로 강력한 기운에 눈살을 찌푸린 강혁이 생각나는 이름 하나 씹듯이 내뱉었다.
“하데스인가.”
하데스.
강혁이 발을 디딘 명계라는 세상의 주인임과 동시에 페르세포네의 남편이며 납치범인 이.
그의 강함은 전율적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실제로 강혁을 향해 짓쳐드는 검은 기운에서 느껴지는 강함은 폭발적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
“....흡!”
푸화아악-
힘을 모음과 동시에 강혁의 전신에서 터져나간 마기와 신성력이 어우러지며 강혁을 감쌌다.
그와 동시에 검은 기운이 마기와 신성력으로 이루어진 보호막을 강타했다.
쾅-!
천둥벼락이 떨어지는 듯한 폭발음과 동시에 강혁의 보호막이 거세게 흔들렸다.
하지만 버텼다.
‘후우, 일단 한 번 버텼고.’
보호막이 부숴질 듯 거세게 흔들리는 것과 반대로 완벽하게 하데스의 공격을 막아낸 강혁이 허공에 떠 있는 세나를 향해 손을 뻗으려는 찰나.
-막아? 그럼 이것도 막아보거라.
머릿속에 직접적으로 울려퍼지는 남성의 목소리에 강혁의 기감이 경고등을 울렸다.
그의 경고와 함께 다시금 짓쳐드는 검은 기운.
그것은 아까와 달리 하나가 아니었다.
“....이런 젠장.”
혼자라면 어렵지 않게 막아볼만 하지만 이곳엔 강혁 혼자만이 있는 건 아니었다.
“세나! 이리로!”
“....네!”
세나.
알케미의 아내인 그녀 또한 이곳에 있었다.
그녀를 지키기 위해서 그녀를 다시금 곁으로 불러들인 강혁이 마기와 신성력에 마나를 덮었다.
더욱 크고 단단해진 보호막의 위를 검은 기운들이 거세게 후려쳤다.
쾅쾅쾅!
다행히도 하데스가 직접 휘두른 공격이지만 본체와 멀리 떨어진 까닭인지 강혁의 보호막은 무던하게도 그의 공격을 막아냈다.
‘....안 좋군.’
하지만 계속해서 검은 기운들이 보호막을 두들겼고, 보호막은 멀쩡했지만 강혁의 얼굴은 점점 썩어들어갔다.
이유는 간단했다.
츠츠츠츠-
검은 인영들의 근원이라고도 할 수 없는 검은 연기들.
그것들이 서서히 강혁의 주변을 에워싸기 시작한 까닭이었다.
하데스의 공격은 교묘하게 그들을 피해가며 강혁을 타격했고, 서서히 두껍게 쌓여가는 검은 안개는 결코 만만하게 볼 수 없었다.
‘저게 전부 검은 인영으로 바뀐다고 생각하면....탈출은 힘들겠군. 그럼 하데스에게 붙잡히는 건가?’
저 많은 검은 안개 전부가 검은 인영들로 바뀐다고 가정하면 필시 어마어마한 수의 검은 인영들로 변하게 될 터.
그걸 고려한 강혁은 조금 피해를 입더라도 자리를 박차고 나서야 할까? 라는 고민을 머금었다.
쿵쿵쿵-
그러는 동안에도 검은 기운은 계속해서 강혁의 운신을 방해했고, 검은 안개들은 늘어만 갔다.
-포기해라. 네 녀석은 이곳에서 살아 돌아갈 수 없으리.
이제는 익숙해져버린 하데스의 목소리와 함께 강혁이 이를 악물며 무리를 감행하려 할 때였다.
“준비해라.”
검은 안개에서 들려온 갑작스런 목소리에 강혁은 움찔했다.
“....?”
“지금!”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곧바로 터져나온 외침과 동시에 검은 안개에서 빠져나온 미량의 검은 안개가 하데스의 공격을 대신 맞아주었다.
그와 동시에 만들어진 조금의 빈틈.
“뭔지는 모르겠지만 고맙군.”
그 빈틈을 강혁은 놓치지 않았다.
순식간에 보호막을 해제하고 보호막을 구성하던 기운들을 전부 이동 속도에 때려 넣은 강혁은 가히 빛살처럼 쏘아졌다.
눈 한 번 깜빡한 사이에 저 멀리 사라진 강혁의 뒷모습만을 검은 안개들은 멍하니 바라보았다.
“페르세포네이시여, 원하시는 바를 이루시길!”
“페르세포네이시여!”
마지막 단말마를 끝으로 하데스의 기운에 적중 당한 검은 인영들의 몸이 스러져 사라졌다.
그리고 그들의 희생을 거름으로 강혁은 무사히 명계를 벗어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