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올 마스터#133
“....엄청 끈질기네.”
“아무래도 저희가 저 탑 안으로 들어가길 바라는 것 같은데요?”
“....어쩔 수 없죠. 안에서 무슨 일이 있더라도 둘이 나올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점점 자신들을 탑 쪽으로 밀어 넣는 검은 인영들의 모습에 강혁은 이를 갈았다.
이미 탑에 가까이 왔고, 탑을 중심으로 늘어뜨려진 수백, 수천이 넘는 검은 인영들은 결코 강혁의 탈출을 원하지 않았다.
정확하게는 그들을 부리는 이가 말이다.
‘젠장, 신이 부리는 존재다운 능력이라고 해야 하나? 나 혼자서라면 몰라도 둘이서 나가는 건 불가능하다.’
검은 인영이 수백이든 수천이든 이미 신위에 오른 강혁에겐 별 무리가 되지 않지만 반대로 신위에 오르지 못한 평범한 영혼인 세나에겐 아니었다.
결국 강혁은 탑 가까이 갈 수밖에 없었다.
‘누가 우릴 불렀는지는 모르겠지만....해코지를 하려고 하면 죽을 각오를 해야 할 거다.’
이 탑이 하데스의 것이라는 알고 있음에도 강혁은 그 마음을 바꾸지 않았다.
‘하데스고 나발이고 건드리면 뒤질 줄 알라고 해.’
어차피 신과 악마와는 척을 진 상황.
그런 와중에 하데스 한 명과 악연을 맺는다고 해서 강혁에게 달라지는 게 있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아까 전에 분명 그와 관련된 얘기를 했지 않습니까? 위험한 상황이 오면 저를....”
하지만 세나는 강혁이 그러는 것을 원치 않았다.
자신 때문에 강혁이 피해를 보는 상황 자체가 싫었던 것.
다만 강혁도 세나를 하데스의 탑에 두고 갈 생각이 없었다.
“우리가 나누었던 얘기는 어디까지나 저 밖의, 명계의 세상에 당신을 두고 가는 걸 전제로 한 얘기죠.”
“....하지만!”
“저와 적대하는 신과 악마는 셀 수 없이 많습니다. 그리고 저 탑은 분명 이 명계의 주인인 하데스의 것. 그 안에 당신을 버려두고 갈 수는 없습니다. 아니, 알케미와 당신이 괜찮다고 하더라도 제가 그럴 수 없습니다.”
침착하게 말을 이어나가는 내 모습에 세나도 할 말이 없었는지 결국 고개를 숙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강혁이 한 약속은 명계의 세상에 그녀를 두고 가는 것이지 하데스에게 볼모로 잡히게 두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생각을 마친 강혁은 검게 물든 칠흑의 탑 안으로 몸을 던졌다.
‘누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그것이 해가 된다면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
마지막 다짐을 끝으로 강혁과 세나의 몸이 탑 안으로 부드럽게 스며들었다.
*“....사라졌군.”
“그분께서는 대체 무슨 생각이신지....”
수백, 수천에 달하던 검은 인영이 둘로 합쳐지며 인간의 형상을 취한다.
그리고 이어진 두 사람의 말에선 자신들에게 명령을 내린 이에 대한 의문이 가득했다.
물론 그것도 잠시, 그들은 고개를 내저으며 의문을 멈추었다.
“우린 명령을 받는 자이지 명령을 해석하는 자는 아니니 여기까지 하지.”
“....그래, 모든 것은 봄의 여왕의 뜻대로.”
“봄의 여왕의 뜻대로.”
생각을 마치고 자신들에게 명령을 내린 봄의 여왕이자 명계의 꽃인 페르세포네가 기거하고 있는 탑을 바라보며 고개를 조아린 그들은 이윽고 연기가 되어 흩어졌다.
*“....여긴?”
“탑 안인 것 같군요. 저도 바깥에서만 보고 안에 들어와 보긴 처음이라 확신할 수는 없지만....연관 관계를 따져보면 탑 내부라는 건 확실하겠죠.”
“만약 정말 탑 안이라면 내부에 어떤 마법적인 혹은 신적인 처리가 되어 있는 게 확실하군요.”
탑 안.
그 안에 들어선 두 사람은 내부를 둘러보며 감탄을 터뜨렸다.
어마어마한 크기의 복도.
고성을 연상케하는 모습과 정리정돈된 깔끔함을 동시에 느끼며 두 사람은 탑 내부를 살폈다.
세나 또한 밖에서 탑을 여러 번 보았지만 그 내부는 본 적이 없었기에 신기해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바로 그때였다.
저벅저벅-
“....등 뒤로.”
“....네.”
복도 위를 걷는 발걸음 소리가 울려퍼지고, 강혁은 곧바로 세나를 등 뒤로 숨겼다.
지금 복도를 걷는 이가 자신을 이곳으로 부른 이인지 아니라면 탑 내부를지 키는 경비병일지 알 수 없어서였다.
‘기감에 잡히긴 하지만 그것이 적대적인지 아닌지는 파악이 불가능하다. 일단 직접 보는 것 말고는 답이 없겠어.’
그래도 최대한 경계심을 늦추지 않은 채로 강혁은 자신들에게로 향하는 발걸음에 집중했고, 이윽고 발걸음의 주인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시녀?”
얼마 지나지 않아 모습을 드러낸 이들을 확인한 강혁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시녀.
정갈한 복장을 차려 입은 그들의 모습은 분명 시녀였다.
높은 위치에 있는 이를 돕기 위해 존재하는 이들.
갑작스레 나타난 이들이 시녀라는 사실에 세나는 물론이고 강혁마저 의아함을 감추지 못할 때.
“저희의 주인께서 당신들을 뵙고 싶어하십니다.”
옅은 미소를 입가에 머금고 있던 이들이 입을 열고 강혁에게 초대의 의사를 보냈다.
당연하게도 그들의 초대에 대한 강혁의 답은 정해져 있었다.
“내가 왜?”
거절.
정확하게는 자신이 가야 하는 이유를 물은 것이었으나 그것과 거절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런 강혁의 대답을 알고 있었다는 듯 그녀들은 입가에 걸린 미소를 지우지 않으며 대꾸했다.
“제 주인께서 당신을 뵙고 싶어 하시니까요. 그리고 당신께도 그리 나쁜 일은 아닐 겁니다.”
마치 강혁이 자신들을 따라오지 않을 수 없을 거라는 확신이 담긴 듯한 목소리에 강혁이 인상을 찌푸리려던 찰나.
“칠죄....”
“....! 그걸 너희들이 어떻게?”
칠죄와 칠선.
그것들은 신과 악마에 의해서 철저하게 정보가 사라진 것들.
당연히 일개 시녀 따위가 알고 있을 정보가 아니다.
그들이 시녀에 걸맞지 않은 무위를 지닌 것은 사실이지만 신에 다다르진 못했다.
만약 그랬다면 시녀 따위나 하진 않았겠지.
결과적으로 그녀들의 정보의 원천은 그녀들이 아닌 무언가일 터.
그리고 강혁은 그 무언가가 무엇인지 자연스레 깨달았다.
“....너희들이 주인이군. 그걸 알려준 게.”
“맞습니다. 저희도 저희가 내뱉은 말에 대해서 아는 게 전무합니다. 그저 저희의 주인께서 저희를 보내시며 이 말을 한다면 당신이 따라올 것이라고 첨언하셨을 뿐이죠.”
“....세나, 따라가도 되겠습니까? 저들의 말은 분명 좌시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시녀들의 말을 모조리 들은 강혁은 고개를 돌려 세나를 바라보았다.
반투명한 영혼체를 일렁이며 강혁을 바라보던 세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세요.”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살짝 목소리가 떨려온다.
자신 때문에 세나가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는 사실이 강혁은 미안했던 것이다.
하지만 세나는 그런 강혁을 나무라지 않았다.
오히려.
“전 괜찮으니 어서 빨리 가보도록 하죠. 저들의 주인이 당신께 필요한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으니.”
“....감사합니다.”
강혁을 위로하며 강혁의 선택을 존중하고 그걸 더 빨리 하라며 종용했다.
그 사실에 강혁은 살짝 고개를 숙이며 목례를 하곤 고개를 돌려 시녀들을 바라보았다.
“가겠다.”
“....따라오시길.”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싱긋 웃으며 몸을 돌리는 그녀들의 뒤를 따르며 강혁이 물었다.
“그런데 너희들의 주인은 누구지? 하데스인가?”
자신이 들어온 흑색 거탑의 주인.
하데스의 이름을 담자 그녀들은 발걸음을 멈추더니 이내 질시가 담긴 시선으로 강혁을 바라보았다.
“그의 이름을 저희의 앞에서 담지 마시길.”
“그는 저희에게 있어 납치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저희는 오로지 봄의 여왕님만을 따르는 시녀.”
“하데스 그 납치범과는 단 하나의 연관성도 없으니 저희와 그를 연관지어 보지 마시길.”
“....그러지, 사과하겠다.”
짜증과 분노가 어린 그녀들의 목소리에 강혁은 다급하게 사과의 말을 건넬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목소리에 담긴 짜증과 분노는 진심.
‘이 자들은 하데스의 수하가 아니다. 완벽하게 적이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겠지.’
그렇기에 강혁은 그들과 척을 지는 것을 택하지 않았다.
순순히 건네는 사과에 그들은 만족하며 발걸음을 재촉하기 시작했다.
“도착했어요.”
“이 안에 저희의 주인님이 계십니다.”
그리고 얼마나 걸었을까?
기다란 복도 끝에 도착한 갈색빛이 감도는 목재 문 앞에 선 강혁은 시녀들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세나는....”
“함께 들어가셔도 됩니다. 어차피 두고 가실 생각도 아니셨잖아요?”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의 말에 강혁은 머쓱함을 느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그는 세나를 이런 탑 안에 홀로 두고 갈 생각이 없었다.
‘확실하게 아군이라고 볼 수도 없고, 저들의 주인이라는 자가 세나를 빌미로 협박을 할 지도 모르니까.’
시녀들에게서 적개심이 없음은 파악했지만 지금 대화하러 가는 이가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는 미지수인 상황.
‘누구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녀석 손바닥 위에서 놀아날 생각은 없다.’
생각을 마치고 어느새 열린 문 안으로 발걸음을 옮기면서 세나의 손을 잡아당길 때.
서서히 문이 닫히는 상황 속에서 시녀들은 강혁은 향해 미소를 건네며 고개를 숙였다.
“봄의 여왕님과 만족스런 대화를 나누시길.”
“....누구?”
쿵-
처음 듣는 이름에 강혁이 고개를 갸웃거릴 때, 갈색 빛이 감도는 문이 완전히 닫혔다.
그리고 다시금 열리지 않는 문의 모습에 고개를 내저으며 강혁은 어둠 속을 걸어 저 멀리 보이는 빛이 새어나오는 방을 향해 다가갔다.
*뚜벅뚜벅-
오랜만에 들려오는 누군가의 발걸음 소리에 방의 주인은 희미한 미소를 입가에 머금었다.
“어서와.”
그리고 모습을 드러낸 방문자.
강혁을 향해 그 미소를 남김없이 보내주었다.
“당신이 봄의 여왕인가? 시녀들이 그리 말하던데?”
자신에게 미소를 보내는 여성.
그녀의 별명인 봄의 여왕을 입에 담자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내가 봄의 여왕 페르세포네. 그리고....하데스의 아내이지.”
“....!!!”
처저적-
하데스의 아내.
그 말을 듣기 무섭게 강혁은 자세를 잡으며 그녀를 노려보았다.
“하데스의 아내라....나를 궁지에 몰기 위해서 부른 건가?”
자신이 적대시하는 이의 아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경계를 하기엔 충분했으니까.
하지만 이어진 그녀의 말은 강혁의 상상을 뛰어넘었다.
“아니, 난 그를 위해 움직이지 않아. 바깥의 아이들을 통해서 보았을 텐데?”
“....그럼?”
시녀들의 모습과 하데스를 적대시하는 듯한 그녀의 모습에 어느 정도 경계를 푼 강혁이 그리 물었고.
그에 대한 대답을 페르세포네는 순순히 답해주었다.
“이곳에서 나를 내보내 줘. 그것이 언제가 되었든 상관없이. 어차피 몇 년 정도는 더 기다릴 수 있어. 이미 수백, 수천....아니 그보다 더 오랫동안 기다려왔으니까.”
덤덤한 그녀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강혁은 반사적으로 답했다.
“내가 왜?”
맺고 끊음에는 무언가 필요하다.
그녀를 명계 바깥으로 데려가야 한다는 것에 대한 이유와 대가를 요구하는 강혁의 모습에 페르세포는 살풋 웃으며 답했다.
“칠선 중 한 명인 자선의 이름으로 하는 부탁이라면?”
“....하겠다.”
그리고 그 대답을 들은 강혁의 선택은 정해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