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올 마스터#132
명계의 도시.
그곳은 평범했다.
‘조용하네. 내가 어마어마한 일들을 겪으면서 온 것과 다르게 평범하기도 하고.’
그저 죽은 이들이 저마다 할 일을 하며 수다를 떨거나 생전의 이야기를 늘어 놓는 정도가 전부.
물론 이들 전부가 지구인들은 아닌 만큼 그들의 얘기는 꽤 흥미로운 것들도 있고, 내게 도움이 될만한 것들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지금 당장 중요한 것들은 아니었다.
터벅터벅-
반투명한 이들로 득시글거리는, 인간 뿐만 아니라 다른 종족들의 영혼이 한데 어우러진 도시 속에서 강혁은 자신의 신체를 가려줄 로브를 깊게 눌러썼다.
‘굳이 외부에 내 모습을 보여줄 필요는 없다고 했었지?’
-그래, 굳이 외부에 모습을 드러내면 너무 눈에 띈다. 차라리 로브라도 입고 다니는 게 좋겠어.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었어.’
다른 이들은 모두 영혼인 상태에서 자신 혼자만 살아있는 육체로 명계의 도시를 거닐면서 생길 소란들.
그걸 모조리 억누르기엔 강혁이 해야 할 일은 조용해야만 했다.
-찾을 방법은?
‘세나의 머리카락을 받아 왔다. 이걸 바탕으로 영혼의 위치를 추적하는 거지. 어려울 것도 없어.’
-좋군, 오래 걸리진 않겠어.
마법.
당사자의 머리카락까지 손에 쥐고 있는 상황에서 그 당사자의 영혼을 찾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아니, 애초에 머리카락이 없어도 그리 오래 걸리진 않았겠지만 이걸로 훨씬 단축되겠지.’
모래사장에서 바늘을 찾으라고 하더라도 순식간에 찾아낼 수 있는 경지에 오른 강혁이기에 머리카락의 유무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대신 머리카락을 통해서 그녀를 찾는 시간을 단축시키는 것을 물론이고 더욱 은밀하게 그녀를 찾을 수 있을 터였다.
‘그럼 시작해볼까.’
키이잉-
생각을 마치기 무섭게 강혁의 손 위에 올려저 있던 머리카락을 향해 마법이 발동되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강혁의 손 위에 올려져 있던 머리카락은 허공 위로 두둥실 떠오르더니 어디론가로 빛살처럼 날아갔다.
“성공이다.”
-쫓아라, 놓치면 말짱 꽝이니.
“나도 알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순식간에 거리를 벌리기 시작하는 머리카락 한 올을 쫓아 강혁은 명계 세상을 뒤집어 엎기 시작했다.
정확하게는 다른 영혼들이 눈치채지 못하는 선에서 말이다.
*“....후우, 꽤 힘든데?”
-이곳의 세상이 얼마나 넓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냐? 당연히 이 정도는 예상했어야지.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보다 훨씬 어려운 것 같은데. 이 정도면 우주에서 먼지 찾기 아니야?”
머리카락은 정말 명계 세상 전체를 돌아다녔다.
그리고 명계 세상은 결코 좁지 않았다.
지구의 수십 배에 달하는 세상.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긴 했다.
‘지구를 포함해서 어마어마한 수의 차원에서 죽은 영혼 중에서 일부가 이곳으로 향한다고만 가정해도 얼마나 많을지는....후우, 감조차 안 잡히네.’
어마어마한 수의 영혼이 있다면 그에 비례하는 세상도 커야할 터.
결국 명계가 어마어마한 크기를 자랑하는 초거대 세상이라는 건 이미 짐작하고 있던 강혁이었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명계 세상은 그의 예상보다 훨씬 넓었다.
괜히 우주에서 먼지 찾기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닐 정도로.
그래도 강혁은 퉤- 하면 땅바닥에 침을 뱉고는 손을 탁탁- 털었다.
“찾았다.”
반투명한 몸이지만 얼굴만큼은 선명한 그녀의 모습에 강혁은 미소를 지었다.
“세나 씨?”
“....예?”
평범한 집으로 보이는, 마찬가지로 반투명한 집 앞에서 빨래를 털고 있는 여성.
그녀가 바로 강혁이 명계에 오게 된 이유임과 동시에 알케미의 부인인 세나였다.
세나는 강혁의 부름에 당황을 금치 못했다.
‘....누구지? 로브를 깊게 눌러쓴 사람은 본 적도 없는데 말이야.’
알지 못하는 이.
이미 죽은 몸이라고는 하나 그녀로서는 경계를 할 수밖에 없었다.
죽은 몸으로서도 겪기 싫은 있기 마련이고, 만약 눈앞의 존재가 그걸 행할 수 있는 이라면 그녀에겐 죽는 것보다 더한 일이 펼쳐질 테니까.
다행히도 강혁은 그녀가 생각하는 이가 아니었다.
“알케미가 보내서 왔습니다.”
알케미.
자신의 남편의 별명이 사내의 입에서 나오자 그녀의 두 눈이 동그랗게 커지면서 입이 크게 벌려진다.
이윽고 놀람에 몸서리치던 그녀의 입이 바들바들 떨리며 열렸다.
“....알케미가? 설마 그이가 보내셨다는 말씀이신가요? 그럼 당신은....?!”
남편이 보낸 이.
아직 살아있는 그가 보낸 이라면 그 정체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스르륵-
깊게 눌러쓴 로브가 바닥에 널부러지고, 드러난 살아있는 이의 육체.
그것을 본 세나가 놀라 자리에 주저앉았다.
“....정말 살아있는 사람이군요.”
살아있는 사람을 볼 수 없는 명계에서 산 사람을 보았다.
그 사실은 그 어떤 공포보다도 놀라우면서도 그녀에게는 기쁜 일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곧바로 강혁에게 다가오지 않았다.
“당신이 그이가 보낸 사람이라는 걸 어떻게 확신하죠?”
‘똑똑하군.’
경계.
자신을 바라보며 묻고 보내는 말과 시선에 담긴 경계를 느낀 강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스윽-
“....이건?”
“알케미가 당신을 만나면 전해주라더군. 결혼반지라나?”
“....!!!”
울컥!
자신을 향해 날아와 정확하게 손 위에 올려지는 조그마한 반지.
많이 헤지고, 금도 아닌지라 기스 같은 것도 많이 나 있는 그런 평범하면서도 조악한 반지에 세나는 눈물을 쏟았다.
마치 수도꼭지를 열기라도 한 것처럼 콸콸 쏟아지는 그녀의 모습에 강혁은 그 모습을 지켜보기보단 등을 돌려 그 시선을 피하는 걸 택했다.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지났을까?
“....당신을 믿겠어요. 제가 뭘하면 되죠?”
물기가 가득한 세나의 목소리에 드디어 울음이 끝났음을 깨달은 강혁이 등을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영혼이기에 바뀐 점은 없지만 왠지 모르게 그녀의 두 눈이 살짝 부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강혁은 다시금 등을 보였다.
물론 기다림을 위한 등 돌림은 아니었다.
“업히시죠. 집으로 돌아갈 시간입니다.”
살짝 무릎을 굽히며 내뱉은 강혁의 말에 세나는 혼비백산한 얼굴로 자신의 볼을 감싸쥐었다.
마치 뭉크의 절규처럼 말이다.
*“....영웅들의 신화 속에서 보던 일을 제가 직접 경험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요.”
“저도 이런 일을 하는 건 처음입니다.”
등에 업힌 세나의 말에 강혁도 자조어린 미소로 화답했다.
그라고 해서 이런 일을 바란 건 아니었으니까.
‘알케미와의 약속. 나아가 명계라는 세상을 한 번쯤은 돌아볼 필요도 있었고.’
그저 필요와 약속에 의해서 이루어진 일.
후회는 없었다.
앞으로 나아갈 뿐.
‘그래도 영웅들이 하던 일을 내가 하게 되니 신기하긴 하네.’
예전, 아주 오래 전.
지구에서가 아닌 다른 세상의 영웅들이 사랑하는 이를 구하기 위해서 명계에 방문해 하데스 등에게 인정을 받고 그들을 데려간 일화를 분노에게서 들은 강혁이었다.
‘....뭐, 다른 영웅과는 달리 친구의 여자를 업고 있다는 점이 다른가?’
그들과 자신의 다름을 떠올리며 자조어린 미소를 머금은 강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영혼이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깃털처럼 가벼운 그녀의 무게를 느끼며 강혁은 그녀에게 물었다.
“두고 온 물건은 없습니까?”
“없어요. 어차피 이곳 세상에 와서 얻은 잡다한 물건들 뿐. 굳이 챙겨야 할 건 없어요.”
“그러면 바로 출발해도 되겠군요.”
챙길 물건이 없다는 말에 곧바로 떠날 채비를 하던 강혁은 무언가를 느끼곤 인상을 찌푸렸다.
“....아는 존재들입니까?”
“....네, 알긴 아는데 좋은 생각으로 찾아온 건 아닐 거라고 전 생각해요.”
“그건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타닥-
하늘 위에서 부드럽게 내려앉아 바닥에 착지한 검은 인영들.
그들의 모습에 세나가 내게 설명을 해주었다.
“저들은 하데스 신의 명을 따라 명계의 주민들을 데려가는 사자들이에요. 저들에게 붙잡혀간 이들은 다시는 세상에 발을 붙일 수 없게 되는 소멸형을 선고 받게 된다고 알려져 있어요. 그런데 왜 저들이....”
“이유야 뻔하지 않습니까? 죽은 자가 다시금 산 자의 세상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막기 위해서겠죠. 물론 다른 이유도 있겠지만.”
“....역시, 정 위험하다면 저를 두고 가셔도 좋습니다. 그러니 부디 몸 조심하시길.”
알케미와 똑같은 소리를 늘어놓는 그녀의 모습에 강혁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부부는 닮는다더니 똑같은 소리를 하는군요. 그 친구도 제게 위험하면 그러라고 하던데.”
“....그이도 참 변한 게 하나도 없군요.”
알케미의 생각을 전해들은 그녀는 살풋 웃음을 머금더니 목을 감싼 손에 힘을 주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떨어지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그녀의 모습과 동시에 자리에 내려앉은 검은 인영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파바바박-
“....좀 많이 흔들린 것 같으니 단단히 붙잡으시길.”
“이미 알고 있어요!”
쾅-!
말이 끝나기 무섭게 강혁을 자리를 박차고 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그런 강혁을 쫓아 검은 인영들 또한 마찬가지로 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마치 검은 새와 인간의 모습과도 같은 모습을 뒤로한 채로 그들은 명계의 도시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의 상황을 파악한 강혁이 이를 갈았다.
‘젠장, 몰이 당하고 있나.’
검은 인영들은 쉽사리 강혁의 주위로 다가오지 않았다.
오히려 강혁의 이동 방향만 조절할 뿐, 그들의 거리 유지는 완벽했다.
사실 그게 옳은 행동이었다.
신과 악마와도 대적할 수 있는 강혁에게 전면승부를 걸었다가는 대패하곤 강혁을 놓칠 수밖에 없을 테니까.
그렇기에 강혁은 쉽사리 자신이 원하는대로 움직일 수없었다.
‘완벽하다. 정확하게 내가 가고 싶은 방향에 검은 인영들을 다수 배치하고 내가 가기 싫은 방향에만 수가 적다.’
검은 인영의 수는 갈수록 늘어가고, 그들이 노리는 방향대로 강혁은 움직일 수밖에 없는 상황.
결국 강혁은 결단을 내려야만 했다.
“아무래도 바로 지구로 돌아가진 못할 것 같군요.”
“그래 보이네요. 아까보다 더 늘었죠?”
“네, 아마 저들이 바라는 방향으로 일단 가긴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좋아요, 어차피 저희가 할 수 있는 것 없어서 그런 방안을 택하셨을 테니 제가 거절할 수도 없겠군요.”
이해한다는 듯이 등짝을 두들기는 세나의 목소리에 강혁은 그렇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곤 그들이 바라는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데스의 성인가. 대체 무슨 꿍꿍이인지 모르겠군.”
명계의 세상에서 그 중심에 위치한 거대한 흑색 성.
하데스의 성으로 보이는 그곳을 향해서 말이다.
*“....오는군요. 제가 바라던대로.”
검게 칠해진 방안에서 갈색 머리의 여성이 창밖으로 검은 인영들에게 쫓기는 강혁의 모습을 눈에 담고 있었다.
이윽고 강혁이 흑색 성으로 다가오는 모습을 확인한 그녀는 창가에서 몸을 돌려 바깥으로 향했다.
“맞이 할 준비를 해야겠네요.”
이윽고 그녀의 모습이 완전히 방안에서 사라졌다.